오늘은 2024. 2. 7.(음섣달 스무여드레). 수요일.
날씨는 흐리다.
<한국국보문학> '2024년 3월호' 문학지에 동참하려고 내 대전 C고등학교 여자 동창생의 카페에서 글 고르다가 아래 글 두 개를 발견했다.
아래 두 글의 제목은 다르나 글에서 나오는 '김씨'는 같은 사람이다.
퍼서 여기에 올린다.
위 문학지에 낼 글은 더 검색해야겠다.
글 쓴 이는 '바보야'. 최윤환이가 'baboya'이다.
어떤 죽음
baboya
(머슴, 소, 막걸리가 있었던 옛기억'에서 일부만 퍼 왔음)
충남 보령시 웅천읍 관당리 무창포에서 사는 김 씨가 있었다. 내가 1972년 예비군 중대본부 행정업무를 보면서 알게 된 예비군이었는데 그는 무척이나 잔말이 많았다. 언행이 어눌하고 행동거지가 어뚠했는데도 아는 것(?)이 너무 많고 넉살이 좋아서 남들한테 비웃음을 샀다. 예비군훈련 때에는 늑장부리고 굼떠서 걱정과 조롱거리가 될 만큼 늘 말썽을 피웠다.
그가 일꾼(머슴)으로 우리집에 들어왔다. 시집온 지 얼마 안 되는 새색시를 데리고 와서 바깥사랑방에 신방을 차렸다. 그러나 얼마 살지 않고는 무창포로 되돌아갔다. 그가 무창포로 돌아간 뒤 얼마 안 되었을 때 성깔(성미) 사나운 장모가 딸을 데리고 가버렸다는 풍문이 어슴프레 떠돌았다가 잠잠했다. 1973년 봄인가? 그가 우리 집에서 일한 일꾼 가운데 마지막이 아니었나 싶다.
그는 훗날 우리 동네 앞마실의 황 씨네로 머슴 살러 왔으며, 우리 동네에 정착했다. 주인댁의 눈에 들어서 사위가 되었다.
새로 얻은 아내는 김 씨보다 더 딱했다. 그의 외아들이 정신이 온전하지 못하고 껄렁거린다는 소문이 돌았다. 대천에서 학교 다니는 고등학생인데도 학교를 자주 빠지고 대신 오토바이 타기를 억세게 좋아했으며, 중고 오토바이를 훔쳐 타고 다니다가 들통이 나서 순경한테 쫓겨서 산으로 달아났고, 결국에는 농약 먹고 자살했다는 슬픈 풍문이 떠돌았다.
김 씨의 가슴에 못을 박고 간 철없는 아들이었을까. 중고 오토바이를 훔친 죄를 감당하지 못하고 성급하게 자살을 택했지만 애비인 김 씨가 죽은 아들 이름을 자주 부르면서 실성한 것처럼 울고 다닌다고 했다.
내 어머니는 그게 못마땅했는지 말을 덧붙였다.
"나도 생떼거리같은 자식 셋을 가슴에다 묻고 살지만 자네처럼 울고 다니지는 않네. 울은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혼자만 가슴에 담고 앞으로는 남들 앞에서 죽은 자식을 찾지 마소"라고 매정하게 혼냈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자식 죽어 가슴 안 아픈 사람이 어디 있어?”
그의 작은딸도 부실하여서 멀리 외딴섬에 갇혀 있다는 믿기 어려운 소문도 나돌았다. 이래저래 가슴에 응어리가 새겨진 김 씨가 우리 동네 사람이 된 지도 벌써 삼십여 년이다.
설날 아침에 시골 어머니한테서 전화가 왔다.
"차례를 잘 모셨느냐?" 물으시면서 "종대가 술에 취해서 길거리에서 자다가 차에 치여 죽었단다"라고 말씀하셨다.
삼십여 년 전인 1970년대 초 우리 집에서 잠깐 머슴 살았던 김 씨는 '바다가 갈라지는 곳', '신비의 바닷길'로 알려진 무창포해수욕장(충남 보령시 웅천읍 관당리) 바닷가 출신이지만 우리 마을로 장가와 마을사람이 되었다.
그는 마음이 무척 순하고 선량했으나 술을 지나치게 좋아해서 실수가 잦았다. 정신이 조금 모자라서 남의 일에 잘 끼어들고는 핀잔을 받았다. 황 씨네에서 머슴 살다가 주인집 딸과 결혼했는데 그의 아내도 정신이 모자랐고, 그들 부부가 낳은 독신아들과 두 딸도 모자랐다. 그의 아들은 오토바이 절도사건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어머니가 부조봉투 갖다 주세요."
"우리 집과 별로 왕래가 없는데..."
"그래도 우리 집에서 잠깐이라도 머슴 살았잖아요?"
"그렇게 하마. 그 마누라가 부실해서 김치도 친정어머니가 담가줄 만큼 모자라고, 사람을 못 알아볼 텐데. 설이라서 마을에 사람이 없으니 누구한테 봉투 전해달라고 할까 걱정이네."
"어머니가 그냥 갖다 주세요."
"그래야겠다."
설날인 오늘부터 여든일곱 살이 된 어머니한테 부탁드렸다.
음력설 차례가 끝난 뒤 내 큰딸이 할머니한테서 전화로 소식을 들은 모양이었다.
"아빠. 종대라는 분 내일 화장(火葬)한데요."
그의 일생이 안됐다. 그에게는 아내, 아들, 두 딸이 있었고, 아들은 고등학생일 때 자살했다. 시집간 큰딸은 지난해 가을 생활고로 약 먹고 가족동반자살을 기도했는데 큰딸만 죽고 사위는 살아났다. 유족으로는 아내와 작은딸이 남았다.
술에 취해서 길바닥에 쓰러져 자다가 차에 치여 죽은 김종대 씨는 세상을 무던히도 힘들고 어렵게만 살았지만 한편으로는 무척이나 선량한 분이라는 것을 나만이라도 오래토록 기억하고 싶다.
화망마을 앞길은 무창포해수욕장으로 가는 길목.
606무창포로 도로가 넓어지고 아스팔트로 포장되면서 세게 달리는 읍내 차량이 늘어나고, 외지 차도 늘어났다. 또 2~3년 전부터 서해안고속도로 무창포인터체인지(IC), 톨게이트(TG)가 생기면서 신작로는 더욱 위험해졌다.
이번에도 교통사고가 났으니 최근에 우리 마을 사람 네 명이나 죽었다.
2005. 2. 9. 바람의 아들
첫댓글 최선생님 글을
읽고나니 슬퍼지
고 허무합니다.
이 세상 슬프지
않은 인생과 죽음
이 있겠습니까.
저도 70살이 되니
산다는 것이 허무
하게 느껴집니다.
이번 설에는 롯데
백화점서 과일세트를 사서
청주에서 한의사
일하는 동생에게 보냈답니다.
행복한 설 명절이
되시기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글 다듬고 있었지요.
위 글에서 나오는 분 무척이나 안타까운 사람이었지요.
정신력은 조금은 모지라도 무척이나 선량하고, 쾌활했던 사람인데... 술 좋아하다가 길에 엎어져서 잠들었다가 교통사고로 죽었지요.
김일제 소설가님.
몸은 조금 부족해도 마음은 늘 건강하셔야겠지요.
90살을 훌쩍 넘겨서 100살까지도 바라보셔요.
부럽습니다. 동생의 신분이 사회적으로 유명하군요. 형제끼리 오고가는 정도 두텁겠군요.
@최윤환 최선생님 편안한 시간이 되세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