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브 나무 사진을 붙인 유리병 (외 2편)
조해주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어제까지 괜찮았는데 스페인산 올리브 50% 본체 유리 뚜껑 철 지금 먹지 않으면 영영 먹지 않을 날씨 같은 맛이라고 생각하면 이상할 것이 없지만 입안에서 굴리는 동안에는 입을 벌릴 수 없다 입을 벌리면 할 말이 없다 씨만 툭 뱉으니까 내가 아끼는 베란다 텃밭에서 눈두덩이에서 만져지는 올리브 눅눅한 이불 냄새 실내 식물이 바깥으로 뻗어 나가고 있다 무슨 색이라고 부를까 구불거리는 머리카락 빛을 많이 받은 곳은 색이 옅어진다 비어 간다는 뜻일까 작고 단단하게 뭉쳐 두었던 삼키고 나면 하고 싶었던 말을 할게 올리브 나무 기대수명은 천 년이라고 한다
—계간 《백조白潮》 2024년 여름호 여기서부터는 혼자 갈 수 있어요 그를 빤히 바라본다 무언가 생각날 것 같아서 너무 빤히 바라보면 흐릿해진다 모르겠어 뺨에 묻은 얼룩을 지워 주려던 것뿐인데 트럭이 잔상을 남기며 길어진다 페인트는 머리 아픈 냄새 노랑 파랑 주황 다른 색채여도 같은 냄새 어두운 대로변에서 그는 한입 베어 문 사과였다가 사과였다가 심 부분만 남은 사과였다가 빛이 지나갈 때까지 그는 가만히 서 있다 무슨 생각해? 그는 내 눈앞에서 자신의 손바닥을 흔들어 보인다 그는 어떻게 알았을까 내가 흩어지고 있다는 것을 머리 위로 나뭇잎이 사각거리는 소리 나는 수많은 입을 천천히 움직인 셈이다 아무도 모르게 자갈이 자갈밭으로 돌아가는 밤 그중에 내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도록 모래는 모래 냄새 물에게도 물 냄새 제가 보이세요? 주유소로부터 멀리 도로 끝에서 신호가 깜빡이고 있다
표범의 마음 차창에 기댄 채 눈을 감으면 키가 큰 순서대로 몸 안에 들어오는 나무들 아주 빠른 속도로 나는 누군가의 갈비뼈 안에 있다 깜빡 졸았어 미안해 나는 감았던 눈을 뜨고 차가 신호 앞에 정지하는 동안 라디오 뉴스가 흘러나온다 어제는 누가 죽었고 어디서 발견되었는지 카펫 아래 숨겨 놓은 것이 얼마나 오래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 내가 범인이라면 아주 사나운 동물의 몸속에 들어가 피신하겠어 아마도 표범은 느리게 중얼거리겠지 왜 배가 고프지 않을까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마음먹기에 따라서 이상한 마음을 먹은 바람에 표범은 영영 무리로는 돌아갈 수 없겠구나 그는 핸들의 방향을 틀며 웃는다 표범의 내부는 어두워서 나는 내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고 터널에서 벗어날 즈음 옆에 앉은 그는 이제 거의 다 온 것 같다고 한다 머리 위로 울창하게 드리운 갈비뼈를 부러뜨리지 않으려고 나는 손을 뻗지 않는다 좀 웃어 봐, 누군가 그렇게 말하면 웃고 있다고 대답한다 ―시집 『가벼운 선물』 2022.9 ----------------------- 조해주 / 1993년 서울 출생.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 졸업. 2019년 시집 『우리 다른 이야기 하자』(아침달)로 등단. 2022년 시집 『가벼운 선물』 출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