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방송기자클럽 토론회에 참석한 박근혜 후보는 어머니 육영수 여사의 이름을 몇 번이나 거론했다. 시인 김지하는 얼마 전, 박근혜에게 어머니 고 육영수 여사를 닮은 부드러운 정치를 해달라고 주문한 적이 있었다. 우리 국민들 대다수는 가장 영부인다운 영부인을 꼽으라고 하면 단연 고 육영수 여사를 지목한다. 박정희 정권 시절에 누구보다 강력하게 저항했던 반골시인 김지하가 박근혜에게 왜 어머니 육영수 여사를 닮으라고 했을까. 아마도 갈기갈기 흩어지고 찢어진 국민들을 하나로 통합을 시킬 적임자는 박근혜 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요즘의 2030세대들은 잘 모르는 일이겠지만 박정희 정권 시절 체제 저항적인 지식인들도 육영수 여사에게 만큼은 감히 시비를 걸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가장 현모양처다웠고 가장 한국적인 인자함과 부드러운 여성상의 모범을 솔선수범했다는 것을 당시 반체제, 반골인사들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 육 여사는 남편 박정희 전 대통령을 ‘여보’라고 부르지 않았다. 대신 “여기 좀 보세요’라고 불렀던 청와대 내의 입바른 야당이기도 했다고 많은 사람들이 증언해 주고 있다.
인자하고 자상스러운 어머니의 모습을 보여준 육 여사는 사랑과 봉사에 관심이 많았고 특히 장차 나라의 주인이 될 어린이 육성에 관심을 많이 보여주었다. 1964년 육 여사는 장,차관 부인들과 사회지도층 부인들이 참여하는 봉사단체인 양지회를 만들어 10여 년 간 활발하게 활동했다. 적십자 주요봉사활동, 헌혈운동, 정신박약 어린이 돕기에 열정을 보였고 수재의연금 모금을 위한 ‘사랑의 열매“ 달기 가두행사에도 직접 참여했다.
또한, 농어촌 개발사업, 양지회 장학사업, 정구대회, 탁구대회 등도 열었고 파월장병 위문활동, 새마을 운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특히 자선을 베풀기 보다는 생활 기반을 만들어 자립할 수 있도록 많은 지원 사업을 했다. 예를 들어 국수를 만드는 기계를 주어 자립하도록 도왔던 일이나 노끈을 만드는 기계를 주어 스스로 땀 흘려 정당하게 벌수 있도록 해준 일등 등은 땀 흘려 버는 돈이 그만큼 알차고 중요하다는 정신적 자세를 전환시키는 촉매제 구실도 했다. 이런 것을 보면 박근혜의 생애주기별 맞춤식 복지공약도 어쩌면 어머니의 유전자를 많이 받은 탓이 아닐까 한다. 고기를 직접 주는 것 보다 고기를 잡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자활에 보탬이 되고 훨씬 더 인생의 보람을 느끼는 일이니까,
특히 어린이에 관심을 많이 보여준 육 여사는 1969년 복지재단인 육영재단을 설립하여 어린이대공원과 어린이회관의 건립을 주도했고, 1972년도에는 부산 어린이회관도 건립하게 만들었다. 또한 잡지 “어깨동무”를 발간하여 농어촌 어린이들에게 배포했고 1973년에는 불우 청소년의 직업 선택을 위한 “정수직업훈련원”도 만들었다. 이는 세계기능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청소년 기술인들이 세계 정상의 성적을 올리는 기반이 되기도 했다.
육 여사가 많은 봉사활동을 하였지만, 그중에서도 국민들이 가장 인상 깊게 기억하는 일은 전국 한센 병 환자촌을 고루 방문하여 자활사업을 지원했다는 것이다. 육 여사는 한센 병 환자 사업기관지였던 ‘새 빛“ 3000부를 매달 청와대 봉투에 담아 육영수 여사의 이름으로 전국 관공서와 우체국 등에 꾸준히 배달케 하여 한센 병 환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 전환을 촉구하는 일에도 신경을 쏟았다.
육 여사가 환센 병 정착촌을 방문할 때도 그들의 처지를 배려하는 차원에서 항상 관계자 3~4명만 대동했다. 한센 병 자활을 돕기 위해 양지회를 이용하여 전국 78개 정착촌에 씨돼지 470마리를 보냈고, 강원도 원주 경천 농원을 방문해서는 판로를 못 찾아 애를 먹고 있는 계육을 당국의 도움을 받아 활로를 틔어 주기도 했으며, 전북 익산 상지원을 방문해서는 2년 만에 새끼를 볼 수 있다는 소 사육 방식을 듣고서는 소 50마리 분의 금액을 무담보 융자로 해결해 주기도 했다. 이처럼 자립을 하겠다는 곳에는 아낌없는 지원을 했던 것이다. 평소에 봉사하는 정신이 몸에 베어 있지 않았다면 결코 이루어 질 수없는 일들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누가 뭐라고 해도 육 여사가 한센 병 환자들의 두 손을 직접 어루만지며 살림살이를 같이 걱정하고 그들이 내놓는 고구마도 가식 없이 같이 먹기도 했다는데 있을 것이다. 이외에도 수재민 난민촌 방문, 교도소방문, 전방초소방문, 탄광촌방문, 등등 종횡무진으로 뛰어다니기도 했다. 이러한 육 여사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한센인 협회 회원들은 육 여사의 공덕비를 소록도 양지회관에 스스로 세웠고 해마다 빠짐없이 국립묘지를 참배하고 있다.
육 여사가 생전에 봉사한 일을 일일이 나열하기에는 날밤을 세워 적어도 모자랄 정도로 많이 있다. 육 여사 사후, 여러 명의 대통령 영부인이 배출되기는 했지만 육 여사와 같은 자애와 봉사를 생활의 신조로 삼았던 영부인은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고 있다. 김지하는 이러한 육 여사의 아름다운 기억을 회상하고 박근혜에게 어머니를 뛰어넘는 대통령이 되어, 대한민국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굳게 가져 줄 것을 간곡히 당부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한 시대의 질곡을 뛰어난 시대감각으로 국민들에게 전파해준 시인 김지하가 고 육영수 여사에 대한 역사적 조명을 새롭게 함으로써 박근혜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장자방
첫댓글 육영수 여사님이야 말로 현대 여성의 롤모델 입니다.
존경합니다
박정희 대통령각하 육영수 여사님 그립슴니다, 편히 쉬소서...
대한민국의 영원한 국모님 육영수여사님의 그자애로움은 그누구도 따라갈수 없을것입니다! 어머니 ! ~~~~~~~~~~~~~~ 감히 불러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