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스탄티노플의 ‘소피아 성당’
성당 이야기를 하기 전에 ‘소피아’에 대해서 알아보자.
기독교에서는 ‘소피아’는 지혜라는 뜻이다. 영지주의 기독교에서는 인간의 ‘심혼’을 나타낸다. 인간의 심혼이 지상으로 추락하여, 구제의 가능성을 나타내는 기독교 신화가 되었다.
‘지혜의 숭배’는 그 근원이 헬레니즘 이후와 기독교에서 성모 마리아가 지혜의 여신의 부분을 흡수하여 소피아의 지혜를 나타내기도 한다.
건축물로서 소피아 성당을 보자.
콘스탄티누스 1세가 기독교를 고인하고(313), 다음 황제인 콘스탄티누스 2세가 360년에 성당을 건립하였다. 그러나 민중 폭동, 지진 등으로 여러 차례 소실하고, 붕괴를 함으로 몇 차례의 재건축을 하였다.
537년에 유스티아누스가 537년에 이전보다 규모가 훨씬 큰 성당을, 오늘의 성당을 건립하였다 이후 여러 차례의 보수가 있었다. 4차 십자군 원정으로 콘스탄티노르플을 함락하고, 1204-61년까지 로마 카톨릭 성당이 되었으나 동로마가 재탈환하여 동방 정교의 성당으로 환원했다. 성당의 건축물 역사를 보면 치근까지도 끊임없이 피해와 복구를 되풀이 했다.
오스만 제국 시대는 이슬람의 모스코가 되기도 했다.
소피아 성당은 고대 후기 건축 양식과 동로마 제국의 건축 양식이 혼합하여 지어진 걸작품이다. 유스티아누스 항제가 건립하면서 돔 양식과, 벽면을 모자이크로 정교 교회의 성인과 성당의 역사와 관계잇는 인물상을 남겼다 그 모자이크가 지금까지 전해옴으로 소피아 성당을 더욱 유명하게 만들었다. 간단하고 추상적으로 표현하였다. 특히 9세기 후반에 많은 장식을 추가하였다.
이후로 끊임업시 보수를 거듭하였다.
19-20세기에 들어와서도 성당을 대대적으로 복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