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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대에 촬영된 사진을 보면 무덤 앞에 조선시대 때 세운 비석이 반 토막 난 채로 세워져 있었지만 현재는 그나마도 없어진 것이 확인된다. 남쪽에는 성릉이 보존유적 568호로 알려져 있는데, 현재 표지석에는 보존유적 569호로 기록돼 있다.
북한, ‘고읍리1호 무덤’을 선종 무덤으로 발표
재위 4개월만에 순종이 사망하자 그의 동생 왕운(王運)이 왕위를 계승했다. 고려 13대 선종(宣宗, 1049년~1094년)이다. 선종은 부왕인 문종(文宗)부터 16대 예종까지 이르는 고려의 전성기에 징검다리 역할을 할 군왕으로 평가된다.
그는 거란, 여진과의 대외관계를 원만하게 관리하고 송(宋)의 문물을 받아들여 문화 수준을 한층 높였다. 불교를 신봉해 1089년(선종 9년) 회경전(會慶殿)에 13층 금탑(金塔)을 세웠으며, 대각국사 의천(義天)이 교종과 선종의 통합을 위하여 추진한 천태종 본산 국청사(國淸寺)의 건설을 시작하여 이듬해 완성시켰다. 다만 계속된 토목공사로 백성들이 고통스러워했다고 한다. 능은 개성 도성의 동쪽에 있으며 능호는 인릉(仁陵)이다.
인릉의 위치는 명확하지 않다. 부왕인 문종의 경릉(景陵)에서 동쪽에 있는 배룡산(390m) 남쪽 궁릉골 주변에는 현재 100여 기 이상의 무덤군이 흩어져 있는데, 북한은 그 중 2개의 무덤을 고려 중기의 왕릉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 행정구역상으로는 황해북도 장풍군 고읍리다.
북한의 개성고려박물관과 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는 2000년 ‘고읍리 2호 돌칸흙무덤’(‘고읍리 2릉’)이라 명명한 무덤을 조사한 후 이 무덤이 고려 13대 선종의 능이라고 발표했다.
북한은 “학자들이 고려사, 중경지(中京誌) 등의 고문헌을 토대로 고읍리 고분군 현지를 답사하고, 무덤 내 구조물 짜임새와 판석·판돌 규모, 출토된 유물 등을 분석해 이 같은 사실을 과학적으로 고증했다”고 밝혔다.
‘인릉’은 봉분 둘레에 돌난간, 석수, 망주석, 제당터 등이 장식돼 있고, 묘실은 길이 3.44m, 너비 2.18m, 높이 2.16m이며, 관대(棺臺)는 길이 2.8m, 너비 1.4m, 두께 0.16m로 조사됐다.
북한은 “인릉은 관대의 너비가 1.4m로 다른 왕릉보다 훨씬 크다는 점이 특이하며, 이는 인릉이 부부 합장묘임을 의미한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남한학계에서는 ‘명문이 새겨진 묘지석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이 왕릉이 인릉인지 알 수 없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이다.
한편 북한 학계는 2000년에 ‘고읍리 2릉’에서 동쪽으로 1km 정도 떨어져 있는 ‘고읍리 1릉’을 고려 18대 의종(毅宗1127∼1173년)의 희릉(禧陵)이라고 발표했는데, 이 역시 확증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선종의 아들인 고려 14대 헌종(獻宗, 1084-1097)의 은릉(隱陵) 또한 개성 도성 동쪽에 있다고 기록돼 있지만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는 상태이다.
‘고읍리 1릉’과 ‘고읍리 2릉’은 발굴 결과 전형적인 고려 왕릉의 양식으로 조성된 것이 확인됐기 때문에 왕릉인 것은 분명하지만 무덤의 주인공은 남북 역사학계의 더 많은 연구와 조사가 이뤄져야 밝혀질 것 같다.
출처: https://www.google.co.kr/amp/s/mobile.newsis.com/view_amp.html%3far_id=NISX20200311_000095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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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고려의 순종역사 잘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4개월 단명한 순종의 협소한 무덤 성릉
잘 읽고 많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