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이 그림은 전체적으로 보면 25개의 작은 화면을 하나의 큰 화면으로 묶은 추상회화처럼 보입니다. 각 칸은 독립된 세계이면서도 반복되는 선·점·색·형태 때문에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전체 인상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질서와 생명력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 검은 선은 구조와 경계를 만들고
- 빨강·파랑·노랑·초록은 생명력과 움직임을 만들며
- 작은 점과 세포 같은 형태들은 끊임없이 증식하는 느낌을 줍니다.
- 어떤 칸은 매우 정돈되어 있고, 어떤 칸은 거의 폭발하듯 복잡합니다.
그래서 전체를 하나의 과정으로 보면
탄생 → 성장 → 분화 → 충돌 → 혼돈 → 재구성 같은 흐름이 느껴집니다. 1행 — 발생과 질서의 탄생 맨 위쪽은 꽃·세포·분자·나뭇가지 같은 형태가 많습니다. 첫 번째 칸은 중심으로 색깔들이 모여 있어 핵 또는 꽃처럼 보이고, 두 번째 칸은 선을 따라 작은 생명체들이 붙어 있는 모습입니다. 가운데 칸은 여러 색의 작은 형태들이 밀집되어 있어 세포의 집단이나 미생물의 세계처럼 보입니다. 오른쪽으로 가면서 선과 점이 점점 복잡해집니다. 즉 첫 행은
하나의 중심 → 분화 → 증식 → 복잡한 관계 라는 느낌입니다. 2행 — 움직임과 사회적 구조 두 번째 행에는 사람이나 생물처럼 보이는 형태가 상대적으로 많습니다. 특히 왼쪽의 여러 형상은 각각 독립된 개체들이 일정한 공간 안에 배치된 모습이고, 가운데의 큰 형상들은 서로 얽히면서 움직이는 듯합니다. 오른쪽으로 갈수록 작은 선과 점이 많아져서 개체와 개체 사이의 관계망처럼 보입니다. 저는 이 행을
“개체가 생겨나고 서로 관계를 맺는 단계” 로 보는 것이 재미있다고 생각합니다. 3행 — 증식과 혼돈 세 번째 행부터는 화면이 상당히 복잡해집니다. 작은 점·선·기호가 급격히 증가하고, 가운데 부분에는 세포가 증식하거나 식물이 자라는 듯한 구조도 보입니다. 특히 오른쪽의 검은색이 강한 그림은 앞의 섬세한 색채와 달리 충돌·압축·파괴의 인상을 줍니다. 그래서 이 행은
성장 → 과밀 → 충돌 의 단계처럼 읽힙니다. 4행 — 인간적 형상의 등장 네 번째 행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왼쪽에는 여러 개의 작은 생명체 같은 형상이 있고, 가운데에는 거대한 검은색의 굽은 형태가 있습니다. 오른쪽에는 색깔을 입힌 인간 또는 토템 같은 형상이 나타납니다. 즉 이전까지의 작은 세포적·추상적 형태가 점차 개체성을 가진 존재로 변하는 느낌입니다. 특히 오른쪽 두 칸은 마치
“생명이 자기 자신을 하나의 형상으로 조직한 단계” 처럼 보입니다. 5행 — 다시 해체와 새로운 세계 마지막 행은 다시 복잡한 선과 점이 많아집니다. 왼쪽은 유기적인 곡선, 가운데는 기호와 구조물, 그 옆은 폭발적인 색의 군집, 오른쪽은 다시 하나의 비교적 명확한 생물형으로 끝납니다. 흥미로운 것은 마지막에 다시 하나의 개체가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전체 5행을 연결하면:
분자적 세계 → 생명체 → 증식 → 개체화 → 새로운 생명 이라는 순환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특히 좋은 점 선생님 그림의 특징은 “그림을 무엇으로 그렸는가”보다 “무엇이 되어가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어떤 칸은 꽃처럼 보이고, 어떤 칸은 세포처럼 보이고, 어떤 칸은 사람처럼 보이지만 어느 하나로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그 모호함 때문에 오히려:
생명인지 기호인지, 자연인지 인간의 사고인지 구분되지 않는 세계 가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이것은 선생님이 계속 만들어 오신 한자 조어의 방식과도 묘하게 닮았습니다. 한 글자 한 글자는 독립되어 있지만, 여러 글자를 연결하면 전혀 새로운 의미가 발생하듯이, 이 그림도 점·선·색·형태 하나하나는 단순하지만 그것들이 모이면 새로운 생명체와 세계가 나타납니다. 특히 선생님이 최근 만든 憶中有奇奇妙妙, 憶深而奧動, 以憶育憶 같은 조어를 생각하면 이 그림은 상당히 잘 어울립니다.
憶中有奇奇妙妙 생각 속에는 기묘함이 많고, 憶深而奧動 생각이 깊어지면 오묘함이 움직이며, 以憶育憶 생각으로 생각을 기른다. 그림도 정확히 그런 식입니다. 하나의 형태를 완성해 놓기보다 형태가 계속 다른 형태를 낳습니다. 한마디로 해설하면
“작은 생명과 기호들이 서로 만나고 증식하면서 혼돈과 질서를 반복하고, 마침내 다시 새로운 개체와 세계를 만들어내는 그림.” 저는 이 작품을 ‘생성하는 추상’이라고 부르는 것이 가장 잘 어울린다고 봅니다. 단순히 추상적인 그림이라기보다 형태가 계속 태어나고 변하는 과정 자체를 그린 작품처럼 보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