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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김씨중앙종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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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스크랩 충청도 천한은진송씨 ``첩``의 소생인 김경여 시제날이라 연락받던 날 밤에
작은덕골님(김광수) 추천 0 조회 22 12.01.05 19:0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2011년 11월 9일 수욜날이다

오후 6시 41분 011-426-3606번이 사내의 휴,폰에 뜨면서 전화가왔다

그리하여 받아보니 이 고을 경주김가의  천한 ``첩`` 은진송씨 소생인 김경여후손 경주김가였다

여기서 잠시 김경여의 약력을 빌려서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이어져간다.

 

 

아래.

 

 

김경여의 기개와 충성심이 깃든 송애당

[2010년 2월 26일, 잔뜩 흐린 금요일 오후. 우리 동네 알아보기]

 

어제부터 줄기차게 내리던 비가 잠시 잦아들자 카메라를 들쳐메고 송애당(松崖堂, 대전광역시 대덕구 중리동 115번지)을 찾았다. 송애당은 조선 효종 때 충청도 관찰사를 지낸 송애 김경여(金慶餘, 1597~1653) 선생이 병자호란 후 벼슬을 버리고 돌아와 1640년(인조 18년)에 지은 별당이다.

송애(松崖)는 "눈서리를 맞아도 변하지 않는 소나무(松)의 굳은 절개와 높이 우뚝 선 절벽(崖)의 굳센 기상을 마음에 간직하겠다"는 뜻으로 김경여의 기개와 충성심을 나타낸다. 이곳에서 당시의 유명한 학자들과 함께 학문을 닦았다. 인근에 있는 동춘당, 쌍청당, 제월당 등과 함께 이 고장의 별당(別堂)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송애당은 자물쇠가 잠겨 있어서 안으로 들어가 관람할 수는 없었다. 다만 사방에 둘러 쳐져 있는 낮은 담장 너머로 안을 살펴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정면에는 조그만 대문이 서있다.   

사방으로 둘러 있는 담장 안에 별당 건물인 송애당이 홀로 서있다. 

좌측 담장 너머로 바라 본 송애당 전경. 일부러 가운데 칸 문짝을 열어 놓았는지, 아니면 바람에 열린 것을 관리인이 모르는지 문 두 짝이 열려 있었다.  

오른쪽 담장 너머로 본 송애당 전경.

송애당 인근에 있는 은진 송씨 정려각(대전유형문화재 24호, 대전광역시 대덕구 법동 205-5)의 정문이다.

은진 송씨 정려각은 은진 송씨로 송담 송남수의 딸로 계림군 김정의 후손인 김광유의 아내이며 송애 김경여의 어머니를 기리는 것이다. 김경여의 어머니는 유복자인 김경여를 훌륭한 지도자로 길렀다.

요즈음 '우리 동네 알아보기'를 하면서 자주 느끼는 점이지만 우리의 소중한 문화 유산을 잘 보존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우리들이나 후학들이 가깝게 접할 수 있도록 늘 개방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모처럼 우리의 문화재를 찾았는데 대문이 잠겨 있어서 실망한 적이 많다.

 

송애당 바로 옆에는 벽창의용단을 조직한 독립운동가 심산 김태원(心山 金泰源, 1900~1951. 1963년 건국훈장독립장 서훈)의 시비(詩碑)가 세워져 있다. 시비에는 "혈생사.사생의. 의생충. 혈생절. 절생죽. 혈식일실천추. 죽생사시장춘(血生死. 死生義. 義生忠. 血生節. 節生竹. 血食一貫千秋. 竹生四時長春)이라 새겼다.

 

[NAVER 백과사전] 송애당 : 1989년 3월 18일 대전광역시유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되었다. 경주 김씨종중에서 소유, 관리한다. 병자호란 때 독전어사()를 지낸 송애당 김경여가 병자호란의 수치를 당한 뒤 부모를 모시고 이곳에 집을 짓고 자신의 호를 따서 송애당이라는 현판을 걸고 은거하다가 효종이 즉위하자 대사간()에 임명되어 청()나라와 결탁한 김자점()을 탄핵하고, 송시열()과 춘추대의를 세우는데 이바지하였다. 송애()는 ‘눈서리를 맞아도 변하지 않는 소나무의 곧은 절개와 높이 우뚝 선 절벽의 굳센 기상을 마음에 간직하겠다’는 뜻으로, 김경여의 기개와 충성심을 나타낸다.
송애당은 조선 전기의 학자인 쌍청당() 송유(:1389∼1446)가 세운 별당인 회덕 쌍청당( :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2)의 북쪽 중리동에 있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전통 한옥으로 왼쪽 2칸은 대청마루이고 오른쪽 1칸은 온돌방으로 지었다. 온돌방의 뒤편은 반침을 만들었고, 그 아래는 함실아궁이로 사용하였다. 네모기둥의 민도리집인 송애당 건물은 홑처마 팔작지붕이며, 1889년(고종 26)에 다시 고쳐 지었다.

 

김경여 : 본관 경주. 자 유선(). 호 송애(). 시호 문정(). 이귀()의 사위. 김장생()의 문인. 1624년(인조 2) 익위사익위()가 되고, 1633년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정언() ·지평() 등을 지내고, 병자호란 때 인조를 호종하여 남한산성에 피란하였다. 이듬해 청나라에 항복한 뒤에는 조정에 나가지 않고, 고향 회덕()으로 돌아갔다.

조정에서 여러 차례 대간()에 임명하였으나 취임하지 않았기 때문에, 금교역()에 유배되었다가 풀려났다. 1649년(효종 1) 대사간이 되고, 김자점()의 잘못을 탄핵하기도 하였다. 이듬해 충청도관찰사가 되어 군사력 배양에 힘썼다. 이어 부제학()에 임명되었으나 병으로 사퇴하였다. 좌찬성이 추증되고 회덕의 정절서원()에 배향되었다. 출처와 의리에 분명하였으며, 송준길(송시열()과 친교가 두터웠다. 문집에 《송애집》이 있다. 

 

여기서 사내가 덧 붙이면!

김경여는 ``대`` 경주김가님의 자손인디 천한은진송씨 대종가 딸내미 첩의소생으로  아부지가 전쟁터서

일찍작고한 나머지 ``첩`` 인 은진송씨는 친정인 은진송씨 대종가에 원위치 해야만 하였구 

은진송씨 대종가서 김경여는 세상사에 태어나야만 하였다

그 과정에 그리한결과 그곳서 영문도 모른채 경주김가님 천한 ``첩``의 땅인 대종가 회덕(현, 중리동 송촌동)서 아부지얼굴도 모른채 첩의소생으로 출생지가되어 태어나 성장함에 ``씨``를 잘~" 받아 어릴적부터 영리하고 영특한 두뇌가 하늘을 찔렀으며!

13살이상가량 차이가나는 천한은진송씨 외사촌 애기동상들 송시열 송준길과 학문을하고 딱지치기

자치기를 하면서 성장을 하여야만 하였다

그리 놀면서 때가되어 과거시험에 장원급제 한댐에 한양에 올라가니,,,,  

이나라에서 수천년동안 나라를 다스렸고 한양선 수백년동안 관복을입고 요직만을 두루걸치고 나랏일을

좌지우지하고 계셨던 경주김가님들의 눈에띄어 보호하에 요직만을 싸돌아 댕기게됐구"

그 담번에 천한은진송씨인 송시열 송준길이 뒤따라 한양에 올라오자!!!!

김경여는 어느? 누구를??

보호해주고 어느? 누구를???? 요직에 앉혀야만 하였더냐???????????????????????????????????????????

뻔하디 뻔한것들을 꼭! 반드시!! 야기를 해야것다 사내는!

그리한 결과 그 현실이 이승아쥬~~" 션찮은 4~~5류의 개시끼씨가 조선사를 좌지우지하는 결과를 초래

했으며 그시절 그 때에 나라가 개판됐구 천한``첩``의 소생 김경여의 큰덕에 의하여 고것이 시방에 확고하게

자리잡은 이 고을 개시끼 씨들이 번창할수가 있었다

이 고을을 아직까정도 짜구치며 싹쓸이하는 확연하게 드러나는 현상임을 이내가 반드시 알려줘야만 될

것 같아 이렇게 애기글을 올리게된 결과다.

그리한 결과 시방두 이 고을선 개시끼 씨들은 위대한 경주김가님의 큰덕에 의하던 바"  ``씨`` 잘받아야

된다고 어릴적부터 귀가 따갑도록 들으며 산촌서 대전서 성장하였다 사내는,,,,,

오널 휴,폰 받았을시 경주김가 천한은진송씨 ``첩``의 소생 김경여후손인 가짜아자씨 왈" 낼이 송애김경여

할아버지 시제날이니 참석하라 하길래"

족보에 있다하길래~~~~!!

개병호가 짜구서 사내가 대전중핵교 책가방 폼만잡구 운동부하며 다닐적 일방적으로 까막눈님이신 아부질

양자처리했고 이내는 송애당 김경여자손이 아니라고 단호히 말하니 그람 할수없다고 전화를 끊었다

여기서 참고로,

김경여후손인 경주김씨송애파 후손들인 국회의원 김칠환이 있었구 현, 국회의원 김창수가 있으며 이 고을

교육감또한, 김신호도 위와같다.

``천한" 소생 김경여후손주제에 감히 ``대`` 경주김가님 본가집안의 으르신님을 농락할라고한다.

 

이내 사내를....

 

개씨는 경주김가님의 덕에의하여 송애후손 경주김가에게만 딸들을 시집보내고  자빠지게하여

씨를 잘~~" 받을라고 혈안이되어 은진송씨 부인이 족보에 겁나게 나오고 개씨들 족보또한, 경주김씨가

할머니들로 ``판``치고있는 혈연의 문중과 문중사이로 서로 협력하며 이 고을 접수하여 지배하여왔다

 

시방의 중리동 은진송씨대종가와 그 옆댕이 송애당이 산 증거로 현존해있다

 

그곳서의 김경여후손 대종가와 개시열후손 개준길후손들이 이곳 금동에 총~" 망라해있다

그곳을 축소시켜놓은곳이 아래의 금동이다

 

 

 

 

금동은 음말. 이승아쥬" 그늘진``뜸``(음지뜸)과 양지뜸 모랭이를 통털어 금동이라 칭하는디"

모랭이은진송씨 첩의송애자손 경주김씨와 그늘진뜸(음지뜸) 개씨후손들(개시열 개준길)과 경계로

땅따먹기했듯"

짠것처럼 선이 경김과 송씨들땅으로 그어져있는 흔적이 아직까정 남아있으며!

사내증조부님 ``첩``은진송씨조카들이 머슴을두고 머슴을 겁나게 부리며 농사를졌던 논,밭

큰덩어리의 산은 3대째를 못 넘기고 팔아조져 약간의 흔적만있다

그리고 하나같이 3대째 몸이 뱅신되어 뱅신지랄육값 꼴값을 엄칭이떨며 벌을 겁나게받고 대간하게

살아가고 있는것을 현장(금동)에 가면 어느누구나 쉽게 지켜 볼수가있다

이처럼

1. 이들이 짜구서 사내의 증조부님 머리를 둔기로 때리고 양팔을 잘라서 증조부님 얼굴위에 묻었고

 

 

증조모님 좌측에 누워계셨으며 ``첩`` 은진송씨인줄알고 묘를 바라시했을적엔 건장한 대장부님이 누워계셨으며 첩은 온데간데없이 토까버렸던 상황을 이장시 보았고 사진으로 산속집 대문에 전시하고있고 간직하고있다

2. 그후로 수소문하야 증조부님 피붙이이신 얼굴도 모르는 사내의 할아버님투분과 아부지가 이곳 산속에

개시끼 씨들이 짜구서 불러들여졌다

조상님께선 죽음이 기다린다는것두 모르신채 개씨들이 짜구치는 텃밭에 오셨단 말이다,,,,

증조부님``첩``의 개씨동생이 왜눔이 판치자 그땐 왜눔에게 상습적으로 보내진결과 곧바로 큰할아버님께서

일본으로 끌려가셔야만 하셨고

3. 그 후로, 까막눈님이셨던 아부지는 14살의 어린나이에 이곳산속서 억울하게 아버님(사내의 할아버님)

 

 

돌아가신걸 보셨고 아셨기에 단! 완번도 참석치 않으셨으며 짜가아자씨란 송애후손들과도 전혀 왕래도

없었다

4. 그러한 이곳서 14살 어린 소년이셨던 아부지는 아무것두 가지신것없이 단독으로 똘망똘망 하시고

천한것들과 비교가 되지않음에 근면 성실로 14필지라는 땅을 소유하셨고 그외의 수많은 땅을 지휘하시다가

가셨다

그 많은 땅 한필지 한 필지를 천한 ``첩``의 작은조카 은진송씨 청암공파 대표좌 개병호에게 사실적마다

돌구돌아 엄칭이 돌아서 한필지가지구 설라무네 수회에걸쳐 쪼개서 사기당하신것두 모르신채 말이다,,,,

윗, 할아버님 산소자리가 한필지 밭인디"

이내가 태어나기전에 사신것을 군 제대후 작은덕골서 ``라스트`` 따먹은 삐조리감나무밭두 내내한필지

인데 ``라스트`` 로 5번째 사셨으니 이눔들이 작정한 개씨들이 아니구 무엇이더냐????

까막눈님의 할아버님은 둔기로 머리를 때리고 양팔을 잘라서 두눈을 가리게한댐에 할머님좌측에 묻고

천한첩은 머슴인지 상눔인지와 토까게하고 그곳에 할아버님 호위무사님을 쥑이구묻어 첩의 묘라사기치고

 까막눈님의 아버지는 보란듯 이곳서 쥑이구"

그 자손이 글일을 모른다고 유치원생을 돌려서 강간을 한단 말이더란!

 

말이더냐!!!!!!

 

천벌, 베락을 살아서도 뒤져서도 열번, 천번, 아니수백만번을 받아도 션찮은 은진송씨눔들!

개조상의 흐르는 피는 절대로 아니속이지 못 한다고 자동으로 알켜주고 있구나~~~!!

 

이 고을 천한 개시끼씨눔들 천한 ``첩``의 후손들 사내는 훗날을 반드시 기약하마!!

 

 

아부진 까막눈님이셨지만 이들이 짜구서 천한송애파에 양자처리함과 송애자손이 아니란걸 알고

계셨던 거셨다,,,

 

그러시면서 살아생전 아부지일을 도와줄적엔 애기소년에게 항시 말씀하셨다

내가 글을 배웠다믄 장관을 했을것이다,,,, (완.투.쓰리 어겐함, 아래)

``완``

``투``

``쓰리``

쓰리번 어겐후"

윗, 대목이 깊은 뜻이 있다는 것이다

 

흐르는 피는 절대루 아니속이지 못한다는것을 암시하는 대목이니라!"

 

또한, 천한 ``첩``의 소생김경여피가 흐르고 있다는것이 아니시라는것을 까막눈님이시지만

알고계셨음에 단! 완번도 참석을 안하셨는디"

느닷없이 이내에게 전화하여 참석하라 통보를 하더라~~"

고연것들 같으니라구"

 

천한것들이 하는 짓꺼리는?

대갈빼기가 zero임과!!

 

상식에 어긋나는 행실과 상식에 맞지않는 짓을 자랑스럽게 한다.

 

이 고을 경주김가는 더 이상 경김자손이 아니고 개시끼씨의피가 더 흐르고 있다는것을 확인시켜준 날였다

상식적으로 사료를 해보거라"

 

경김 천한``첩``은진송씨자손 김경여의 송애파였다믄"

 

문중서 나랏일을 하다가 역적일을 하였다하여도 동리서 죽을죄를 지었다하여도 사람을 죽였다하여도

혈연의 사돈관계이며 할머니가 형수가 아내가 은진송씨요!

천한은진송씨 대종가외의 양파도 어머님 아내 할머님께서 경주김가님이시며 문중끼리 "끼리끼리"

천한은진송씨 ``첩``의자손 김경여때부터 사돈의사돈관계를 시방까정 이어가고 있는데

윗, 상황 1~4번까정의 일들이 일어나것냐!!

이눔들이 가만히있음 중간은 가는디 천한것들이 천한조상을 뫼시고 있다고 자동으로 알켜주는 한심한짓을

자랑스럽게 상습적으로하고 있음이다

이낸 기냥" 거저먹는 인생소ㅑ" 자동이니라~~^^*

 

 

미련헌것들 같으니라구,,,, ㅉㅉㅉ~!!"

 

``라스트`` 5.

1~4번의 내용에 등장하시는 조상님후손인 사내는 까막눈님의 자손으로 영문도모른채 산골서태어나

성장할시 자치기하다가 개병기 눈깔뺀 어거지 범인으로 지목되어 개씨들이 짜구서 겁나게큰 견적을 

임의대로 뽑아 아버님돈을 하늘무서운줄 모르고 보란듯" 강탈하고 이낸억울한 누명을 쓰고서 아버님

돌아가시기 전까정 아파해야 했으며 군제대후엔 이내와 가장가까운집 개시끼씨가 쥐되어 따라댕기며

철저허게 외부와 왜곡시키는일을 보란듯하고 대전동아일보서둔산 배달책임좌 윤학모애기쥐눔을 똥개로

이용하였다

사내가 큰덕골서 작은덕골서 때골서 당골서 사내기차갑이서 음말 양지뜸 복골 탑거리서 일하는것을

눈감고 있어도 훤하게안다,,,, 

그리후"

반드시! 쓰리번 확인검증이 끝난후엔 어김없이 여자만혼자있는집(이내집) 처 들어가 어거지 투회에걸쳐

자빠트리며 이낼 정신병자에 어거지 의처증으로 몰아버렸다

투번째 구신한태 투번째 의처증에 정신병자라하며 구싸대기 후려맞고 길거리로 십원한푼없이 쫓겨난후

윤학모쥐새끼놈 대갈빼기 박살낼라고 쇠파이프(현, 윗방마루 맷돌위에있다) 소지하고선 댕겼으며!

안잡혀 계룡산을 오르고 ``또`` 오르고 오르다가 결론은 양지뜸검찰청에 위탁함과동시에 시묘살이할라고

이곳 산속에 들어왔었다

이미 여기서 이곳산속서두 이낼짜구서 기가막히게 지달리고 있었다(사내의 블로그에 정확한날짜와

상황들이 기록이 되어있다)

 

양,개,쥐들이 왜? ``판``치는지 아느냐??

 

이들도 머리가 돌아간다 뒤에서  첫번째: 봐주는 관의 빽그라운드와

투번째: 하나님이 손에 쥐어지면, 

쓰리번째: 몸을 사리지않고 과감하게 동작이 자연스레 형성되어 반드시 움직이느니라~~~!

나라도 마찬가지다 양아치눔들이 벌건백주대낮에 활개치는 그 근본이 첫째 관에서있다

뒤에서 봐주는 관의녹을 먹는 썩은자와 정치하는 자들과의 연관성이 있을시엔 이눔들 자랑스럽게 설치며

구역을 맘놓고 확장하며 양민들을 약탈하고 억울함을 반드시주는 것이다

그러허니"

이곳 산속에들어오니 이낼 발걸고자 계획적으로 첫번째 1.김칠복 2.김종수(조상이 은진송씨와 사돈관계) 

3.박노열(여동상이 조상님``첩``의 큰조카손자 남편) 4.김찬성 ``라스트`` 주영식(전, 송문헌부시장 엄마가

 고모다<여기서 고모할머니인지 고모인지는 명확하게 모르지만 둘중에 하나이며 전,송문헌대전부시장은

사내증조부님 천한 ``첩``의 조카손자임!>의 아들이다)이 산속선 마지막였으며,

대전도심선 반토막된 간도되찾기운동본부본부장 생기다말고 이승에나와 그모습이 해괴한 주영길(은진송씨대종가의 자손과 친분이두텁다)이 마지막인줄 알았지만,

그리후에도 이내가 가는곳마다의 일터, 숙소, 산악회,마라톤카페 기타등등의 어느한곳도 마다하지

않으며 모든곳을 뒤따라다니며 짜구서 기다리고있었고 짜구서 발을걸고 이내몸이 움직여주기만을

학수고대하였다

노골적으로 하늘한점 부끄럼없이 달려들더라~~~!!

 

 

왜?    그래야만했것냐?????

 

 

뻔하디 뻔한것을 꼭, 말을해야만 말귀를 알아듣더냐??

 

여기까정도 모른다믄" 

이 경우는 무신경우인고함 곧바로!!

 

소 귀에 경 읽기가 반드시된다.

벌건백주대낮에 머리를 둔기로 맞으시고 양팔이 잘리시어 할아버님 양팔이 할아버님 두눈을 가리시고

백여년이 넘은 이시대까정 고대로 계셨었다....(그 결과, 아부지는 까막눈님이요!

아들인 사내는 글은 기똥차게 이승?오로 잘~~ 읽는디"

읽고쓰고 읽고쓰고하는 겁나게 쉬운 거저먹는 글일을 못한결과 쓰는것은 개판된결과가 됐다!!)

 

너무나도 억울하셔 그 모습을 후손인 이내에게 보여주기 위함이시란것을 깨달은 사낸!!

이승서의일을 모두 깔끔허게 끝내고 조상님께서계신 부처의 세계로 원위치하는날(101살)은 천한은진송씨대종가를 비롯한 그외의 피래미새끼들 ``싹쓸이``가 됐을때란것을!!

 

만천하에 공포하느니라!!!!

 

아래사진이 사내조상님 이장공사현장였던 양지뜸 증조부님(김홍집``왕``대감님자손)의 모습이다

사내컴에 기록해 놓은것을 사진에 다시박아서 올려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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