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손가락 비지제거 수술 후 실밥제거를 위해 병원을 다녀오시며 우리집에 오셨다. 차에서 내려 걸으려다 다리에 힘이 없으니 주저앉으며 뒤로 넘어지는 바람에 잘 움직이지 못하시고 불편함을 호소하신다.
나는 남편에게 직접 부축해서 내려드리지 왜 혼자 내리게 했냐며 타박을 했다. 남편은 왼쪽다리가 힘이 없긴 해도 혼자 살살 잘 다니시니 괜찮을 걸로 생각했단다.
남편의 방심으로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원망심이 나온다.
그러니 또 다시 “주차하고 어머니를 내려서 같이 들어왔으면 되었을텐데...” 라며 탓을 한다.
그 순간 아차~ 하며 마음을 멈춘다.
생활속에서 우리들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어찌 다 예측하여 방어할 수 있겠는가?
나 또한 그런 일이 없었던가?
나에게 있어지는 원망심을 들여다보니 그것은 나에게 있어질 불편함에서 나오는 것임이 알아진다.
그렇구나... 경계따라 있어진 마음에는 항상 ‘내’가 들어 있음이다.
경계를 알아차리니 지금 이 순간 가장 걱정되고 마음이 힘든 사람은 다름 아닌 남편일 것이고 몸이 아파서 힘든 사람은 어머니임이 인정된다.
물론 어머니가 아파서 거동이 불편하면 나 또한 그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니 그에 따라 일어난 속상해하는 내 마음도 본다.
그러니 이것이 바로 나와 남편 어머니가 하나됨이구나 하고 작은 깨달음을 맛본다.
간섭하는 마음 없이 나를 있는 그대로 믿을 수 있으면 남도 있는 그대로 믿게 되고 그것이 너와 내가 가야 할 도덕의 길이고 신앙의 길이며 정신 세력이 확장되는 것으로 바로 너와 내가 하나 되는 길이라는 공부의 진리를 다시 마음에 새겨본다.
첫댓글 네~ 그대로 인정하니 하나가 되어지지요... 탓하는 마음이 들어지는 것을 순간 아차~ 하고 알아차리니 하나되는 공부가 되고 단지 공부만 하면 되지 그 누구도 탓할 일이 아님이 알아지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