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자(賢者)
오랜 세월 동안 현자는 더 큰 세상을 알고 싶거나 깨달음을 찾아 길을 떠났다가
한곳에 붙어 사는 사람들은 알 수 없는 신기한 세상을 보고 지혜라는 것을 깨달아,
스쳐 지나는 이들은 알지 못하는 것들을 나눠주며, 시름 많은 삶을 위로도 했겠지.
그는 자신의 발걸음으로는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세상에서, 한곳에 머물며 세상을 보기엔 그의 선 자리가 너무 좁고 답답하여 떠날 수 밖에 없던 사람. 산을 오르며 가지에 긁히고 뿌리에 걸려 벼랑으로 굴러떨어졌지. 강을 건널 땐 물살에 휩쓸리기는 부지기수, 사막을 지나고 큰 바다를 건너며 세상을 통 크게 돌아보던 사람. 그가 떠났던 자리로 돌아오든 그렇지 않든, 세상에 그런 떠돌이, 방랑자가 있었다는 것을 풍문으로라도 남기는 사람이야.
어느 날 그는 황량한 마을 입구 나무 밑에 앉아, 먼지 앉은 옷을 털다, 누군가 다가와 마른 목을 축이라고 물 사발을 건네자, 지긋이 눈 한 번 껌뻑이고, 입꼬리 올리는 미소 보이며 고맙다는 말조차 없이 조용히 그릇을 다시 건네지.
그가 현자가 되는 것은 물사발을 건넨 이가 되돌아올 사발을 기다리고 있을 때 그의 입에서 나온 한마디가 가슴을 서늘하게 해서야. 그는 놀라 마을로 달려가 남자의 말을 전해. 사람들이 사발든 사람을 따라 우루루 나무에 왔을 때 거기엔 그가 남긴 흔적뿐이었지. 그때 사발든 이가 떠난 이의 말을 전하고 서서히 그는 전설이 되어가지.
내가 길을 나선 게 몇 해인지 모릅니다. 어느 때는 해를 따라 걷다
또 어느 땐 해를 거슬러 걸었어요. 늘 해를 가운데 두고 앞으로, 뒤로 걷다 보니
해(year)라는 게 의미가 없어졌어요. 그러자 그 다음엔 너와 나의 자리처럼
공간을 나누는 게 의미 없는 일이 되었고 그러자 경계라는 게 마음속에서 사라졌어요.
어디에 있든 나는 나고 나 외에 다른 누구도 아니고
나의 시선에 닿는 이나 닿는 것이 곧 그 순간의 나이고 혹은 나의 일부이고
내가 선 곳이 나의 공간이고 로 그 시간이 나의 시간인 거죠.
그게 밤이든 낮이든 새벽이든 어스름 저녁이든 아무 상관이 없어요.
그러니 인간으로서 어디에 가서 무엇을 하든 찰나건 영원이건 그게 나의 시간이고
그 시간이 곧 나의 공간이 되는 거죠. 시공간이 하나로 합일되는 놀라운 순간,
그때 비로소 인생의 고통이 사라지고, 우리는 깨달음의 세계에 들어가요.
평생을 구하던 마음의 평화가 찾아오고, 그러다 달콤한 숲의 향기 속에서
고통 없이 맞이하는 영원한 안식, 그게 바로 인생이죠. 찰나이자 영원한.....
사람들은 떠돌이가 남기고 간 수수께끼 같은 말을 생각하며 동쪽을 보다 서쪽을 보고
하늘을 보다 땅을 보고 앞으로 걷다 뒤로 걷기도 하지. 그러다 가끔은 그가 돌아와 있는지를 보려고
앉았던 나무를 돌아다보지.
지금도 나는 내 인생의 어둠을 밝혀줄 현자를 찾아 궁금한 것을 묻고 또 물어,
이제 현자는 먼지 나는 길 위에 있지 않고, 험한 바닷길에도 존재하지 않으며
세상을 돌아보겠다 길을 나서지도 않아.
지금 나의 현자는 천리안이 없어도 발 디뎌보지 않은 곳을 찾아내고,
바닷속이든 우주 공간이든 모든 곳을 알며 세상의 모든 지혜를 거침없이 알려주지,
지친 모습을 보이지도, 목말라하지도 않으며....
하지만 궁금해, 내 손아귀 안의 이 현자는 내게 다가올지도 모를 슬픔과 고뇌를 어떻게 위로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