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을 듣지 못하는 기갈 (암 8:11~14)
사람에게 육신의 배고픔이나 목마름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영적인 배고픔과 목마름 즉 영적인 기갈입니다. 그런데 육신의 기갈은 금세 느끼고 해결하려고 하는데 영적인 기갈은 잘 느끼지 못하는게 문제입니다. 인간이 영적인 존재라는 말은 인간이 육체와 영혼으로 되어 있음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이런 사실은 창조 과정을 보면 분명합니다. 창세기 1장을 보면 우주만물 창조 기록이 나옵니다. 마지막에 인간을 창조하셨는데 하나님의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창세기 2장에서는 좀 더 자세하게 인간 창조의 과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창2: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인간은 흙으로 빚어져 그 코에 하나님이 생기를 불어넣어 창조했고 그 결과 육체와 영혼을 가진 존재가 되었다는 겁니다. 이렇게 영혼이 연합된 상태로 살다가 육체의 수명을 다하면 죽게 되는데 (전12:7“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육체는 흙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하나님께로 돌아가 내세로 들어갑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육체도 중요하지만 영혼이 정말 중요합니다.
신앙생활은 바로 영혼의 중요성을 알고 그 영혼에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며 사는 것입니다. 그럴 때 인생이 행복할 수 있고 험한 세상에서 당당히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영혼이 풍요로워야지 빈곤해지면 영적인 기갈을 당하게 되고 하나님에게 은혜를 받지 못하는 ‘영적 빈곤’에 빠지는 것입니다.
본문의 역사적 배경은 B.C.8세기 북이스라엘 왕국입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은 남북으로 분단되어 있었습니다. 남 유다 왕국, 그리고 북 이스라엘 왕국입니다. 그런데 북 왕국은 쿠데타로 세워진 나라로 정통성이 없었습니다.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남쪽에 주도권을 빼앗기고 있었습니다. 남 유다는 다윗 왕가를 이었고 제사장과 성전을 갖고 있었지만 북 이스라엘은 아니었습니다. 이런 약점을 만회한답시고 백성들을 미혹하여 금송아지를 섬기게 합니다.
더 나아가 여호와 하나님을 제쳐놓고 바알이나 아세라 같은 우상 신을 숭배하는 데 열을 올렸습니다. 이쯤 되니까 북 이스라엘의 백성들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타락하게 됩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기신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세워서 회개를 촉구합니다. 하지만 백성들이 돌이키질 않습니다. 그런 가운데 하나님이 아모스 선지자를 세워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을 증거하게 하십니다. 그래도 그들은 영영 돌이키질 않았습니다. 그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이유는 육신적으로 보면 멀쩡하게 잘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때는 여로보암 2세가 통치하던 시기(B.C. 793~753)였는데 솔로몬 이후 경제적으로 가장 번성했던 시기입니다. 그러니까 겉보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던 것입니다. 결국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을 배반하고 영영 돌이키지 않는 가운데 하나님이 진노하심으로 심판하십니다. 결국 앗수르 제국에 의해 B.C. 722년 멸망하고 맙니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 북이스라엘의 멸망을 당하게 되었을까요?
1. 멸망의 원인은 영적인 기갈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이 잘못한다고 당장 심판하시지는 않습니다. 회개의 기회를 주고 오래 기다려주십니다. 북 이스라엘도 오래 기다려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않으니까 아모스를 통해 최후의 통첩 같은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본문은 심판 날을 예고하며 그때가 되면 영적 기갈이 있을 거라고 증거한 말씀입니다. 북 이스라엘이 심판으로 멸망하는 것은 직접적으로는 앗수르 제국의 군사들에 의해 멸망하지만 영적으로 따져 보면 영적 기갈이 근본 문제입니다. 영적으로 하나님을 배반하고 타락하면서 도덕적으로도 몹시 타락했습니다. 정의와 공평이 무너졌습니다. 상층부에 있는 자들은 평민과 빈자를 억압하고 수탈했습니다.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으셨던 하나님이 최후통첩을 하셨는데 그가 바로 본문 암8:11에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했습니다. ‘그 날’은 심판의 날을 가리킵니다. 그때가 되면 육신의 기갈이 아니라 영적인 기갈을 내리시겠다는 겁니다. 은혜의 문을 완전히 닫아버리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지 못하고 결국 멸망하게 됩니다. 북 이스라엘이 그랬습니다. 암8:12절~13절을 보면 저들의 영적인 기갈이 얼마나 무섭고 심각한지 알 수 있는데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리니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쓰러지리라”라고 표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야 살 텐데 어디서도 구할 수가 없습니다.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는 가장 왕성한 사람들인데도 여기저기 찾아다녀도 말씀을 구할 수 없습니다. 이미 은혜의 통로가 막혀버렸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평소에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고 은혜를 누림이 정말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멀리하고 세상에 파묻혀 살다 보면 이렇게 되어 버립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이 기다려주십니다. 고난을 통해서나 다른 사람들 통해서 회개를 촉구합니다. 그런데 말을 듣지 않으면 어느 순간 은혜의 통로가 막혀 버립니다. 그다음에 아무리 하나님을 찾아도 응답해 주시지 않습니다. 대신 또 우상을 찾아다니고 세상에 호소해봅니다. 그래봤자 헛일인데 말입니다. 북 이스라엘이 그랬습니다. 암8:14 “사마리아의 죄된 우상을 두고 맹세하여 이르기를 단아 네 신들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라 하거나 브엘세바가 위하는 것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라 하는 사람은 엎드러지고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라”. 여기‘사마리아’는 북 이스라엘의 수도였는데 그곳에는 우상이 득실거렸습니다. ‘단’은 북단의 도시이고 ‘브엘세바’는 남단의 도시인데 거기에 금송아지 제단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때가 되면 아무리 우상 신을 불러 봐도 소용이 없단 겁니다. 북 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멸망당할 때 그랬습니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하자 그들은 하나님을 찾고 난리를 피웠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발악과 같은 거짓 기도를 듣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이 자기 힘으로 사는 것 같지만 하나님이 은혜 베풀지 않으면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시127:2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후일 학개 선지자도 학1:6“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확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했어요. 하나님 없이는 인간이 아무리 애쓰고 힘써도 허사가 된다는 것입니다.
2. 우리가 말씀을 통해 영적인 기갈이 해갈되면 회복의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삽니다. 말씀은 영혼의 양식입니다. 육신의 양식도 중요하지만 영혼의 양식은 더 중요합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마4: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신8:3)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영적 풍요를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우리를 만나주십니다. 성령이 말씀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말씀을 가까이 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고 치유와 회복, 그리고 형통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시편 기자는 119편에서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게 얼마나 좋은지 이렇게 노래합니다. 시119:103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 … 127절에 ”그러므로 내가 주의 계명들을 금 곧 순금보다 더 사랑하나이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기쁨이 얼마나 좋은지 꿀맛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좋은지 순금과 같다고 표현합니다. 이게 바로 말씀을 통해 누리는 영적 풍요입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평소에 말씀을 통해 늘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혹시라도 어려운 상황이 닥쳐도 순하게 넘어갑니다. 시편1편을 보면 복 있는 사람을 가리켜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 결론 >
우리는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됩니다. 그러면 형통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문제가 있다면 오직 한 가지입니다. 영혼의 기갈입니다! 우리 영혼이 풍요로워지면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그리고 형통하게 됩니다. 안타까운 것은 홍수 때 식수난이 있는 것처럼 오늘날 지식과 정보의 홍수 시대지만 영혼을 살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하다는 사실입니다. 무수한 책들이 있고 사이버 공간에 성경 자료도 차고 넘치지만 오히려 영혼을 죽이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단 사설도 많고 성경을 제멋대로 해석한 것들도 많습니다. 그러므로 마치 무공해 식품을 찾듯이 좋은 말씀을 선별해서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성경을 직접 묵상하면서 성령님의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집중해서 말씀을 읽고 묵상 할 때 치유와 회복의 역사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