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로 가는 따듯한 바람처럼/ 곽재구
오후 4시 나는 한라산의 제2횡단도로를 건넜다. 갈대밭에 떨어지는 햇살들이 보기 좋았다. 공항에서 렌터카 회사 직원은 내게 두 가지 당부를 했다. 그의 웃음 끝이 맑았으므로 나는 끝까지 그의 말을 따랐다.
과속하지 말 것, 섬 안의 모든 도로에 감시 카메라가 있어 육지로 돌아 간 뒤 한두장의 속도위반 스티커를 받는 것은 기본이라는 것이다. 사실대로 얘기하자면 첫 번째 그의 부탁은 내게 필요 없는 것이다. 나는 이미 3개월전에 그의 말에 상응하는 전과를 제주에서 경험한 적이 있었다.
두 번 째 당부는 그가 미리 준비한 것이 아니었다. 차 열쇠를 건네주며 그가 내게 오늘밤 어디서 묵을 것이냐고 물었고, 내가 서귀포라고 대답하자 그의 웃음 끝이 한층 싱싱해지더니 아침에 서귀포 여고에 한번 들러 보라는 것이었다. 그곳 교정에서 3년 동안 바다를 보며 지냈다는 말을 덧붙였다. 나는 그의 당부가 그의 웃음 끝처럼 마음에 들었다.
어두워지려면 시간이 좀 남았으므로 나는 중문으로 갔다. 하얏트호텔에서 커피 한잔. 따뜻한 향기. 나는 천천히 바다로 내려갔다. 길고 하얀 모래밭. 나는 중문의 모래밭을 좋아한다. 석영질이 전혀 없는 이곳의 모래들은 햇빛을 받아도 전혀 반짝이지 않는다. 화장을 전혀 하지 않은 채 스스로의 살빛으로 파도를 만나고 바다를 만나고 바닷새의 울음을 만나는 그 수더분함이 좋은 것이다.
그리고 가벼움. 중문의 모래들은 한없이 가벼운 체증을 지닌다. 화산 활동의 영향을 깊게 받은 돌들이 부서져 이루어진 탓이다. 한 줌의 모래를 들어 공중에서 가볍게 풀어 놓으면 모래들은 금방 바람의 결대로 날린다. 근엄함이나 엄숙함과는 전혀 거리가 먼 자유로운 비상. .... 두 세줌, 거푸 바람에 모래를 날리며 나는 삶의 어깨에 지워진 무거운 짐들이 모래들처럼 바람에 날리는 환영을 잠시 젖는다.
모래밭의 한쪽 끝에는 난전이 펼쳐져 있다. 해녀들이 이곳 바다에서 갓 잡아올린 고기들을 파는 것이다. 나는 한 나이든 해녀가 이끄는 대로 자리에 앉았다. 한 마리의 해삼과 몇 마리 분량인지 모를 새끼손가락만큼 성게 알을 먹었다.
오후 5시 15분. 나는 중문에서 서귀포로 가는 길을 천천히 달렸다. 이정표에 월평동과 강정동의 표시가 보인다. 제주 해안 일주 도로에 인접한 아름다운 마을들 중에서 나는 특히 이 두 마을을 좋아한다.
마을의 집들은 온통 돌각담으로 둘러쌓여 있다. 골목길 또한 돌각담으로 쌍여져 있어 여행자라면 필시 길을 잃기 마련이다. 그 순간이 여행자에게는 행운의 시간이다. 길을 찾는 동안 여행자들은 이집 저집을 본의 아니게 기웃거리게 되고 그곳에 스민 삶의 향기들, 저녁 공기의 냄새들에 고스란히 젖게 되는 것이다. 대문이 없는 마당에 피어 있는 꽃들이 보이고 구멍이 숭숭 뜷린 용암석 사이로 정겨운 제주 방언을 쓰는 할머니의 모습이 보이고 이른저녁 밥상앞에 앉은 식구들이 보인다. 사람들은 낮선이를 경제하는 눈빛은 전혀없다. 포장마차보다 조금 큰 예배당 또한 돌담으로 둘러싸이고, 좁은 골목길을 경운기를 몰고 밀감밭에서 들아오는 할아버지의 모습도 보인다. 길을 찾다가 목이 마르면 돌각담이 끝나는 것에 수평선처럼 펼쳐진 밀감밭에서 밀감 하나를 따 목을 젹셔도 좋다. 나그네가 자기집 과원의 밀감 하나를 따는 것을 탓하는 사람은 제주 사람이 아니다.
날이 완전히 어두워졌다. 나는 외돌개 앞 일주도로 가에 차를 세웠다. 천지연과 정방폭포가 지척인 곳, 자동차의 시동을 끄고 나는 바다를 향해 섰다. 어둠과 바다는 지금 한 빛깔이다. 그 바다의 한 복판에 꿈틀꿈틀 살아 있는 생명체가 있다. 집어들, 고기잡이배들이 휘영청 어두운 밤바다에 불빛들을 밝혀 놓은 것이다. 삶의 속내음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그 불빛들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조선 선조 10년(1577) 29세의 청년 시인 백호 임제는 바다를 건너 제주에 들어왔다. 그는 이제 막 과거에 급제 했으며 그의 기쁨을 제주 목사인 그의 부친에게 알리기 위해 ‘어사화 한 송이와 현금 한 장, 난 검 한 자루’와 함께 난바다에 들어섰던 것이다. 그의 배는 파도 때문에 백도에서 하루를 정박했던 바, 그곳에서 처음 집어등을 보았다.
밤이 이슥하여 봉창을 열어보니 구름속의 달빛은 어스푸레하고 파도는 일렁거리는 것이다.
사한도 쪽을 바라보니 고기 잡는 불이 하늘을 붉게 비추어 실로 장관이었다.
임제의 제주도 기행기인 <남명소승>에 적힌 기록이거니와, 눈앞의 집어등 불빛들이 지금부터 4백 년이 넘는 오랜 삶의 이력을 지닌 것이라 생각하면 문득 가슴이 뭉클해진다. 날이 새자 임제는 뱃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출항을 명한다. 강한 파도 속에 고기잡이하는 배들의 불빛에 그가 영향을 받았음에 분명한 일.
시장기가 찾아왔다. 나는 서귀포 선창 근처의 한 갈치구이 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지난 가을 여행 때 이 식당에서 소설 쓰는 공지영을 우연히 만난 일이 있었다. 그는 결혼 기념일을 맞아 그의 부군과 함께 여행 중이었다. 임신 8개월이라는 그의 부른 배가 산방산만큼이나 보기 좋았다. ‘한 아이가 태어나는 것만큼 아름다운 혁명은 이 세상에 없다’는 말을 내게 처음 들려준 이는 소설 쓰는 김훈선배였다. 나는 그 말을 그에게 들려주었다.
서귀포에서 하루 밤은 따뜻했다. 바다가 훤히 보이는 여숙에 들어 집어등을 실컷 보다 가져온 책들을 뒤적거렸다. 여수, 영종 때 시인 석북 신광수는 <탐라록>에 가슴 아픈 시 한편을 남겼다.
둥둥 북 울리며 배는 떠나네.
달은 지고 샛바람에 돛폭은 부풀었네
섬 여인아, 나라 일 급한 줄 알거든
이별의 한 맺히게 사내를 보내지 말게나
평생을 방랑으로 보낸 그가 보낸 그가 첫 벼슬을 얻은 것은 나이 오십. 최 말단적인 영롱의 참봉이었다. 얼마 뒤 금부도사가 되어 제주에 갔는데 바람을 만나 네 번씩이나 서울로 돌아오는 길을 실패했다. 그때 월섬이란 기생과 연분이 트인 모양. 월섬은 떠나는 그에게<성사별곡>을 불러 그의 마음을 아프게 했고 그는 <이별하며 뱃머리에서>를 그에게 남겼다. 그의 나이 쉰세 살 때의 일.
날이 샜다. 나는 남원과 표선을 거쳐 곧장 성산읍으로 가는 일주도로를 달렸다. 성산읍에 이르러서야 나는 서귀포 여고에 들르지 못한 것을 생각해냈다. 여행길에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성산포의 도선장에서 나는 우도로 들어가는 철부도선을 탔다. 승용차 열대 쯤은 거뜬히 실 을 수 있는 배였다. 임제는 <남명소승>에 우도를 여행한 기록을 또한 남겨놓았다.
정의 현감을 만나서 함께 배를 타고 우도를 떠났다. 관노는 젓대를 불고 기생 덕금이는 노래를 부르도록 했다. 성산도를 빠져 나오자 바람이 몸시 급하게 일었다. 뱃사공이 도저히 건너갈 수 없다고 말하자, 나는 웃으며 “사생은 하늘에 달려 있으니 오늘의 굉장한 구경거리를 놓칠 수 없다”고 하였다. 바람을 타고 배는 순식간에 우도에 닿았다. 이곳의 물빛은 판연히 달라 흡사 시퍼런 유리와 같았다. 이른바 ‘득용이 잠긴 곳이라 유달리 맑다’라는 것인가.
오전 11시 나는 우도에 닿았다. 토박이들에게 ‘소섬’이라고 불리는 이섬 안에는 산토 모래로 이루어진 산토 모래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해수욕장이 있다. 오래전부터 나는 그 모래밭을 한 차레 보고 싶었다. 섬의 물빛은 옛사람의 기록과 전혀 차이가 없다. 진초록과 푸른 빛의 물살 속으로 떨어지는 겨울 햇살들이 신비했다. 선착장 바로 앞에 해녀들의 상을 새긴 비가 하나 서있다. 우도해녀항일투쟁 기념비다.
1932년 1월부터 3월에 걸쳐 제주 일대에는 해녀들의 권익사수를 위한 격렬한 항일투쟁이 있었다 한다. 당시 해녀들은 해산물 채취대금의 8할쯤을 이러저러한 명목으로 착취당했는데 그 시정을 위해 해녀들이 자발적으로 일어섰던 것이다. 연 인원 1만 7천명에 달하는 해녀들의 항일투쟁은 당시까지 국내 최대의 어민봉기이자 가장 큰 여성 항일운동으로, 우도의 해녀들은 여기에 최전위 역할을 했다한다. 나이 든 해녀들은 그 당시 불렸던 <해녀가>를 기억하고 있다.
우리들은 제주도의 가없는 해녀들
비참한 살림살이 세상이 안다.
추운 날 더운 날 비가 오는 날에도
저 바다 저 물결에 시달리는 몸
아침 일찍 집을 떠나 황혼 되면 돌아 와
우는 아기 젖먹이며 저녁 밥 짓는다.
하루 종일 해봤으나 버는 것은 기막혀
살자 하니 한숨으로 잠 못 이룬다
이른 봄 고향산천 부모형제 이별코
온 가족 생명줄을 등에다 지고
파도 세고 무서운 저 바다를 건너서
조선 각처 대마도로 돈 벌러 간다.
배움 없는 우리 해녀 가는 곳마다
저놈들은 착취기관 설치해놓고
우리들의 피 와 땀을 착취해 간다
가이없는 우리 해녀 어디로 갈까
나는 자동차를 버리고 도보로 섬 안의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키 낮은 언덕들과 화산석으로 경계지워진 별들. 섬 안 어디에서는 보이는 파도들. 그 곁에 바짝 엎드린 마을 들... 그런 풍경위로 위로 느릿느릿 햇살들이 쏟아져 내렸다.
나는 유채꽃과 코스모스와 수선화가 함께 피어 있는 길을 보았다. 수백 마리의 갈 까마귀 떼들이 잔디 꽃과 금잔화가 피어 있는 마을 위로 날아 가는 모습도 보았다.
이윽고 나는 사우목동에 닿았다. 누부시게 희고 아름다운 모래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모래들은 바다의 푸른빛과 어울려 꿈결처럼 빛났다. 죽은 산호들의 흰 뼈로 이루어진 모래사장. 나는 발목을 물살에 적시며 찬찬히 바닷가를 거닐었다. 삶의 끝에서 더더욱 빛나는 이름들. 따뜻한 바람들이 바다로부터 불어왔다. 바람들은 다시 산호들의 모래를 파도 쪽으로 쓸어가고.... 바다 끝에서 나는 천천히 불을 밝히기 시작하는 집어등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