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 싶은 모임이 있다. 새로움을 얻을 수 있는 모임은 더욱 가고 싶다. 나는 '초청의 글'을 가방에 넣고 길을 떠났다. 초청장 말미에 ‘성결교단의 문필가 이명재 목사…참석’이란 구절은 짐이 되는 표현이다. 하지만 감사하다. 오늘(2월 16일)의 새로운 만남, 교계의 훌륭한 선배 목회자들을 만나는 기쁨은 결코 적지 않다. 각 교단 총회장, 총무, 교계 방송사 사장 등 여러분들이 회원으로 있다고 한다.
용산역에 내렸다. '미와십자가교회' 편남영 장로님이 나와 있었다. 미안한 마음으로 형의 승용차에 몸을 싣고 창천교회를 향했다. 대학촌인 신촌 창천동에 자리하고 있는 감리교 교회, 연세대 대학원을 다닐 때 많이 본 교회다. 대학생을 비롯한 청년 사역이 왕성한 교회로 알려져 있다.
교회에 도착하니 10시 5분, 좀 이른 시각이다. 일반 기차가 대폭 줄어들고 고속철도(KTX)가 그 자리를 대신한 까닭에 상경 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었다. 허나 기차 삯은 서민이 감당하기엔 적지 않은 무게로 작용한다. 커피를 한 잔 하기 위해 4층 카페로 올라갔다. 카페 수입은 이웃돕기에 사용된다는 표지판이 입구에 붙어 있었다. 선한 목적을 갖고 운영되는 커피 샵은 맛과 향과 기분까지 배가시킨다.
카페에서 백수복 목사님의 소개로 박춘화 목사님 외 몇 분 목사님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모두들 믿음의 백전노장(百戰老將)들이다. 영적 계급장들이 얼굴에 그대로 서려 있었다. 오늘의 교계에 저분들의 기여가 적지 않다고 생각하니 자연스럽게 머리가 숙여졌다.
총회 장소인 4층 교실엔 40 여 명이 앉을 수 있는 공간이었다. 얼추 30 여 분이 참석한 것 같다. 한국기독교 신풍운동 제2차 정기 총회, 제1부 경건회 그리고 제2부 총회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각 순서와 담당자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제1부 경건회의 사회는 윤병조 목사님이 맡았다. 개회사(사회자), 신앙고백(다같이), 기도(김대식 목사), 말씀(박춘화 목사), 축도(김영백 목사). 창천교회 원로 박춘화 목사님은 '목회자와 장기목회'(마 22:36-40)란 제목의 말씀 선포에서 자신의 목회 반세기를 개울물 흐르듯 간증했다.
제2부 총회는 회장 박춘화 목사님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먼저 박달용 부령 외 몇 명의 새 회원 소개가 있었다. 바로 이어 <한국기독교의 신풍운동>(대한기독교서회)을 서평 한 나(이명재 목사)에 대한 소개와 인사하는 시간이 있었다. 멀리서 왔다며 소정의 사례비도 전달받았다. 기분 좋은 일이다.
정기 총회에서는 새로운 임원이 선출되었다. 박춘화 회장-백수복 총무 체제가 회(會)의 기틀을 마련했다면, 후임 임원진은 웅비(雄飛)의 날개를 펼쳐야 할 과제를 짊어졌다. 신임 임원진의 면면을 보면, 회장 최건호 목사(기성), 부회장 황문찬 목사(기감), 총무 조성기 목사(예장통합), 부총무 안준배 목사(기하성).
임원 선출 외에 두 가지가 더 결정되었다. 하나는 현 국정 농단 사태에 대한 입장 문을 발표한다는 것이다. 대통령 탄핵의 당위성을 주장하되 국민들의 감정적 대처도 자제해 줄 것을 요구하는 내용을 담자고 했다. 입장 문 작성은 임원들에게 일임하기로 했다. 1970년대 초반, 신풍운동의 기백이 되살아나고 있는 듯했다.
두 번째 것은 다음 모임과 장소의 결정이다. 1년에 네 번 분기별로 모이기로 했으니까 5월 달이 되고 통상 목요일에 모임을 가졌으니까 11일이 된다. 장소는 마포 가든호텔로 결정될 듯하다가 한 회원의 제안으로 남한산성의 한정식 집으로 정해졌다. 꽃이 만발하는 신록의 5월, 성춘(盛春)의 향기를 맘껏 누리기엔 실내보단 야외가 한결 낫다는 데 모두가 동의했다. 호스트 역은 최건호 목사님이 자원했다.
기념으로 단체 사진을 찍고 교회 근처 음식점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야말로 코이노니아 친교의 시간이다. 사랑과 인정을 주고받기는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없다. 명함들을 서로 교환하고 지나온 목회담(牧會談)들을 나누었다. 대단한 분들이다. 귀한 자리에 지각을 했다며 음식값을 강현종 목사가 자원해서 계산했다. 훈훈하다.
1970년대 초반에 태동한 신풍운동, 그 때 30대 초중반의 주역들이 지금은 70을 넘어 80 언저리에 와 있다. 오늘날도 교계는 믿음의 바람(信風)을 요구한다. 아니, 이 사회가 새로운 바람(新風)을 강력히 요청한다. 한국기독교의 신풍(神風)운동이 태풍 되어 사회 변혁의 열쇠가 되기를 간절히 염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