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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실한 언어의 표층과 심층
-김규봉 시인의 시집『나비의 꿈』의 경우-
수필가 김 혜 식
▱프롤로그
삶의 통찰, 사유, 철학, 자연과 생명에 대한 경외심, 여기에 미적 요소까지 담긴 시집이라면 능히 철리(哲理)를 깨닫게 하는 양서가 될 터이다.『나비의 꿈』을 감상하다가 보면 보석같이 빛나는 시어詩語를 가슴에 품고, 장밋빛 얼굴로 웃고 있는 김규봉 시인을 만나고 싶은 충동이 인다.
언어학자 어번(W. M. Urban)이 표명한 언어 발달 단계를 독서하며 평자는 공감 받은 바가 컸다. 김규봉의 시집 『나비의 꿈』을 여기에 대입시켜본다. 어번(W. M. Urban)은 언어의 발달 단계를 사실 그대로 흉내 내거나 기록하는 것을 모사적 단계, 미지의 사물을 미루어서 인식하는 유추적 단계, 관념의 세계를 가시적인 사물로 표시하는 상징적 단계로 보았다. 김규봉의 『나비의 꿈』에 수록된 편 편의 작품들을 보노라면 관념의 세계를 가시적인 사물로 의미화 하려는 몸짓에서 정서적 환기와 시학적 미학을 느낀다.
생각만 하여도
얼굴 가득 미소
가득한 만남
장미같이
정열적인 사랑 보다
안개같이 은은히 풍기는
뒤 돌아볼 때
언제나 그 자리에 서있는
소나무처럼
흐르는 세월 변해도
영혼의 마음으로
머무를 수 있는 곳이었으면
서로 배려하는 마음
누가 되지 않는 만남
언제나 여운이 남는….
-「인연⦁1」에서-
시「인연⦁1」속의 서정적 자아는 인연의 소중함에 무게를 싣되, 그 인연을 가슴에 깊이 지니는 일에의 아름다움을 역설했다. 인간관계 속에서 이뤄지는 숱한 만남들 중엔 유독 가슴을 헤집고 자리하는 만남도 경험한다. 그러나 그것이 순수한 사랑이든 이해타산에 얽힌 만남이든 양상의 차이를 보이기 마련이지만 만남의 목적이 순수하거나 그 목적이 명쾌할수록 인연은 오래가고 호감의 정도도 짙어지기 마련이다.
‘생각만 하여도/얼굴 가득 미소’는 인연의 아름다움과 만남의 소중함이 한껏 부풀어 있다. 우리들의 주변에서 진정 인간적인 가슴으로 만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 시를 암송하며 새삼 되돌아보게 하는 것은 ‘흐르는 세월 변해도/영혼의 마음으로’라는 대목이 참으로 인간다운 순수성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서이다. 「인연⦁1」 이 시의 시적 화자의 궁극적 목표는 이별을 전제하지 않는, 거기에다 잇속 따윈 염두에도 두지 않는 가슴과 가슴으로의 불변의 인연을 소망하는 일이다.
산모롱 넘어
불어오는 바람결
한잎 두잎
휘날리는 길
홀로 거닐며
한올 한올 추억
살아나고
화사한 햇살에
그리움이 눈물 되고
살다 보면 잊을거라
생각하였는데
꽃 비 내리는 날
그리움의 진통제 한 알’ -「꽃비」에서-
그리움을 상실한다는 것은 이기심 탓이오, 물신주의의 맹신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랑의 빛이 퇴색되고 인륜이 고갈됨도 이 모두가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해 보면 세상은 살맛이 나지 않는다.
열 번을 되 뇌인들 허언虛言이 되겠는가마는, 요즘 젊은 남녀들이 돈을 벌기 위해 결혼을 포기한다니 눈물이 날만큼 가슴 아픈 현실이다. 그러다보니 더욱 마음 자락의 애틋한 사랑과 절절한 그리움이 그리웁다.
3년 가뭄 끝에 비가 내린다고 상상해보자. 김규봉 시인의「꽃비」가 바로 3년 가뭄에 만나보는 운우雲雨와 같다. 화자의 시적 메타포를 사랑하는 연인과의 이별, 그리고 끝내 이루지 못하는 결함, 이에 대한 상처의 처방전으로 준비한 한 알의 진통제라 가정해 보자.
그래서 「꽃비」의 시어 ‘그리움의 진통제 한 알’은 더욱 비장미를 느끼게 한다.
시적 이미지(image)를 심상心象 또는 영상이라고 한다. 외부의 사물이 우리의 마음에 비춰진 그림자란 뜻이다. 한 사물의 모습이 자막에 나타나는 것을 영상이라고 한다면 마음에 나타나는 그림자 즉 심상의 경우를 이렇게 이해할 수 있다. 즉 외부의 사물이 직접 투영되는 것이고, 경험에 의한 모상이 의식 속에 축적되었다가 재생되는 것이다.
시「사랑・3」은 서정적 자아의 감정적인 시어가 주류를 이룬다.
눈으로 사랑을
볼 수 없어도
마음의 눈은
볼 수 있어요
그대가 먼 길을
간다 하여도
마음에 눈 속엔
참사랑
마음속에 있는
그대가
늘
나의 사랑이란 걸 -「사랑・3」에서-
사랑은 향기도 무게도 형체도 없다. 하거늘 사랑에 울고, 신열이 나고, 질투하고, 시기하고, 증오한다. 그러다가 사랑을 안고 죽기도 한다. 평자의 어느 친구 이야기를 들어보면 사랑의 환영幻影을 붙들고 평생을 살기도 한단다.
시인은 「봄비」에서 ‘신이 내린 축복/숨 막힌 대지 위에/ 해갈의 애틋한/ 자애로움으로’ 조어助語했다.
이렇듯 그는 완곡어법에도 충실하여 독자에게 마음의 여유를 주기도 한다. 사랑의 따뜻한 손길을 ‘신이 내린 축복’이라고 그렇게 둘러댔다.
또 사랑에 대한 갈망을 ‘숨 막힌 대지’라 하였다. 또한 사랑의 절절함을 ‘해갈의 애틋함’이라 은유하여 시적 멋도 부렸다.
알랭은 그의「산문론」에서 산문은 도보徒步요, 운문은 무도舞蹈라고 했다. 산문은 이야기요 사건
이니 행동으로 얻어지는 것이고, 운문은 이미지 찾기이니 예술혼에 젖어야 한다.
삶에 지 칠 때
힘이 생기고
짐이 가볍고
미움이 일어날 때
미움이 사라지고
신뢰 하게 되며
아픔이 휩쌀 때
슬픔이 옅어지고
아픔이 치료되며
낙심 될 때
늪에서 빠져나와
소망의 언덕이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에 있다는 것은
가장 큰 힘입니다. -「사랑하면」에서
일종 패러독스다. 분명 진리에 반하는듯하나 음미해 보면 진리에 가까운 논리다. 이렇듯 역설, 혹은 역설적 서술이 독자에게 신선감을 제공하기도 한다. 이 정도 감상으로도 사랑의 의미를 터득하지 못하였다면 그는 사랑을 해보지 못하였거나 불행한 사람이다.
삶에 지쳐 좌절과 고통으로 허덕일 때 사랑을 추억해보라. 추억할 사랑이 없다면 그것을 만들면 된다. 사랑의 묘약이야 말로 묘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영국의 낭만파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는 그의 서정시 ‘내 마음의 고동’에서 ‘하늘의 무지개를 바라보면 내 가슴이 뛴다.’라고 읊었다. 마음의 고동을 느끼는 일, 마음 밭이 각박한 현대인에겐 유일하게 사랑에 빠지는 일이 아닐까 싶다.
‘삶이 지칠 때/힘이 생기고/짐이 가볍고’ 이 얼마나 용감한 극기克己인가. 그리고 참으로 어울리는 역설적 표현인가. 이렇듯 한 편의 시가 양어깨에 매인 삶의 질긴 밧줄을 풀어줄 수 있으니 그래도 세상은 살만한 곳이다.
진정한 사랑은 육체와 정신이 혼연일체가 되어야 가능해 지는 법이다. 성 개방 문화가 만들어 낸 순간의 쾌락이 건전한 남녀지간의 참사랑을 희석시키는 사조가 어느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 아닌 보편적 삶의 모습으로 변하고 있다. 사랑의 진정성에 다시금 의문을 던지는 사회적 현상이다.
남녀지간의 행위사랑을 과감하게 묘사해 놓은 「경쾌한 음악」을 살펴보자.
경쾌한 화음
이불이 들썩
엉덩이 근육이
오물오물
옥문으로 슬금슬금
황홀경에 빠진다.
강한 장대비에
모든 것 잃어버린
가슴속 춤을 주련만 -「경쾌한 음악」 전문
노골적인 성애의 표현이다. 음수율을 강조하여 리듬을 살렸기에 퍽이나 율동적이다. 율동이되 표현의 함축성을 타고 탄탄한 육체미를 형성하며 한껏 관능적으로 다가온다. 이렇듯 남녀의 사랑행위장면을 산문 아닌 운문에서 대하기는 쉽지 않다. ‘사랑의 신음’을 ‘경쾌한 화음’으로 비유한 것은 가히 고급 외설이다.
재언再言하면 역시 성은 모든 삶의 원동력이라는 말에 실감이 간다. 그렇게나 은밀하기만 하던 성의 유희가 이제는 순수시에 등장하리만큼 개방이 되었다. 역시 성은 가려져 있을 때가 신선하다.
그러나 이렇게라도 객기를 부려 사랑의 주제를 소화시키고 싶었던 시인의 마음을 이해하겠다.
이즘의 중년 나이쯤이면 가슴을 설레며 감상을 했던 왕년의 애정영화 <차타레부인의 첫사랑>을 떠올리게 한다. D.H로렌스의 소설을 각색한 명화다.
숲 속의 애인을 만나러 오는 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누드로 비를 맞아 샤워를 하고 있는 장면이 화면을 채운다. 방청석은 후끈 열기로 달아오르며 이성을 눈요기하기에 바빴다.
어쩌면 김시인 역시 남성이기에 평소 성의 정체성에 대해 고뇌하고 있었던 게 아니었나 하는 추측을 자아낸다.
아니 이런 시풍을 통해 카타리시스를 느껴봄직도 했을 성 싶다. ‘리처즈’는 인간 삶의 원리에 대해 우리의 삶속에서 일어나는 갈등, 고뇌 등을 극복하는 힘을 내면적 충돌의 균형으로 정의했다.
사랑 행위 끝에 찾아오는 허허로움을 ‘강한 장대비에/모든 것 잃어버린/가슴속 춤을 주련만.’로 의미화 해 시인의 주관적이고 내면적인 체험과 인식의 표출이 엿보인다.
시의 언어는 예술적인 효과를 나타내기 위해 독특하고 신선한 의미를 지닌다. 추상적인 세계를 언어를 통하여 구체적으로 드러나게 하는 형상화 작업이 곧 문학임을 증명해 주는 시가 있다. 다음 시를 감상해 보자.
어둠이 내리고
별빛이 흐르는 밤
가슴에 그리움 불러
행여 당신 오실까
고운 흔적 찾아
창밖을 바라보며
고운 향기로
많은 세월 속에
행복을 안겨
아름다운 기억
사랑하며 추억하는
소중한 사람이길 -「보고 싶다」전문-
장소와 시간을 명시 또는 암시하는 환경 속에서 개념적인 언어는 구체성을 지녀야 한다.
‘어둠이 내리고/별빛이 흐르는 밤/가슴에 그리움 불러/행여 당신 오실까/고운 흔적 찾아/창밖을 바라보며-’에서 ‘어둠’은 시간이며 ‘창밖’은 장소임을 드러냈다.
마음 밭에 그리움을 심어놓은 서정적 자아는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나기를 고대한다. -‘어둠이 내리고/별빛이 흐르는 밤/가슴에 그리움 불러/행여 당신 오실까-’의 표현은, 시어의 선택과 배열에서 오는 음악적 구조를 느낌은 물론, 정련된 문맥적 의미를 갖게 하여 그리움의 모티브가 자아내는 시적 감흥에 한껏 젖어들게 하고 있다.
김규봉의 시집 『나비의 날개』는 헌트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그는 ‘진리와 미와 힘에 대한 열정의 발언’을 시라고 규정했다.
시집 『나비의 날개』의 주제는 사랑이다. 이 시집을 대하노라면, 사랑이란 주제어가 용광로의 쇳물처럼 뜨겁게 가슴으로 전이됨을 느낀다. 열정은 우주 삼라만상에 대한 사랑과 인간에 대한 애정이 존재할 때 가능하다. 열정을 패션(passion)이라고 한다. 어원은 ‘고통을 받는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세상에 고통 없이 피는 꽃은 없다. 사랑의 꽃도 서로의 담금질이 필요하다. 하나의 결과를 도출하기 까지는 그만큼 피나는 노력이 경주 되어야 한다.
시집 『나비의 꿈』에 수록된 시 편 편들이 아름다운 고통 끝에 피워 올린 사랑의 꽃으로 승화되고 있음을 실감하면서 김규봉 시인의 견실한 시정신과 언어의 탁마 술에 놀란다.
▱에필로그
시는 생각이나 느낌을 형식에 의하여 통일된 언어의 울림, 리듬, 하모니 등의 음악적 요소와 언어에 의한 이미지, 시각 등 회화적 요소에 의해 독자의 감각이나 감정을 호소하고, 상상력을 자극하여 깊은 감명을 주는 운문 문학의 대표적 장르다.
그런데 시가 난해한 것은 음악적 요소가 갖는 이미지와 언어가 갖는 함축성 때문이다.
과거의 시가 언어전달 미학에 치중 되었다면 현대의 시는 어법에서의 탈피와 시어가 갖는 함축성에 무게가 실린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김규봉의 시집 『나비의 꿈』은 어떤가? 딱 중간이다. 난해하지도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다. 삶에 지친 현대인들의 마음의 속살을 사랑이란 따뜻한 언어로 어루만지는 탁월함이 시 편 편마다 내재해 있어 정겹다.
독자와 더불어 더 좋은 시집이 탄생되기를 기대한다.
첫댓글 어제 올린 글이 왠지 읽기 불편해 보여 다시 행간을 벌려 올렸는데
깔끔하지 않은 이유를 모르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