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직 은퇴자는 자문역으로 취업 후 사업으로 전환할 수도
은퇴한 베이비부머(1955~1963년 출생자)를 중심으로 영세 자영업자 수가 크게 늘었다. 8월 21일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7월 자영업자수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19만6000명이 증가했다.
전체 취업자 증가수 47만명의 41.7%에 달한다. 6월 46.3%에 이어 11년 만에 두 달 연속 40% 선을 넘겼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 무급 가족종사자를 포함한 자영업자 비중으로 계산하면 48.3% 수준이다.
경기가 나쁜 가운데 자영업자 수가 늘면 결국 다시 자영업자가 줄어드는 악순환 양상이 전개되게 마련이다. 과거에도 자영업자 수가 630만 9000명(2002년 8월)으로 최고치를 기록한 후 2003년 1월 50여만명이 줄기도 했다.
내수 시장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은퇴자들이 재취업을 하기도 쉽지 않다. 한국 시장을 벗어나 보는 건 어떨까. 본지는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의 해외 무역관장을 비롯한 현지 전문가 6명에게 은퇴자들이 해외에서 시작할 만한 자영업 아이템을 들어봤다.
해외 창업은 ‘불안한 기회’
창업 전문가들은 해외 창업을 불‘ 안한 기회’라고 표현한다. 예컨대 우리나라의 과거 성공 경험을 바탕으로 후진국이나 개발도상국에서 성장할 만한 아이템을 고를 수 있다.
그러나 투자대상국의 법률, 회계, 문화, 언어 등이 난관이다. 개인 창업이나 자영업을 위한 정보도 태부족이게 마련이다. 그나마 최근 들어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고 기업과 기관의 해외 진출 경험이 쌓이면서 이런 단점을 극복할 방법도 하나둘 나오고 있다.
이미 해외 비즈니스에 오랜 경험을 가진 코트라, 수출입은행, 여러 대기업 등이 개인에게 필요한 현지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또 법률·회계 등의 지원도 받을 수 있다.
투자 지역으론 한국에 우호적이면서 경제가 성장하고 있고 임금도 싼 편인 동남아시아권이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예컨대 한류 영향으로 한국인에 대한 이미지가 좋고 유교의 영향으로 문화적 이질감이 적은 베트남이 그렇다.
코트라 호치민 무역관의 한재진 전문위원은 개인이 베트남에 투자하기 좋은 업종으로 한국의 프랜차이즈 베이커리를 꼽았다. 프랑스 식민지 영향으로 8600만 베트남인이 빵을 즐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베트남 전국을 통틀어 베이커리 수는 100여개 수준에 불과하다.
CJ푸드빌의 뚜레쥬르와 SPC의 파리바게뜨는 이미 2007년부터 이 시장을 노리고 진출했다. 이들은 최근까지 호치민, 하노이, 컨터광역시 등 베트남 전역에 직영점을 열어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고 있다.
이들은 중국, 베트남, 필리핀,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말레이시아에도 진출해 동남아 전역에서 기반을 닦고 있다. 특히 뚜레쥬르는 베트남 전국에 빵을 공급하기 위한 공장과 물류시스템을 만들어 2010년 베트남에서 처음으로 외투기업 프랜차이즈 사업권에 대한 라이선스를 받았다.
자영업자를 모집해 사업을 펼 수 있다는 의미다. CJ푸드빌의 이화선 과장은 “지금은 베트남에 19개 직영점만 열었지만 앞으로 개인을 대상으로 프랜차이즈 사업을 전개할 계획”이라며 “조만간 동남아시아 각지에 자영업을 희망하는 한국의 은퇴자들을 위한 기회를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호치민 시내 대형 쇼핑몰이 있는 탄손넛 공항근처의 1층 점포 임대료는 66㎡당 월 500~1000 달러 수준이다.개인이 중형 규모 이상 프랜차이즈를 운영하기 위한 최소 자본금은 1억원안팎이 필요하다. 뚜레쥬르 직영점에서는 한달에 현지 물가를 고려하면 매달 1000달러 내외의 수입은 고수익에 속한다.
한재진 위원은 “개인이 처음 해외에 투자를 시작하면 현지인들에 비해 법률과 회계에서 특히 불리할 수밖에 없는데 한국 프랜차이즈의 도움을 받으면 이런 걱정을 상당 부분 덜 수 있다”고 말했다.
CJ푸드빌 관계자는 “한국인이 뚜레쥬르가 진출한 해외에서 가게를 열 경우 한국에서 계약을 마무리하고 현지에서 사업을 진행하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법률적·회계적 지원을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캄보디아는 베트남과 좀 다르다. 소득 수준이 베트남보다 낮아 베이커리를 열어도 빵을 사먹을 사람이 많지 않다. 프놈펜의 이광호코트라 무역관장은 “물가가 싸서 창업비용이 적게 드는 편이라 가게를 여는 게 어렵지 않지만 그것보다는 작게라도 봉제업에 도전해 보는 게 낫다”고 말했다.
현재 캄보디아에는 한국 교민이 5000명 정도가 있고 이중 대부분이 식당을 하고 있다. 수도 프놈펜에만 한인 식당이 50개에 이른다. 교민 간 경쟁이 치열한 것이다.
그러나 프놈펜시내의 66㎡ 규모 1층 점포 임대료는 월 500달러 이하 수준이다. 좀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월 임대료 100달러 미만의 점포도 흔하다. 싼임금을 활용한 작은 사업에 도전해볼 만한 것이다.
아프리카에서 사진 인화업 인기 식어
소비재가 부족하고 서비스업이 덜 발달한 아프리카 지역에도 뛰어들만하다. 코트라 요하네스버그 김병삼 무역관장은 안경점과 세탁소를추천했다.
아프리카에서는 안경사 자격증이 필요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사는 곳에 가게만 열면 바로 영업을 할 수 있다. 한국을 비롯한 나라에서는 3년 과정의 자격증 취득이 필수인 것과 다르다.
보통 의사가 시력을 직접 재기 때문에 안경사는 처방에 따라 렌즈를 깎아 안경을 팔면 된다. 3억원 정도면 요하네스버그의 대형 고급 쇼핑몰에 꽤 넓은 가게를 낼 수 있다.
김병삼 관장은 “남아공 현지에서 3개월 정도 집중적으로 기술을 배워 성공한 안경사도 있다”면서 “한국인의 서비스 능력에 현지인들이 대단히 만족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부유한 백인들이 모여 사는 지역의 일반적인 안경점 점포 임대료는 월 200만원 수준이지만 안경 제작으로만 벌어들이는 수입은 월 400만원을 넘는다. 이에 더해 선그라스, 선블록 등의 부가적인 상품 판매수익도 기대할 수 있다.
요하네스버그의 물가는 서울의 80% 수준이어서 생활비 부담도 상대적으로 적다. 백인들이 많이 사는 요하네스버그의 특징상 세탁업도 괜찮은 아이템이다. 세탁비가 정장 1벌 당 1만5000~2만원으로 한국보다 비싸지만 세탁 수준은 형편없다.
한국에서 세탁기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세탁 기자재를 사와서 점포를 열면 승산이 있을 거란 분석이다. 세탁비를 한국 수준 정도만 받아도 현지에서는 저렴한 편이기 때문에 가격 경쟁력도 가질 수 있다.
반면 한 때 아프리카 지역에서 인기를 끈 사진 인화업은 이제 ‘끝물’이다. 너도나도 사진관을 열어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사진을 현상하길 좋아하던 아프리카 사람들도 이제 디지털 카메라의 편리함에 빠지기 시작한 것도 사업성이 떨어진 이유다.
김병삼 관장은“요하네스버그는 사업 여건이 나쁘지 않지만 한국에서 거리가 너무 멀어 심리적으로 위축될 수 있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술 후진국에 취업을 통해 진출하는 방법도 있다. 덜컥 자기 사업을 시작하는 게 내키지 않는 기술직 은퇴자들이 고려할 만하다.
과거 일본인 퇴직자들이 한국 기업에 고문으로 재취업하는 식이다.특히 동남아 제조업체에서 한국 기업의 은퇴자에 대한 수요가 많다. 주로 기술 이전을 위한 재취업으로 자문역을 하는 일자리다. 현지에 익숙해지면 독립해서 사업으로 키울 수도 있다. 한국의 기계부품 회사를 다니다 3년 전 은퇴한 김정연(61)씨는 미얀마에서 살면서 동남아 전역을 오가며 기술 이전 사업을 하고 있다.
그는 “베트남의 큰 기계부품 회사에 회장 자문역으로 재입사했다가 해외 진출에 자신감을 얻어 자문 사업을 시작했다”면서 “동남아 현지인들이 기술을 배우려는 의지가 강해 가르치는 기쁨도 있고 다시 일을 하는 재미도 느낀다”고 말했다.
동남아권 자문역은 월급이 적게 마련이지만 현지 생활비가 한국보다 저렴해 좀 더 풍요로운 생활을 즐길 수 있다. 한재진 위원은 “보통 통역을 지원 받고 사회적 위치도 높기 때문에 시도해볼 만하다”면서 “아직은 체계적으로 일자리를 찾을 방법이 많지 않지만 현지 한국 상공인 연합회 등을 통하면 자신의 기술을 원하는 기업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중동에서는 자영업 여건이 썩 좋진 않다. 정치적으로 불안한데다 전쟁 위험이 있고 한국인을 포함한 외국인에 대한 경계심도 강하다.
같은 이슬람국가의 제품만 사용하는 등?다른 문화에 대한 배타심도 심한 편이다. 코트라 암만의 조상재 무역관 차장은 “암만에서 개인 사업을 하는 사람은 페이스샵을 하는 1명뿐”이라고 말했다.
그래도 도전할 만한 여지는 있다. 예컨대 중동의 의료허브로 각광 받고 있는 요르단에서는 한국 의약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 요르단은 의료수가가 저렴하면서도 의료기술이 뛰어나 중동 전역에서 연 20만명 이상이 의료관광차? 요르단 암만을 찾는다.
코트라 암만의 조상재무역관차장은 “한국의 의료영상 기기나 의약품을 찾는 요르단 병원이 많다”면서 “개인 차원에서도 한국약을 도매로 들여와서 영업을 할 수도 있어 관련 업종에 경험이 있는 퇴직자들에게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터키는 노동비자 발급이 까다로워 현지에 가게를 내는 것보다 무역을 시도하는 편이 낫다. 지금도 터키 현지에 와서 한국의 자동차와 자동차 부품을 판매하거나 섬유제품을 수입하는 한국의 은퇴자가 적지 않다.
코트라 이스탐불 무역관의 공태원 대리는 “현지에서 잘 팔리는 한국 제품을 살펴보고 과거 이런 제품을 다뤄봤거나 무역거래를 해봤던 은퇴자가 소규모 무역상으로 진출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터키에서 음식업은 성공 가능성이 크지 않다. 한국의 BBQ가 직영점을 내고 있지만 아직 터키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지는 못하고 있다. 한국 음식점도 이스탄불에 10여 곳이 있지만 별 인기를 끌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이스탄불은 서울 못지 않게 물가가 비싸투자 비용도 많이 든다. 공태원 대리는 “교민 수도 1500명 정도에 불과해 이들을 상대로 식당업을 하는 건 쉽지 않다”고 말했다.이처럼 해외 창업은 실패할 확률도 높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특히 지인의 말만 믿고 계약서를 제대로 살펴보지 않거나 신뢰할 수 없는 파트너를 만나 낭패를 당하는 일이 흔하다. 코트라 해외투자자문단의 유예진 과장은 “앞으로 퇴직자들의 해외 진출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데, 현지 코트라 무역관 등을 통해 사업 아이템과 현지사정을 꼼꼼하게 살펴봐야 한다”면서 “현지 사정을 잘 안다고 하는 사람도 정작 현지에서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하는 사례도 많으니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코트라 무역관, 현지 한국 공관 적극 활용해야
해외 자영업을 준비하는 사람은 우선 코트라의 한국투자기업지원센터를 찾아볼 만하다. 기업이 아닌 개인도 무제한 활용할 수 있으며 해외 사업 준비부터 투자이민 방안까지 논의할 수 있다. 중국베트남 등을 중심으로 14개 현지 센터가 무료 상담을 해준다.
이 센터에는 해외 진출 담당자와 고문 회계사, 고문 변호사를 두고 있다. 사업을 준비하는 단계에서 코트라의 현지 정보나, 회계·법률상 일어나는 문제의 초기 대응까지 무료로 자문을 받을 수 있다. 특히 해외 진출 실패 사례와 주의해야 할 지역과 투자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도 점검해준다.
투자 전략을 짠 뒤에는 외교통상부의 투자대상국 현지 공관을 통해 이민이나 취업 방안을 논의하는 것이 좋다. 각 국가별로 이민 법률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한국 정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안전하다.
투자하기 전에 해당국을 찾아 정보를 재확인하는 절차도 필요하다. 이때 현지 코트라 무역관의 도움을 받으면 시간과 비용을 아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