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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아기, 크신 하나님
올해 색동가족 중에서 5명의 아기가 태어났다. 임신 심리에도 전염 증세가 있는 것인지, 예년에 한두 가정에 불과하던 신생아 출산이 올해 후반기에 집중되었다. 새봄에 태어날 또 한 아기가 있어 엄마 안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는 즈음은 모두가 조마조마한 순간이었다. 얼마나 큰 기쁨을 주었는지, 색동카페에 소개한 다섯 아기의 건강하고 우아한 사진들을 보면서 다시금 설렌다.
아기 예수님의 탄생도 그랬을까? 소문과 명성이 2천 년 동안 지속된 것을 보면 어마어마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요즘 교회를 보면 성탄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일에 시들해졌다. 불과 한 세대 전 만 해도 추수감사가 지나면 성탄 장식으로 번쩍거리던 교회였다. 기대밖에 어두침침한 12월의 예배당을 보면서 그만큼 성장 둔화 혹은 침체기를 느낀다. 의기소침한 분위기를 일신할 뾰족한 수를 찾는 것 같지도 않다.
사실 성탄 분위기는 약발이 다 한 지 오래다. 더 이상 사람들은 누추하고, 초라한 외양간을 추억하지 않는다. 게다가 가장 약한 자로 오셔서 강자들 틈에서 평화를 선포한 젊은 예수님에게서 희망을 발견하지 못한다. 이미 세상의 논리는 약육강식의 한 편에 서서 복음과 맞선 지 오래되었다. 교회도 같은 논리에 빠져 겉으로는 겸손하고 온유한 예수님을, 속으로는 강력하고 능력 있는 예수상을 흠모하지 않는가? 그런 교회들이 ‘성탄절에도 흠’, ‘부활절에도 흠’, 소극적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실은 그런 당연함이 불편하고 불안해 보인다.
이번에 ‘성탄절 기다림 전시회’를 여는 이유다. 성탄을 가장 인상적으로 표현하는 상징은 무엇이 있을까? 대표적인 것은 구유이다. 성탄 구유를 독일어로는 킨더 크리페(Kinderkrippe), 이탈리아에서는 쁘레세피오(preseppio)라고 부른다. 성탄 전야에 설치하는 구유 상은 성탄절기 12일 동안 교회나 가정을 장식한다. 처음 구유를 찾아온 목동들은 주현일(1.6)이 되면 동방박사로 바뀐다. 주현절의 주인공은 아기 예수를 찾아와 경배하고,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선물한 페르시아의 매기들이다.
대개 성탄 구유는 구유를 중심으로 아기 예수와 가장 가까이 마리아와 요셉 그리고 동방박사 셋, 목동 여럿, 소와 양 등 짐승들을 모두 포함하는 구성이다. 가장 단순한 것은 구유와 그 안에 누운 아기이고, 이야기의 전개에 따라 규모는 점점 확장되는 개념이다. 심지어 온 마을 사람들을 포함해 수십 명이 몰려든 구유 상도 있다. 눈부신 ‘신의 강림’ 사건을 소박하게 표현한 구유 상은 그 역설 때문에 사람들의 가슴 속에 영원히 새겨져 있다.
성탄 구유를 성물(聖物)로서 맨 처음 인식한 사람은 아씨시의 성 프란체스코(1182-1226)이다. 그는 가장 가난하고 연약하게 오신 아기 예수를 역시 가난하고 연약한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재현하고 싶어서 교황 호노리오 3세의 허락을 받아 제작했다고 한다. 지금도 프란체스코의 고향 아씨시에서 실감 나는 성탄 구유를 구경할 수 있다. 프란체스코 역시 외양간에서 태어나 구유에 뉘였다. 아기를 해산할 때 산통으로 극심한 아픔을 겪던 그의 어머니를 향해 지나가던 순례자가 말했다는 것이다. “가장 낮은 곳으로 가서 아기를 낳으시요.”
만약 상징을 무시해 버린다면 우리가 전하는 복음은 얼마나 무미건조할까? 성탄절의 기쁨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거룩한 상상력을 놓치는 일이다. 온갖 상징들, 곧 이미지, 그림, 환상, 이야기, 비유 등으로 구성된 날개 하나를 부러뜨리는 일이다. 성탄절이 신비하고 환희로 가득한 까닭은 가난하고 두렵고 낮은 자리에서 전개되는 꿈같은 스토리 때문일 것이다. 아기 예수에 대한 연민을 잃어버린 오늘의 교회는 앞으로 세상의 아픔, 두려움, 고달픔, 위험함에 대해 더 이상 긍휼한 마음을 갖지 않을 것이 뻔하다.
이번 전시회(과천은파교회, 12월 18-30일)는 성탄절의 가장 대표적인 상징들을 선보인다. 세계의 구유 상 60여 점은 가장 작고 너무 작아서 정말 아기 예수님을 닮았다. 아기 예수를 품에 안은 어머니 상도 여럿이다. 국적도 다르고, 솜씨도 다르지만 사랑스러운 아기와 어머니는 아주 똑같다. 그리고 다양한 표정과 역할을 한 천사들과 세상의 빛을 책임진 촛대들 게다가 헤른 후터의 별까지, 모두 성탄을 우리 가까이에 가져다 둘 만큼 충분히 정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