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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기(왼쪽) 단국대 교수와 유경준 한국개발연구원 수석이코노미스트가 지난 26일 서울 중구 충정로 문화일보 사옥에서 열린 고용노동시장 관련 대담에 앞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김동훈 기자 dh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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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가 저성장 기조 속에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지난 23일 대통령 소속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이하 노사정위)는 고용노동시장 구조 개선에 관한 기본적인 원칙과 방향에 합의했다.
노사정위는 내년 3월까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를 비롯해 임금·근로시간·정년 등 현안 문제와 사회안전망 정비 의제 등 3가지 우선 과제에 대한 논의를 마무리 짓겠다는 입장이다. 한국 경제의 재도약을 위해 고용노동시장 구조개혁이 최우선 과제로 떠오른 가운데 노·사·정 모두 개혁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고 있지만 원인과 진단에는 각각 입장을 달리하고 있어 최종 성과를 도출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문화일보는 고용노동시장의 문제와 해결책을 점검하는 전문가 긴급 대담을 마련했다. 지난 26일 서울 중구 충정로 문화일보에서 진행된 대담에는 김태기(경제학) 단국대 교수와 유경준 한국개발연구원(KDI) 수석이코노미스트가 참석해 한국 고용노동시장의 주요 현안과 개선 과제 등을 지적했다.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
유경준 KDI 수석이코노미스트
진행 = 김남석 경제산업부 기자―노사정위가 고용노동시장 구조 개선에 관한 원칙과 방향에 합의했는데 내년 3월까지 어느 정도 성과를 낼 것으로 기대하나.
△유경준 = 과거 한국이 노·사·정 대타협을 이끌어 낸 것은 딱 한 번 지난 1998년 외환위기 당시뿐이었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고 실업률이 급상승하는 등 모든 국민이 위기라는 데 공감함으로써 노사 대타협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지금은 국내 경제가 좋지 않지만 가랑비에 옷 젖는 식으로 서서히 일본처럼 장기침체 국면으로 가고 있어 과연 노사 주체들이 위기라는 데 동의할지 의문이 든다. 사회적 대타협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위기 시에 기득권을 내려놓는 것을 전제로 경제를 살리고 취약계층 보호를 우선시하는 노력인데 현재처럼 노사가 절대적 위기감이 없는 상황에서는 외환위기 당시와 같은 대타협은 쉽지 않을 것 같다. 또 노사 대표가 대기업 위주로 구성되어 있다면 취약계층 보호 등 시급한 과제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 쉽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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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기 단국대 교수 △1956년 부산 출생 △서울 경동고,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아이오와대 대학원 경제학 박사 △단국대 상경대학 경제학과 교수, 한국증권금융 사외이사, 한국노동경제학회 수석 부회장,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 위원장, 서울시노사정위원회 위원장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근로시간 임금제도개선 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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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기 = 앞으로 노사정위가 어떻게 활동하느냐에 따라 전망이 달라질 수 있다. 사실 현재 노사정위를 보면 노동계와 경영계가 서로 신뢰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고용노동시장 구조 개선에 대한 기본 원칙과 방향에 합의했다지만 구체적 내용으로 들어가면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부분도 많다. 이런 점에서 보면 내년 3월까지 통 큰 합의를 이끌어낸다는 게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노사정위가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어떤 방향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유경준 = 먼저 고용노동시장 구조 개선의 필요성에 대한 노사의 공감대 형성이 중요하다. 현재
기술 진보와 세계화 등으로 전 세계적으로 고용노동시장 환경이 급속히 변화하고 있다. 고용도 잘 늘지 않고, 소득분배는 악화되고, 빈곤층이 증가하는 상황이다. 한국도 이러한 국제적 환경 변화에 잘 적응하지 못한다면 추가
성장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따라서 추가적인 경제 성장이나 취약계층 보호를 위해서는 기득권을 가진 집단의 양보가 필요하다. 이를 실현하는 방법은 근로시간을 단축하고 임금체계 등을 개편해 새로운 고용을 창출하고 정년 연장 등을 통해 현재 일자리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조금 더 오래 일하되 인건비 상승은 억제하는 내용을 기본으로 삼을 수 있다.
△김태기 = 노사정위가 성과를 내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는 주체는 정부다. 대타협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정부가 먼저 고용노동시장 구조 개선의 방향성을 명확히 하고 그 바탕 위에서 노동계를 설득하고 경영계를 안심시켜야 한다. 무엇보다 노사정위가 정치력을 발휘해 정부 입장을 명확히 하고 노동계와 경영계의 반발을 해결해야 한다. 무조건 일자리를 늘리라고 해서 늘어나는 것도 아니고 양보하라고 해서 양보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세제 지원이나 재정금융 지원, 정부 조달 자격 등 여러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네덜란드의 사회적 대타협을 이끈 인물로 빔 콕 전 총리를 많이 거론하는데 당시 콕 전 총리는 국정의 1, 2, 3순위를 모두 일자리에 두고 모든 걸 던져 이해관계를 조정하기 위해 뛰어다녔다.
―정부가 내년 주요 국정 목표로 고용노동시장의 개혁을 내걸었는데 왜 지금 시점에서 고용노동시장의 변화가 꼭 필요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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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경준 KDI 수석이코노미스트 △1961년 서울 출생 △해동고,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고려대 경제학 석사, 코넬대 대학원 노동경제학 박사 △노동연구원 연구위원, 중앙노동위원회 공익위원, KDI 재정사회정책연구부 부장, KDI 공공투자관리센터 정책연구실 실장 △국민경제자문회의 민생경제분과 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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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경준 = 한국이 변화하는 세계 경제 환경 속에서 지속 성장하고 국가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경직된 고용노동시장의 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게 안 되면 외국인 투자도 들어오지 않고 국내 대기업들도 해외로 진출하려고 할 것이다. 과거 고도성장기에 적합했던 장시간 근로나 대기업 근로자 위주의 사회안전망, 연공서열형 임금체계 등은 지금은 맞지 않는다. 현 상태를 그대로 두면 한국 경제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 3만 달러 시대에서 더 이상 도약하지 못하고 멈춰버리게 될 것이다. 추가적인 도약을 위해서는 고용노동
시스템을 비롯해
교육 시스템, 금융 시스템 등을 고치는 것이 핵심이다. 한국 경제의 ‘마지막 골든타임’이라는 말을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또 한편으로는 최근 통상임금 문제나 근로시간 단축 등이 현안으로 떠오르면서 정부가 고용노동시장 개혁의 시급성을 인지하게 된 것으로 생각된다.
△김태기 = 정부가 고용률 70% 달성을 외치지만 뜻대로 잘 안되는 것이 한 가지 배경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현재 고용노동 관련 문제들이 행정부는 물론 입법부, 사법부 등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촉발되면서 산업 현장이 혼란에 빠져 있다. 이 같은 요인들이 고용노동 문제를 경제 개혁의 핵심 과제로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이른바 ‘아베노믹스’에 대한 국제적 평가도 자극이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국제 전문가들이 아베노믹스를 실패한 경제 정책으로 보는 이유 중 하나는 구조 개혁 없는 경기 부양은 결국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키우기만 한다는 사실이다. 일본처럼 재정으로 경기 부양에 치중하고 경제의 체질을 바꾸지 못한다면 결국 경제 개혁은 물거품이 될 수밖에 없다.
―기업들은 국내 고용노동시장의 유연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하는데 노동계는 반대로 고용노동시장의 안정성 부족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김태기 = 한국 노동시장은 완전히 분단되어 있다. 대기업·정규직 부문의 노동시장은 매우 경직되어 있다. 반대로 중소기업·비정규직 부문은 유연하다. 따라서 일률적으로 한국 노동시장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기 쉽다. 경제계가 말하는 것은 주로 대기업 관련 노동시장을 말하는 것이고 노동계는 중소기업·비정규직 부문을 이야기하는 거다. 결국 경제계나 노동계나 아전인수식으로 말하는 부분이 많다.
△유경준 = 정확한 표현이다. 경제계와 노동계 모두 자신들이 보고 싶은 면만 바라보고 있다. 한국 노동시장은 이중 구조로 분단되어 있다. 일부는 아주 경직되어 있지만, 대부분은 유연하다. 한국 경제는 대기업 위주로 성장해왔는데 그 부분이 경직된 고용노동시장을 구성하고 있다. 반면에 취약계층의 사회안전망은 비어 있는 실정이다. 그러다 보니 일자리의 안정성이 높은 곳은 유연하지 않고 반대로 유연한 곳은 안정성이 취약하다. 노사는 각자 자신들의 입장에서 필요한 부분만 강조하고 있는데 둘 다 맞는 말이기도 하고 둘 다 틀리기도 하다.
―한국 고용노동시장은 세계 최장 근로시간을 기록하면서도 낮은 생산성을 나타내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데 원인이 무엇인가.
△김태기 = 흔히 장시간 근로와 낮은 생산성 문제를 묶어 이야기하는데 각각 원인이 있다. 근로자 입장에서 장시간 근로는 더 많은 소득 보전을 위해 필요했고, 기업 입장에서도 신규 채용보다 기존 근로자의 근로시간을 늘리는 게 이익이라는 점이 맞아 떨어졌다. 반면에 낮은 생산성 문제는 노사의 생산성에 대한 인식 부족과 관련이 깊다. 노동계는 생산성 얘기를 하면 착취당하는 것 아니냐는 불신을 가졌고, 기업은 생산 확대를 정규직보다 비정규직 또는 외주에 의존해서 해결해왔다. 근로자를 교육해 생산성을 올리는 일을 힘들고 피곤한 일로 여겨왔다. 생산성이 올라갈 수 없는 구도를 노사가 만들었다고 보면 된다. 근로시간 단축 등과 관련해 독일 얘기를 많이 하는데 독일 근로자들은 근로시간이 짧지만 생산성은 높고 많은 임금을 받고 있다. 독일 노사는 근로시간 단축을 위해서는 먼저 생산성이 높아져야 한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고 이를 통해 단위노동비용을 낮출 수 있었다.
△유경준 = 장시간 근로가 한국에서 관행화된 것은 과거 한
가정에서 남성 혼자 생계를 책임지는 사회 구조와 관련이 있었다. 가장 혼자 일하는 구조에서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오래 일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더해 기업 입장에서는 사람을 추가 고용하는 것보다 있는 사람을 오래 쓰는 게 더 싸기 때문에 그런 관행이 정착된 것이다. 낮은 생산성 문제는 한국 사회가 급변하는 환경 변화에 적응해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직업교육이나 훈련을 받을 기회를 만드는 데 무관심했던 것이 한 원인이다. 또 갈수록 제조업 고용은 줄고 서비스업 고용이 늘고 있지만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은 취업이 어렵고 대부분 도소매나 음식점, 숙박업 등 저생산성 직종에 사람들이 몰려 있는 점도 원인이다.
―현안으로 들어가서 최근 계약직 기간을 4년으로 연장하는 논의가 나오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유경준 = 고용노동시장 구조 개선의 전체 그림이 나와야 정확히 평가할 수 있다. 계약 기간 연장이 전체적인 고용노동시장 개혁의 그림에서 어떻게 표현되느냐가 중요하다. 다만 이것만 떼어 놓고 생각해 본다면 정규직의 과보호는 줄이고 비정규직 보호는 높여 나간다는 고용노동시장 구조 개선의 기본 방향과 맞지 않을 수도 있다. 2년 근무 뒤 다시 2년을 추가 계약해 총 4년을 일한 뒤 기업이 정규직 전환을 거부할 경우 어느 정도 추가적인 보상을 주느냐에 따라 현행 제도를 강화하는 방안이냐, 완화하는 방안이냐가 판단될 수 있다.
“노동시장 양분… 정규직 과보호 풀고, 비정규직 안전망 확대”△김태기 = 단순히 계약직 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린다고 비정규직 문제가 해결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고용기간 문제를 법으로 정하면 그 자체로서 고용노동시장을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단절시키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고용 형태는 매우 다양하고 스펙트럼이 넓다. 고용 계약기간을 2년이나 4년으로 자르기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중간 단계에 있는 무기계약직의 활용에 좀 더 관심을 가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사내하도급 문제의 경우 조선이나 자동차 업종에서는 법원 판단대로 직접 고용으로 전환할 경우 기업들이 감당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는데.
△유경준 = 파견의 영역이 불법이냐 아니냐 하는 것은 굉장히 판단하기 어려운 ‘회색 지대’에 있다.
사업장마다 사내하도급에 불법적인
요소가 얼마나 있느냐 하는 부분을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할 문제다. 한편으로는 현재 32개 업종으로 제한되어 있는 파견 업종에 대한 확대와 더불어 독일식의 상용형 파견으로 양성화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재 파견근로자가 모두 비정규직으로 분류되고 있는데 파견 업체에서 정규직으로 근무하는 상용형 파견으로 정착된다면 불법 파견 문제는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김태기 = 사내하도급 문제나 불법 파견 문제는 사실 고용노동시장 전반의 문제는 아니다. 고용 경직성이 높은 대기업 부문의 문제다. 대기업이 고용 경직성 문제를 피해가려다 보니 사내하도급이나 불법 파견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른바 ‘풍선효과’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못하게 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고 파견 제도를 보다 국내 산업 특성에 맞게 현실화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국내 노동운동이 대기업 위주로 진행된다는 경제계 일각의 지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김태기 = 노동운동의 문제는 근로자들이 스스로 풀어야 할 숙제다. 한국 노동운동의 가장 큰 숙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같은 노동자인데 정규직 노조에 비정규직 가입이 어렵다는 점이다.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정규직 노조에 가입해야 노조의 임금 정책이나 고용 정책이 큰 틀에서 바뀔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신분 차별 문제도 없어진다. 사실 산업 현장에서 보면 비정규직은 복장부터 식사까지 차별 대우를 받고 있다. 이런 문제를 노조 스스로 인식하고 개선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그렇다고 노조에만 책임을 맡길 수는 없고 정부도 공정 노동의 기준을 만들고 차별금지 제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유경준 = 과거 정부는 노조를 기업별 노조로 한정해서 이런 문제를 방조했다고도 볼 수 있다. 산업별 노조로 갈 경우 노동계의 힘이 과도하게 세진다고 판단해 정부가 기업별 노조로의 정착을 유도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결국 조합원이 많은 대기업 위주로 노동운동이 발전할 수밖에 없었고 노조 역시 이 같은 현실에
안주한 것이 현재 상황이다. 또 대기업의 경우 노사가 서로 나눌 수 있는 이익이 많다는 점도 대기업 중심의 노조 설립이 활발해진 이유다.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노조가 또 다른 사회 기득권 세력으로 자리 잡아 이른바 ‘귀족노조’라는 비판을 받는 경우도 많은데.
△김태기 = 산업구조와도 관련이 깊은 문제인데 노조 역시 조직하는 데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간다. 대기업 사업장의 경우 노조 조직화가 용이하고 노동운동을 통해 돌려줄 성과물도 많은 편이다. 반면 중소기업 노조는 열심히 활동하더라도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 이런 문제 때문에 노조가 기업별 노조에서 산별 노조로 전환했지만 무늬만 산별 노조이고 결국은 개별 사업장 위주로 가고 있다. 대기업 노조의 기득권 지키기 때문이다. 노동계 스스로 자각이 필요한 부분이다.
△유경준 = 노조의 순기능과 역기능이 있는데 순기능인 고충 처리 및 대변 기능보다 역기능인 독점 기능이 더 커지다 보니 일부 노조에 대해 귀족노조라고 부르게 된 것 같다. 전 세계적으로도 일부 국가를 제외하면 갈수록 노조 가입률이 떨어지고 있는데 그 주된 이유가 노조가 순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되기도 한다. 다만 한국의 경우 정치적 이유로 산별 노조보다 기업별 노조 체제로 정착되다 보니 대기업 노조 위주로 노동운동이 전개됐다는 한계에 기인한 바도 있다. 귀족노조의 오명을 탈피하기 위해서는 대기업 노조가 조합원들뿐 아니라 주변에 있는 취약계층 근로자까지 포괄해서 그들의 입장도 대변해야 제대로 된 노동운동이 이뤄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 ‘고용 없는 성장’에 대한 우려가 크고 실제로 많은 대기업들이 국내에 투자하기보다는 해외로 나가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김태기 = 기업들이 해외로 나가는 이유는 고용노동 문제를 포함해 복합적인 원인이 작용하고 있다. 해외로 진출하는 것이 사업상
유리하다는 측면도 있고 아무래도 고용노동 문제 부담이 작다는 점도 있다. 사실 고용노동 문제와 관련해 생각해보면 현재 한국의 단위노동비용은 해외보다 훨씬 많이 든다. 노사 관계 역시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다. 조직 개편이나 인력 재배치가 필요해도 노조의 협조나 동의를 얻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노사가 서로 힘을 합쳐 단위노동비용을 낮추고 원가경쟁력을 키워야 지금보다 기업의 해외 진출이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유경준 = 한국 고용노동시장은 전체적으로는 경직되어 있지 않지만 특정 부문, 즉 대기업·정규직 부문을 놓고 보면 지나치게 경직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 부분이 한국 경제를 이끌어온 핵심 부분이다 보니 경제계에서 더 이상 국내에서 기업 하기 힘들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과거처럼 경제 성장이 계속되는 시기에는 이런 점이 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현재는 다른 대안이 발견되지 않는 한 경쟁력을 상실하는 문제가 될 수 있다. 일부 정규직에 대해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체 정규직에 대한 고용 보호를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 과도하게 보호되고 있는 대기업 일부 정규직에 대해서는 기업이 필요한 최소한의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보호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렇지 않으면 공룡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것처럼 한국 경제의 경쟁력도 없어질 수 있다.
―청년 실업 문제는 갈수록 심각해지는데 기존에 일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세대들의 경우 정년 연장 등이 이뤄지면서 일자리를 둘러싼 세대 갈등 우려도 커지고 있는데.
△김태기 = 현재와 같은 고용노동시장 상황을 방치하면 세대 간 갈등이 커질 수 있다. 청년들의 경우 중장년층에 비해 학력 수준이 높은데 제도 혁신을 통해 경쟁 관계가 아닌 보완 관계로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청년들이 중소기업에 취업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많이 줘야 한다. 중소기업에서도 종업원 주주제도나 핵심 인력에 대해서는 주식을 공유하는 제도 등을 도입해 우수한 청년 인재들이 들어와 자신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반면 중장년들의 경우 다양한 경험이나 노하우가 있는 사람들을 청년 창업이나 중소기업의 멘토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유경준 = 사실 고용노동시장 전반을 살펴보면 중장년층과 청년층이 서로 취업하는 분야가 달라 일자리 전쟁이 크게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한국적인 특징을 살펴보면 좋은 일자리를 둘러싼 세대 간 갈등이 향후 벌어질 가능성도 간과할 수 없다. 즉 대기업이나
공기업의 근로자 수는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계속 추가적인 일자리 창출이 감소한다면 세대 간 갈등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임금체계 개편이 핵심 변수가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고용노동시장의 변화와 개혁을 위해 꼭 조언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
△김태기 = 노사정위의 이번 합의에서도 간과하고 있는 부분인데 향후 고용노동시장 구조 개선에 빠뜨려서는 안될 과제가 중소기업과 서비스업의 고용 문제다. 근로자의 90% 가까이가 중소기업에서 일하고 있고, 산업별로 보면 70%가 서비스업에 종사하고 있다. 중소기업과 서비스업의 공통점은 고용의 질이 낮다는 것이다. 이 부분을 개선하지 않으면 고용노동시장 개선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중소기업은 노동에 대한 의존도가 크기 때문에 더 우수한 인력이 들어올 수 있도록 파격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 현재까지 나온 바로는 서비스업 부분의 경우 고용 확대 문제의 방향성조차 뚜렷하지 않은데 서비스업 고용 문제의 핵심은 전문성과 부가가치를 높이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노동시장 구조 개선이 대기업, 제조업만의 얘기라면 개혁이 이뤄진다 하더라도 그들만의 개혁이 될 것이다.
△유경준 = 노동시장 구조 개혁을 위해서는 가장 기본적인 질문에 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왜 노동시장 구조 개혁을 하느냐, 무엇을 하느냐, 어떻게 하느냐 등이다. 무엇보다 왜 하느냐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한다. 한국 경제가 정체되지 않고 추가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고용노동시장 개혁이 필수적이며, 그 과정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고용 보호 수준의 조정이나 임금체계 개편 및 사회안전망 확대 등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을 할지에 대한 청사진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