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일본과 역사전쟁이 본격화되면서 반크(VANK·VOLUNTARY AGENCY NETWORK OF KOREA)의 활약이 돋보이고 있다. 반크 회원들은 2000년부터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하고 있는 해외 유명사이트에 이메일을 보내 259개의 사이트가 동해를 단독 표기 하거나, 일본해와 병기하도록 했다. 2003년 4월 이후에는 고구려 역사를 왜곡한 사이트를 찾아내 18개 사이트가 오류를 바로잡도록 했다.
사실 반크는 역사단체도, 시민단체도 아닌 국제 펜팔사이트다. 회원들은 해외 친구들과 이메일을 교환하다 해외 친구들이 한국에 대해 의외로 무지하다는 사실에 놀랐고, 이들이 참고하는 주요 사이트에서 우리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해외 유명 사이트의 역사왜곡 실태가 하나씩 접수되면서 회원들은 자연스럽게 오류 시정에 나섰다. 해외 친구들에게 진실을 알리기 위한 소박한 움직임이 사이버상에서 역사를 되찾는 거대한 물결로 변신한 셈이다.
서울시 중구 약수역 근처 반크 사무실에서 사이트 운영자 박기태 기획단장을 만났다. 그는 "거창한 일을 하는 것 같지만, 나는 펜팔 사이트 운영자"라며 머리를 긁적였다. |
"영어 점수 올리기 위해 반크 만들었다"
- 반크의 성격은 무엇인가. 애초부터 우리 역사를 바로 알리기 위해 시작되었나
반크는 해외 펜팔 사이트입니다. 지금도 홈페이지(www.prkorea.com)에는 국가 홍보나 역사 왜곡 문제보다는 해외 친구들과 나눈 이야기들이 더 많습니다. 99년 1월에 펜팔을 통해 제 영어 공부를 하고 토플 점수 올리려고 만든 사이트가 운영을 하다보니 여기까지 왔습니다.
- 어떤 계기로 펜팔에서 역사문제로 영역이 확대되었나
해외 펜팔 친구가 생기면 처음에는 좋아하는 음식, 가수, 영화 이야기 등을 나누게 됩니다. 펜팔이 거듭되면 이런 이야기로 대화를 나누는 것에는 한계가 생기게 되고 자신이 속한 나라의 역사나 사회 문제 등을 이야기 하게 되죠. 이때 "한국은 일본 또는 중국 옆 어디에 있는 나라야?"라는 질문을 많이 받게 됩니다. 그래서 이들에게 한국의 위치를 가르쳐 주기 위해 해외 유명 지도 사이트를 찾아가 지도를 다운 받아서 우리나라의 위치를 표시해 보내주곤 했습니다. 그런데 해외 유명 지도들은 대부분 우리가 모두 '동해'라고 알고 있는 바다를 '일본해'라고 표기하고 있더군요.
잘못된 지도를 봤을 때 처음에는 포토샵 등으로 '일본해'를 '동해'로 바꾸어서 친구들에게 전해주곤 했는데, 한계가 있었습니다. 나중에 친구들이 "보내준 지도가 원본과 다르다"고 지적하면 우리가 사실을 왜곡한 것 같아 부끄럽기도 하고요. 회원들과 이야기를 해보니 비슷한 경험을 겪은 분들이 많았습니다. 이때부터 산발적으로 해당 사이트 게시판에 오류 시정을 부탁하는 글을 올리기 시작하는 등 '동해 지키기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펜팔을 하다보면 외국 친구들에게 내가 속한 나라를 바로 알리고 싶은 욕구가 생기게 됩니다. 세계 10대 교역국이고 역사책을 보면 훌륭한 인물이 많이 난 자랑스런 나라지만, 외국에서는 그렇게 안봐요. 심지어 비참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유명 사이트가 수정하면 다른 사이트에도 영향"
- 해외 사이트의 '동해' 관련 오류 시정에 성공한 건수가 2000년과 2001년 각 1건에서 2002년 48건으로 급증했다. 어떤 이유인가
영토나 역사 문제는 대중의 관심이 높으면서도 관심이 지속적으로 이어지지 않는 분야입니다. 일본과 중국의 역사왜곡 문제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분노하지만, 꾸준하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드문 편입니다.
우리도 해보니까 알겠더군요. 영토와 역사관련 일은 재미도 없고, 의욕이 금방 꺾이는 일입니다. 사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외교부에 탄원서 올리고 게시판에 글 쓰는 것 외에 또 있을까요?
다행히 저희는 펜팔 경험이 늘어날수록 해외 사이트의 오류를 수정해야 한다는 생각이 하게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일종의 사명감 같은 것도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해외 사이트에 오류 시정을 부탁하는 이메일을 보내면서 몇 가지 요령도 알게 됐습니다. 일본해 문제의 경우 먼저 내셔널 지오그래픽, UN, 하버드 대학교, 그래픽 맵스 등 유명 사이트가 오류를 시정하면 이들 사이트의 영향을 받는 사이트들은 잇따라 오류를 수정하게 됩니다. 경험으로 터득한 요령 덕분에 갈수록 많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 동해 문제에 이어서 최근에는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문제 관련 활동을 펼치고 있는 것 같은데, 진행 상황이 어떤가
펜팔을 하면서 많은 중국인들이 우리나라를 속국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외국인들이 참고 하는 해외 유명 역사 사이트들도 우리나라가 중국의 속국이었다고 소개하면서, 고대사는 아예 다루지도 안더군요.
회원들과 함께 우리나라 관련 역사 내용을 바로잡아 줄 것을 요구하는 이메일을 보내서 내셔널 지오그래픽, 미국 야후, 미시간 대학 등의 오류를 수정했습니다. 이들 사이트들은 "한국사의 시작은 통일신라가 건국한 668년"이라고 기록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한국의 역사는 기원전 4000년이며 통일신라는 668년 개국 했다"는 내용으로 수정했습니다.
일본해 문제를 통해 터득한 방법을 바탕으로 먼저 유명 사이트의 오류를 수정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동해 지키기 운동' 때보다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영토 및 역사 관련 사이버 운동을 진행하며 느낀점이 있다면?
우리 국민들이 우리만의 생각에 잠겨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본해 문제도 우리 국민들은 모두 '동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외국 유명 사이트는 거의 100%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역사에 대해서도 반만년 찬란한 역사라고 생각하지만, 외국에서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문화권력 집단 되고픈 생각 없어… 구체적 작업은 학자들 몫"
- 반크의 활동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한편으로는 극우주의로 흐를 것을 염려하는 시각도 있다. 성장을 거듭하면서 역사를 팔아먹는 일부 몰지각한 시민단체처럼 단체의 성격이 변질 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국가 최고의 홍보기관을 꿈꾸며 우리 민족과 역사를 위해 싸우는 마징가 제트를 만들 생각은 없습니다. 반크는 어디까지나 펜팔 사이트이고, 해외 친구들에게 우리를 있는 그대로 알리기 위해 노력할 뿐입니다. 해외 사이트의 오류를 지적할 때에도 전문가들의 검증을 받은 사실을 알리려 노력합니다. 극우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이념에 맞게 역사를 왜곡할 수 있지만, 저희는 근거가 있는 내용을 홍보합니다.
해외 사이트의 오류를 수정할 수 있는 방법 등 그 동안 반크가 습득한 노하우는 홈페이지와 최근 펴낸 단행본(사이버 외교관-반크)을 통해 모두 공개했습니다. 문화 권력 집단이 될 생각이 있었다면 노하우를 공개하지 않고, 회원 가입을 유도했을 겁니다. 우리는 매우 상식적인 변화만 유도할 뿐이고 더 자세한 일은 해당 분야 전문가들이 할 일입니다. 만약 반크 홈페이지 운영자가 변한다면 우리 회원들이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 반크가 해외 사이트 운영자에게 오류를 시정할 것을 요구하는 이메일을 보내거나 게시판을 글을 올리는 행동이 상대를 자극해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지난 4년동안 1000개가 넘는 사이트에 메일을 보냈는데, 항의 메일은 딱 한 통 받았습니다. 그것도 "오류를 수정했는데, 왜 또 메일을 보냈느냐"는 내용이었습니다. 다행이 반크 회원들을 메일에 욕설이나 억지를 담지 않습니다. 반크는 실명이 담긴 이메일을 사용할 것을 권한하는데, 자신이 이름으로 보내는 이메일에 욕설을 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억지 주장을 막기 위해 기본적인 내용은 공유를 하고, 자신 소개 등은 스스로 쓰고 있습니다. 아무리 권위 있는 사이트라도 한국이라는 나라의 각계 각층에서 같은 내용의 지적을 하면 무언가 잘못되지 않았나하는 생각에 자료를 뒤져보게 됩니다.
그리고 감정적 마찰을 막기 위해 일본과 중국 사이트에는 오류 수정을 요구하는 메일을 보내지 않습니다. 일본과 중국 외 다른 나라 사이트에서 그들의 역사왜곡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느 정도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세계에 대한 편견 버리고, 정부에 책임 떠넘기지 말아야"
- 해외 사이트의 오류 수정 작업을 하면서 회원들 사이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
처음 펜팔을 시작하면 미국, 영국, 프랑스 등 강대국의 친구를 사귀려는 경향을 보입니다. 아프리카나 동남아 사람들의 이메일은 무시하기 일쑤입니다. 하지만 강대국 친구들이 한국에 대해 무지하고, 무시하는 태도를 느끼면서 우리 역사에 관심을 갖게되고, 한편으로는 "내가 옛날에 무시한 약소국 친구들도 나와 같은 기분이었을 것이다"는 생각을 하게되죠.
이런 경험이 쌓이면서 펜팔을 오래 한 친구들은 약소국의 친구들과도 격의없이 이메일을 주고 받곤합니다. 세계에 대한 편견없이 어울리게 되는 것이죠.
- 네티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 정보통신 강국입니다. 영토 문제나 역사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정부를 탓하고, 정부는 인력과 예산을 탓하는 악순환이 이뤄지는 것은 곤란합니다. 모든 네티즌이 '나의 일'로 생각하고 세계를 향해 감동을 주는 일을 했으면 합니다. 스스로 실천한 이후에 떳떳하게 정부에 대책 마련을 요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계를 친구로 생각하고 그들의 '사이버 관광 가이드'가 되겠다고 생각하고 실천하면 자연스럽게 나의 정체성을 되돌아보게 되고, 공부를 하게 됩니다. 저희도 그런 과정을 거쳤습니다. 거창한 마스터 플랜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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