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가 만드는 역사
-만세일계
만엽은 나그네의 발길을 伊勢신궁으로 안내했다.
만엽의 신은 무엇을 나에게 보여주려고 했을까.
만엽집을 추적하다보면 84번가와 85번가 사이에는 거대한 단층선이 존재한다.
만엽집 80번가는 황통이 지통천황의 후손들로 계속 이어지게 해달라고 천지신명에 기원하는 작품이었다.
만엽집의 숫자개념으로 보면 만엽집 제1권은 마땅히 80번가로 끝나야 했다.
80은 무한수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지통 후손들의 황통이 만대에 이르게 해달라고 비는 형식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러지 않고 4개 작품을 덧붙여 제1권이 마무리 되어 있었다.
중대한 일이 있었을 것이다.
그랬기에 80이라는 숫자가 갖는 무한대의 염원을 깨뜨렸을 것이다.
분명 "지통의 加護는 여기까지다. 지통의 황통을 끊어다오"라는 뜻이었다.
저주였다.
81, 82, 83번가에 눈물가를 배치해놓고 있었다.
왜일까?
연대기에 답이 있었다.
710년 元明천황이 등원경에서 평성경으로 천도를 했다.
711년 등원경이 불에 탔다.
712년 지통천황의 손녀사위 長田王(?~737)이 이세신궁의 齋宮을 찾아가 81~83번가를 지었다.
長田王이 藤原京의 눈물가를 지은 것이다.
齋宮이 마력의 힘을 가진 노래를 부르며 제천의식을 거행했을 것이다.
81번가를 풀어 보자.
"산 가에
지통천황께서 우물 井자 꼴로 구획하여 만드신 藤原京이 떠나가는 게 보인다.
고집스레 등원경의 생전 공적을 알리리.
神風이 부네.
그대가 가진 생전의 기세를 이세신궁의 처녀들이 드러내 보이네."
82번가를 보자.
마찬가지로 등원경에 대한 눈물가였다.
"포구에서 등원경이 저승배 타는 것을 도와유.
정들었던 옛 도읍이 저승배 타는 것을 도와야지.
그대에 대한 사랑은 오래도록 굳세어 변함없을 것이라네.
등원경이 하늘에 가시지.
온나라 사람들은 응당 절해야 해유.
절하는 모습을 보이게 하자."
불타버린 등원경을 사람이 죽은 것에 비유하며 눈물가를 짓고 있었다.
83번가를 보자. 등원경에 이어 지통천황도 떠나간다.
"바다 밑 물굽이 치는 나루 하얀 파도가 일어서유.
밭 위의 산을 사슴(지통천황)이 넘어가 있다께.
사리에 어두운 분이시여, 저승배를 타고 가셔야 하지.
마땅히 나타나셔야 한다께."
81~83번가의 작자는 지통천황의 손녀사위 長田王이었다.
지통천황이 무척 사랑했을 것이다.
지통천황은 사랑했던 손녀사위의 환송을 받으며 이승을 떠난 것이다.
필자가 만엽집 초기 편집자로 추정하는 히토마로는 원래 80번가로 권1을 마무리 하려하였다.
그러다 마음이 변해 4곡을 덧붙여 만엽집 제1권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이곳은 더 이상 계실 곳이 아닙니다. 미련을 갖지 말고 이제 그만 떠나셔야 합니다."
얼마후 히토마로가 元明천황에 의해 처형되었다.
히토마로는 죽음에 앞서 1곡을 더 덧붙여놓고 있었다.
84번가였다.
만엽 나그네는 84번가를 보고 전율을 느껴야 했다.
충격적 작품이었다.
"가을이 가고나니 지금에야 나타남이여?
妻가 그대를 그리워했다.
사슴들이 장차 울게 될 산 高野原의 집에 그대를 모시리."
84번가는 만엽집 제1권의 epilogue로 선택받은 곡이다.
84번가는 등원경에서 평성경으로 천도한 직후의 작품이었다.
天武천황의 아들 長황자가 天智천황의 아들 志貴황자와 함께 연회를 가지게 되었다.
그때 長황자가 만든 작품이다.
노래의 가사 중 "사슴들이 장차 울게 될 산 高野原(鹿將鳴山高野原)"라는 글자에 주목해야 한다.
90여년 후 충격적 일을 부르는 구절이다.
천지천황의 후계자 大友황자가 천무천황과 지통천황이 일으킨 임신의 난에서
패배하여 사망하였다.
이후 천지천황의 후손들은 천무계의 혹독한 치세를 지내면서, 황통을 빼앗긴 사실에 부끄러워 하였다.
차마 하늘을 볼 수 없어 갓을 쓰고 살아야 했다. 天智천황의 아들 志貴황자가 감시의 눈길을 피해 목숨을 부지해냈다.
志貴황자의 아들 白壁王(709~782)이 49대 光仁천황으로 즉위한다.
천지천황의 손자가 천황으로 등극하게 되는 것이다.
81~83번가의 뜻이 이루어진다.
천무와 지통의 황통이 90여년만에 끝난 것이다.
光仁천황은 백제 무령왕의 후손인 高野新笠을 황후로 맞아들였다.
"사슴이 울게 될 산 高野原"이라는 84번가의 구절이 90여년 후 돌연 마력을 발휘하게 된 것이다.
사슴은 천황을 뜻한다.
광인천황과 고야신립 황후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 제50대 桓武천황으로 즉위하게 되는 것이다.
교토 천년을 연 천황이다.
광인천황과 高野新笠 황후에 의해 천지천황 계열의 황통이 화려하게 부활한다.
고야신립 황후에 대한 언급이 있다.
日韓 월드컵 개최를 앞둔 2001년 12월 23일 明仁천황이 말하였다.
“나 자신으로는 환무천황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에 기록되어 있어 한국과의 인연을 느끼고 있다.’”
저명한 여류 수필가 오카베이츠코(岡部伊都子, 1923-2008)도 『여인의 경(京)』 (일본 도쿄 후지와라 서점 출판, 2005)에서 고야신립 황후를 언급했다.
‘도래문화가 화려하게 꽃핀 平安시대는 백제 출신 어머니를 둔 환무천황 때부터 비롯되었다.
환무천황의 어머니 고야신립은 백제 왕족으로 제49대 광인천황의 황후가 되었다.
틀림없이 희고 고운 한국여인의 피부를 가진 꽤 아름다운 미녀였을 것이다.’
천황과 여류 수필가가 언급한 환무천황의 생모 高野新笠이 84번가의 高野原이었다.
환무천황과 고야신립황후의 황통이 84번가의 힘에 의해 현재의 천황가에까지 이르고 있다.
만엽시대인들은 향가를 불가사의한 힘을 가진 노래라고 믿고 있었다.
만세일계도 향가의 힘에 이루어 진다고 믿었다.
마력의 힘은 만엽집 제1권 84번가로 부터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만엽집과 고사기 일본서기 속에는 수천점의 향가가 담겨져 있었다.
서울에서 온 만엽나그네는 향가 제작법이라는 로제타스톤을 들고 지난 2년간 고대일본을 여행하였다.
제명천황과 額田王 大伯황녀 지통천황과 히토마로를 만날 수 있었다.
그들과 만엽나그네는 뜨거운 눈물을 나누었다.
일본인들이여, 만엽집에는 해독법이 있다.
그대들의 순결했고 뜨거웠던 과거로 가보시길 권유한다.
인류사적 위업인 만엽집과 고사기를 보존해준 일본인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2년간에 걸쳐 이루어진 통일일보 60주년 대기획 "김영회의 만엽집 이야기" 시리즈는 두민족 천년의 기연이라 할 것이다.
긴 시간 지면을 허락해주신 통일일보 사장님 이하 관계자분들에게 감사드린다.
멋지게 번역에 참여해주신 이사구 여사 등 관계자분들에게도 감사한다.
만엽 나그네는 다시 역사가 소용돌이치고 있는 서울로 돌아가야 한다.
사요나라.
大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