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가리골, 청정계곡 시원한 물놀이 트레킹
1. 일자: 2024. 7. 13 (토)
2. 산: 조경동계곡
3. 행로와 시간
[방동약수(10:35) ~ 통제소(11:28) ~ 조경동교(12:13) ~ 작은폭포(13:57) ~ 진동2교(15:37) / 12.5km]
여름 계곡 트레킹은 산꾼에게는 호사이다. 마음이 가니, 미루던 숙제하듯 속에 두있던 두 곳을 꺼내 본다.
'아침가리골' 왠지 클리셰 라는 말이 먼저 떠오른다. 이맘때면 늘 산악회에 단골로 올라오는 곳이라 그런가 보다. 예측 가능한 뻔한 진부함이 느껴진다.
반면, '칠선계곡'은 금단의 미지의 땅으로 호기심을 자극한다. 출입허가가 필요한 곳이라 그런가 보다. 아침가리골은 계곡 물놀이 하러 가는 곳이고, 산꾼의 정도를 벗어나는 일탈로 치부했다. 게다가 몸이 물에 젖는 건 낭패스러운 일이고, 계곡 물이 불면 위험한다는 생각도 방어막을 치는데 일조한다.근데도 마음 한 구석에는 그래도 좋다하니 가 봐야 하지 않는가 라는 생각도 든다. 선입관에 갇혀 있기 보단 일단 정보를 찾아 보자.
트레킹은 두 구간으로 분명하게 구분된다. 임도 걷기 절반, 계곡 걷기 절반. 시간은 계곡걷기에 배 이상으로 배정함이 옳을 듯하다. 임도길 오르내림은 약 6km로 비고 400m 수준으로 큰 부담이 없다. 계곡은 꽤 길지만 수심이 그다지 깊지 않아 누구나 갈 수 있는 길이라 한다. 다만, 선답자는 의외로 등산화와 스틱이 필수라 말한다. 계곡 물 밑이 미끄럽다는 반증이다. 15번 넘게 물을 건너야 하지만 위험하단 말은 없다. 물이 불면 물가 위 산길을 걸으면 돤다. 날머리에 옷 갈아 입을 장소도 있다. 이만하면 안 갈 이유가 없다. 다음매일산악회에 신청을 한다.
유튜브 동영상을 보며 길의 대강을 머리에 넣어 둔다. 꽤 근사한 여정이 될 것 같다. 줄기차게 내리던 장마비도 주 후반되니 잦아든다. 다행이다.
< 방동약수 ~ 조경동교 >
10:35 어름에 버스는 방동약수에 도착했다. 약수물은 철분과 탄산 때문인지 비릿하고 톡 쏘는 뒷맛을 남긴다. 포장도로를 따라 길게 오른다. 수시로 택시가 오르내린다. 더 더울 때 오면 계곡 가기 전에 이곳 오름에서 지쳐 버릴 것 같다. 진득한 오름, 그 끝은 통제소였다. 3km 거리에 50분이 걸렸다. 해발은 860m쯤 되나 보다. 인적사항을 적고 전망대에서 방태산 줄기레 눈길 한 번 주고는 이번에는 내리막 흙길을 걷는다. 도로보다 발 밑 감촉이 부드럽고 열기가 올라오지 않아 좋다. 다시 3km를 걸어 조경동교 다리 위에 도착했다.
6km, 90분, 나쁘지 않은 트레킹이었다. 특히, 내리막길은 여름 숲의 정취를 제대로 느끼게 해 주었다.
< 조경동교 ~ 작은폭포 >
다리 옆으로 짧은 내리막을 내려서자 널따란 계곡이 훅 등장한다. 차가운 물이 열기를 앗아가서인지 시원한다. 성질 급한 이들은 초장부터 물에 첨벙, 난 참고 계곡 위 오솔길을 따라 걷는다. 곧 물을 만나겠지만 갈 때까지는 흙길을 더 걷고 싶었다. 20여분 걸었나, 첫 물을 건넌다. 신발이 젖고 이내 시원한 기운이 온 몸에 퍼진다. 그 기분이 그만이다. 한번 젖은 몸은 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삼각대를 세워 흔치 않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물에 젖은 내 모습을 담는다. 가슴 높이까지 물에 들어가 본다. 물가의 초록 나뭇잎, 멀리 솟은 방태산 줄기, 투명하리 만큼 맑은 계곡, 몽환적으로
반짝이는 윤슬....... 천국이 따로 없다. 왜, 이곳이 여름의 명소인지 금방 확인이 된다. 시간을 잊는다. 핸드폰도 터지지 않는 강원도 오지, 조급함에서 해방된다. 전화 올 곳도, 찾아볼 무엇도 없지만, 그럴 마음도 들지 않는다. 체념이 아닌 그냥 그대로를 받아들이면 된다. 그냥 현재 이 물의 낙원을 즐기면 된다. 이 단순한 사실을 일상에서는 잊고 지냈나 보다.
10번까지는 헤아렸는데 계곡을 몇 번이나 건넌는지 이제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저 물길, 돌길, 흙길 걷기의 반복이 몇 시간째 이어진다.
< 작은폭포 ~ 진동2교 >
계곡을 2시간쯤 걸었나 보다. 조그만 폭포가 보이고 수영금지를 알리는 현수막이 어지럽다. 이곳이 작은폭포인가 보다. 지도에 표기된 장소치고는 소박한 곳이다. 주변에는 이제는 익숙한 풍경이 되어 버린 물속유희를 즐기는 이들의 모습이 보인다.
폭포를 지나자 물 속 걷기보다 계곡 옆길을 걷는 빈도가 잦아진다. 여름 햇살이 계곡에 떨어진다. 주변 풍경에 농담이 분명해진다. 빛의 조화가 근사하다.
배낭을 벗어 한 켠을 두고 물 속으로 들어간다. 사진이 목적이 아니라 순수히 물을 즐기려 계곡 깊은 곳으로 들어간다. 머리를 물 속에 쳐박는다. 뼈 속까지 시원함이 전해온다. 몇 년 간 묵었던 계곡산행의 갈증을 단숨에 해소한다. 이 시원한 기운이 올 여름 내내 나를 기분 좋게 해 줄 게다. 행복했다. 혼자라면 어떠냐, 다음을 위한 답사가 여긴다.
작가 김훈은 신작 허송세월에서 “강물과 역사가 인간이 기댈만한 위안과 힘이 되는 것은, 그것들이 쉴새없이 흐르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들은 괴로운 과거와 절연하지 않고 늘 맥을 잇대어 흐르고 흘러서, 사라지되 잇달아 당도하며 새롭기 때문이다” 라고 했다. 이 물이 흐르고 흘러 동해에 닿을 것에 생각이 미치자 세상의 연결성에 새삼 놀랍다. 계곡물은 미래로 향하는 시간이다.
좁은 길에 인파가 몰린다. 영 속도가 나지 않는다. 물 길을 몇 번 더 건너고야 마을이 보이고 다리가 나타난다. 5시간이 어찌 흘렸는지 모르겠다. 배고픔에 눈에 들어오는 첫 식당에 들어가 젖은 옷을 갈아 입고 산채비빔밥 한 그릇을 후딱 해치운다. 살 것 같다. 이어 버스에 짐을 두고 카페에 앉는다. 커피를 음미하며 비스켓을 입에 물고 시진을 본다. 나만의 '행복한 의식'이 다시 시작된다.
< 에필로그 >
버스가 서울을 향해 출발하고, 인제 홍천 춘천 가평을 지난다. 버스 안에서 음악을 들으며 산행기의 초안을 쓰는 것도 이젠 익숙하다. 차창으로 어둠이 내려앉는다. 산들이 흐러간다. 마을과 집들은 꼭 있어야 할 곳에 자리를 잡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새삼스레 든다.
아침가리골은 고도 차가 거의 나지 않아 순하게 흐르는 게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핵심이지 않나 생각된다. 천천히 흘러 위험하지 않고 유역이 넓어 풍광도 다이나믹하다. 이 장마철에도 출입이 통제되지 않는 이유는 6km가 넘는 계곡의 비고가 채 120m 수준이라는 것에 있다. 급하게 않으니 물이 깊지 않고 건너는 대도 무리가 없다. 설악산, 지리산, 소백산, 덕유산의 그 많은 한다 하는 계곡은 그저 바라볼 때 멋진 먼 그대이지만, 아침가리는 그 속에 빠져 함께 할 수 있는 곳이다. 그래서 고맙고 또 값지다. 넓고 부드럽고 순한 게 결국 마음을 사로잡는 건, 사람이나 계곡이나 같은 가 보다. 한 수 배웠다.
오늘 산행은 한마디로 명불허전, 방태산 줄기에 위치한 조경동계곡은 고운 단풍이 물드는 가을이 더 기대되는 명소라 여겨진다. 오늘 산과 계곡에서 자유로웠고 온몸으로 살아있다는 느낌에 기뻤다. 이 자유의 느낌에 의지해서 일상을 헤쳐 나갈 힘을 얻었다.
첫댓글 또 한번 잘 쓴글 읽고 갑니다. 가슴이 션하게 뻥 뚫렸을것 같은 느낌이 여기까지……^^
좋았습니다.
예전 청계산 밑 폭포에 못 들어간 한 풀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