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어린이 성폭행사건의 여파가 세다. 일곱 살 어린이가 피해를 입었으니, 그 짐승 같은 범죄에 몸서리치는 건 당연하다. 언론은 이번에도 빠르게 움직였다. 열흘 남짓 각종 보도를 쏟아냈다. 정부와 국회도 결코 뒤처지지 않았다. 걱정과 염려는 물론 대책이 쏟아져 나왔다. 대통령은 사건 다음날 전격적으로 경찰청을 방문했고, 국무총리, 법무부, 경찰청 차원의 대책이 잇따라 발표되었다. 관용 없는 엄한 처벌을 하겠다는 뻔한 이야기 말고, 차제에 자기들 인력과 예산이나 좀 늘려보자는 것 빼면 알맹이는 거의 없었다. 여론을 의식해 후다닥 만든 '불심검문 강화' 같은 민망한 것들 투성이었다.
▲ 2009년 10월 10일 '세계사형폐지의 날',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회원들이 서울 명동에서 한국정부의 사형제도 폐지를 촉구하며 사형제도의 잔학함을 알리는 캠페인을 벌였다. ⓒ연합
사형 집행도 그렇다. "사형집행이 없어, 국가기강이 없다"는 김문수 경기도지사처럼 경박하진 않았지만,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도 사형제 논란에 뛰어들었다. 박 후보는 "인간이기를 포기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흉악한 일이 벌어졌을 때 그(일을) 저지른 사람도 죽을 수 있다는 경고 차원에서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사형폐지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정치적 논란이 일었다. 청와대와 법무부는 '국민 공감대' 운운하며 바람 잡기에 나섰다. 어쩌면 1997년 12월 30일 마지막 사형집행 이후, 14년 9개월 동안 중단되었던 사형집행이 다시 시작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문제는 사형제 논란이 성폭력범 등 흉악범죄에 대한 억제책으로 논의되고 있다는 거다.
길게 설명한 것도 없다. 거의 모든 범죄자는 자신이 검거될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제 딴에는 이리저리 잔머리를 굴리고, 마스크 쓰고 밤에 움직이면 잡히지 않을 거라 여긴다. 그러니 당신도 이렇게 죽을 수 있으니 끔찍한 범죄를 저지를 꿈도 꾸지 말라는 것은 너무 막연한 바람이다. 사형이든 무기징역형이든 중형을 선고하고, 집행하는 것만으로 범죄억제 효과가 생기는 건 아니다. 박근혜 후보의 말대로 사형제를 '교훈' 차원에서 그냥 둔다고 해도, 김문수 지사의 주장처럼 당장 집행을 한다고 해도, 범죄자에게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다.
1997년 12월, 23명을 사형 집행한 것은 박정희 정권 때인 1976년 27명을 집행한 데 이어 21년 만의 최대 규모였다. 그렇지만 살인사건 발생 건수는 1998년이 963건으로 1997년의 784건보다 오히려 179건이 늘었다. IMF 구제금융으로 인한 경제위기의 영향으로 부쩍 늘었을 뿐이다. 어느 해 통계를 봐도 마찬가지다. 사형집행이 범죄의 억제에 도움이 되었다는 근거는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1948년 이후 지금까지 920명을 사형집행으로 죽였지만, 언제나 마찬가지였다.
사형제의 이점은 단 하나. 박근혜 후보의 말처럼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의 보복과 응징의 효과가 있을 뿐이다. 범죄를 저지르면 당연히 벌을 받아야 한다. 흉악범에게 그 책임을 단호하게 물어야 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사형이 가장 확실한 보복과 응징인지는 의문이다. 14명을 연쇄 살인한 정남규처럼 스스로에게 사형을 집행하듯 자살해버린 사형수들이 적지 않다. 교도소에서 사형수 관리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어떤 희망도 없는 사람이 보이는 막가파 식 행동이 아니라, 자살시도다. 기약 없는 무기징역이나 가석방 없는 종신형은 어쩌면 사형보다 더 무서운 형벌일 수도 있다.
한국은 잠재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되지만, 그래 봐야 국제인권단체의 모호한 분류에 불과하다. 언제든 사형집행이 가능하고, 집행을 기다리는 미결수(아직 형 집행을 하지 않았다는 의미에서의)도 60명이나 된다. 법이나 제도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정치적인 또는 외교적인 문제 때문에 집행을 미뤄뒀을 뿐이다. 마지막 사형집행이 있던 1997년, 법무부는 '장기 미집행자에 대한 통상적인 법집행'이라고 했다. 사형수가 너무 많아 교도소 관리에 어려움이 있다고도 했다. 흉악범이 들끓고, 그 때문에 여론을 환기하겠다는 것도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사형집행을 당한 23명은 구약의 율법이나 함무라비 법전의 요구, 아니면 유력 대선 후보의 말처럼 같은 방식의 복수를 당했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얻었을까.
▲ <마지막 사형수>(조성애·김용제 지음, 형설라이프 펴냄)는 '사형수의 어머니'로 불리는 조성애 수녀가 1997년 12월 30일 사형집행을 받은 김용제와의 일기를 책으로 묶은 것이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소설가 공지영 씨의 책<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모델이 되기도 했다. ⓒ형설라이프
김용제. 21살이던 1991년 여의도광장 차량 질주사건을 일으켰다. 시력이 나쁘다고 해고된 다음, 공장 사장의 승용차를 훔쳐 여의도광장에서 자전거를 타는 시민들에게 돌진했다. 두 명의 어린이가 죽었고, 21명이 중경상을 당했다. 전형적인 '묻지마 범죄'였다. 어린이 두 명을 죽이는 용서받지 못할 죄를 저질렀다.
그러나 정상참작의 이유도 여럿 있었다. 시력이 나쁘다고 직장에서 연거푸 쫓겨나야 했다. 측정을 해 본 적이 없어 자신의 시력이 얼마인지도 몰랐다. 운전할 때 신호등도 보이지 않아서 앞차의 브레이크 등을 보면서 운전을 했단다. 나쁜 시력 때문에 모든 게 엉망이 되었는데, 그 때문에 나쁜 시력으로 태어나게 했다며 엄마를 원망했다. 범죄도 엄마에 대한 원망 때문에 저질렀단다. 아빠는 자살했고, 엄마는 이미 가출해 만날 수도 없었다. 훔친 차 속에서 자면서 꼬박 3일을 굶어 제정신이 아니었다. 자다가 깨어보니, 여의도광장에서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의 행복한 모습에 괜히 화가 났다. 자신은 너무 초라하기만 했다. 범행은 순식간이었다. 그래도 '묻지마 범죄'로 두 명의 어린이가 희생되었다. 그래서 김용제는 죗값을 치렀다. 김용제 때문에 여섯 살 손자를 잃은 서윤범 할머니는 김용제를 진심으로 용서했고, 또 옥바라지까지 했다. 김수환 추기경은 사형만은 면하게 해달라고 거듭 탄원했지만 소용없었다.
1997년 12월 30일 사형집행으로 죽어간 사람들이 모두 김용제처럼 딱한 정상참작의 여지를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닐 게다. 그렇지만, 23명 중에서 8명이 20대였고, 범행 당시를 기준으로 하면, 절반 이상이 20대였다. 여성도 4명이었다. 죄목만 본다면야, 살인·강도·살인·방화치상·강도강간 등 살벌하기 짝이 없지만, 그래도 아직 젊은 사람들이었는데 혹시 좀 더 기회를 줄 수는 없었을까.
김용제가 일으킨 여의도광장 차량 질주사건(1991년 10월 19일)은 대구 거성관 나이트클럽 화재사건(10월 17일) 바로 이틀 뒤에 일어난 사건이었다. 농민 김정수 씨(당시 29세)는 친구들과 술을 마신 다음, 2차로 거성관 나이트클럽에 갔지만, 옷차림이 누추하다며 입장을 거부당했다. 이에 격분해, 인근 주유소에서 휘발유를 사다가 나이트클럽에 불을 질렀다. '묻지마 범죄'였다. 김 씨의 방화로 16명이 사망하고, 13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끔찍한 일이었다. 김용제 사건보다 여덟 배 많은 사람이 죽었다.
예쁜 이름으로 기억에 남아 있는 박초롱초롱빛나리 양(당시 초등학교 2학년)은 1997년 유괴되었다가 살해당했다. 유괴범 전현주는 박 양의 부모에게 2000만 원을 요구했으나 경찰의 수사망이 좁혀오자, 박 양을 살해했다가 14일 만에 검거되었다. 그 14일 동안 혹시 하며 박 양의 무사귀환을 빌었던 부모와 시민들은 충격과 분노에 휩싸였다. 어린이가 죽은 것은 같지만, 과속 질주보다는 유괴·살인이 훨씬 죄질이 나쁘다.
두 사건은 김용제 사건보다 훨씬 큰 충격을 주었지만, 법의 심판은 '약간' 달랐다. 딱 '한 끗 차이'만큼 달랐다. 김용제는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김정수와 전현주는 무기징역형을 받았다. 사형과 무기징역형은 그야말로 '한 끗 차이'지만, 그 한 끗의 차이가 생사를 달리했다. 김용제는 죽었고, 둘은 살아 있다.
만약 김용제에게도 전현주가 그랬던 것처럼 고위공직자로 일하던 아버지가 있었고, 그 아버지가 고액의 변호사 비용을 댈 수 있었다면 그렇게 죽임을 당하지는 않았을 거다.
1975년 사법살해 당한 인혁당 분들의 이야기는 말할 것도 없다. 사형집행이 다시 시작되면, 시작은 우리 모두가 증오하는 사람들부터겠지만, 정권이 미워하는 사람들도 예외는 아닐 거다. 중요한 것은 '사형이란 제도가 있느냐 없느냐, 집행을 하느냐 아니냐'의 문제지, 사형이란 제도가 정치범, 시국사범, 국가보안법 관련자는 피해 갈 거란 막연한 기대와 말뿐인 약속이 아니기 때문이다.
흉악한 범죄자들은 정말 괴물 같다. 그렇지만 괴물이 생겼다고 괴물에 대한 처리마저 괴물의 방식으로 할 수는 없다. 이건 온당한 일이 아니다. 우리의 역사적 경험, 우리의 이성, 우리의 법률체계와 법정신, 그리고 인간을 대하는 우리 공동체의 상식에 비춰볼 땐 더욱 그렇다.
범죄의 예방, 범죄자 응징 등 형사정책의 목적을 위해 사람의 목숨을 빼앗을 수 있느냐, 사람 목숨을 어떻게 국가가 맡아둔 것처럼 굴 수 있냐는 질문 때문만이 아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구약의 가르침과 달리,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마저 돌려대라'는 예수의 가르침을 선택해야 한다는 종교적 신념 때문도 아니다. 범죄자들의 인권 때문도 아니고, 인간 존엄성을 지켜야 한다는 숭고한 신념 때문도 아니다.
증거가 바뀌거나 범인이 조작되는 경우, 오심의 가능성은 아직도 여전하다. 전관예우가 사라진 것도 아니다. 어쩌면 나도 그런 표적이 되어 죽어갈 수도 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사형이냐 무기냐를 가르는 양형은 오로지 죄의 경중에 따라서가 아니라, 변호사를 선임했느냐, 변호사가 얼마나 치밀하게 준비했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수사나 공소기관의 의지 또는 법원의 판단에 따라서도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수사관이나 법관의 편견 때문에, 때론 집권세력의 정치적 목적 때문에 억울한 피해자가 생길 가능성에 대한 안전한 답은 어디에도 없다.
남들 생각할 것도 없다. 남의 인권, 더군다나 '짐승 같은 놈'의 인권을 각별히 챙겨주려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나와 내 가족만 생각해도 사형제에는 도저히 찬성할 수 없다. 나는 이 형편없는 사법제도와 관련 공무원들에게 내 목숨을 맡겨 놓을 생각이 없다. 내 목숨을 빼앗길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한, 나는 반대다. 인간존엄성, 인권, 범제 억제 효과 등의 실효성, 또는 사형집행으로 인권후진국이 되어 겪게 될 여러 가지 외교적 어려움 따위는 그 가능성이 없어진 다음에 논의해도 늦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