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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대구비전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예예
성 경 : 롬 14:1-12절
제 목 : 믿음이 연약한 자를 받으라
일 시 : 2025. 2. 12.
로마서 14:1-12/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 2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믿음이 연약한 자는 채소만 먹느니라 3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않는 자는 먹는 자를 비판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그를 받으셨음이라 4 남의 하인을 비판하는 너는 누구냐 그가 서 있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자기 주인에게 있으매 그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그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라 5 어떤 사람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으로 확정할지니라 6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7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9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 10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11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12 이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1. 11절에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1) 믿음이 연약한 자를 라고 했습니다.
우리 성경에는 생략되어 있지만 원문에는 데(한편)라는 접속사가 있습니다. 접속사 데는 롬12:1-15:13절까지의 긴 단락 안에서 새로운 작은 단락으로 주제를 바꾸었음을 표시해 줍니다. 새로운 주제를 다루겠다는 의미입니다. 새로운 주제란 음식을 먹는 문제와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날에 관한 주제입니다.
그리고 믿음이 연약한 자란 말은 롬4:19의 아브라함이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라는 말을 상기시켜 줍니다. 왜냐하면 헬라어 본문에 의하면 본문에서 연약한 자(아스데눈타)란 말과 롬4:19에서 믿음이 약하여지지(아스데네사스)아니하고 라는 말이 모두 약하다를 의미하는 아스데네오 라는 동사의 변화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앞뒤 문맥을 살펴보면 롬4:19절에서 약하여지다라는 단어는 본문에서의 약하여지다는 단어와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롬4:19에서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약하여지는 것은 어려운 환경을 만났을 때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신뢰하지 못하는 연약함을 의미하지만, 본절에서 믿음이 연약한 자란 구원의 근본원리 즉 어떤 환경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서의 믿음이 연약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본문에서 믿음의 연약함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나 성경말씀을 믿는 믿음의 연약함이 아니라, 어떤 특정한 일을 행하는데 있어 확신이 약하다(부족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일반적으로 볼 때 믿음이 연약한 자란 아직까지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잘 모르거나 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실천하지 못하는 믿음이 연약한 사람을 가리킵니다(8:26).
그런데 본 절에서 믿음이 연약한 자란 무엇을 먹어야 하고, 어떤 날을 예배 드리는 날로 지켜야 되는지에 대해서 아직 결정하지 못한 자들입니다. 즉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율법을 지키듯이 먹고 마시는 문제와 예배 드리는 날도 지켜야 된다고 주장하는 자들로 그리스도 안에서 누려야 할 자유를 온전하게 깨닫지 못한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말씀처럼 먹고 마시는 문제와 예배드리는 날로 안식일이 아니라 주일을 지키는 문제에 완전한 자유를 누리지 못한 사람이 곧 믿음이 연약한 자들입니다.
2) 그리고 너희가 받되 라고 했습니다.
받되란 2인칭 복수현재명령형으로 너희들이 받아들이라 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너희들은 대체적으로 믿음이 강한 자들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믿음이 강한 자들은 음식물에 관한 구약성경의 규례를 문자적으로 지키기를 거부하고, 또한 어떤 특정음식을 피하는 일에서 자유로운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강한 자들은 믿음이 약한 자들을 받아들여서 자신들의 공동체와 모임 안에 같은 주님을 믿는 형제들로서 따뜻하게 대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3)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여기서 연약한 자를 받을 때 특별히 주의해야할 조건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사람의 행동의 기초가 되는 생각과 의견을 비판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판단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일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된 믿음이 강한 자들이 해야 할 일은, 믿음이 연약한 형제로 하여금 자기의 연약함으로 인해 공동체 안에서 열등감이나 결함, 혹은 색다름을 느끼지 않도록 그를 받아들이는 사랑을 베푸는 것입니다.
2. 2절에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믿음이 연약한 자는 채소만 먹느니라/고 했습니다.
어떤 음식은 먹지 말아야 된다는 생각과 사상과 가르침은 그 당시에는 흔히 있었던 일이었습니다. 주로 세 가지 유형으로 존재했습니다. 1) 유대적인 전통(레11:1-47)도 있었습니다. 정한 음식과 부정한 음식에 대한 율법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입니다. 2) 생명있는 것을 꺼린다는 당시의 통념에 사로잡힌 자들도 있었습니다. 물론 고대에는 식물도 생명을 가진 존재라는 개념이 아직 발전되지 않았습니다. 3) 또한 금욕생활을 하려는 열정에서 음식을 절제하는 자도 있었습니다. 이런 시대적인 세 가지 경향들에 대해서 그리스도인으로서 동조하는 자도 있었고, 그렇지 않는 자들도 있었던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라고 했는데 여기서 믿음이 있다는 것은 그 반대말인 믿음이 연약한 자(아스데논)라는 말에 의해 결정되었습니다. 즉 믿음이 있다는 것은 믿음이 연약한 자와는 달리 거리낌없이 모든 것을 먹을 수 있는 확고한 믿음을 가졌다는 뜻입니다. 바울 역시 믿는 자는 모든 것을 먹을 수 있는 자유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의견을 같이 합니다. 딤전4:3-5/혼인을 금하고 어떤 음식물은 먹지 말라고 할 터이나 음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4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5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울의 기본입장이었습니다. 한편 믿음이 연약한 사람은 음식물을 채소로 제한했습니다. 여기서 채소를 먹느니라는 말은 헬라어로 육식과 정반대되는 채소만 먹는 채식주의자들을 의미합니다. 그들이 음식물에 대해 이같은 태도를 취한 데에는 의도적으로 부정한 음식을 피한다는 종교적 이유(레11장)도 있었고, 고기를 먹지 않으면 보다 건강하게 된다는 건강상의 이유도 있었고, 또한 살아 있는 것을 먹기를 꺼려하는 의식적인 이유 등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연약한 자들의 이같은 자기 제한(먹거나 안 먹거나 하는 문제)에 대해 어떤 판단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개인이 가지고 있는 신앙의 분량에 관계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12:3).
3. 3절에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않는 자는 먹는 자를 비판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그를 받으셨음이라/고 했습니다.
1)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믿음이 강한 자와 약한 자가 범하기 쉬운 두 가지 위험한 태도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먼저 믿음이 강한 자는 약한 자에 대해서 업신여기지 말아야 할 것을 명령합니다. 그리고 믿음이 강한 자가 연약한 자의 소심한 태도를 멸시하는 눈초리로 대한다면 그리스도의 공동체에서 아름다운 성도의 교제가 단절되고 말 것입니다.
2) 먹지 않는 자는 먹는 자를 비판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믿음이 연약한 자는 믿음이 강한 자를 비판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믿음이 연약한 자가 믿음이 강한 자를 대하는 태도는 정죄(카타크리시스)라는 단어보다는 비판(크리네인)이란 단어를 쓴 것은 주로 믿음이 약한 자들이 믿음이 강한 자들의 행위를 비판함으로 반응했기 때문입니다. 고기를 먹지 못하고 채소만 먹는 연약한 자들은 모든 음식을 무엇이든지 먹을 수 있는 자유를 가진 믿음이 강한 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함으로 그들을 성급하게 비판하였습니다.
3) 이는 하나님이 그를 받으셨음이니라 고 했습니다.
먹는 자나 먹지 않는 자가 서로 업신여기거나 비판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설명합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를 받으셨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이 강한 자든 연약한 자든 구별치 않고 양쪽 모두 자신과의 긴밀한 교제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용납(容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믿음이 강한 자와 연약한 자 사이에 서로 멸시하고 비판하는 일이 계속된다면 그것은 아무 조건 없이 그들 모두를 용납하셨던 하나님을 배척하게 되는 것이라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4. 4절에 남의 하인을 비판하는 너는 누구냐 그가 서 있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자기 주인에게 있으매 그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그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라/고 했습니다.
1) 남의 하인을 판단하는 너는 누구냐? 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3절에서 말씀했던 사실을 논증하기 위해 하인과 주인과의 관계를 설명합니다. 이 반문의 형식은 믿음이 강한 자나 약한 자, 즉 먹는 자와 먹지 못하는 자를 엄히 질책(質責)하고 있는 것입니다. 집 주인을 제쳐 두고 서로 멸시하거나 비판하는 하인이 있다면 그같은 행동은 주인의 영역을 월권(越權)하는 행동입니다. 하인들의 행위는 오직 주인만이 판단할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인들의 행위는 주인이 책임 져야 할 부분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하인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둘로스(노예)가 아니라 오이케텐(가사를 돌보는 머슴)입니다.
2) 그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니라 고 했습니다.
바울은 계속해서 종의 행위에 대한 전적인 책임은 그를 세운 주인에게 달려 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주(퀴리오스)는 일반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진정한 의미에서 집주인이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자신의 집에 있는 하인들을 다스릴 권능이 있습니다. 이처럼 믿음이 강한 자나 약한 자에게 있어서 멸시하고 비판하는 행위는 그를 세워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권능을 판단하는 일이 되기 때문에 바울은 서로를 멸시하고 비판하는 일을 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5. 5절에 어떤 사람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으로 확정할지니라/고 했습니다.
5절에서는 날에 대한 사람들의 일반적인 인식을 다루고 있습니다. 모든 민족과 사회가 길일(吉日)과 흉일(凶日)을 구분하여 날들에 중요한 의미를 두고 있기 때문에 복음이 전하여졌을 때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분명히 있었기 때문이 이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1) 어떤 사람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라고 했습니다.
본 구절은 사람들이 날에 대해 일반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성향을 말하고 있는데, 어떤 날들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여 다른 날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말합니다.
2)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라고 했습니다.
모든 날을 같게 여긴다는 것은 모든 날들이 똑같이 하나님을 섬기는 데 사용되어야 할 것으로 여긴다는 뜻입니다. 이에 대해서 사도 바울의 가르침대로 따른 자도 있었지만, 종교적 양심으로 인하여 따르지 못하는 자들도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3) 그래서 각각 자기 마음으로 확정할지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날을 중히 여기는 자나 그렇지 않는 자 모두가 다른 사람이나 종교적인 규례로부터 영향을 받지 말고 각각 자기 마음으로 확정하라고 했습니다. 각각 자기 마음으로 확정하라고 하는 것은 각 사람의 마음속에는 주님이 계시고 성령님이 계시니까 주님께서 주시는 감동으로 결정하라는 뜻입니다. 즉 주님과의 관계가 우선되어야지 다른 사람과의 결단이 주님과의 관계보다 우선되거나 중요하게 여겨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6. 6절에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문장에는 반복되는 단어가 나옵니다. 주를 위하여 라는 단어와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고 단어입니다. 일종의 강조용법으로 어떤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겨야 한다는 뜻이며, 또한 어떤 음식을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처럼 어떤 음식을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된다는 뜻으로 성도의 삶의 목적은 오직 주를 위하여 이며, 또한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전10:31/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는 말씀처럼 주님을 믿는 성도들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된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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