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화성&행궁[水原華城行宮]
史跡 제3호. 수원성곽(水原城郭)이라고도 한다.
아내와 나들이로 이곳을 찾은것은 지난주 이다.
수원갈비가 유명하다고 해서 겸사겸사 찾아갔는데 그래도 역사의 흔적은 찾아보아야 해서
우선 이곳 화성부터 천천히 둘러보기로 했다.
수원화성은 1789년 정조가 아버지 장헌세자(思悼世子)의 능을 양주배봉산 에서
수원의 화산 으로 옮기면서 축조하기 시작했다는 기록이 있다.
1794년 2월부터 축조가 시작되어 1796년 9월에 완공되었으며 둘레는 5,520m이다.
실학의 영향으로 거중기(擧重器)·활차(滑車) 등 근대적인 기기(器機)를 축성공사에
사용했다는 점이 특기할만 하다.
종래의 전통적인 축성방법을 기본으로 하고 한국 성곽이 갖는 약점을 중국이나
일본의 축성술로 보완한 화성은 그때까지의 축성기법을 가장 잘 집약시켰다는 점에서
한국 성곽발달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1935년 일본이 '수원성곽'으로 문화재 지정을 했으나, 1996년에 '역사 바로세우기
사업'의 하나로 일제가 지정한 문화재에 대한 재평가작업을 하면서
'화성'으로 명칭을 환원 했다.
수원화성은 서쪽으로는 팔달산을 끼고 동쪽으로는 낮은 구릉의 평지를 따라 쌓은 평산성 이다.
정조는 그의 아버지 장헌세자(사도세자)에 대한 효심에서 화성으로 수도를 옮길 계획을 세우고,
1794에 성을 쌓기 시작하여 2년 뒤인 1796년에 완성하였다.
실학자인 유형원과 정약용이 성을 설계하고, 거중기 등의 신기재(新機材)를 이용하여 과학적 이고
실용적으로 쌓았다.
성벽은 서쪽의 팔달산 정상에서 길게 이어져 내려와 산세를 살려가며 쌓았는데
크게 타원을 그리면서 도시 중심부를 감싸는 형태를 띠고 있다.
성안의 부속시설물로는 화성행궁, 중포사, 내포사, 사직단,들이 있었으나,
현재에는 행궁의 일부인 낙남헌 만 남아있다.
특히 다른 성곽에서 찾아볼 수 없는 창룡문·장안문·화서문·팔달문의 4대문을 비롯한
각종 방어시설 들과 돌과 벽돌을 섞어서 쌓은 점이 화성의 특징이라 하겠다.
화성은 쌓은 후 약 200여년이 흐르는 동안 성곽과 시설물이 무너지기도 하고
특히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파손되었는데 1975년부터 보수,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효심에서 근본이 되어 당파정치 근절과 왕도정치의 실현 그리고 국방의 요새로
활용하기 위해 쌓은 화성은 과학적 이고 합리적 이며 실용적인 구조를 갖고 있어,
1997년 유네스코 “世界文化遺産” 으로 등록 되었다.
노산 이선승지 以善勝之
엄청더운날씨 때문에 돌아댕기기도 힘든날이였다,
옛날 학교때 한번왔던 기억은 있는데 정확하지는 않다.
정조임금이 야심차게 시행했던 "수원화성" 이곳에서 자신의 생모(혜경궁홍씨)
의 회갑연겸 내외 자기세력을 과시하기위해 거중기를 사용해 2년여의 단시간 에 완성을 시켰던 성곽이다.
조선의 성곽이나 건물들은 자연친화적이다. 자연과 이질감이 없이 잘어울린다는 이야기다.
아내와 둘이서 천천히 둘러보기로 했다.
주차장에서 바로 오르기 시작한곳이 이곳이다.
정조는 반대정파(노론벽파)들을 끌어안으면서도 힘을 과시하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이런대역사를 설계했다.
파란하늘과 전통건축물의 처마가 참 잘어울린다는 생각을 한다.
인증.~!ㅋㅋㅋ
견고하게 보존이 잘된 성곽이라는것을 금방 알수있다.
넓은 잔듸도 잘 가꾸었고,~!
날씨가 더워 땀이 많이 흘러도 볼것은 모두 봐야 하지않겠는가?
성곽따라 걷는것은 무리가 있겠다./ 날씨 때문에... 날씨좋고 하늘높은날 다시와서 천천히 걸어봐야겠다.
성곽안내판
소나무도 아름답고 건축물도 아름답다.
아내의 차량도 저곳 주차장에 파킹을 해 놓았다.
이 더운날 잔듸밭을 매는 여인들이 힘들어 보인다.
망원경도 설치가 되어있다 그런데 날씨는 더워도 시정거리는 좋아서 궂이 망원경까지야.~!
담넘어로 들여다 보았다.ㅋㅋㅋ
날씨가 더워서 인지 관람객이 그리 많치가 않다.
성곽길도 잘 정비가 되어있다.
계속이어지는 성곽길이 아름답다.
문외한인 필자가 보아도 튼튼한 성곽인듯 싶다.
방향을 돌려 보아도 멋있고 아름답다.
성곽길을 천천히 걸으면서 정조의 야심이 보이는듯 하다.
이제 우리몫은 보존이다.
더운날도 잔듸밭을 매는걸 보면 이곳 관리에 신경을 많이 쓰는듯 했다.
소나무는 그리크지 않아도 아름다운 자태가 있다.
안타까운것은 소나무재선충 때문에 나무줄기에 예방주사를 맞은 흔적이 안쓰럽다.
이렇게 생긴 차량이 있다.
머리는 용을 닮았고 객석은 옛날 왕이 타던 연(輦)을 본따 만들었다고 한다.
덥기도 하고 요금도 저렴해서 우리는이 용연열차(龍輦列車)를 타기로 했다.
화홍문
수문을 만들어 수로(水路)를 확보했다.
장안문
경기도 수원(水原)을 둘러싼 사대 누문(四大樓門) 가운데 북쪽에 있는 문.
장안문의 옆모습이다.
장안문 용연열차(龍輦列車)를 타고 가면서 촬영해서 화질이 좋치가 않다.
계속 이어지는 성곽,,,
크기가 각기 다른돌을 어떻게 저리 질서있게 쌓았을까?
성곽의 웅장함에 매료되었다.
성루에 뚫린 구멍이 대포(大砲)를 배치했던 곳이라는데 굉장하지 않은가.?
수원화성을 한바퀴 도는데 꽤 시간이 걸렸다.
좌익문(左翊門)
신풍루를 지나면서 일직선이 되는 위치에 두 개의 문이 나온다.
중문은 좌익문, 두 번째는 중양문(重陽門)이다.
이 두문의 주변은 모두 행랑으로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신풍루 앞에서 행궁의 정당인 봉수당 사이에는 네 개의 네모난 마당이 연속해
만들어져 있다.
좌익문부터 봉수당 까지는 임금이 출입하는 길(御道)가 연결되어 있다.
화성행궁의 느티나무
화성행궁의 느티나무는 600년 이상된 노거수로 화성 성역 이전부터
수원을 지켜온 신령스런 나무이다.
영목,신목,(靈木,神木,)이라 불려왔으며 옛날부터 잎이나 가지를
꺽으면 목신의 노여움을 사서 어려움이 닥친다고 하였다.
또한 소원지에 소원을 적어 걸면 소원이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있다.
높이30m 둘레6m 에 이르며 1982년 경기도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화재로 인해 훼손되어 수원시는 2003년 5월 대대적인
나무살리기 작업을 하여서 현재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신기하게도 죽은나무에서 새 가지가 나왔다.
한 200백여년전에 내가 여기와서 잔치를 했던 기억이 히미하게나마...ㅋㅋㅋ
장금 아~! 내가 왔느니라..~!
너히 둘은 특히 사이좋게 지내야 하느니라 알겠느냐,?
봉수당(奉壽堂)
봉수당은 화성행궁의 정전(正殿)이다.
이 건물은 축성이 시작되기 전 현릉원 전배때 정조가 머물던 곳이다.
평상시에는 수원유수부의 동헌으로 유수가 집무 하던곳 이다.
정면9칸의 대형건물이지만 월대는 궁궐건물 전각보다 낮고 지붕 귀마루에 잡상을 올려놓음으로서 궁궐건물임을 알려주고 있다.
노래당(老來堂)
정조임금이 노후에 왕위에서 물러난후 거처로 삼으려고 지은 집이다.
노래자(老萊子) 는 주나라 사람으로서 나이 70에도 색동옷을 입고
재롱을 떨며 어머니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린 효자로 알려졌다.
정조도 어머니 홍씨를 위한 효심에서 지은 당호가 아닌가 한다.
장남헌(壯南軒)
노래당에 붙여지은 전각으로 일제 강점기에 화성이 철거될 당시
훼손당하지 않고 남아있던 건물중 하나이다.
봉수당
혜경궁홍씨 회갑연(진찬) 모습을 재현한 모습이다.
사도세자의 빈 홍씨
정조의 어머니 홍씨의 회갑을 맞아 수원까지 임금이 어머니를 모시고 행차하여서
회갑연을 베풀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 모습을 재현해 놓은 인형이다.
아들이 정조가 어머니 에게 예를 올리는 모습이다.
정조는 지극한 효자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