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 오봉산(五峰山)이란 이름은 참 많다.
가까운 양산에도 있고,경주,진주,보성,완주,춘천 등 봉우리 다섯 개만 있으면 어김없이 오봉산이란 이름을 얻고 있다.
5라는 숫자는 셈을 익힐 때부터 한 손으로 셀 수 있었으니 우리 인간에게 유달리 친숙한 숫자임에 틀림없다.
함양 오봉산(879m)도 다섯 봉우리가 하늘을 향하여 솟아 있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남원시 인월면 쪽에서 바라보면 오봉산이 확실하지만 함양에서 바라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봉우리는 모두 숨어 버렸고,다만 산꼭대기에 허옇게 서리가 덮혀 있어 서리산 혹은 상산(霜山)이라 부른다.
함양 시내를 내려다보고 선 천령산의 ‘천령(天嶺)’은 포항 내연산의 그것처럼 하늘고개란 뜻으로 함양의 옛이름.
오봉산은 옛날 산정에서 기우제를 지냈을 만큼 함양 주민들이 신령스럽게 여기기도 했고, 고려 우왕 6년에는 태조 이성계가 이 산 큰골에서
왜구를 물리쳤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그래서 오봉산 서봉 남릉에 나 있는 암릉을 ‘태조(太祖)릿지’라 이름지었다.
태조릿지는 클라이머들의 영역이지만 릿지(ridge) 전 구간 우회로가 나 있다.
우리는 산의 진면목을 느끼기 위해 암릉 우회로를 이용,세미클라이밍((semi-climbing)으로 올랐다.
암봉에 올라 다음 봉우리를 바라보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정상 남쪽에서 산허리까지 치마바위를 입은 것처럼 거대한 암봉이 기다리고 있고,돌아보면 한 점 막힘없이 뚫린 공간으로 삼봉산 하늘금이
가을하늘에 시리도록 눈부시다.
들머리에서 5분여 올라 사방댐에서 기록을 시작하였다.따라서 거리와 시간,시작점의 고도는 차이가 날 수밖에...
대형 버스를 돌릴 수 있는 주차장과 안내도,그리고 화장실도 마련되어 있다.
과수원에 서있는 "가재골농원" 노란 입간판과 화장실 건너로 보이는 가재골농원 건물
안내판엔 팔령과 가재골,그리고 뇌산과 삼휴동마을이 나와 있다.
진입로는 화장실을 지나...
가재골농원 앞길 임도로 이어진다.
빨간 사과가 주렁주렁 열린 과수원길.
사방댐을 지나자 일부 회원들이 우측으로 꺾어 올라간다. 그 길은 헬기장이 있는 능선으로 붙는 길.
포장임도가 끝나면 다시 비포장 임도를 이어가...
뒤돌아 본 모습.
비포장 임도로 고도를 높혀간다.
오봉산정상 1.1km 이정표를 지나자...
녹슨 안내판이 놓여있는 주요지점을 만난다. 직진은 암릉으로 오르지 않고 바로 주능 고개로 오르는 길.
우리는 좌측 '태조릿지'방향으로 꺾어 들어간다. 동그라미 쳐진 바위에...
'태조릿지' 방향으로 화살표가 그려져 있다.
안내판이 있는 지점의 이정표. 나는 탄력적 산행을 위하여 여기서 교통정리를 한 후...
태조릿지 방향의 위험 경고판을 넘어 암벽 하단부를 따라 거슬러 오른다.
암벽 하단부엔...
바위꾼들의 "신루트" 글자가 새겨져 있지만 나는 어디서부터 길을 잘못 들었는지 감을 잡지 못한 채 앞서간 일행들을 따라가고 있었다.
길은 자꾸만 험한 암벽을 따르기만 하여 그제사 트랙을 확인해보니 기존 등로 벗어난 우측 계곡으로 가고 있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좌측 너덜을 거슬러 능선으로 30여 미터 이동하여...
안전 밧줄이 달린 기존 등로에 접근을 하였다.
등로인 능선에서 바라보니 암벽 밑둥을 따라 올라온 길이 보인다.
마치 북한산 인수봉을 닮은 듯...
우측으로 암벽의 위압감은 계속된다.
암벽(태조릿지) 너머로 뾰족한 문필봉과 그 뒤로 괘관산인 듯하고...
그 산세는 더욱 더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트랙을 더듬어보니 기존등로에서 이탈한 부분이 확연하다.
첫봉에선 이정표를 만나고...
암벽 밑둥을 따라 험한 길을 헤치고 오르면 이 작은 안부에 닿는 모양.
우로 뻗어내리는 능선상에 옥녀봉이 우뚝하고...
살짝 당겨보니 중간쯤의 도드라진 바위는 태조릿지 전망을 할 수 있는 전망바위.
돌아보니 몇 해 전 지리제1관문인 오도재에서 이어 탄 삼봉산의 하늘금이 장쾌하다. 지리산은 삼봉산에 가려 보이지 않고...
.
살짝 눈길을 돌리면 멀리 지리산 바래봉이 가늠된다.
남향으로 드러누운 암벽은 전혀 미끄럽지가 않아...
어려움은 없다.
암벽을 올라...
다시 주위를 조망하는 산맛은 타(他)산의 추종(追從)을 불허(不許)하고...
워매~~단풍 들겄네~~
좁은 바위 틈새를 비집고...
괴송이 버티고 선 턱바위에 올라서...
다시 제법 고난도의 밧줄을 잡는다.
그리고 다시 내려다 보는 아름다운 산야(山野).
하늘에 닿는 천령문(?)을 지나면...
다시금 터지는 하늘끝 오봉산의 자태.
살짝 당겨본 오봉산 고스락.
기암과 괴석이 형형색색으로 사열하고 있는 모습.
아직도 우리의 암벽타기는 끝나지 않았다.
하강.
닮은 바위.
다시 밧줄을 움켜지고...
위험 경고판 휀스를 넘자 주능선에 오른다.
오봉산 고스락은 이제 우리와 눈을 맞춘다.
정상 20m 앞의 이정표에...
지명을 명시해야되지 하산길이란 막연한 이정표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
연비지맥으로 이어지는 능선에서 'Y'능선 좌측에 솟구친 봉은 연비지맥의 최고봉인 연비산이고,우측에 쫏삣 붓대처럼 솟은 봉은 문필봉.
뒤로는 좌에서 우로 월경산과 백운산 괘관산,그리고 더 멀리 거창의 산군들도 고개를 빼꼼이 내민다.
사방 막힘없이 솟구친 오봉산은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하늘기둥인 천주(天柱)에 가깝다.
서리가 내린다고 서리산,혹은 서리 상(霜)자를 쓰서 상산이라고 불린다. 남원쪽에선 다섯 봉우리가 선명해 오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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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녀봉으로 뻗어 내리는 가야할 능선
연비지맥의 갈림길(웅곡 1.4km) 이정표
등로상의 군데군데 조망처.
아까 녹슨 안내판이 있는 지점인 가재골로 내려서는 갈림길.
갈림길 이정표
웅곡갈림길
헬기장인 듯 제법 넓은 봉우리에서 우측으로 10여 미터 벗어나면...
멋진 조망처가 나타나며 오봉의 윤곽이 드러나고,태조릿지는 그 위용이 대단하다.
반대쪽으로 눈을 돌려 보아도 역시 조망처가 조망된다.
맞은편 좌측부터 삼봉산과 투구봉이,서룡산은 머리에 가렸다.
다시 가재골 갈림길. 옥녀봉과 오봉산의 거리는 3km가 조금 넘는다.
제법 가파른 옥녀봉 오름길을 숨가쁘게 오르면...
전망이 트이지만 정상은 조금 더 가야 하고...
돌아보면 오봉산은 저만치 멀어져 있다.
좌측으로 비켜서 옥녀봉 삼각점을 먼저 밟은 후...
정상석이 있는 옥녀봉에 닿을 수 있다. 나무가지 사이로 멀리 지리산의 하늘금이 윤곽을 드러낸다.
앙증스런 정상석 앞에서...
번갈아 인증을 하고 뒤따라오는 후미대장을 또 기다린다.
옥녀봉 안내판엔 뜬금없는 고추봉이라 적혀있다.
남자를 상징하는 고추와 여자를 상징하는 옥녀를 주인공으로 꾸민 스토리텔링과 지명에 관한 이야기가 적혀있다.
옥녀봉의 이정표
천령봉으로 향하는 길은 이제와는 달리 조금 어수선한 편. 가는 길엔 밤나무와 떨어진 밤송이가 널려 있다.
작은 안부에선 뇌산마을 가는 갈림길이 있고...
금방 천령봉에 오르고 여기서도 뇌산가는 길이 열려 있다.
천령봉엔...
안내판과...
이정표(뇌산 1km,죽곡 1.5km,삼휴 1.05km)가 있고...
함양군민의 '물레방아 축제'시 성화를 채화하는 채화대도 있다.
채화대 뒤에도 작은 정상석이 있지만 천령봉 정상석 뒤로 함양읍내가 훤히 내려다 보이고,삼휴마을로 내려가는 산길은 정상석 뒤로 내려선다.
쭉쯕빵빵 하늘을 향하여 뻗어오른 수림을 지나...
임도에 내려선다.
임도의 이정표
임도를 따라 내려가는 길은 담양의 대숲처럼 굵은 대나무 숲이 우거져 있다.
민가를 지나...
주차장에 닿는다.
주차장 한켠엔 마을 공동 빨래터가 있다. 물은 식수로 써도 부족함이 없다.
산행후 여기에서 씻어야만 하는 유일한 곳이지만 주민들이 보는 데서 훌러덩 벗고 씻는 무례는 하지 말아야 하겠다.
고목나무 아래에 예전엔 너럭바위가 있었지만 도로가 나면서 묻혀버리고...
마을 앞에 넓은 반석의 대가 있는데 그 이름을 이두대(里杜臺)라 부르며, 여기에서 삼장군이 휴식을 취했다고 해 삼수대 또는 삼휴동이라 불린다.
삼휴대(三休坮)란 각자만이 그자리를 지키고 있다.
일행 두 분이 앉아 있는 앞에 또 다른 각자가 새겨져 있어 살펴 보지만 희미한 이두대(里杜臺)란 글자외에 식별이 안된다.
두 분이 손가락으로 조목조목 짚어보며 읽어보지만...
그리고 조금 아래에 최근 새로 지어진 정자로 내려가 본다.
삼휴정 편액은 함양인 오화수(吳和銖)가 썼다.
함양의 북서쪽에 자리한 천령봉 기슭, 함양읍 삼삼리에는 삼수대(三樹臺, 三休洞)마을이 있다.
이 마을은 고려시대에 함양 박씨, 함양 여씨, 함양 오씨 3성 시조인 박선(朴善), 여림청(呂林淸) 오광휘(吳光輝) 등 삼장군은 서로 동서지간으로 삼동서가
이곳에 모여 쉬면서 시국을 논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천령(함양)에 물러온지 그 몇 해였던가
삼인이 동서되어 한 언덕에 은둔했네
그 은둔한 곳 그 삶을 누가 기록했으리요
지금도 그 동리 이름 삼휴(삼휴동)라 부른다네
-덕계 오건(德溪 吳健)-
-단풍나무 -
단풍나무, 붉게 물들고 있었지요
이렇게 사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아니었다
부끄러운 날들 이어지더니
가을이 오고 말았지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던 나는
산에 올라 못되게도
단풍나무에게 다 뱉어내
버렸지요 내 부끄러운 마음
내려오다 뒤돌아보니
아, 단풍나무,
고만, 온몸이
붉게 물들기 시작하데요
내 낯빛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뻔뻔해질수록
가을산마다, 단풍나무
붉게붉게 물들고 있었지요
<김 현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