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 가족과 함께 다녀온 벌교 태백산맥 문학관. 1층 전시관 입구에 설치된 소설 <태백산맥> 1권~10권 상징 조형물, <태백산맥>이 나오기 까지의 과정들이 기록된 전시물. 그리고 사람 키를 훌쩍 넘긴 조정래 작가의 육필 원고.
조정래 작가는 손수 원고지에 정성을 들여 작품 활동을 한다고 한다. 일흔을 넘긴 지금도 매일 규칙적으로 원고지 30장 분량을 손으로 직접 쓰신다고 한다. 손으로 직접 쓰는 이유는 영혼이 담긴 작품을 쓰기 위함이라고 한다.
요즘 젊은 작가들이 1인층 소설을 즐겨 쓰며 힘들이지 않고 작품 활동을 하는 모습을 보며 따끔한 일침을 놓는다. 소설은 시대의 나침반이 되어야 하기에 뼈를 깎는 고통으로 작품 활동을 해야 하며 역사성과 사실성을 위해 직접 취재하는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충고 아닌 조언을 한다.
<조정래의 시선>에는 그의 인생관을 비롯하여 우리 민족이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고 있다.
"그건 다름 아닌 우리 역사의 처절한 아픔과 슬픔에 대해서써야 한다는 자각이었습니다. 우리는 5천 년 역사를 통해서 크고 작은 외침을 천여 번, 정확하게 931번을 당했습니다. 그러다 끝내는 나라를 빼앗겼고, 그 연장선에서 민족이 분단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23)
"이 소설은 단순히 한국전쟁에 대한 이야기만이 아니다. 한국 민족을 이해할 수 있는 총체적 백과사전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세계 강대국들이 약소국들을 어떻게 억압하고 착취하고 괴롭혔는가까지 보여주고 있다." (25)
"신자유주의 참패는 제조업 없이는 경제 신장은 있을 수 없다는 고전경제학의 교훈을 다시금 확인한 21세기 초입의 거대한 사건이었지요. 미국이 몰락할 지경의 날벼락을 맞고 오바마는 응급처방으로 중국에 진출해 있던 미국의 제조업체들을 다시 불러들이기 시작했지요."(45)
"우리 인규가 처한 두 가지 중대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는 지구온난화로 일컬어지는 환경 파괴이고, 다른 하나는 독주하는 자본주의의 비인간화입니다. 두 가지 다 인간 생존과 직결되어 있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저는 끈 하나, 종이 한 쪽, 봉투 하나도 꼭 재활용을 합니다. " (46)
"해방을 맞은 상황 속에서 아주 중대한 정치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게 무엇인고 하니, 해방 직전 이미 일본의 패망이 예견되고 있었을 때. 해방 조국 건설을 준비하던 세 세력이 있었습니다. 국내에 박헌영과 여윤형이, 해외에는 김구가 있었지요. 이 세 세력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서 전혀 상의할 수가 없었는데도 모두 똑같은 '건국 강령'을 만들었습니다. 앞으로 새 국가를 세우가 되면 어떤 문제를 우선시할 것인가를 담고 있었는데, 그 첫 번째가 친일파 척결이었고, 두 번째가 토지개혁이었습니다. 무상몰수 무상분배. 그때의 민심이 그 두 가지 문제가 실현되기를 강력하게 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63)
"동북항일연군은 중국공산당과 한국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들이 함께 연합전선을 펴 만주 일대를 장악하고 일제에 맞서 수천 번의 전투를 벌인 군사 조직입니다. 그 역사적 공적 때문에 중국은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운 다음 55개 소수민족 중에서 최초로 우리 민족의 거주 중심지인 연길에 '조선족자치족'을 세우게 해 주었고, 대학도 TV 방송국도 최초로 설립해 주었습니다."(73)
"시대가 분명하고, 무대가 확실한 소설일 때는 단순한 상상만으로는 소설이 되지 않습니다. 소설은 상상의 소산이되 시대와 무대가 명확하면 거기에 맞는 사실과 진실을 확보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것을 구분하지 못하면 허황된 이야기를 황당하게 지껄이다가 독자들에게 외면당하는 쓰레기 더미를 생산할 수밖에 없습니다." (110)
" <정글만리>의 취재 분량이라. 20여 년 동안에 중국을 오간 것은 아까 말했고, 그 취재수첩들이 21권, 지난 6~7년 동안에 신문이나 잡지에 보도된 중국 관련 기사 스크랩이 취재수첩으로 90권, 중국 통사를 비롯해서 중국 경제를 다룬 저서들이 80여 권, 그것들을 다 섭렵한 다음에 포스트잇을 붙여가며 다시 읽은 책들이 20여 권, 그 자료들을 종류별로 분류, 정리한 대학노트가 2권, 구성노트 인물노트 줄거리노트 각 1권씩, 그렇게 해서 준비가 완료되었다고 확인이 될 때 마침내 글쓰기에 돌입합니다. " (111)
"일찍이 릴케가 시인이 되고자 하는 젊은이에게 보낸 편지가 있습니다. '끝없이 여행하고 체험하라. 그리고 온갖 사실들을 다 잊어버려라. 그러나 그것들이 필요할 때 그것을 생생하게 되살려낼 수 있어야 한다.' 그 재생 능력이 없으면 글 쓰는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이지요. 그 '끝없이 여행하는 것', 그것들이 가르쳐주고, 일깨워주는 것들은 교과서에 전혀 없는 것들이죠. 그래서 교과서의 것들을 달달 잘 외우는 학교의 우등생들은 예술가가 되기 어렵고, 글 잘 쓰기 어렵다는 말이 나온 것인지도 모릅니다." (125)
"<태백산맥> 연재 이후 30년 동안 술을 마시지 않았다. 청탁불문 두주불사, 밤새 마시던 젊은 시절의 술버릇을 깨끗하게 청산했다. 집필 중에는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는 것인데, 사람 좋아하고 놀기 좋아하는 기질의 남도의 예인에게 그 점은 아마도 적지 않은 고통이었으리라. 그가 <태백산맥>을 쓰느라 아버지의 임종도 지키지 못했던 것은 유명한 일화다. <아리랑> 집필 때는 오른팔과 손가락 끝까지 완전히 마비돼 침을 맞아가며 썼고, <한강>을 끝내고 대수술을 해야 했던 이유는 너무 오래 앉아 있어서 탈장이 생겼기 때문이다." (153)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 25~20매를 집중해서 쓴다. 아침 6시에 일어나 운동과 식사를 한 뒤 9시에 일어나 운동과 식사를 한 뒤 9시에 서재로 출근한다. 새벽 두세 시까지 죽을 힘을 다해 쓴다. 20년 동안 세상과 절연하고 대하소설 세 편을 썼다. 그때 술을 끊었다. 술을 마시면 이틀 뒤까지 꼬박 사흘을 숙취로 날려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되면 원고 100매가 사라진다. 그렇게 열심히 썼더니 오른팔 전체 마비, 위궤양, 탈장 등 온갖 직업병이 다 찾아왔다." (212)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자신의 속도로 해나가기 위해선 독서를 권한다.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고, 여행은 서서 하는 독서다." (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