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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oLan(The Chinese zodiac, explained)총해설(2017년 가을).hwp
글씨들이 정렬되게 정리되는 방법을 아는 학생은 좀 가르쳐 주기 바랍니다.
작품 설명이 너무 길어서, 가사에 대한 해설은 건너 뜁니다^^
(이번 학기 고호와 그의 작품에 빠져 보는 게 어떨까요?)
. The Starry Night(1889) 미 Museum of Modern Art에 소장
고호의 자전적 작품: 기성 교회들의 어둠과 위선을 넘어 자연 가운데서 하느님을 만난다는 그의 영적 순례의 승리를 그림, 삶을 경축함과 동시에 임박한 죽음 가운데 내재한 소망, 곧 그가 해방을 얻고 하느님과 합일을
이룰 것임을 보며준다. 반 고호의 작품 가운데 가장 신비스럽고 환상적인 그림이다.
Vincent (song)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Redirected from Starry Starry Night (Song))
"Vincent" is a song by Don McLean written as a tribute to Vincent van Gogh. It is also known by
its opening line, "Starry Starry Night", a reference to Van Gogh's painting The Starry Night.
The song also describes different paintings done by the artist. It was created on the 100th anniversary
of the midpoint of Van Gogh's life.
McLean wrote the lyrics in 1971 after reading a book about the life of the artist. The following year, the song became the number one hit in the UK Singles Chart and No. 12 in the US. Coincidentally, it spent 12 weeks on the Hot 100. In the US, "Vincent" also peaked at number two on the Easy Listening chart. Billboard
ranked it as the No. 94 song for 1972.
The song makes use of the accordion, vibraphone, strings, and guitar.
In 2000, PBS aired Don McLean: Starry, Starry Night, a concert special that was filmed in Austin, Tex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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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Lean said the following about the genesis of the song:
“In the autumn of 1970 I had a job singing in the school system, playing my guitar in classrooms. I was sitting on the veranda one morning, reading a biography of Van Gogh, and suddenly I knew I had to write a song
arguing that he wasn’t crazy. He had an illness and so did his brother Theo. This makes it different, in my
mind, to the garden variety of 'crazy’ – because he was rejected by a woman [as was commonly thought].
So I sat down with a print of Starry Night and wrote the lyrics out on a paper bag.”
Vincent (Starry Starry Night)
. Vincent van Gogh(1853-1890)
7월 27일 37에 밀밭(Wheat Field with Crows, 1890), 그림 그렸던 언덕에서 권총으로 자살,
. Post-Impression 후기 인상파
. redirected ~을 고쳐 향하게 하다, 새 방향으로 돌리다, 재설정하다
. tribute [tríbjuːt](감사, 존경, 칭찬 따위의 표시로서의) 선물, 찬사(to), 공물, 조공 ① 감사의 표시 ② 기리다
③ 찬사 ④ 조공
. a reference to cf. a cross-reference to ~에의 상호 참조
. its opening line: the first line of a piece of writing
. on the 100th anniversary of the midpoint of 중점, 중앙 점에
. coincidentally [kouìnsidéntli] ① (우연히)일치하여 accidentlty ② 동시적으로
. make use of = utilize 활용하다
. vibraphone[váibrəfòun]비브라폰: vibraharp의 유럽에서의 호칭; 남미·아프리카의 실로폰 형태인
악기 마림바 (marimba)에 나무 대신 금속판과 전자공명 장치를 갖춘 악기
. strings 현악기들
. air 방송을 내 보내다
. genesis[dʒénəsis] 생성, 창세기, 제네시스, 발생, 유래
. system 여기서는 curriculm(교과과정)
. biography 자서전 bio: life or living things
. suddenly = all of a sudden
. so did his brother Theo = His brothe Theo had an illness, too.
cf. He studied English last night. So did I.
He is a professor. So am I.
He can swim. So can I.
He will be a professor. So will I. etc.
. the garden variety of ‘crazy’
1. 정원에서 가꿀 수 있는 보통 종류의 2. (미·비격식) 흔히 있는 3. 보통의
. write out ~을 또박 또박 적다, 정서하다 cf. write down ~을 받아 적다
. Theo: Theodore([θíːədɔ̀ːr]: 고호의 동생
https://www.youtube.com/watch?v=oxHnRfhDmrk (팝송)
https://www.youtube.com/watch?v=tTcrbNNIW1Y(고흐가 죽는 장면)
https://www.youtube.com/watch?v=l3o4lvsNxEA
[doctor who] vincent van gogh - vincent (starry starry night)
. 고호가 동생에게 보낸 편지(1881. 12)
(아래내용: 일부분 편집)
"나는 사랑 없이 살 수 없고, 살지 않을 것이고, 살아서도 안 된다. 나는 열정을 가진 남자에 불과하고, 그래서 여자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얼어 붙든가 돌로 변할 것이다." “어둠이 깊을수록 별은 더욱 빛난다.”
“너 하나만이라도 내 작품 전체를 이해할 수 있다면...”
자살 전 “슬픔은 이후로도 끝나지 않을 것 같다.”
- 1890년 테오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같은 해 7월, 반 고흐는 권총자살을 시도했으며 중상을 입은 채 고통스러워하다 7월 29일 숨을 거두었다. 동생 테오 반 고흐(Theo van Gogh)의 말에 따르면 빈센트는 죽기 직전 "난 왜 잘하는 것 하나 없지? 자신에게 총을 발사하는 것마저도 실패했어."라고 탄식하며 깊은 절망과 자괴감을 표현했다. “고통은 영원하다.”는 한 마디가 최후의 유언이었다.
◎Vincent van Gogh wrote over 700 letters to his brother, Theo, committed suicide at the age
of 37. In just ten years, he worked at a prodigious pace that staggers the imagination, over 900
paintings and 1,100 drawings, not to mention letters.
Vincent van Gogh는 그의 동생, Theo에게 700통 이상의 편지를 썼고, 37세에 자살했다. 단지 10년 만에, 편지들은 말할 것도 없고, 그는 상상을 초월하는 놀라운 속도로, 900점 이상의 그림들과 1,100점의 스케치/데생들을 작업했다.
cf. with fruit of a sort to stagger the imagination 상상하가 어려운 일종의 성과를 거두며
That staggers imagination 상상을 초월하는 군.
stagger[stǽgər]① 깜짝 놀라다 ② 비틀거리다 (의역: 상상을 초월하다)
prodigy[prάdədʒi] 신동, 영재 prodigious[prədídʒəs]①거대한② 막대한 ③ 놀라운
언어에도 능통. 모국어 네덜란드, 영어, 불어, 독일어로 된 신앙서적, 동생에게 소개한 책 300권 넘고, 문학관련 800권을 읽음 독서광. 부친 목사, 할아버지 신학학위, 아저씨 목사, 고호도 목사였으나 도중에 화가. 종 번연의 “천로역정”, 토마스 아캠퍼스“그리스도를 본받아”를 성서 다음으로 사랑하고 읽음.
1889년 5월에 아를을 떠나 스스로 정신병원에 들어 갔으며, 정신병원에서 70일 동안 70여개의 작품을 그렸다. 그의 작품에 40여점이 나오는 여인(시엔)은 5살 난 딸, 아이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또 다시 임신한 상태였으며, 성병 옮아 병원에 입원했을 때, 그 아이 낳았다. 1882년 “슬픔”의 누드 모델(1904년 물에서 자살)“슬픔” 연인
시엔: 고호 자신의 슬픈 자화상이라고도 말한다.
“귀를 자른 후의 자화상 (Self-portrait with Bandaged Ear)”
고흐가 아를에서 처음으로 정신분열을 일으켰던 1888년에 그린 작품이다. '고흐=고통'의 등식을 성립시킨 유명한 그림이기도 하다. 당시 그는 아를에 예술가 마을을 만들 생각으로 친구 고갱을 초대했다. 그해 10월 고갱이 아를로 찾아왔지만 두 사람 사이에 심한 말다툼이 오갔다. 그때 정신발작 증상이 나타난 고흐는 면도칼로 고갱을 위협하더니 결국 자신의 오른쪽 귀를 잘랐다. 고갱 앞에서 직접 귀를 잘랐는지 아니면 다른 곳에서 그랬는지는 문헌마다 제 각각 다르다. 아무튼 고흐는 잘린 귀를 헝겊으로 감싸서 어떤 창녀에게 주면서 "이 오브제를 잘 간직하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일로 고갱은 아를을 떠났고 다시는 고흐를 보지 않았다.
고호의 해바라기 7 시리즈 (맨처음 고갱에게 선물: 첫 그림)
한 점은 일본인(보험인)이 경매에서 구입한 후 공개 안하다 함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
(Vincent van Gogh(1853-1890)의 그림 중 세계에서 20위 안에 팔린 그림들)
(출처: http://cafe.daum.net/kongkm7575) 2017.03.05
(4. Portrait of Dr.. Gachet by Vincent van Gogh - $138.4 million)
<가셰박사의 초상 Portrait of Dr Gachet1660억원
(7. Portrait of Joseph Roulin by Vincent van Gogh - $100.9++ million)
<우체부 조셉 룰랭 Portrait of Joseph Roulin>1210억원++추가 예상
(9. Irises by Vincent van Gogh - $101.2 million)<붓꽃 Irises>1210억원
(11. Portrait de l'artiste sans barbe by Vincent van Gogh - $94.5 million)
<수염이 없는 자화상 Portrait de l'artiste sans barbe>1130억원
(16. A Wheatfield with Cypresses by Vincent van Gogh, 1890 - $85.7 million,1020억원)
◎고흐의 마지막 작품
오베르의 교회(The Church at Auvers, 1890) oil on canvas, Musée d'Orsay, Paris, 94x74cm
고호의 마지막 작품은 죽기 20일 전에 그린 [오베르의 교회]이다. 죽음이 채 한 달도 남지 않았을 때 그린 '오베르의 교회'는 직선이나 모서리가 하나도 없이 표현되어 있다. 반 고흐의 장례행렬이 지나간 이 교회의 앞길은 양 갈래로 갈라져서 교회를 부각시킨다. 오직 뒷모습만을 보이며 걸어가는 여인은 교회의 그림자처럼 외롭고 무겁다. 왼쪽 하늘의 소용돌이는 강렬한 하늘의 힘을 강조하는 듯 하다.
실물을 모델로 하여 추상적 기법으로 그린 그림이다. 문제는 그림 속의 교회에 출입문이 없이 밀폐된 공간으로 그려져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의 작품이 교회의 폐쇄성을 풍자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Wheatfield with Crows (July, 1890)
고흐가 자신의 인생 마지막 시기인 1890년 7월 오베르에서 그린 “까마귀 나는 밀밭”은 그의 가장 유명한 그림 가운데 하나다. 종종 이 그림을 그의 마지막 그림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어둡고 위협적인 하늘과 하늘을 나는 검은 까마귀들, 그리고 막다른 길 등을 고흐가 인생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음을 암시하며 그린 것이라고 해석하곤 한다. 암스테르담에 있는 반 고흐 박물관은 이 그림이 고흐의 마지막 그림이라는 주장은 오랫동안 제기 되어온 상상속의 이야기라며 공식적으로 부인하고 있다. 왜냐하면, 고흐가 이 그림을 그린 후에도 여러 점의 그림을
그렸기 때문이다.
[고흐의 삶의 마지막이 되어버린 곳, "까마귀 나는 밀밭"]
"또 돌아와서 작업에 들어간다. 그러나 손에서 붓이 떨어지려고 한다. 나는 내가 바라고 있는 것을 알고 있지만, 다시 3점의 대작을 완성한다. 그것은 폭풍의 하늘에 휘감긴 밭의 전경을 그린 것으로 나는 충분한 슬픔과 극도의 고독을 표현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제일 친구 고갱과 다음 작품 때문에 화가 나서 오른 쪽 귀를 잘랐다고 한다(1888년)
지누부인의 초상(고갱은 싸구려 술병을 놓고 그림)
고호는 책을 놓고 그림
(출처: cafe.daum.net/playground3050/bWwd/77)
고흐와 고갱이 1888년 프로방스지방의 아를에서 머문다. 이들은 카페 여주인 지누 부인을 모델로 그림을 그린다.
이 그림에 고흐는 “아를의 여인”이고, 고갱은 “아를의 밤의 카페”로 이름을 붙인다. 지누 부인은 나이가 상당히 많아
보이는 매부리 코의 여인으로 미모와는 거리가 먼 얼굴이다.
고갱이 아를의 고흐에게 온지 2주가 지나서 두 화가는 밖에 나가 주로 경치를 그렸는데 그 날 따라 인물의 초상화를
그리기로 했다.그 대상은 반 고흐가 아를에 처음 왔을 때 묵었던 라가르 카페의 주인 지누 부인이었는데 지누 부인은
반 고흐가 이곳에 정착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어 고흐가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었다.
반 고흐는 지누 부인에게 아를 지방의 전통 민속 옷을 입도록 부탁했고 그녀는 손님이 없는 오전시간을 택해 모델서는
것에 응하여 카페의 탁자에 나와 있었다. 이를 보고 있던 반 고흐는 방 안에서 책을 몇 권 들고 와서 한권은 부인의 앞에
펴 놓고 나머지는 그 옆에 놓았다.
이 광경을 바라본 고갱은 이맛살을 찌푸리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고 술집 여주인을 그리는데 왜 그 옆에 책을 그것도
누더기가 된 책들을 갖다 놓는가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에 아랑곳 하지 않고 반 고흐는 부인을 그리기 시작했다.
평상시에는 반 고흐는 책에는 영원과 직결되는 깊은 향수를 느끼게 하는 것이 듬뿍 담겨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기가 좋아하고 고마움을 느끼는 지누 부인을 아무것도 없는 탁자에서 자세를 취하게 하기 보다는 비록 낡은
책이라도 옆에 둔다면 평상시에는 느낄 수 없는 표정을 그녀에게서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고흐는 지누 부인을 45분 만에 완성한 초상화를 그려냈고 그러나 고갱은 그림을 그리지 않고 지누 부인을 스케치 한 후
그 구도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똑같은 모델을 놓고 같은 장소에서 그렸는데 고흐와 고갱의 그림은 완전히 딴판이다.
고갱은 숄의 둥근 곡선과 함께 넓은코, 완만한 눈썹, 턱까지 둥그스름해서 반 고흐의 지누 부인의 뽀족한 턱과 코, 각진
눈썹 등 모든 선이 날카로운 것과는 대조를 이룬다. 또한 고갱은 실존하는 인물을 무시하고 지누 부인의 초상화를 '아를의 밤의 카페'라는 제목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래서 지누 부인이 앉아 있는 탁자 위에는 책이 아니라 술병이 놓여있다. 그것도 싸구려 압생트의 술병과 술잔이다. 그녀는 카페 탁자 위에 앉아 손님들을 곁눈으로 보고 있다. 부인의 뒤에는 당구대가 있고 그 뒤 벽을 따라 일렬로 앉아 있는 손님들이 보이는데 이 손님들은 반 고흐가 좋아서 모델로 삼았던 사람들이 등장하고 있다. 고갱은 이 사람들을 그리면서 경멸이 깔려 있는 의도로 그린 듯한 모습이 깔려 있다. 고갱이 베르나르에게 보낸 편지에 의하면 이 그림에 앉아 있는 여인들은 창녀들이라고 했다.
그리하여 지누 부인의 표정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되었고 고갱의 스케치에서 그녀는 다정하면서도 깊은 생각에 잠진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러나 유화로 옮겨진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뜬 채 입술을 좀더 옆으로 당겨 냉소적인 미소를 짓고 있어 마치 뒤에 앉아 있는 여인들의 뚜쟁이처럼 보이기도 한다. 또 창녀들과 같이 술을 마시는 이는 바로 반 고흐가 좋아하는
우체부 조셉 룰랭이다. 반 고흐는 룰랭이 술을 많이 마신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의 해박한 지혜와 풍부한 인간성을 존경하였다. 고갱이 그런 룰랭을 창녀들과 희희낙낙하는 졸부로 둔갑시킨 것은 반 고흐가 다정한 아버지 상으로 이상화한 룰랭의
이미지를 깍아 내린 것이다. 그리고 술에 취해 옆 탁자에 쓰러져 있는 사람은 반 고흐의 친구이자 가끔 같이 그림을 그리곤 했던 프랑스 군인 밀리에이다. 사실 룰랭이 창녀들과 술을 마시거나 밀리에가 술에 취해 스러져 있던 적은 한번도 없었다.
고갱은 이 카페안의 사람들을 모두 타락한 인물로 묘사하면서 반 고흐가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을 모독하는 것으로 무시무시한 인간의 욕망을 드러냈고 이로써 두 화가의 갈등의 싹이 트기 시작했다.
하지만 고흐는 이런 그림을 그린 고갱의 의도를 눈치를 챘지만 고갱이 이곳에 온지 얼마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애써 이해하고자 했고 '화가공동체'실현이라는 원대한 목표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여간 지누 부인은 이 두 개성 강한 화가들로 인해서 상당히 유명한 여인이 되었다.
고흐의 1890년 작 ‘아를의 여인, 마담 지누’가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소에서 4030만 달러(약 379억 원)에 팔렸다.
고흐 그림의 落札가는 그의 작품 중에서 네 번째로 높은 가격이다.
▲ 고흐, 아를의 여인 지누부인, 1888년11월, 유채, 91.4*73.7cm,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 고갱, 지누부인 아를의 밤의 카페, 1888년 11월, 유채, 73*92cm 모스크바 푸슈킨 미술관
▲ 고흐의 1890년 작 ‘아를의 여인, 마담 지누부인
밤의 카페 테라스(Cafe Terras Arles at Night, 1888)
하루에 1프랑씩 주고 이 카페에서 숙박하며, 3일 밤을 꼬박 새워서 그린 그림이라고 한다.
고호는 이 카페에 드나드는 모든 사람들을 긍정적인 밝은 모습으로 그렸다.
아를의 붉은 포도밭 (Red Vineyards at Arles)
살아 생전 오직 이 작품 한 점만이 400프랑에 팔렸다.
붉은 색이 너무 많아서 싸게 팔렸다 한다.
작품설명(출처: cafe.daum.net/moosimjae/4cJS/2424 )
1888년 2월 빈센트 반 고흐는 파리에서의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프로방스(Provence)를 거쳐 아를(Arles)로 떠났다.
자신을 짓누르던 파리의 안개에서 벗어나 빛을 찾아 남쪽으로 향한 것이다. 아를은 페허가 된 거리에 로마 시대 풍의
유적들이 방치되어 흩어져 있는 론(Rhône) 강 기슭의 잊혀진 작은 마을이었다. 반 고흐가 도착했던 한 겨울의 아를은
도시 전체가 눈으로 덮여 있었지만, 프로방스의 빛과 색채는 그에게 강한 인상을 주었고, 이전에 폴 세잔이나 오귀스트
르누아르 등 다른 많은 화가들이 그랬듯이 반 고흐도 이 지방에 강한 애착을 갖게 되었다. 프로방스의 맑은 하늘 아래
그의 영혼과 예술 사이에 또 다른 교감이 시작되었고, 그곳의 따뜻한 태양
아래에서 내면의 빛을 되찾게 되었다.
반 고흐의 이 작품은 1888년 폴 고갱과 함께 생활했던 아를의 야외에서 그린 작품이다. 반 고흐는 동생 테오(Theo)에게
이 그림에 대해 “비가 내린 뒤 석양이 땅을 보라색으로 바꾸고 포도 잎을 와인처럼 붉게 물들일 때 그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을의 포도밭과 포도 따른 사람들을 보고 영감을 받아 제작했던 이 그림에서 하늘의 초록색 색조는 전체 구도를 지배하는 강렬한 붉은 색조와 대조를 이루고 있다. 전체적인 구성은 오른쪽에서 중앙을 향한 원근법적 구도와, 멀리 보이는 완만한
지평선의 수평 구도가 특징적이다.
색채 표현에 있어서 그는 각각의 모티프에 보색을 사용했는데, 특히 밝은 노란색, 붉은색, 파란색을 과감하게 사용했다.
또한 붉은 포도밭에서 일하고 있는 농부들의 표현이나, 일몰의 강력한 빛의 영향을 보여주는 주황색의 표현이 두드러진다.
이 작품은 특별히 반 고흐가 테오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그려 선물한 것이었다. 테오는 매달 반 고흐에게 생활비와
작업비를 보내줬으며, 그에 대하여 항상 마음의 빚을 가지고 있었던 반 고흐가 이 그림을 선물한 것이다. 실제로 이 작품은 그가 생전에 그린 1500여 점의 유화 중에서 테오가 팔았던 유일한 작품이다. 테오는 이 작품을 1890년에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20인전에 출품했는데, 그 때 반 고흐와 친분을 쌓고 있었던 시인 외젠 보쉬의 누이이자 벨기에 인상주의 여류 화가인 안나 보쉬가 구입했다. 이후 이 작품은 한 러시아 사업가를 통해 러시아 정부가 소유하게 되었으며, 현재는 모스크바의
푸슈킨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활짝핀 아몬드 나무 (Branches of an Almond Tree in Bloom, 1890)
절망에 빠져 있던 고호가 동생 Theo의 2세 출산 소식을 듣고 조카의 방을 장식하기 위해 그린 아몬드 나무...
새로운 생명을 찬양하듯 꿈틀거리는 생명력이 넘쳐 흐른다, 간난 아가의 심동소리가 들리는 듯한 아몬드 나무
농부의 신발 (A Pair of Shoes, 1885) Oil on Canvas, 37.5 X 45 cm
여기에 예시된 고흐의 구두는 비어 있다. 여기에는 어떤 이야기도 없고, 아무도 그 구두를 신고 있지 않다. 구두가 비어 있다.는 사실은 고흐의 외로움과 함께, 다른 이를 향한 감정의 부재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감자먹는 사람들(The Potato Eaters, 1885)
위의 유화와는 달리 스케치로 되어 있는 그림이었는데, 알고 보니 동생 테오에게 스케치를 2점 그려 보낸 후
그 뒤 아틀리에에서 그 기억을 바탕으로 유화를 그렸다고 한다.
"나는 등불 밑에서 감자를 먹고 있는 이 사람들이 접시를 드는 것과 같은 그 손으로 대지를 팠다는 것을 강조하려 했다.
곧 이 그림은 '손과 그 노동'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얼마나 정직하게 스스로의 양식을 구했는가를 이야기하고 있다. …… 나는 귀부인 같은 사람보다도 농민의 딸이 훨씬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먼지투성이고 누덕누덕 기운
자리투성이인 푸른 치마를 입은 농민의 딸이." (출처: cafe.daum.net/susinonsul/63KS/106)
씨뿌리는 사람 The Sower (June, 1888)
밀밭은 실제 색깔과 달리 햇살에 반짝이는 푸르른 바다에 가깝게 그려졌고 태양은 결코 절망해서는 안 된다고
속삭이듯 줄기차게 대지 전체를 어떤 사각지대도 없이 완전하게 비춰주고 있다.
빈센트 반 고흐는 고향 네덜란드와 비슷한 분위기의 프랑스 남부지방 아를(Arles)에 매료되었다. ‘습지의 마을’이라는 뜻을 지닌 이 지역에서 그는 수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쾌청한 날씨와 광활한 평야 위로 작열하는 태양은 그에게 ‘영원함’이었다. 고흐는 이 풍경을 배경으로 씨 뿌리는 사람의 모습을 그리고자 하였다.
작품에서 온화하게 빛나는 아를의 땅은 쟁기질되어 있다. 고흐가 이 주변 풍경을 반복적으로 그렸기 때문에 또 다른 작품인 <쟁기질을 끝낸 밭>에서 동일한 배경을 볼 수 있으나, <씨 뿌리는 사람>에서는 특히 예술가의 길을 걷고자 그림을 선택한 고흐의 인생철학을 엿볼 수 있다. 씨를 뿌리는 행위는 복음주의적 의미를 내포하는데, 이를 통해 고흐가 예술행위를 못 다한 목회자의 길을 표현했다고 해석 가능하다. 고흐에게 있어 그림은 세상을 이롭게 만들기 위해 씨를 뿌리는 행위와 같은 선상에 놓인다.
출처: http://seoul-artist-group.tistory.com/53 [Seoul Artist Group]
울고 있는 노인(Old Man in Sorrow 1890, 4~5)
늙고 가난한 사람들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들을 묘사할 적합한 말을 찾을 수가 없다. 인물화가들과 거리를
산책하다가 한 사람에게 시선을 주고 있는데~ "야 저 지저분한 사람들 좀 봐~ 저런 류의 인간들이란" 하고
말하더구나. 그런 표현을 화가한테서 듣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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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오의 휴식(Noon Rest from Work, 1890)
오전 작업이 고되었던지 농부와 아낙은 볏단이 드리운 그늘 안에서 쪽잠을 청했다. 추수에 쓰였던 낫 2개가, 농부가
벗어둔 신발 두 짝과 나란히 놓여 있다. 넉넉한 금빛 벌판과 농부의 밀짚모자가, 한없이 맑기만 한 푸른 하늘과 농부의
청바지가 색채 면에서 대구를 이룬다. 그러나 자연의 풍요로움과 인간의 고단한 삶은 대조적이다. 온종일 농사일에
매달린 이들은 아마도 소작농일 게다. 고개를 파묻은 여인의 어깨가 애처로워 보이는 까닭이다. 작가 빈센트 반 고흐는
화법과 삶의 태도 등 여러 면에서 선배 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를 존경했다. 반 고흐는 노골적으로 밀레 그림의 소재와
구도를 모방했고 이 그림 역시 동명작의 제목부터 구도까지 차용했지만 그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해 ‘청출어람’의 명작을
이뤄냈다. 프랑스 오르세미술관 소장품인 이 그림은 작품 보존을 명목으로 유럽 이외 지역에서 단 한 번도 전시된 적 없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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