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봉 (984m)
5시 30분경 숙소 데크에서 약간 어설픈 일출을 감상한 후,
(같은 지점에서 일출과 일몰을 본 셈이다)
6시 정각 어머니와 누이를 남겨둔 채,
바닷물 한번 만지고, 수력발전소 샛길을 통해 성인봉행,
급경사를 오르면 추산리라는 마을에 닿는 데
교회(여기 저기 많이도 보인다)와 절을 포함해도 10여가구나 보이려나?
마을에 올라와 쳐다 보는 송곳봉의 저 구멍들은 많은 전설을 꿰고 있다(직접 가서 확인하시길..).
섬의 정 북쪽의 바다에 붙어 450m 수직으로 솟아 멋진 자태를 자랑한다.
송곳봉과 송곳산(605m)의 절경을 즐기며 천천히 30여분 동내길을 오르면
차량은 못 다니고, 사람들도 별로 사용 안하는
오래 된 극한 경사의 지그재그 농사용 시멘트길이 이어진다.
정상까지 등산객은 전혀 만나지 못했다.
발전소의 수원인 용출수(나리분지의 지하로 고인 물이 지상으로 솟구쳐 오른다는)를
보기 위함인데
계곡 저 아래서 물소리가 크게 들리기는 하나, 정확한 입구를 못찾아 포기하고
인내의 행군을 계속 하다보니
어느덧 평평무사한 멋들어진 송림 길이 나오며,
이어서 잘 정돈된 야영장과 어제의 식당에 도착한다.
아..... 나는 왜 불끈 솟은 바위나,
땅속에서 치솟아 오르는 샘물에서 대리 만족을 찾으려하는가????
나리분지 (7시 30분)
울릉도에서 유일하게 네모지게 각진 직사각형의 밭들을 볼 수 있는 곳인 데,
해변가의 거친 급 경사와 대조를 이룬다.
앞에 언급했 듯이,
1900년 직전엔 현지인(70여명)보다도 많은 일본인 도벌꾼들이
이 곳의 원시림을 벌채했다는 기록을 읽고 가슴을 쓸어 내렸다.
고연 놈들...!!!
어제 안면이 있었다고 반기는 식당 아줌마에게 산채 비빔밥을 주문하고,
추가한 주먹밥과 먹다 남은 명이나물만 달랑 싸들고 8시 20분부터 본격 산행을 시작 했다.
마을 끝의 공군 부대 숙소를 끼고 돌면 산길이 시작되는 데,
지피 식물로 가득한 숲 사이의 완만하면서도 널널한 기분 좋은 길이 계속 되었다.
(돼지풀이라고 하는 데 장소를 가리지 않고 많이 피어 있다
이 풀 먹고 자라면 약소가 된다드냐?)
중간에 투막집(울릉도 전통 산죽집)을 지나고
땀에 젖어 몸은 축축해도, 숲에 젖어 마음은 즐거움과 엔돌핀이 넘치며 발걸음도 가볍다.
신령수(09시00)에 도착할 때까지도 아직 완만하고 사기가 높았었는 데...
이제부터 본격 산행일진데.....
드디어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굵은 다래 덩쿨과 비교하며,
아내가 자기의 넙적다리도 굵은 편은 아니라며 즐거워할 때까지도 히죽거렸었는데...)
귀신이 곡할 노릇인 바,
어떻게, 왜 신령수에서 길을 왼쪽으로 꺽었는지..
하여간 희미한 길이 있어 의심 없이 오르는 데,
경사가 얼마나 센지 코가 땅에 닿을 듯
나무 계단이 나와야 하는 데 나오지는 않고 점점 길도 희미해졌다...
(고사리 밀집지역)
속인(俗人)으로 성인(聖人)봉 오르는 게 쉽지는 않겠지.....
이젠 다시 내려갈 수도 없어 간신히 능선까지 올라오니
양쪽으로 희미한 길이 있기는 한 데,
도저히 멀리는 조망이 안되어 한 쪽을 선택해 한동안 전진하니
갑자기 내려 가는 길이 나타나 이건 아니구나 하며 1차 유턴...
(울릉도에서만 자란다는 특산물 명이나물 집단 서식지 .
예전 극심한 식량난으로 고통을 겪을 때,
눈 속에서 돋아난 이 나물로 많은 이가 기아에서 벗어났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리도 넓은 나리꽃 군락지는 처음이다. 그래서 혹시 나리분지......?)
(우리가 사랑하는 취나물이 여기서는 잡초처럼 몰려 있어 나물 측에도 끼지 못한다.)
취 , 생전 처음 접하는 명이 나물 밭, 나리꽃들의 군락지등이 나오는 데
(나중에 알고보니 이곳이 울릉도에서도 알아주는 나물 산지로, 나물 채취하러 다녔던 길)
산죽이 무성해, 길이 사라져 머뭇거리기를 여러차례,
30분 정도를 전진하니
갑자기 공군 레이다 사이트(11시10분)가 등장했다.
절망적으로 철조망에서 소리를 외쳐대니 장교와 일등병이 나와,
우리 사정을 듣더니 성인봉을 확인시켜 주었다.
(부대 헬기장인데, 저 건너편 가운데 높은 봉우리가 목적지라는 말에 아내가 허탈해 한다.)
국방의 의무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파견 나온 공군부대원에게 새삼 감사를 드린다.
아마 거기서 물을 보충 못했으면 정상을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으리라.
공군 만세!!!
(참고로 나 역시 1970년 입대해 산 정상에서 근무한 공군 사병 출신임, ㅎㅎㅎ)
패트병에 물을 가득 채우고 다시 유턴하여 성인봉(12시10분)에 도착하니
반대쪽인 도동에서 올라온 등산객 3,4명이 보였다.
(이젠 레이다 부대가 반대쪽 저 멀리 보인다)
(정상에는 사진 찍어줄 사람도 없어 자동으로 한장 찰칵!1!.)
도동으로 하산하던 도중
지쳐서 신경질을 내는 마누라의 눈치를 보며
주먹밥으로 점심을 대신했다.
원시림에서 발산되어 극도의 정제된 공기에 녹아있는 수향을 배제한다면
산 자체는 조망도 부족하고, 흙산으로 그 다지 매력적이지는 않다.
더구나 해변가 암봉의 멋진 광경들에 익숙해진 우리에겐
산행 자체의 의미만이 있을 뿐이다.
그래도 아내는 봄철의 나물을 떠올리며 다시 올 모사를 꾸미는 눈치이다.
주인이나 축사도 안보이는 산속에서 마주친 한우가 ,
광우병 갖고 장난친다며 우리를 노려보는 듯 하다.
도축하러 내려 가는 방법이 궁금하다.
아침에 본 호연지기가 가득한 추산리의 절과 달리
약간 궁상맞게 비좁은 대원사를 지나
정말로 길고도 지루한 도동의 골목길을 비실거리며 내려가,
어머니와 누이를 만나기로 한 선착장 공원에 도착하니
3시 정각...
(원래 나리분지에서 남쪽의 대원사까지만 온다면 순 산행 5시간 정도면 충분 할 듯)
민박집
대장의 차를 타고 일명 비밀의 정원이라는 "울릉도 매니아" 전용? 민박집에 도착했다.
성인봉에서 안평전이라는 곳으로 내려와 사동항구 가는 길목에 위치한 이 곳에선
저 멀리 건설중인 사동항이 내려 보이고, 뒤편은 가파른 산으로 막혀 있다.
(우리가 묵은 민박집인데, 그 앞의 경사진 곳이 밭이였었던 곳이다)
특이하게도 집 뒤에 자연 풍혈(風穴)이 있어
항상 4도의 찬바람이 밖으로 나온다.
(어머니가 시원한 풍혈 앞에서 떠나실 줄 모르신다)
주인장은
토속적으로 생긴 외모에, 싱거운 농담이 프로급이다.
집도 본인이 직접 지었다는 데,
문 아귀도 맞지 많고, 여러가지 미흡함에도 아랑곳 하지 않는
매우 낙천적이고 순박한 성격이,
웬지 현지인보다 더더욱 울릉도 사람 같아 보인다.
개도 주인을 닮아 사람을 그리워하고 반가워한다.
전문적인 민박집은 아니라, 1주일에 하루, 한팀에게만 개방 한단다.
(주인의 유일한 짝, 송이)
(고추 냉이의 밭을 이모양으로 만들어 놓고도 뿌리만 괜찮으면 된다며 태연하다)
단, 한가지 흠은 차량이 없으면 통행이 어려운데,
그나마 어지간한 운전 실력으론 접근이 어림없다는 것이다.
주인이 도동에서 연주회를 한다며 나갈 차비를 한다.
도동 공원 연주회
민박집에 짐을 내리고 목욕과 약간의 휴식후
5시경 다시 도동으로 나와
약소 숯불구이 150g에 15,000원인 아주 착한 가격(향우촌)에
울릉도산 소주 한잔 걸치고, 마을을 어스렁대기 시작했다.
차도 못 다니는 좁은 골목길이 정다워,
대문 열린 집을 들어가 보기도 하고,
서울 아산병원에서 무릅 관절 수술을 받고
오늘 돌아 왔다는 아줌마에게 차도 얻어 마시고...
공원에 오니 벌써 연주회가 한창 무르익었다.
민박집 주인의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갈매기들도 날개를 접고, 눈을 떼지 못한다.
비록 옷은 꾀쬐죄한 모습이지만,
음색만큼은 울릉도의 바닷물이나 공기처럼 맑고 투명했다.
마치 그의 내면 세계처럼...
얼마 전부터, 저녁에 무료해 할 관광객들을 위해
도동의 선창가 공원에서
금, 토요일 저녁, 동호인 몇 명이 색소폰의 연주를 시작했단다.
(바로 밑의 선창가 간이 횟집 불빛도 배경 음악이 있으니 더더욱 정겨워진다)
곗돈 모아 놀러온 아줌마 부대들의 관광버스용 춤사위에
그나마 얼마 안되는 오징어들도 발길을 돌릴 듯해 부담이 됐다만,
바닷가의 시원한 바다 바람과 간이 횟집의 생선내음을
아리아리한 선율에 섞어 맥주와 함께 마시노라면,
몸속 깊이 쾌쾌(快快)한 감정이 솟구친다.
데크에서의 특별 공연
거진 9시, 숙소로 돌아와 주인장과 맥주를 나누었다.
5년전 친구의 갑작스런 病死에 충격을 받고
평생 직장이었던 기차역장도 사임하고
울릉도에 들어 와 5,000평이 넘는 땅을 구입해
송이라는 강아지와 단 둘이 지낸다는 데......
모든 농토는 잡초에게 양보하고,
그나마 벌레에 뜯어 먹힌 반 평 정도의 고추냉이와,
잡초와 사투를 벌이는 상추밭 2평도 사치스러워한다.
그도 그럴 것이 10여분 만 뒤뜰을 서성이면 그 좋은 산야초가 그득하니..
겨울의 폭설로 인한 교통두절을 피해,
가족이 있는 고향 대구에서 4개월 정도 보내는 데,
2년 전부터 색소폰의 매력에 빠져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학원에서 살다시피 연습 했단다.
잠시후 소프라노 색소폰을 들고 나오더니 우리만을 위해 연주를 시작한다.
별들이 호기심에 더욱 반짝이고,
달도 자꾸 뒤를 돌아보며 멀어짐을 아쉬워하며,
사동(砂洞) 앞 바다의 오징어들이 흥에 겨워 흐느적거리고,
갈매기와 흑비둘기가 둥지에서 짝의 품을 파고든다.
아낙네들의 눈빛이 게슴츠레해지는 것이
피로 때문인지, 노래에 취해선지......
첫댓글 참 좋다, 친구덕에 울릉도 다녀온것보다 더잘보았네, 늘 건강하길....
마당바위가 제대로 울릉도 여행을 했구만! 도동에서의 음악연주회등 많은 볼거리와 약소 불고기, 오징어회등 먹을거리, 정말 여행 잘했네, 우리가 갔을때는 파도가 높아 해산물은 울릉도 홍삼뿐이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