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수석(壽石)
임병식 rbs1144@daum.net
내 정신 활동뿐 아니라 생활 가까이에서 함께하며 아끼고 사랑한 것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글쓰기이고 다른 하나는 수석을 감상하는 것이다. 글쓰기는 별다른 의식 없이 가까이하게 되었다. 평상시에도 일기를 쓰고 있었지만, 글을 쓰면 곧잘 칭찬을 받았다.
그것만 가지고는 내면에 잠재한 ‘소질’까지는 발견하지 못했을지 모른다. 그런데 학교에서 적성검사라는 걸 받았는데, 문학적 감성과 어휘력에서 월등히 높은 점수가 나왔다. 그래프로 표시된 것이 거의 정점에 올라있었다. 그것을 보고 운명적으로 ‘나는 글을 써야 하는 사람’인 것으로 확신을 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수석에 빠져든 것은 그렇게 운명적인 것은 아니었다. 좀 싱거운 이야기지만 수석의 접근은 천성이 부지런하지 못하고 게으른 탓에도 연유한다. 자주 돌보지 않아도 변하거나 없어지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취미생활을 분재 가꾸기부터 시작했다. 모양이 좋아 사다 놓으면 가꾸는 솜씨가 없어 곧잘 죽어 나갔다. 그때마다 속이 상했다. 그래서 분재 대신 난 가꾸기로 방향을 틀었다. 한데 이것 역시도 두 해 이상을 가꾸지 못했다. 귀한 난을 선물 받거나 사서 집에 들여놓았는데 이파리가 시들어 버리면 속이 상했다.
그런데 수석은 그럴 염려가 없는 것이다. 흔히 사람의 지문을 두고 종생불변(終生不變)이라고 하는데 이것 역시도 변함이 없다. 거기다 수석은 역시 지문처럼 만인부동(萬人不同)이 아닌 만석부동(萬石不同)인 것이다.
신혼부부의 얘기를 들어보면 첫눈에 반했다는 말을 흔히 듣는다. 보는 순간 반려자가 눈에 꽂혔다는 것이다. 그들처럼 나도 수석을 처음 대한 순간 대번에 빠져들고 말았다. 이것이야말로 나의 운명이며 내가 취미로 삼기에 가장 적당한 것이 아닐까.
수석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를 조건으로 삼는다. 수필에 있어서 소재를 가공하지 않고 양심을 속이지 않고 쓰는 것을 조건으로 삼듯이 어디 한 군데라도 손을 대면 탈락하고 만다. 아무리 형이 좋고 질이 좋은 고가의 돌이라도 출품 석에 끼워주지 않는다.
거기에다 부질(賦質)은 반드시 돌이어야 한다. 제아무리 단단한 것이라도 돌이 아니면 실격이다. 그러니 얼마나 매력이 있는 것인가. 거기다가 돌은 적어도 지구의 역사와 같이 해왔다. 발부리에 차이는 어느 돌 하나를 집어 들어도 45억 살을 먹은 것이다. 얼마나 오래된 것인가.
거기다 수석은 자연 상태에서 취사 선택되어 감상하니 대접을 받아 마땅한 것이다. 자연 상태라는 것은 제마다 다르다는 뜻으로, 비슷할 수는 있어도 같지는 않다는 말이다. 그 같지 않은 것을 보고 감상하는 것이 얼마나 흥미롭고 신나는 일인가.
그렇지만 나는 처음에 수석을 접하면서 ‘이것은 어디에 두어도 변하지 않겠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형상의 기묘함에만 치중했다. 그러다 애석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생각을 달리하게 되었다.
그 첫 번째는 변함없는 항상성을 본 것이다. 이 세상에 금이나 은 이외 돌만큼 변하지 않는 것이 있을까. 사찰마당에 서 있는 석탑은 천년이 지나서도 끄떡없이 제자리를 지킨다. 얼마 전 장흥유치 가지산 자락에 있는 국보 44호 석탑도 고색창연하지만 제 모습을 변함없이 지키고 있었다. 이렇듯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얼마나 지고한 가치인가.
둘째는 묵언의 자세이다. 말 없음이 수만 마디의 말을 대변한다. 이 세상에는 세 치 혀를 잘못 놀려 얼마나 풍파를 많이 일으키고 패가망신을 시키기도 하는가. 역사를 돌아보면 유 아무개는 입을 놀려 멀쩡한 남이장군을 죽이고 송 아무개는 정여립을 모반사건으로 몰아 전라도 인재 1,000명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입이 무거워야 함을 웅변으로 말하고 입단속의 경계를 이르는 본보기이다.
세 번째는 인연의 의미를 일깨우는 것이다. 이 세상에 하늘에는 별, 땅에는 모래만큼이나 많은 돌 중에서 특별히 수석으로 탐석되어 눈앞에 있다는 사실은 생각할수록 각별함을 느끼게 한다.
그 각별함은 자신이 탐석하지 않고 다른 이의 손을 거쳐서 만나게 된 것이라도 특별하지 않을 수 없다. 수석을 들여다보며 감상하노라면 이런저런 생각들이 사유를 불러일으켜서 자칫 무의미해질 삶을 풍요롭게 해준다.
나는 그야말로 젊은 청춘과 노년에 이르기까지도 이런 수석과 함께해 왔다. 서재며 거실 혹은, 베란다까지도 수석을 비치해두고서 감상을 한다.
그런 애정 때문에 부모가 자식 생일을 기억하듯 수석들이 집에 들어온 내력을 훤히 꿰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별히 아끼는 것은 ‘독도’로 명명한 바위경 수석과 섬 형의 주름돌 그리고 돌 속에 박힌 인물이 돋보이는 것과 남한강 쵸코석을 귀애한다. 이것들은 어디에 내놓아도 칭찬받을 돌이지만 고가 석은 아니다.
그렇지만 누구에게도 양도할 생각은 없다. 아마도 생을 다하여 마치는 날까지도 소장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애석 생활을 하면서 돈을 주고 돌을 사기는 했지만, 소장 석을 돈을 받고 남에게 넘겨준 적은 없다. 그 대신 선물은 많이 했는데 내 지인치고 나의 돌을 선물 받아보지 않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것은 내가 수석을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취미생활로 수석을 택했으면 하는 바람이기도 해서이다.
나는 어디에 명석이 있다는 말을 들으면 찾아 나서기를 멈추지 않는다. 명석은 어딘가 모를 감흥을 주고 영감을 떠오르게 하기에 늘 만나보기를 소원한다. 수석은 사람의 손재주가 아닌 하늘의 조화로 탄생한 것이기에 좋은 돌을 보면 짜릿한 흥분이 저절로 느껴진다.
엊그제도 야외에 나갔다가 수석기념관이 보여서 들렀더니 주인이 문을 닫아놓고 외출하고 없어서 서운했다. 무슨 명석이 있을까 궁금증만 안고서 돌아섰다.
나는 요즘 수석 한 점을 연출해놓고 자주 감상한다. 중국의 미원장은 수석의 조건으로 주름지고 마르고 빼어난 것을 들었는데 이것이야말로 그 조건에 딱 맞는 산수경이 아닌가 한다. 나는 이 돌의 석명을 ‘독도’라고 지었다.
그러잖아도 고달프게 동해의 최 일선에서 나라를 지키는데, 일본에서 지속해서 침탈을 노리고 있어 마음으로라도 지켜주고자 함이다.
감상하면서 한 번씩 이름을 불러주면 독도도 힘을 얻은 것 같아서 마음속으로 한 번씩 불러보고 눈길을 자주 준다. (2024)
첫댓글 선생님의 수석과의 인연에서부터 애장석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한눈에 보는 것 같습니다 최근 자주 선보이신 독도석에 대한 소개도 잘 보았습니다 수필과 수석은 여러 면에서 닮은 데가 많은 듯합니다
문득 언젠가 선생님께서 주신 관통석이 아직도 좌정하지 못한 채 서가 한켠에 놓여있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수필도 수석도 꾸밈이 없는데 수필에 문학적 장치가 소용되듯 수석도 그 품격에 걸맞은 좌대가 필요함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최근에는 '독도'석을 연출해두고 자주 보고 있습니다.
하마 잠잠해질줄 알았는데 이웃나라 일본은 잊을만 하면 독도를
자기나라섬이라고 우기고 있어 '아니다'라는 명토록 확실히
박아두자 합입니다.
온갖 풍상을 겪는 독도수석은 그때마다 '걱정말라'하고 말하는 것만
같습니다.
수석은 지문처럼 만인부동이 아닌 만석부동(萬石不同)이라는 말에 울림이 옵니다.
수석은 변함이 없고 默言의 자세로, 因緣의 의미를 갖고 있음을 일찍이 간파하셨으니 수석을 좋아하실 수 밖에 없습니다.
'독도' 석을 연출해 두고, 일본에 대한 경계심을 일깨움은 모든 국민들에 대한 가르침이라 생각합니다.
소장한 독도석은 독도처럼 생겼고 '미원장'이 말한 바와 같이 주름지고, 마르고, 빼어난 것이 천하의 名石이 아닐 수 없습니다.
평생 수필 쓰기와 수석 소장을 함께 함이 聽石인가! 합니다.
세상 이치를 글로 쓰고, 자연의 일부분인 돌과 함께 여유롭게 사신 것이 한 없이 부럽기만 합니다.
수석에 대한 林작가님의 탁월한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수석과 수필은 닮은점이 많은것 같습니다.
손대지 않은 부질과 글감역시 있는 것 그대로라는 것이 큰 매력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수수억개의 돌중에서 취사선택되어 내 곁에 있다는 사실에 무한한
인연을 느낍니다.
또한 돌은 항상 묵언의 자세를 하고 있어서 말로 인한 화를 많이들
일으키는 세상에 무언으로 가르치는 바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2024여수문학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