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회가 성서를 한권의 책으로 발간것은 1977 년부활절이었다고 한다. 그이전에는 성서 73 권을 낱권으로 발간했다고 합니다.
성서를 개신교회와 공동으로 발간하였는데 이는 천주교입장에서는 쉬운말로 만들다보니 다소 의역이 많아서 원의미가 다르게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성서관리에 대한 소홀로 판권이 개신교단으로 넘어가고 천주교는 개정판을 낼수도 없고 발행할때마다 개신교회단체에 인세를 지불해야하였기에 선교 200주년을 준비하면서 천주교회는 새로운번역을 준비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이런일이 일어나기 훨씬 전인 1970년 젊은이들이 성서를 많이 읽게할까 하는 생각으로 그해 성령강림절에 지금의 성서형제회를 결성하고 최신부님이 한국에 계시거나 에쿠아도르로 가신후에도 한국에 오실수있는 동안은 전국적으로 젊은이를 중심으로 확대해 나갔다. 그런영향인지 교구나 수도원의 젊은신부가 관심을 갖고 참여하였으니 부제와 개신교신자들도 참여하게 되었는데 특히 사제가 되신지 얼마되지않는 분들의 참여였다.
그러나 창설자신부님이 한국에 오시지 않게되고 전주교구는 이병호주교님의 도움으로 교구승인을 받았지만 한축이었던 수원교구는 두차례에 걸쳐 신청한 교구승인이 불발로 되고 초기에 하는 성서공부와 관련 모임도 없어지고 특별한 기금으로 마련된 성서형제의집이 사라지고 보존된 각종자료가 소실되었던것이다.
이런일은 제가 50주년을 준비하면서 초기자료를 보고 느낀점이기에 사실과 다를수가 있다.
저는 2011년 큰모임에 성거산에서 선서를 하였는데 사실 그이전 몇년전에 소개를 받고 참여하게되었다.
처음에는 원곡성당에는 남자단원이 없었으나 수원에는 여러팀이 있고해서 원곡성당팀은 수원의 여러본당에서 견진교리반에서 봉사하고 또 교도소방문도 열정적으로 하여서 제가 보기에도 좋아보여서 관심을 갖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제가 참여하고 나서는 변화되기 시작했으니 얼마 지나지않아서 열성적으로 지원해 주신 최병조신부님이 교구로 들어가시고 수원교구에서는 성서사도직프로그램을 거룩한독서로 정하는 바람에 수원에 있는 본당에서 성서형제회에서 거룩한독서로 갈아타는 사람이 많아서 위축되거나 사라졌다고 하지만
제가 성서형제회 전국월례회의나 큰모임,연수회 묵상회에서 후기를 작성하면서 적지않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는데, 늦게 들어간만큼 이를 파악하기 위해 교본을 열심히 읽기시작했다.
그때부터 초기회원부터 교본의 내용을 지키지않게되고 새로온 회원들은 잘 적응하지 못하였고 오래동안 활동한 단원까지 원곡성당팀에서 나가기 시작했다.
저는 수원교구에서 성서사도직프로그램이 바뀐것이 원인으로 보고있지만 성서에 대한 연구를 하지 않았고 코이노니아팀회합때 사용하는 성서묵상자료를 몇사람이 작성하면서 연수회나 묵상회때 제기된 안이 그이후 토론되고 실천방안을 마련해야 함에도 단절되고 전혀 이어지지않는것이 가장 큰문제였다.
우리는 이를 위해 코이노니아팀별로 단원들이 돌아가며 성서묵상나눔시 미리 준비한 연구하여 발표해야할 것입니다. 그리고 연수회나 묵상회때 단한시간만이라도 성서연구발표나 묵상방법에 관한 강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각종행사때나 전국월례회의때 제기된 안건을 다 적용하기는 어려운점은 있지만 주요한 것부터 하나씩 해결해 나가야 할것입니다.
그리고 행사도 바꾸어야 할것이다. 연수회는 전국단위로 하지만 묵상회는 전단원참여보다 말씀선포자나 예비선포자를 대상으로 전국을 대상이 아니라 지구나 교구단위로 주로 성서연구나 묵상법에 대한 훈련을 통해 성서형제회개혁에 대한 토론으로 이어져야 할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