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빛으로 사람을 조정하는 <초능력자(2010년)>와 순식간에 지구 반대편으로 이동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이들을 그리고 있는 <점퍼((2008년)> 등 상상을 불허하는 초능력을 지닌 뮤턴트(돌연변이)는 SF 영화의 단골 메뉴다. <푸시(2009)>와 <엑스맨(2000년)> 등은 다양한 능력의 뮤턴트들 간의 숙명적 대결을 통해 재미를 더하고 있다.
마블사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 <엑스맨>은 전 세계적인 흥행 성공에 힘입어 최근까지
시리즈로 제작되고 있다. 영화 <엑스맨> 시리즈가 다른 뮤턴트 영화와는 다른 점은 유독 핵과
방사능 관련된 역사적 사건이 자주 등장한다는 점이다. 2009년 <엑스맨 탄생:울버린>에서는 1979년 3월 미국의 쓰리마일 핵발전소 사고가 등장한다. 쓰리마일 핵발전소 지하에 뮤턴트의 능력을 군사무기화 하려는
스트라이커 대령의 비밀 기지가 있다는 설정이다.
이어 올해 개봉된 <엑스맨 더 울버린>에서는 2차 대전 당시 일본의 원폭 투하 장면이 그려지고 있다. 두 해 전 제작된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는 1962년 당시 소련이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중거리 탄도 미사일을 쿠바에 배치하려 해 미국과 핵전쟁 직전까지 갔었던 상황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엑스맨> 시리즈에서 핵과 방사능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는 1963년 처음 등장한 엑스맨 원작의 설정, 즉 방사능에 의한 돌연변이라는 점을 충실히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에서 독일 나치의 일원으로 엄청난 초능력으로 전 세계를 지배하려는 악당 세바스찬은 “우리는 핵의 자손”이라 말하면서, 친절하게 이러한 배경을 설명해주고 있다.
<엑스맨> 원작 만화보다 한 해 일찍 나온 <헐크>와 <스파이더맨> 역시 방사능 돌연변이라는 설정이다. <헐크>는
실험실에서 실수로 감마선에 노출돼, 화가 나면(심박수가 일정 수치이상 오르면) 괴력의 헐크가 되고, <스파이더맨>은 방사능에 노출된 거미에 물려, 인간 거미가 된다는 내용이 그려지고 있다.
[엑스맨-최후의 전쟁] 영화 포스터ⓒ민중의소리
핵과 방사능에 의한 돌연변이영화는 실제 현실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화면에서 극대화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 영화 <연가시(2012년)>에서 연가시는 실제 미국, 일본 및 우리나라에서 사람에게서 발견된 사례가 있다. <설국열차>로 돌아온 봉준호 감독의 2006년 작 <괴물>에서 괴물은 2000년 미군이
포름알데히드(포르말린)를 무단 방류하면서 출현하게 됐다는 설정을 갖고 있다.
<헐크>, <스파이더맨>, <엑스맨> 등은 1960년대 핵전쟁의 위기와 빈번한 핵실험에 의한 방사능 공포가 극한 달한 시대적 상황에서 개연성을 얻고 있다. 핵실험에 의해 거대 괴수가 출현했다는 영화도 있다. 1998년 미국에서 제작된 영화 <고질라(Godzila)>가 바로 그런 경우다.
영화 <고질라>의 첫 장면은 망망대해 한
가운데서 피어나는 거대한 버섯구름이다. 영화는 프랑스가
남태평양에서 120회 이상 벌였던 핵실험의 영향으로 돌연변이 된 이구아나와 같은 도마뱀이 뉴욕을 쑥대밭으로 만든다는 내용을 그리고 있다. 고질라는 일본의 괴수 영화 <고지라(Gojira)>에서 시작됐다. 고지라는 엄청나게 크다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고래를 뜻하는
일본어 ‘구지라’와 ‘고릴라’를 합쳐놓은 것으로, 1954년 처음 영화화 된 이후 28편에 등장했다고 한다.
일본 <고지라>의 탄생 역시 핵폭탄 실험에 기인한다. 미국은 서태평양 비키니섬에서 1946년부터 1958년 23차례 핵폭탄 실험을 했다. 1954년 3월 1일 수소폭탄 실험에서 일본의 참치 잡이 선원들이 방사능 낙진 피해를 받은 것이 기화로 그해 11월 <수폭대괴수영화 고지라>가 만들어진 것이다.
허리우드로 건너간 고지라는 ‘문제는 크기(Size Does Matter)’라는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1996년 영화 <인디펜더스 데이> 감독)의 말처럼 길이 121미터에 아가리만 9미터, 무게 6만 톤의 초대형 괴수 고질라가 된다. 영화의 흥행은 그럭저럭, 비평가들은 <고질라>를 그 해의 최악의 영화인 ‘골든 래즈배리 상(The
Golden Rasberry Awards)’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후쿠시마 방사능’ 괴담이나 상상에 그칠까
허리우드에서는 가렛 에드워즈 감독이 <고질라2>를 2014년 중반 개봉을 목표로 추진 중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와이 등에서 지난 7월부터 촬영에 돌입했다는 소식도 전해지고 있다. 영화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마도 2011년 3월 11일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유출과 개연성이 있지 않을까 싶다.
방사능 돌연변이 괴수를 다룬다면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같은 모티브를 놓칠 수 없다.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유출이 역사상, 그리고 현재도 계속되는 최악의 사건이기 때문이다. 후쿠시마 사고 뒤 온라인에서는 귀 없는 토끼, 기과하게 핀
해바라기 등 돌연변이 사진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이는 방사능에 노출되면 세포핵 속의 유전물질과 유전자가 파괴되거나 돌연변이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후 방사능 오염수 차단 시설이 있어 안전하다고 주장했던 일본정부도 부실을 인정했다. 방사능 오염수 300톤이 바다로 유출돼, 인근 바다의 방사능 수치가 18배 이상 증가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환경운동연합 양이원영 처장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체르노빌 원전 사고와 같은 7등급 사고로 기록됐지만, 문제는 사용 후 핵연료의 양이 체르노빌 원전의 6.6배에 달한다는 것”이라고 말해, 방사능에 의한 심각한 오염이 앞으로도 계속 될 수밖에 없음을 시사했다.
이러한 사태에 대해 우리 정부는 ‘원전 괴담’을 운운하면서, ‘괴담 유출자 처벌’이라는 살벌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원전 확대 정책을 펴고 있는 박근혜 정부 입장에서 옆 나라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는 최악의 원전 상황은 그리 달가운 것이 아닌 듯하다. 이러한 태도는 지난 해 총선에서 당시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이끄는 새누리당이 한국원자력연구원의 민병주 연구원을 비례대표 1번으로 공천해 당선시켰다는 점에서 이미 예견된 바 있다.
괴담을 만드는 것은 불신에서 비롯되는 측면이 많은데, 참담한 현실을 반영하지 않는 정부의 안일한 태도는 불신을 더욱 강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 인간의 오만과 어리석음이 재난을 키운다는 것은 영화의 단골 소재다. 불행히도 일본과 우리 정부의 태도는
스크린이 아닌 현실에서도 인간에 의해 더욱 키워진 재난이 발생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