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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어, 아람어, 헬라어 그리고 이디쉬
내가 처음 이스라엘에 도착했을 때, 모든 것이 낯설고 어색했지만 그 가운데 특히 더 낯설었던 것은 전에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이스라엘 사람들의 말이었다. 그러나 “서툴러도 그 나라 말로 복음을 전하면 하나님이 자네를 그 나라 말을 가장 잘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실 거야.”라고 하신 스승 목사님의 가르침이 큰 힘이 되어 낯선 언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이스라엘 말을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안식일이 시작되기 전에 어느 큰 슈퍼마켓에 갔을 때의 일이다. 필요한 물건을 고른 뒤 계산대 앞에서 서툰 이스라엘 말로 직원에게 더듬더듬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 뒤에서 순서를 기다리던 검은 옷을 입은 유대 종교인이 갑자기 내게 “너는 이방인인데 왜 거룩한 말을 사용하지? 히브리어는 거룩한 언어라서 너 같은 외국인은 사용하면 안 돼. 그 말 당장 쓰지 마!” 하고 눈에 힘을 주며 말했다.
그는 영어로 말했고, 나는 영어를 잘하지 못했기 때문에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없었지만 그가 하는 말을 대강 알아듣고 “I am holly so it’s ok.(나는 의롭기 때문에 괜찮습니다.)”라고 답했다. 그가 화를 내며 계속 말하자 계산대에 있던 아주머니가 우리 때문에 거스름돈을 세기 어렵다며 둘 다 조용하라고 짜증을 냈던 기억이 난다.
고대 히브리어와 현대 히브리어
이스라엘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히브리어다. 현재 이스라엘 사람들이 사용하는 히브리어를 현대 히브리어라고 하는데, 그것은 고대 시대 즉 성경 시대에 사용했던 히브리어와는 조금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옛날 우리나라 한글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 말하는 것과 글로 적어 표현하는 것이 차이가 많았던 것처럼 히브리어 역시 그러했다. 실제 말은 그렇지 않은데 문자로 표기할 때는 어색한 표현 방식이 많았다.
고대 히브리어는 구약성경을 기록한 문어체 히브리어를 말하며, 현대 히브리어의 뿌리가 되는 언어지만 현재 실제 생활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문자로 된 고대 히브리어가 사용되는 경우는, 회당에서 성경을 낭독하거나 성경공부를 하며 성경 구절을 적용할 때, 그리고 절기나 안식일같이 특별한 날에 유대교만의 의식을 행하며 성경과 기도문 등을 읽을 때 등이다.
그에 비해 말할 때 사용했던 히브리어는 우리가 조선시대로 간다 해도 당시 사람들이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것 같이, 현재 이스라엘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었다.
유대인들은 과거에 2천 년 이상 여러 나라에 뿔뿔이 흩어져 살았기 때문에 그들의 언어가 각기 달라졌지만 성경을 대할 때와 절기를 지킬 때만큼은 히브리어를 사용했다. 그들이 어디에 있든지 유일신인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모습이 동일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히브리어가 유대인들을 하나로 만들어 주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히브리어의 역사와 특성
히브리어는 히브리음으로 ‘이브릿’이라고 한다. 원래 ‘히브리’라는 단어는 갈대아 우르(현재 이라크 지방) 출신인 아브라함의 사람들을 가나안 족속들이 ‘헤부르인’들이라고 부르는 데에서 비롯되었다. 그 뒤 아브라함의 계보에 있는 사람들을 ‘히브리인(이브리)’이라고 부르고, 그들이 쓰는 언어를 이브릿, 즉 히브리어라고 불렀다.
고대 히브리어는 모음 없이 자음만 22개로 이루어져 있었다. 사해문서 같은 고대 히브리어 성경은 모두 자음으로만 적혀 있다. 당시에는 성경이 널리 보급되지 않았기 때문에 구약성경은 히브리 민족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다가 필사본이 등장하면서 구전되던 방식은 점점 사라졌다.
열왕의 시대에 이르러 아람(시리아)이 이스라엘을 자주 침입하면서 그 영향으로 히브리어에 아람어가 섞이기 시작했고, 그 결과 고대 히브리어는 성경에만 사용되고 일상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언어가 되었다.
그 후 7세기경에 히브리어 성경을 번역하는 새바람이 불었다. ‘맛소라’ 학파 사람들이 처음으로 히브리어 자음에 모음을 추가하면서 성경이 읽기 편하게 필사되었고, 그 뒤로 지금까지 필사된 구약성경에는 모두 모음이 달려 있다.
히브리어의 특색으로는 남성동사(쟈카르)와 여성동사(네케바)가 있고, 우리나라 말과 반대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는다. 현대 히브리어와 구약성경의 히브리어를 비교해 보면, 마치 현대 한글과 세종대왕 때 만든 용비어천가가 차이가 나는 것과 같다. 즉 현대어와는 전혀 다른 모양이다. 현대 히브리어는 1900년대에 접어들어서 일상적인 언어로 부활했다.
현대 히브리어의 아버지 ‘엘리에제르 벤 예후다’
히브리어는 19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성경에만 사용되고, 소수의 공동체 유대인들에게만 전통적인 모국어로 실생활에 사용되었고, 대부분의 유대인들에게는 이미 잃어버린 모국어가 되어버린 경우가 많았다. 특히 유대종교인들은 히브리어가 거룩한 성경의 언어라는 이유로 일상생활에서 사용은 물론 읽고 쓰는 것조차 철저히 금했기 때문에 더욱 모국어로써의 이미지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그렇게 지내오다가 러시아계 유대인으로 시온주의자인 ‘엘리에제르 벤 예후다(1858∼1922)’와 같은 사람에 의해 히브리어가 보편화되어 일상 언어로 자리 잡았다.
엘리에제르 벤 예후다는 “이스라엘 땅과 이스라엘 말이 없이는 이스라엘 민족이 될 수 없다”는 신념으로 매일 새로운 단어들을 만들었다. 그는 히브리어가 신문과 책과 학교 교육에서 사용되고, 일상 언어로 널리 보급될 수 있도록 기초를 다진 선구자다. 우리나라의 한글 학자 주시경 선생과 같은 분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이런 시온주의자들의 노력으로 히브리어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쓰는 일상어가 되었고, 지금은 누구든지 교육 기관에서 현대 히브리어를 접하고 배울 수 있다. 그리고 이민자나 외국 학생들을 위해 현대 히브리어를 단계적으로 가르치는 ‘울판’이라는 제도도 있다.
예수님은 어떤 언어를 쓰셨는가?
예수님은 어떤 언어를 사용하셨지에 대해서는 견해도 다양하고 논란도 많다. 어떤 이들은 아람어를 쓰셨다고 하고, 어떤 이들은 히브리어, 어떤 이들은 헬라어를 쓰셨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예수님은 아람어가 섞인 히브리어를 쓰셨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즉 글이 아닌 말을 할 때는 아람어가 섞인 히브리어를 쓰셨다는 것이다.
히브리어는 고대 시대 오랜 세월 동안 유대인들의 실생활 언어였는데, 아람어와 섞이면서 예수님 시대에 와서는 아람어를 마치 지방 사투리처럼 혼용해서 썼다는 것이다. 특히 나사렛과 가버나움 같은 갈릴리 지역의 사람들이 아람어를 유난히 많이 섞어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아람어가 섞인 히브리어를 말하면 그 사람은 갈릴리 출신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할 때도 예루살렘 사람들이 그의 말투를 듣고 그가 갈릴리 사람인 것을 구별했다. “… 너도 진실로 그 당이라. 네 말소리가 너를 표명한다….”(마 26:73) 마치 우리가 말투로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사람을 구별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신약성경에 나온 아람어들
옛 시리아 말인 아람어는 에스겔 다니엘 같은 성경의 일부에 쓰여 있어서 고대 히브리어와는 또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 있다. 신약시대 갈릴리 지역에 아람어가 많은 영향을 주었지만 여전히 대화체 히브리어가 유대인들의 모국어였음을 앞에서 이미 언급했었다. 그러면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이 아람어를 쓰셨던 부분을 살펴보자.
▪탈예타 쿠미(달리다굼)
“그 아이의 손을 잡고 가라사대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소녀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심이라.”(막 5:41)
▪히파탘흐(에바다)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막 7:34)
▪엘리 엘리 레마 쉬바크타니(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제 구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마 27:46)
위의 성경 구절에 보면, 순수 아람어를 사용한 부분은 아람어 음으로 표기했고, 그 뒤에 이 말의 뜻이 무엇인지 해설이 꼭 붙어 있다. 아람어에 부연 설명을 단 것은 마치 우리나라에서 텔레비전 방송 중에 어떤 사람이 알아듣기 어려운 사투리로 말하면 그 부분을 자막에 표준어로 바로잡아 주는 것과 같다. 아람어가 히브리어에 섞여 통용되었지만 아람어가 당시 공용어가 아니라는 것을 나타내주는 부분이라고도 할 수 있다.
빌라도가 예수님이 못 박히신 십자가 위에 패를 써 붙일 때 히브리어, 라틴어, 그리고 헬라어로 기록한 것 또한 당시 유대인들의 공용어가 히브리어였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예수의 못 박히신 곳이 성에서 가까운 고로 많은 유대인이 이 패를 읽는데 히브리와 로마와 헬라 말로 기록되었더라.”
(요 19:20)
그리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전에 말씀하신 여덟 마디의 말씀 중 아람어로 표현된 부분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다. 이 부분도 성서 공회의 히브리어 번역본에는 마태복음과 마가복음 음이 약간 다르게 표현되어 있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하신 여덟 가지 말씀은 다음과 같다.
1.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2. “…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 23:43)
3. “…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요 19:26)
4. “… 보라, 네 어머니다….”(요 19:27)
5. “…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마 27:46, 막 15:34)
6. “… 내가 목마르다….”(요 19:28)
7. “… 다 이루었다….”(요 19:30)
8. “…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 23:46)
이 가운데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는 마태복음에서는 ‘엘리 엘리’로, 마가복음에는 ‘엘라히 엘라히’로 기록되어 있는데, 둘 다 같은 말이다. ‘엘리’는 주로 히브리어에서 쓰는 말로, 예수님 시대에 아람어가 섞인 히브리어를 사투리처럼 사용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의 하나다.
바울이 사용한 언어는 헬라어가 아니다
일부 학자들은 신약성경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서신서가 헬라어로 기록된 것을 보고 초기 기독교 시대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헬라어를 썼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사도행전에 나타난 바울의 행적을 보면 당시 유대인들의 모국어가 헬라어가 아니라 히브리어라는 것을 정확히 알 수 있다. 또한 4복음서 가운데 특히 마태복음이 처음 기록될 때 유대인들에게 유대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에 대한 복음을 전하기 위해 히브리어로 기록되었다는 점 등을 미루어 보면 더욱 그러하다.
사도행전 21장 37절에서 유대인들이 바울을 잡아 죽이려 할 때 천부장이 바울을 영문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면서 바울에게 “네가 헬라 말을 아느냐?”라고 묻는다. 만약 당시 유대인의 언어가 헬라어였다면 천부장이 바울에게 굳이 헬라어를 아냐고 물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것은 당시, 헬라어를 아는 유대인들과 모르는 유대인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나타내 준다. 당시 귀족들이나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헬라어에 능통했는데, 그런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20퍼센트 정도였다고 한다. 사도 바울이 헬라어를 안 것은 교육을 받은 사람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헬라어를 아는 유대인들은 갈릴리에서 아람어가 섞인 사투리 같은 히브리어를 구사한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들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바울이 유대인들 앞에서 간증할 때마다 히브리어 방언으로 말했다는 것이 정확히 기록되어 있다(행 21:40, 행 22:2). 특히 사도행전 26장 14절에는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방언으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라고 기록되어 있다. 바울은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만난 예수님이 자신에게 직접 히브리어 방언으로 말씀하셨다고 증거하고 있다. 이것 또한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언어가 히브리어였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성경에 히브리 방언이라고 적힌 것은 회화로 사람들이 일상에 사용한 구어체 히브리어를 가리킨다.
로마가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시대, 즉 예수님이 사셨던 시대를 포함한 무렵에는 헬라어가 유럽의 공용어로서 지금의 영어와 같은 역할을 했다. 로마제국 때문에 유럽이 세계의 중심인 시대였고, 동서양을 막론하고 외교와 유통 같은 국제적인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들에게는 헬라어를 잘하는 것이 성공을 보장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당시 로마에서도 귀족들은 헬라어를 주로 사용했고 서민들은 길거리 라틴어를 사용했기에 로마 귀족들은 자신들이 헬라어에 능통한 것을 과시했다.
이 당시 쓰였던 헬라어를 코이네 헬라어라고 하는데 현대 그리스어가 아닌 고대 그리스어를 가리킨다. 당시에는 헬라어를 알면 세계 어디에서든지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 신약성경이 헬라어로 번역되고 기록된 이유 중 하나도 헬라어를 통해 전 세계 이방인들의 눈과 귀에 복음과 믿음의 삶을 전해주기 위함이었음을 알 수 있다.
유럽 유대인들이 만들어 쓴 언어 ‘이디쉬’
이스라엘 사람들의 언어 가운데 재미있는 언어는 이디쉬다. 예루살렘 안에 살면서도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쓰는 유대인이 있는데, 그들이 쓰는 언어를 ‘이디쉬’라고 한다. 약 2천 년 간 흩어져 살았던 유대인들 가운데 독일을 중심으로 유럽에 살았던 사람들을 ‘아쉬케나지’라고 한다. 그들이 독일어와 히브리어와 슬라브계 언어가 혼합된 언어를 만들고, 그것을 히브리어 문자로 표기하면서 유럽의 유대인들만이 사용하는 새 언어가 탄생되었다. 히틀러가 당시 세계의 유대인 약 1440만 명 가운데 약 600만 명을 학살했을 당시에 죽은 유대인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이디쉬를 사용하는 유럽 유대인들이었다. 그들이 학살당함으로 이디쉬가 사라지는 듯했으나 생존자들에 의해 아직도 사용되고 있다. 히브리어가 거룩한 언어라는 이유로 소수의 종교인들은 아직도 이디쉬를 고집하며 사용하고 있다.
모든 언어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 한 유대인 친구가 내게 이렇게 말한 적 있다.
“나는 한국과 독일에서 신학을 배우러 이스라엘에 온 목사들이 싫다. 왜냐하면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유대 종교인들에게 핍박을 받는데 그들은 이스라엘에 와서 수년 간 공부하면서도 유대인들에게 예수님과 복음을 전하지 않고 박사 학위만 받아서 돌아간다.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고 박사학위만 따고 가면 이스라엘에서 배운 히브리어가 무슨 의미가 있겠나? 자기 명성만 높이는 수단이 아닌가? 그래서 나는 마음이 무척 상한다. 하나님이 그것을 기뻐하실까?”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며 깊이 생각되었다. 어떤 언어든지 하나님이 우리에게 언어를 주신 이유는 그 나라 말로 복음을 전하라고 주신 것이 확실하다. 히브리어든 한국어든 어느 언어든지 하나님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우리 죄를 다 씻으셨다는 사실을 그 나라 말로 전해주고 싶으신 것이다. 하나님은 마음을 표현하라고 우리에게 언어를 주셨다. 특히 복음을 전할 때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가장 아름답게 빛난다고 믿는다. 히브리어가 아직까지 살아 있는 이유는 예수님과 바울이 복음을 전한 것처럼 하나님이 마지막 때에 히브리어로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으시기 때문이다.
http://www.gndaily.kr/news/articleView.html?idxno
첫댓글 월말입니다 낼것도 많고 월세도 내야합니다
후원은 카페지기에게 큰힘과 용기가 됩니다
치료약값이 필요합니다 많이 힘이드네요...
카페지기는 지병.때문에 매달 치료비가 많이듭니다
매월 공과금과 LH.주거임대 임대료 관리비 마련이 어렵습니다
먹을것 반찬거리도 사야 살아가는데 지병과 장애 나이도
들다보니 수입이 전혀 없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평안하시길 기도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카페지기 전화입니다 010.2261~9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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