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칠곡군 연화리. 주변에 신나무골 성지도 있고,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원에 운영하는 피정의 집도 자리잡고 있는 산기슭, 비포장도로 좁은 길을 따라 들어가면 오목한 곳에 양옥 한 채가 앉아 있다. 아내는 도자기를 굽고, 남자는 시를 쓴다. 최근엔 서예를 배워 창세기를 붓글씨로 옮기고 있다. 박춘식 옹(72세)이다. 칠순이 다 되어 연거푸 세 권의 시집이 펴냈다. <어머니 하느님>, <창세 55장 9절>, <통곡하는 모세>다.
창세기에는 55장이 없다. 박춘식 옹이 지은 시편 제목일 뿐이다. 스스로 온시인이 되기에 부족하다며 반(半)시인이라고 부르는 이의 시론이다.
1 아으 그 옛날 하늘님이 시로써 세상을 만드셨다 2 시의 첫 구절은 경이로운 빛줄기였고 3 보기 좋고 듣기 즐겁게 여섯 구절까지 읊은 다음 4 일곱째에는 쉼표를 찍었다 5 흙덩이로 첫 사람을 빚을 때에 6 사람도 시를 지을 수 있도록 7 시혼(詩魂)을 감싸는 오관 안에 뜨거운 기운을 불어넣어 8 시는 사랑임을 깨닫기 원하였다 9 첫사랑 하늘님은 신비스러운 시인이셨다 10 삼라만상을 시 제목으로 정리하면서 11 모든 것 안에 시심을 숨겨 두었다 그리하여 12 우주는 하늘님의 새맑은 시집이 되엇고 아담은 에덴에서 시를 감상하다가 13 14
박춘식 옹은 모든 사람을 포함해 모든 세상만물을 시인이신 하느님이 풀어놓으신 시(詩)라고 보았다. 우주는 바로 그분의 시집이고. 그래서 우리는 모두 그분을 닮아 시인의 마음을 지니고, 시인의 눈으로 사물을 바라보라고 권한다. 그리고 시는 곧 '사랑'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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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복을 벗고 죄인처럼 낮아졌다. 그리고 엄마 하느님을 만났다.(사진/한상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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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보다 선이 더 쓰리지 않을까
'나모' 박춘식 옹은 1938년 경북 칠곡군에서 태어나 순심중학교, 성신고등학교, 가톨릭대학 신학부를 졸업한 뒤에 사제로 살다가, 문득 사제생활에 자신이 없어서 사제복을 벗었다. 형제 가운데 3명이 사제가 되었고, 수녀도 있지만, 그만이 유독 사제생활을 그만두고 환속했다. 그의 형님 가운데 가톨릭대학 학장을 지내고 <무엇하는 사람들인가>라는 책으로 유명한 박도식 신부가 있다. 박춘식 옹은 환속 후 마음고생을 많이 했지만, 오히려 사제복을 벗고서야 자신의 하느님을 발견한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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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이 엄마라면 세상 모든 게 엄마다. 마리아도 하늘엄마다 | -저 사람은 누구지 -신부하다가 그만 둔 사람이야 -그럼 파계했군 -파계도 되지만 환속이지 -속물 되었으니 눈총 많이 받겠구먼
태양은 종탑 위 십자가도 만지고 길바닥에 떨어진 부러진 십자가도 내려본다
하늘에서 보면 서 있는 사람은 점으로 보이고 넘어진 사람은 선으로 보인다 점보다는 선이 눈에 더 띈다 애써 만든 변명, 그분이 선을 볼 때 더 쓰린 눈길로 보지 않을까 (대죄인1)
더 낮아지고 겸손한 '하심(下心)'에 깨어 있을 수 있었다. 그는 '하심'이란 시에서 이렇게 말한다. "늘 불룩불룩 걷고/ 툭하면 흔덕거리면서 분잡한/ 마음을 밑바닥에 내려놓으면/ 넘어질 열려가 없어서/ 편하고 좋겠다" 늦깍이로 구상문학관에서 시 공부를 하면서 시인의 마을로 들어섰는데, 그의 시는 신앙이다. '구상문학관'이란 시를 보면, 언젠가 누가 구상 시인에게 "선생님은 신앙을 가지셨으니 삶이 평온하고, 마음이 항상 든든하겠습니다"하고 말을 건넸던 모양이다. 그때 구상 시인은 빙긋 웃으며 이리 말한다. "턱도 없는 소리/ 내 마음이 신앙 때문에 얼마나 지랄 같은지/ 몰라서 하는 말"이라고.
아마 구상의 마음은 박춘식 옹의 마음에 진동을 주었으리라. 우여곡절 끝에 박춘식 옹은 단순하지만 사뭇 다른 신앙으로 돌아간다. '로마에서'라는 시를 읽어보면, 신앙의 단순성에 놀라게 된다.
근간 예수님이 로마에 갔다. 이천년 전 그때 모습이 아니다. 쇠로 만든 상자들이 굴러다니고 공기가 더럽고 시끄러웠다. 쉴만한 곳을 찾다보니 도서관이다. 엄청난 책들을 보고 놀랐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책들을 보자 눈이 휘둥그레 커진다.
무슨 말이 이렇게 많은고. 무슨 이론이 이렇게 복잡한고. 어지럽다. 나에 대한 책들을 다 읽고서 사람들이 무어라 할까. 구세주라는 분이 참 번잡하고 아리송한 존재이구먼 하겠지. 이렇게 까다로워서야 하늘나라 문턱에도 못 가겠다. 딱 한 단어면 되는데. 그 한 단어 때문에 수제자 베드로를 로마에 보냈는데. ROMA를 조심스럽게 되돌려 보면 AMOR(사랑)임을 왜 몰랐을까.
엄마 어머니 하느님
세례명을 야고보(夜孤步)로 지은 박춘식 옹. 그래서 그가 발견한 하느님은 '엄마 하느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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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연화리 집에서 보면, 꼴베 신부가 지나갔다는 길이 보였다. | 하늘님이야 -아니 천주님이 맞아 -진짜는 하나님이야 -아냐 옥황상제일 거야 -표준어로 하느님인데
바람이 소나무 가지를 스치면 솔바람이 되고 강물 위를 달려가면 강바람이 된다
나는 스스로 있으면서 어제, 그 전에도 있었고 오늘, 지금 늘 있고 내일, 그 후에도 영영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이 내 이름이다, 그리고 아빠 하느님이고 엄마 하느님이다 (하느님)
연작으로 '어머니 하느님'이란 시를 지었는데, 두번째 시에서 이런 이야기를 펼쳐 놓는다. "성당에서 교리 배우던 아이가/ 나 성당에 안 갈 거야, 한다/ 하느님이 아버지라서// 교리 선생이 가르치기를/ 하느님은 아버지 같은 분이고/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불러야 한다고 했다/ 그 말에 아이는 생각한다/ 우리집 아버지는/ 매일 술만 퍼마시고 고함치는데/ 결국 하느님도 술 마시고 있겠구나// 혹시 내가 그 아이를 만나면/ 목소리를 가다듬어/ 하느님을/ 천 개의 부드러운 손을 가지고/ 만 개의 젖가슴을 가진/ 엄마이다, 라고 꼭 말해주고 싶다"(어머니 하느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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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둥글다. 품어 안는 엄마, 기댈만 하다.(사진/한상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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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잎 같은 사람들이 만드는 세상
박춘식 옹은 어머니 하느님 때문에 세상에 무심할 수 없다. 가난하고 무력하고 소외받은 이들에게 어머니의 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살만한 세상이 그립다. 그래서 "그동안 평안하셨습니까" 물어도 대답은 "그저 그렇다"이다. 서예공부가 재미있냐고 물어도, 동해안 다녀오시고 바닷바람 맛이 좋았느냐고 물어도 "그저 그렇다"고 답한다. 명절 기쁘게 보내라는 덕담에 "앞으로 오지 말라"고 답한다. 갑자기 왜 그런 말씀을 하시냐, 하자 "선생 노릇 잘못하여 많이 부끄럽다" 한다. 제자들이 갈수록 잘 살아야 하는데, 나라 꼬라지가 꺽꺽한 탓인지, 일터에 마가 끼었는지, "다아 죄 많은 내 탓이려니" 한다. 신일전문대학 학장까지 지낸 사람으로, 스승노릇하기가 부끄럽다는 것이다.
그는 풀잎처럼 낮고 가냘픈 이들이 오히려 세상을 바꾸리라 믿는다. 그들의 촛불이 세상을 밝히리라 믿고 있다. "독기를 뿜어내는 민초/ 돌멩이가 뚝뚝 눈물 흘리며/ 방패 끝에 찌부러진 막대기 위에/ 독재정권이 엎어진다/ 이제는 잡초들이 촛불되어/ 깜깜한 거리 거리를 총총 밝힌다"고 말한다. "아르헨티나의 아줌마들은/ 냄비를 두둘겨/ 오만한 정권을 무너뜨렸다"고 말한다. "어느 나라든 결코/ 잡초들은 죽지 않는다 죽을 수 없다/ 어둠을 몰아내려는 풀잎들/ 함성으로 진실을 쌓아올리는 잡풀"을 믿는다. 그래서 "오늘도 낫을 들고/ 풀잎을 손질한다 나는/ 새로 돋아날 잎들의 싱싱함을 만져 보리라."(잡초)고 다짐을 두고 있다.
칠순이 지나도 여전히 정정해 보이는 박춘식 옹은 자신의 죽음이 '시 한편'이 되길 갈망한다. 하느님이 시인이시고, 내 삶 역시 시 한편이기를 갈망하는 탓이다. 내 삶뿐 아니라 모든 이의 삶이 한 편의 시가 되길 바라는 까닭이다.
돈 문제로 죽어야겠다면/ 괭이로 땅을 파라/ 그리고 쑥갓 무 상추를 심고/ 눈곱만한 싹이 돋는 것을 보면서/ 죽을 날짜와 장소를 멋진 곳으로 정해라//
가시나 때문에 죽고 싶다면/ 산에 올라가 나무를 껴안고 네가 아는/ 모든 여자 이름을 칼날처럼 불러 모아라//
친구 배신으로 또/ 우울증으로 살고 싶지 않으면/ 컵라면 세 박스를 옆에 두고/ 죽기 전 마지막으로 소설 세 권/ 시집 일곱 권을 꼭 읽은 다음 조용히 죽기를//
사업이 너무 힘들고 어려워/ 세상이 더럽고 더러워, 정말 세상을 떠나고 싶으면/ 죽을 날짜를 한 달 후쯤 정해라 그런 다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일 한두 가지를 하고/ 죽기 전에 꼭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 주거니 받거니 술 한 잔 해라/ 거나하게 취하여 지구를 마구 흔들어 보라/ 그리고 꼭 밤낮없이 모든 것 밀어 제치고/ 큰 가위로 신문지를 오리고 또 오려서/ 온 방 가득 수북이 쌓아라, 유품으로//
이러고도 기어 죽고 싶으면/ 죽기 하루 전에/ 한 시인에게 전화하여/ 자기 죽음이/ 시 한 편이 될 수 있냐고 물어보아라."(죽고 싶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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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 밖으로 초록이 짙다. 생명이 생생하다(사진/한상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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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마음으로 겸손한 교회를 기대한다
박춘식 옹은 "모든 사제란 사제는 시인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하느님이 시인인데, 그분처럼 시인의 눈으로 사물을 바라보지 못하니 교회가 이 모양 이 꼴이라는 게다. 하느님의 이름으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뭔가 가르치려 드는 자들이 도무지 '시인이 눈'을 가지지 못하고, 여는 사람들처럼 물량주의와 희번득한 외양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다. 권력과 장사치들의 교회가 된 것은 바로 사제들과 신자들이 '시심(詩心)'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는 일갈이다.
어떤 사람을 만나든, 어떤 사물을 바라보든, 고추나 배추를 보더라도, 날아가는 새를 보거나 흔들리는 나뭇잎을 보더라도 시인들처럼, 보고 또 보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 결국 그 자리에서 '하느님'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 모든 것이 하느님에게서 났으니 그분을 잉태하고 있다는 말이겠다. 그러면 세상이 달라보인다. 사람이 달라 보인다. 산천초목과 미물들이 달라 보인다. 그 안에 그분이 머무시기 때문이다.
시인의 마음을 지니지 못한 교회는 안타깝기 이를 데 없다. 보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걸 두고 서로 남의 탓을 한다. '네탓 내탓'이란 글을 보면, 어느 교수가 여론조사를 했는데, "교회가 새롭게 발전하기 위해서 누가 먼저 변해야 하는지" 묻자, 사제들은 주교들이, 주교들은 사제들이, 수녀들은 사제와 주교들이 먼저 변해야 한다고 응답했는데, "유독 신자들은 잘 모른다 함께 가야 한다. 우리 신자들이 변해야 한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교회 발전이 안 되는 이유를 남의 탓으로 돌리는 주교 신부들이 매일 아침 미사를 봉헌할 때 제단 앞에서 손으로 자기 가슴을 치며 제 탓이묘 제 탓이요 저의 큰 탓이옵니다 참회기도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도 세 번씩이나 가슴을 치면서" 통회하는데, 입으로만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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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깊어야 호랑이가 모인다. 무슨 뜻일까? 묻지 못했다. (사진/한상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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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신앙으로 항상 그분 안에서
박춘식 옹은 시인의 마음을 잃어버리고, 교회가 외형적인 것에 주목할 때 나타나는 몇가지 현상을 지적하며 신앙의 원천으로 돌아가 지금 교회를 비추어보자고 제안했다. 즉, 예수의 마음과 그분의 태도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먼저 주교품을 받을 때 짚는 '지팡이'를 예로 들었다. 어느 시대 어느 목자이든 '쇠지팡이'를 들고 다니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교황이든 주교이든 대부분 백금이거나, 금장 도금이라는 것이다. 주교의 지팡이는 교회법으로 정해진 바 없다. 이를테면 부산교구의 황철수 주교도 나무지팡이를 사용한다.
나무지팡이가 주교의 복식에 어울리지 않는다면, 제의마저 목자들의 것으로 간편하게 바꾸어야 한다. 현재 가톨릭교회가 행하는 많은 의식과 복장, 관례들은 유다교의 풍습이 많다. 예수가 폐한 것을 교회가 다시 얻어다 쓰고 있는 형국이다. 주교들이 평소 머리에 쓰고 다니는 빨강모자를 보면, 유다교 랍비들이 쓰는 둥근모자가 떠오른다고 말한다. 실상 주교들이 빨강모자를 쓰는 것은, 빨강이 '태양의 빛'이며, '어둠에서 세상을 해방시켜주는 것은 동녘에서 솟아오르는 불덩어리'를 상징하는 황제의 색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천주교회의 교황과 주교들은 '신성불가침'의 빨강모자로 신성함과 권위를 나타냈다.
박춘식 옹의 시집에 붙인 덧거리글 중에 '미국의 흑인대통령'이 있다.
"흑인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저는 주위 사람들에게 천주교회가 미국한테 크게 한방 얻어 맞았다 하고 말했습니다. 로마 교황으로 흑인교황이나 황인종 교황이 먼저 나온 다음에 미국에 흑인 대통령이 나왔다면 천주교회가 앞서간다고 할 수 있겠지만 이제는 몇백 년 차이로 미국이 천주교회를 앞질러 가고 있다고 말햇습니다. 덧붙임. 교황 교황 교황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마다 껄끄러운 것은 왕중왕 또는 황제라는 의미 때문인데 빨리 다른 용어로 바꾸면 좋겠습니다."
박춘식 옹은 특별히 교회에 '겸손'이 강조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가 고백하는 신앙도 현대화되어야 하는데, 그중 삼주덕(三主德)인 '믿음, 소망. 사랑'에 '겸손'을 덧붙여 '사주덕'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환속한 뒤로 다른 환속한 젊은 사제 결혼식에서 주례를 두어 번 선 적이 있었다는데, 물론 성당에서 혼인성사를 못하고 일반 예식장에서 예를 올린 모양이다. 그때마다 박춘식 옹은 겸손을 강조했다. "어느 정도 겸손해야 하는가 하면 아침에 출근하려고 집을 나서는데 이웃집 강아지가 보이면 먼저 그 강아지에게 다가가서 절을 하면서 인사할 정도로 겸손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제생활을 그만두고 환속된 뒤로 아직도 십자가 앞에서는 '감히' 기도를 올리지 못해서, 시장 간 엄마를 부르는 꼬마들처럼 성모님을 부르기 시작했다고 전한다. 시에서 늘 하느님을 '하늘님'이라고 부르는 박춘식 옹은 성모님을 '하느님 어머니', '하늘엄마'로 부르다가, 지금은 하늘맘마, 하늘마마로 부르고 있다고 했다. 마치 불교에서 입버릇처럼 '관세음보살'을 부르듯, 하루에 사천 번 이상 '하늘마마'를 부르면 삶이 바뀌게 된다고 장담한다. 항상 그분을 떠나지 않고 그분 안에서 살기 위함이다. 그게 꼭 하늘마마가 아니라도 좋다. 눈에 들어오는 모든 사물을 두고 물컵 하느님, 나무 하느님, 귀뚜라미 하느님, 하고 부르면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고 말한다. 가능하면 "주님 주님 우리 주님' 하듯이, 사사조로 말을 지어 부르면 습관이 되고, 습관이 세상을 다르게 대하게 만든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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