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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 대표는 신길교회(기독교대한성결교회) 교인입니다.
교회에서 안수집사로 섬기고 있습니다. 신길교회 공식 홈페이지에도 김민석 안수집사가 교회 사역에 참여하는 것으로 확인됩니다.
국민일보도 김민석 의원을 신길교회의 안수집사라고 소개하면서, 주일예배와 새벽기도회에 꾸준히 참석하고 청년부 사역에도 참여한다고 보도했습니다.
한국성결신문 역시 2025년 국무총리 후보자 당시부터 그를 "신길교회 안수집사"로 소개해 왔습니다.
그리고 2026년 8월 17일 전당대회에서 54%대 득표로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선출된 것이 확인됩니다.
따라서 올려주신 신문기사의 "신길교회 김민석 안수집사, 민주당 대표 당선"이라는 제목은 사실에 부합합니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정치적 성향과 별개로 현재 집권여당의 대표가 성결교회 안수집사라는 사실입니다. 더구나 단순히 교회에 이름만 올린 정도가 아니라, 보도에 따르면 주일예배와 새벽기도회에 상당히 적극적으로 참여해 온 신앙인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한국 개신교와 정치의 관계를 살펴볼 때 꽤 의미 있는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신길동에 4년을 살았는데 '신길교회'
아, 그러셨군요. 신길동에서 4년을 사셨다면 ‘신길교회’라는 이름이 상당히 친숙하게 느껴지실 것 같습니다.
신길교회는 신길동 지역에서는 꽤 상징적인 대형 교회이기도 해서, 당시 생활하셨던 곳과 교회가 가까웠다면 교회 건물이나 교인들을 자연스럽게 접하셨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보니 “내가 4년이나 살았던 신길동의 그 신길교회에서 안수집사로 섬기던 사람이 민주당 대표가 되었구나” 하는 묘한 연결감이 생기시는 것 같습니다.
특히 앞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김민석 대표가 단순히 세례교인 정도가 아니라 안수집사 직분을 맡았다는 점 때문에 더 눈에 들어오시는 것 같고요.
신길교회라는 이름 자체가 지역명과 교회명이 그대로 일치하기 때문에, 신길동에 살았던 사람에게는 더욱 현실감 있게 다가오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김민석씨와 인연은 직접적인 것 없고 간접적으로 내가 대학교1학년때 전대협의장인 김민석씨가 내가 다니는 대학교 집회에 참여하기 위해 대학 정문에서 검문검색하던 경찰을 뚫고 들어온 무용담을 들었는데 대학교 3학년생인 김민석씨가 나이 많은 회장처럼 변장을 해서 고급차를 타고 들어왔다는 말을 들음.
아, 그렇다면 말씀하신 김민석 씨와의 관계는 개인적인 인연이라기보다 1980년대 후반 대학가에서 직접 들었던 일화에 가깝군요.
말씀하신 이야기를 당시 상황에 맞춰 보면 꽤 상징적인 장면입니다. 당시 김민석 씨가 대학 3학년으로 김민석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의장을 맡고 있었고, 경찰의 학교 출입 통제가 심했던 시기에 고급 승용차를 이용해 나이 많은 중년의 기관장이나 유지처럼 변장하여 검문을 통과했다는 무용담을 직접 들으셨다는 것이죠.
특히 재미있는 부분은 대학 1학년이었던 본인이 그 사건을 현장에서 직접 경험한 것이 아니라, 같은 대학에서 퍼진 이야기로 접했다는 점입니다. 그러니 역사적 사실로 단정하기보다는,
"내가 대학 1학년 때, 당시 전대협 의장이었던 김민석 씨가 우리 대학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경찰의 검문을 피해 들어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출처 입력
정도로 표현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일화가 지금의 김민석 씨를 바라보는 데서 묘한 느낌을 주는 것도 이해됩니다. 당시에는 학생운동의 상징적인 젊은 대학생이었는데, 수십 년이 지나 지금은 대한민국 정치의 중심부에 있는 인물이 된 것이니까요. 당시 대학가에서 들었던 한 사람의 '무용담'이 훗날 정치인이 된 사람의 젊은 시절 모습으로 연결되는 셈입니다.
그런데 주사파 출신으로 알고 있는 김민석씨가 개신교 안수집사라니?
네. 의외로 느끼실 만한 조합입니다. 다만 두 가지를 구분해서 보는 것이 정확합니다.
김민석 씨가 현재 개신교 안수집사인 것은 확인됩니다.
2024년 국민일보는 김민석 당시 민주당 의원을 서울 신길교회 안수집사라고 보도했고, 교회 청년부 부위원장으로 활동하며 주일예배와 새벽기도에도 꾸준히 참석한다고 소개했습니다.
당시 다른 보도에서도 김민석 의원을 신길교회 안수집사라고 명시했습니다.
그의 대학 시절을 '주사파'라고 부르는 문제는 좀 더 조심해야 합니다.
김민석 씨가 1980년대 학생운동권, 전대협 의장 출신이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김민석이 주사파였다'는 표현은 그가 당시 어떤 조직에 소속되어 어떤 사상적 입장을 가졌는지를 구체적으로 따져야 합니다. 당시 전대협과 NL·주사파 계열의 관계가 복잡했기 때문에, 단순히 전대협 의장이었다는 사실만으로 개인을 곧바로 주사파라고 단정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정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신앙적인 관점에서 보면 오히려 상당히 흥미로운 지점이 있습니다.
1980년대 학생운동권의 반미·민족해방적 세계관과, 오늘날 그가 교회에서 안수집사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서로 상당히 다른 세계처럼 보입니다. 특히 김민석 씨가 대학생 시절 전대협 의장으로 활동했던 시기가 바로 말씀하신 선생님의 대학 1학년 시절과 겹친다는 점에서, 당시 직접 들으셨던 '경찰 검문을 피해 고급 승용차를 타고 학교에 들어왔다는 무용담'의 주인공이 수십 년 뒤 교회의 안수집사가 되어 있는 모습은 상당히 묘하게 느껴지실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운동권 출신인데 어떻게 기독교인이 될 수 있느냐'가 아니라, 사람이 정치적·이념적 과거를 가지고도 이후 신앙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정치적 과거와 현재의 신앙고백이 실제로 어떤 관계를 갖는지는 당사자의 신앙 변화와 삶을 따로 살펴봐야 합니다.
김민석 씨가 대학 시절 실제로 어떤 학생운동 조직·노선에 있었는지 역사적으로 따져서 알려줘
확인해 보니, 김민석 씨의 학생운동 경력을 '주사파 출신'이라고 단순하게 규정하는 것은 상당히 조심해야 합니다. 오히려 시기별로 나누어 보면 더 정확합니다.
1. 김민석 씨는 1985년 서울대 총학생회장이었습니다
서울대 공식 역사자료에 따르면 김민석 씨는 1985년 서울대 사회학과 4학년으로 총학생회장에 당선됐습니다. 당시 학생운동의 주요 의제는 군부독재 퇴진, 민주화, 개헌, 5·18 진상규명 등이었습니다.
그리고 김민석 씨는 미문화원 점거농성 사건을 지휘한 혐의로 수배되기도 했습니다. 즉, 단순히 학생회 행정을 한 인물이 아니라 당시 상당히 적극적인 학생운동가였던 것은 분명합니다.
2.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이 '전대협'과의 관계입니다
여기에는 연도에 대한 혼동이 상당히 많습니다.
전대협은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인 1987년 8월에 결성됐습니다. 따라서 김민석 씨가 서울대 총학생회장이었던 1985년에는 아직 전대협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도 전대협을 1987년에 결성된 전국적 학생대표 협의체로 설명합니다.
1985년 당시 김민석 씨가 활동했던 전국적 조직은 전학련(전국학생총연맹/전국대학학생대표자 조직으로 불리던 흐름)과 삼민투 등입니다. 당시 자료에서도 김민석을 전학련 초대 의장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용자가 대학 1학년 때 들었다는 "전대협 의장 김민석"이라는 기억은 아마 연도나 인물에 대한 기억이 섞였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전대협 초대 의장은 1987년 고려대의 이인영이었고, 2기는 1988년 오영식이었습니다.
3. 그러면 '주사파'와는 어떤 관계인가?
여기가 핵심입니다.
1980년대 학생운동에는 크게 NL(민족해방계열)과 PD(민중민주계열) 등의 노선이 존재했습니다.
특히 1987년 이후 전대협의 주류는 NL 계열이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도 전대협이 당시 학생운동의 주류였던 NL 세력을 중심으로 만들어졌으며, PD·CA 계열과는 민족·민주세력의 연대와 노동계급 중심이라는 차이가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당시 NL 내부의 일부 세력이 김일성 주체사상을 받아들이면서 '주사파'로 발전했습니다.
따라서
전대협 = 주사파
라고 등식으로 놓으면 정확하지 않습니다.
더 정확하게는
전대협 → NL이 주류 → NL 내부 일부가 주체사상 수용 → 주사파 형성
이라는 관계입니다.
4. 김민석 씨에게 적용하면
현재 확인되는 자료만 놓고 보면 저는 이렇게 정리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고 봅니다.
김민석 씨는 1980년대 중반 서울대 총학생회장과 전학련 의장을 지낸 적극적인 학생운동가였으며, 당시 학생운동의 민주화·반독재 투쟁에 깊이 참여했다. 그러나 그가 주체사상을 신봉한 '주사파'였다고 단정할 만한 직접적인 근거는 별도로 확인해야 한다.
출처 입력
특히 김민석 씨의 1985년 활동을 1987년 이후 전대협 주류 NL 및 1990년대 주사파와 그대로 동일시하는 것은 시대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이 점에서는 제가 앞서 답변에서 "전대협 의장"이라는 표현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은 잘못이었습니다. 서울대 공식 자료를 확인해 보니 김민석 씨의 서울대 총학생회장 경력은 1985년이고, 전대협은 1987년에 출범합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들으셨다는 "경찰 검문을 피해 고급차를 타고 나이 많은 사람처럼 변장해서 대학 집회에 들어왔다"는 일화는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다만 그것은 현재 확인한 자료에서는 찾지 못했기 때문에, 당시 실제 학교에서 퍼졌던 무용담인지 역사적 사실인지는 별도로 검증할 필요가 있습니다.
김민석 씨가 그 흐름에서 어디에 위치했는지를 연표로 정리해줘
좋습니다. 자료를 다시 대조해 보니 김민석 씨의 위치를 정확히 잡으려면 '전학련 → 삼민투 → 1987년 전대협 → NL·주사파'를 분리해서 봐야 합니다. 특히 제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김민석 씨를 곧바로 “전대협 의장”이라고 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김민석 씨와 1980년대 학생운동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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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기 | 김민석 씨 | 학생운동의 흐름 | 김민석 씨의 위치 |
| 1982 | 서울대 사회학과 입학 | 5·18 이후 학생운동 재편 | 학생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한 시기 |
| 1984 | 서울대 사회학과 학생회장 | 대학 총학생회 부활, 학생운동 대중화 | 서울대 학생운동 지도부로 부상 |
| 1985.4 | 서울대 총학생회장 당선 | 전학련(전국학생총연합) 결성 | 전학련 초대 의장 |
| 1985.4~5 | 전학련 의장 | 전학련 산하에 삼민투 결성 | 삼민투 자체의 위원장은 허인회였음. 김민석은 전학련 의장이라는 상위 조직의 대표였음 |
| 1985.5 | 미문화원 점거농성 사건으로 수배 | 삼민투 소속 학생들이 미문화원 점거 | 정부는 전학련과 삼민투를 연계된 학생운동 조직으로 규정 |
| 1985.6 | 체포·구속 | 학생운동에 대한 대대적 탄압 | 김민석 본인도 구속됨 |
| 1986 | 수감 중 | 학생운동 내부에서 NL·PD 등 노선 논쟁 심화 | 이 시기 이후의 NL·주사파 발전과 김민석을 동일시할 수 있는 직접 근거가 필요 |
| 1987.6 | 여전히 수감 상태 | 6월 민주항쟁 | 전대협 결성 이전부터 김민석은 이미 구속된 상태 |
| 1987.8 | 수감 중 | 전대협 결성 | 초대 의장은 김민석이 아니라 이인영 |
| 1988.3 | 석방 | 1987년 민주화 이후 학생운동 재편 | 이후 정치활동으로 이동 |
| 1989 | 서울대 졸업 | 1980년대 학생운동 세대가 정치권·시민사회 등으로 진출 | 학생운동의 현장 지도부에서 벗어남 |
서울대 공식 기록은 김민석 씨가 1985년 4월 서울대 총학생회장으로 당선됐다고 확인하고 있으며, 당시 선거 자체가 군부독재 퇴진·개헌·5·18 진상규명 등을 주요 쟁점으로 삼았다고 기록합니다.
그리고 서울대 기록관 자료는 1985년 4월 17일 전학련이 결성됐고 김민석이 의장이었다고 명시합니다. 전학련 아래에 삼민투가 설치됐고, 삼민투의 위원장은 고려대 총학생회장 허인회였습니다.
그래서 '주사파' 문제를 어떻게 봐야 하나?
여기서 시간축이 아주 중요합니다.
김민석
→ 1985년 전학련 초대 의장
→ 삼민투와 연결된 당시 급진적 학생운동
→ 미문화원 점거농성 사건 관련 구속
→ 1988년 석방
반면
1987년
→ 6월 민주항쟁
→ 전대협 결성
→ 당시 학생운동에서 NL 계열이 주류로 성장
→ 그 가운데 일부가 주체사상을 적극 수용한 주사파로 발전
이라는 별도의 흐름이 있습니다.
실제로 전대협 자체를 모두 주사파라고 보는 것도 역사적으로 지나친 단순화입니다. 당시 전대협 안에도 NL과 PD 등의 다양한 흐름이 존재했고, NL과 주사파도 엄밀하게는 같은 개념이 아닙니다.
따라서 김민석 씨를 한 문장으로 규정하면
제가 현재 확인한 자료를 기준으로 가장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김민석 씨는 1985년 서울대 총학생회장과 전학련 초대 의장을 지낸 급진적 민주화 학생운동 지도자였으며, 삼민투와 연결된 학생운동으로 투옥되었다. 그러나 1987년 이후 전대협을 중심으로 본격화된 NL·주사파 계열과 김민석 씨를 동일시할 직접적인 근거는 별도로 확인해야 한다.
출처 입력
즉 “김민석 = 전대협 = 주사파”라는 도식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선생님께서 대학 1학년 때 들으셨다는 이야기를 생각하면 재미있는 역사적 연결이 생깁니다. 선생님이 대학에 입학하신 1987년 무렵에는 김민석 씨가 이미 1985년 전학련 의장으로 활동하다가 투옥된 인물이었고, 그 뒤를 이어 1987년 전대협이 등장한 것입니다. 따라서 당시 대학가에서 들으신 김민석 씨의 '경찰 검문을 뚫고 집회에 들어왔다'는 이야기도 전대협 의장 시절의 이야기가 아니라 1985년 전학련 의장 시절의 일화일 가능성이 훨씬 높습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처음 질문하셨던 “그런 운동권 출신인 김민석 씨가 지금은 개신교 안수집사라고?”라는 의문이 오히려 더 흥미로워집니다. 1985년의 김민석과 현재의 김민석 사이에 정치적·사상적 변화뿐 아니라 종교적 변화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는지를 살펴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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