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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처녀 비유(2) : 깨어 있어라
마태복음 25장 1-13절 / 1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2그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지라 3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4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5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6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7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 새 8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달라 하거늘 9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와 너희의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10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11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12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13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예수님께서 '열 처녀 비유'를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초점은 13절인 "그런즉 깨어 있어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처럼 말씀하신 주님의 오심과 관련하여 깨어 있어 주님을 맞이함에 있어야 할 것을 말씀하시는 것은 마태복음 24장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는 종말론 강화에서 예루살렘 성전의 무너짐과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세상 끝날에 있을 일과 관련해서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보게 될 가장 가까운 재난으로는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짐이 있게 되며 마사다 요새 전투를 끝으로 막을 내리는 로마 군대와 유대인간에 치르게 될 전쟁(A.D. 66-73)의 참혹함이었습니다. 출애굽하여 광야에 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겪은 성막을 통한 하나님의 임재에 의한 하나님과의 동행은 하나님에게 떠나 있는 이스라엘의 죄악으로 건물로만 덩그러니 남아 있는 실정이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솔로몬에 의해서 성전이 건축된 이래 수차례 겪은 전쟁에 의해 파괴와 재건과 중건이 있게 되는 것에서 보게 됩니다. 솔로몬에 의해 건축된 성전은 이후에 있게 되는 성전에 의해 ‘솔로몬 성전’ 또는 ‘제1성전’으로 불립니다. 이 성전은 B.C. 966년에 건축이 시작되어서 약 7년 걸린 공사 끝에 959년에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에서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칠 제단을 쌓았던 곳으로 여겨지는 곳에 세워졌습니다. 이 성전은 이스라엘에게서 유일한 것이나, 이스라엘 왕국이 남왕국 유다와 북왕국 이스라엘로 분열되면서 북왕국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 1세가 예루살렘 외의 곳인 최남단 벧엘과 최북단 단에 신전을 세움으로써 나라와 함께 성전 또한 분열에 있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아히야를 통해서 여로보암에게 예언해 주신 다윗이 걸어왔던 길인 다윗처럼 하나님께서 명하는 바를 모두 지키고 하나님이 지시하는 길을 가며 하나님의 규정과 명령을 지켜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 것을 말씀하시며,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여로보암과 함께 하여 다윗의 왕조를 든든히 세워주었듯이 그의 왕조도 든든히 세워 그에게 이스라엘을 맡기실 것이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 악한 죄에 있는 것이었습니다. 여로보암 1세는 최남단 벧엘에 그리고 최북단 단에 각각 신전(산당)을 세우고 여기에 금송아지를 놓고서는 하나님을 대신하는 형상으로 삼아 숭배하게 하였으며 자기 마음대로 일반 백성에게서 제사장을 세우고 제멋대로 정한 종교 절기에 따라 제사를 지냄으로써 하나님께서 아히야를 통해 예언해 주신 바의 다윗 왕의 길을 따라가지 않고 악을 행하고 하나님을 배신하여 노엽게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아히야에게 여로보암 왕가에 속한 남자는 모두 죽임을 당하고 그 집이 멸절될 것을 예언하게 하였습니다. 그에 따라서 여로보암 1세는 유다의 아비얌(아비야) 왕과의 전쟁에서 크게 패한 후 죽었으며, 그의 뒤를 이은 나답은 2년 만에 바아사에게 죽임을 당하고 왕위를 찬탈 당함으로써 여로보암 왕조는 멸문하였습니다. 그러한데도 이 여로보암의 길을 북왕국 이스라엘 열왕들도 그대로 따름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남왕국 유다의 왕 20명 중에서 12명이 북왕국 이스라엘이 걸은 그 여로보암의 길을 걷는 것에 있어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함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켰습니다. 하여, 북왕국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 B.C. 722년(208년 존속)에 남왕국 유다는 바벨론에 의해 B.C. 586(344년 존속)년에 각각 멸망당하였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성전은 계속 존속시켜 나가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게 하신 성전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침공에 의해 파괴되었는데 B.C 605년에 유다를 1차 침공하였으며, B.C. 587년에 2차 침공하면서 성전 기구와 보물을 탈취해 갔습니다. 그리고 B.C. 586에서의 3차 침공에 의해서 예루살렘 성전은 완전히 파괴당하였습니다.3) 이는 이스라엘에게서 큰 치욕일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크게 모욕을 당하는 사건이었습니다. 이를 요나서에서 보게 되는 니느웨 성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선포에 왕과 온 백성이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며 하나님께 용서를 구한 것에 나타내신 하나님의 위대하심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때 유대인은 큰 낙심과 낙담에 있으며 슬픔에 있었습니다. 그러한 유대인에게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참된 신이심을 여러 이적과 환상을 통해서 보이시며 그들에게 가지신 하나님의 계획을 70이레를 통해 알려주심으로 유대인의 마음을 하나님께 있도록 하시며 바벨론을 멸망시킨 메데 바사에 이어지는 바의 고레스 왕의 마음을 움직여 바벨론 포로로 있는 유대인이 귀환하게 하여 훼파된 성전의 재건에 있게 하셨습니다. 그에 따라서 바벨론 포로의 귀환이 3차에 걸쳐 있게 되었습니다. 이 성전은 536년에 재건을 시작하였으나 사마리아인들의 방해로 16년간 일시 중단되었다가 520년에 다시 착공이 시작되어 4년 5개월이 걸린 끝에 516년에 완공되었습니다. 이 성전은 제1성전인 솔로몬 성전에 이은 ‘제2성전’ 또는 ‘스룹바벨 성전’이라고 불리는데, 이전의 솔로몬 성전에 비하면 훨씬 축소된 규모였습니다. 하지만 성전은 그 크기가 크고 웅장하든 그렇지 못하고 작고 초라하든 건축된 건물의 모양에 있지 않았습니다. 성전에는 하나님이 임재하여 계시며 자신의 백성들과 함께 하시며 그들을 다스림에 있는 하나님의 언약괘가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고레스 왕의 칙령에 의해 성전이 재건되기는 했으나 솔로몬 성전에 갖춰있던 의식용 제구들이 없었으며, 성전에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함께 하시는 임재요 통치인 법궤(언약괘)가 없었습니다.
그러면 이 법괘가 언제, 어떤 과정에서 없어졌는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유대전통을 따른 프라이스(Price)는 요시야가 법궤가 바벨론 사람들에 의해서 약탈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성전 산(Temple Mount) 아래 있는 한 밀실에 언약궤를 숨겼다고 말합니다.2) 그런가 하면 최근에 데이(Day)는 법궤가 사라진 것에 대해서 열두 가지의 다른 견해를 연구하고는 포로기 쯤에 사라졌는데 가장 가능성이 있는 것은 주전 586년 성전과 함께 파괴되었다는 견해를 가졌습니다. 이러한 가능성을 주장하는 견해가 있으며 대체적으로는 후자의 견해를 따르기는 하지만, 정작 성경은 하나님께서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습니다. 법궤는 하나님께서 권능으로 주신 것이기에 사람의 손으로 파괴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것에서 어떤 방법으로든지 사람에 의해서 파괴되어 없어졌다는 추측에 대해서는 단호히 거부하며 반대합니다. 그러면 어떤 이해에 있어야 하는지는 하나님의 구속사와 관련해서 보게 됩니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서 예언하게 하셨는데 이스라엘이 번성할 것이어서 온 땅에 많아질 것인데, 그때가 되면 더 이상 언약궤가 존속하지 않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언약궤는 더 이상 상자의 형태에 의해서가 아닌 온 세상으로부터 나와 예루살렘 성전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하나님 백성의 마음판에 의해서 있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렘 3:16-18).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구속 사역에 의해서 있게 되는 것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언약을 새기시고 인 치실 성령님의 강림으로 세워진 교회를 통하여 완전하게 대체하게 됩니다. 그리고 둘째는,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의 기록을 통해서 오경과 성문서와 시가서의 기록에 있게 하셨으며, 그 기록이 구약성경으로 완성되어 가는 점진적 과정에서 법궤에 의해서 보존되어왔던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하시는 언약의 말씀이 성경의 기록으로 있게 되는 때문에 하나님에 의해서 사라지게 하셨다는 이해를 갖습니다. 그것이 요시야 왕이 했을 것이라고 보는 밀실로의 감춤이든지 바벨론 왕에 의한 파괴라든지 무슨 방법에 의해서 이든지 간에 그 일은 구약성경의 기록과 그 완성에 따릅니다. 셋째는, 무엇보다 법궤에 보존되어 온 하나님의 언약, 그리고 성경의 기록에 의해서 계시해 주시고 있는 말씀의 실체인 그리스도께서 오실 것에 있을 것이기 때문에 이전에 필요했던 임시적으로 존재하게 했던 법궤를 하나님께서 거두셨을 것입니다.
그에 따라서 하나님은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했던 유대인을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시고, 그들에게 제사장이면서 학사(서기관)인 에스라를 통해서 유대인의 절기인 7월 1일 율법의 낭독과 그에 대한 설명이 있게 하여 하나님께로 마음이 있게 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게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의 마음에 직접 하나님의 언약을 두시고 이를 따름에서 하나님을 경외함에 있는 진실함에 있게 하시는 것에서 입니다. 그러한데 성전 재건에 있고, 에스라가 낭독하는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울기도 하였으며, 총독 느헤미야와 에스라와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기를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며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 힘이라고 마음을 다독거려줌에 위로와 격려를 받기도 하고, 뭇 백성의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율법 말씀을 밝히 알고자 하여 학사 에스라가 있는 곳에 모였으며, 에스라는 7월 1일 첫날부터 시작하여 7월 10일의 대속죄일, 그리고 7월 15일부터 21일까지 한 주간 계속되는 초막절의 끝 날까지 날마다 하나님의 율법 책을 낭독하였습니다만(느 8:6, 9, 10, 13, 18), 이후의 유대인이 보인 모습은 그들의 진심이 하나님께 있지 않았으니 하나님을 공경함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바사 제국을 멸망시킨 그리스의 알렉산더 대왕 B.C. 167-164년에 유대인을 알렉산더 대왕 사후 분열된 왕조 중 하나인 시리아의 셀류쿠스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의 손에 붙여 많은 사람이 죽임을 당할 뿐만 아니라 또 다시 성전이 파괴되며 제우스 신상이 세워지고 제단에 돼지 피가 뿌려지며,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 자신의 모습의 동상을 세우며 그 발아래에 제사를 지내게 함으로써 여호와이신 하나님이 모독당하는 사건이 있게 하셨다가 하스몬 가문에 속한 제사장 맛다디아와 그의 다섯째 아들 마카비가 반기를 들어 셀류쿠스 왕조에 전쟁을 일으키게 하여 로마로부터 정치적으로 독립하고서 파괴된 성전을 수리하여 제단을 성결케 하셨습니다. 이때의 독립으로 유다는 하스몬가에 의해 A.D. 164-64년에 이르는 약 1세기 동안 팔레스타인의 자치지구를 건립했습니다. 그러나 이 독립은 로마 장군 폼페이우스에 의해 종식되었습니다.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에 의해서 손상되고 더럽혀진 성전은 하스몬가에 의해 다시 수리되고 정화된 모습에 있는 듯 했으나 유대인은 B.C. 64년에 로마의 폼페이우스 장군에 의해서 성전이 또다시 침범당하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폼페이우스 장군의 공격으로 1만 2천 명에 이르는 많은 유대인들이 죽임을 당했으며, 사두개인들이 지성소에까지 숨어들어가 저항하는 상황에 폼페이우스 장군과 그의 부하들이 지성소에까지 침범하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시작된 로마의 팔레스타인 지배는 A.D. 500년까지 지속되었습니다. 이렇게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와 폼페이우스의 침공에 의한 두 사건에서 예루살렘에 세워진 하나님의 성전은 철저하게 파괴당하고 또한 치욕을 당하였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은 A.D. 70년에 디도 장군에 의해서 완전히 파괴되는 무너짐에 있었습니다. 이는 유대인의 마음에 하나님을 사랑하며 공경함이 없는 가운데서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동행도 통치도, 영광스런 하나님의 위엄도 의도 거룩도 없는 아무 것도 아닌 단지 돌로 지어진 건물에 불과할 뿐인데 따른 것입니다.
이것에서 알 수 있는 대로 사람의 마음이 하나님이 거하신 성전에 있지 않고서는 그의 몸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날, 곧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날에 예루살렘 성전이 돌 위에 돌 하나 얹혀 있지 않게 파괴되듯이 무너집니다. 그것으로 말씀해 주시는 것이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가 시작되는 때로부터 세상 끝날 주님께서 세상에 다시 오시는 날까지 있게 되는 재난(재앙)의 이야기였습니다. 나라와 나라 간에 전쟁이 일어나고, 기근이 지진이 발생하는 등 온갖 재난에 의해서 사람들은 속절없이 죽음의 해를 당합니다. 이는 산으로 도망치기 바쁘며 미처 집 안의 가산을 챙길 겨를이 없이 당할 뿐만 아니라 아이를 임신하고 젖을 먹이는 여자들에게는 더 큰 불행이니, 이러한 재난이 겨울이나 안식일에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구할 뿐입니다. 로마의 폼페이우스 장군이 예루살렘을 공격한 때가 바로 안식일이었으며, 이때 유대인 1만 2천 명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여기에는 건장한 남자만이 아닙니다. 여자도 아이도 노인도 무릇 살아 있는 모든 대상이 재난을 당하는 공격 대상입니다. A.D. 70년에 있은 디도 장군의 공격에 의해서는 110만 명이 죽임을 당했다는 역사가 요세푸스의 기록이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 재난의 끝이 어떤 것이겠느냐? 인자가 능력과 큰 영광으로 세상에 다시 오시는 날이 이르는 것이다. 그 날에는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할 것이다”라고 하시면서 재난의 시작으로부터 재난의 끝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이 겪는 재난은 하나님이 없는 건물은 파괴되어 그 무너짐이 심하듯이 사람 또한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이 없으면 단지 육체일 뿐이어서 그 무너짐이 먼지와 티끌로 사라질 것이나 그것을 겪는 것이 전부 다는 아니라고 말입니다. 적그리스도가 일어나고 거짓 선지자가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할 것이어서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이 식어지고 배반하여 그리스도에게서 떠나는 일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서 해 주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 저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마 24:13-14, 31)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설교 끝에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라고 하시면서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마 7:24-27)라고 하셨는데, 서로 다른 상황에 있게 되는 원인은 다름 아닌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름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받아 그분의 사람인 교회로 섬에 있습니다. 하여,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않음에 있으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에서 있어지는 일이 예수님의 종말론 강화에서 말씀해 주시고 있는 것이 “너희에게 이 모든 일이 있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는 천국 복음의 전파를 통해 자신의 택하신 백성을 찾아 그리스도 안에로 부르시고 그들로 온 땅 모든 곳에 그리스도와 하나된 교회로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를 보내 그들을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십니다. 이를 깨닫고 주께 믿음을 굳건히 두어 끝까지 믿음의 인내에 있은 자는 그가 달려갈 길을 모두 마친 결과인 주님의 영접에 있어 주님과 함께 그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 주님이 기뻐하시는 기쁨을 그 또한 같이 누릴 것입니다. 하여, 예수님께서 종말론 강화를 계속해서 말씀해 오시는 중에 ‘열 처녀 비유’에 의해서도 또한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즉 깨어 있어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마 25:13). 이는 역설적인 표현으로 “주님께서 자신의 신부와 함께 혼인잔치를 치르기 위해서 반드시 오시니, 그 날과 그 시가 언제여도 주님을 맞이함에 있는 깨어 있는 자가 되어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눈을 돌려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의 깨어 있지 않은 모습들을 보면 무슨 생각이 들며 무슨 소리가 들리는지요. 예루살렘 성전 건물이 파괴되어 무너지듯이 그들의 몸이 속절없이 파괴되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며 그 모습이 연상됩니다. 해서 무슨 생각이 드는 지요. 불쌍함입니다. 긍휼히 여길 수만 있다면 그 무너짐으로부터 구원해냈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그러한데, 그 모습에 우리들이 들어 있어 같은 모습에 있는 길을 걷고 있는 것인가요?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성령님이 내주해 계심을 믿습니다. 그러면 그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서 이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여로보암이 걸었던 악한 죄의 길을 걷고 있을 수 있는 것에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을 두드리시고 깨어 있어 정신 번쩍 나 있게 하십니다.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의 미혹이 있어 진리의 분별에 있지 못하게 하고,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이 식어지고 믿음에서 떠나 배반과 배교에 있게 하기에 “그런즉, 깨어 있어라”라고 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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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남왕국 유다가 예루살렘 성전이 훼파되며 멸망하는 연대에 대해서는 기존의 연대기 견해와 다른 견해가 있다. 성경과학연구소의 김명현 교수는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예루살렘 1차 침공 시기를 “여호야김(B.C. 609-598)의 통치 제3년(단 1:1-2)”을 잘못 번역한 오류라고 본다. 그는 이 기록을 유다 왕 여호야김이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지배에 있어 조공을 바친 지 제3년 되는 때로 본다. 따라서 유다 왕 여호야김이 왕이 된지 3년이 아닌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군대를 이끌고 와 유다 왕 여호야김을 굴복시키고 바벨론의 속국이 되게 함으로 여호야김이 조공을 바쳐 느부갓네살 왕의 다스림을 받은 지 제3년이 되는 때에 여호야김이 반기를 들어 조공 바치는 것을 거부하자 느부갓네살이 이를 빌미로 예루살렘을 침공하여 여호야김을 포로로 잡아간 것으로 본다. 그렇다면 느부갓네살의 제1차 예루살렘 침공은 여호야김이 유다의 왕이 된지 재위 3년이 아닌 제위 8년에서 3년이 지난 제11년 때인 B.C. 599에 있은 일이라고 보는 견해에 있다. 그리고 2차 침공 시기를 느부갓네살 왕에 의해 여호야김의 뒤를 이은 여호야긴이 남왕국 유다를 다스린 3개월 후인 B.C. 598년, 3차 침공 시기를 남왕국 유다의 마지막 왕이 되는 시드기야 때인 B.C. 588년이라는 주장을 하는 견해에 있다. 그에 따라서 남왕국 유다의 바벨론 포로 시기를 1차 B.C. 599년, 2차 B.C. 598년, 3차 B.C. 588년으로 보는데, 1, 2차 포로 시기를 3개월의 시차를 가지고서 한 번에 있은 것으로 보고 묶어 1차 포로 시기로 보고, 마지막 왕 시드기야 때를 2차 포로 시기로 본다. 그리고 유다 왕국의 멸망 이후 느부갓네살 제23년인 B.C. 583년에 있은 애굽 정벌 후 퇴각시에 또 한 번 예루살렘을 공격하여 유대인을 포로로 잡아가는 일이 있었는데 이를 3차 포로 시기로 본다. 그러므로 세부적으로는 제4차에 걸친 포로 시기가 있었다고 본다. 이러한 견해는 유진 폴 스티히(Eugene W. Faulstich)의 연대기 견해에 의한 것으로, 기존의 남왕국 유다의 멸망과 바벨론 포로 시기와 함께 대조하여 그 차이를 파악함으로 보다 정확한 연대기의 이해를 가지는데 도움이 된다.
2) 이 장소는 현재 바위사원(the Dome of the Rock)이 있는 곳이고 무슬림이 관리하고 있다. 언약궤가 이곳에 실제로 존재하는지는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