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키드론 골짜기
오늘 제1독서는 ‘고난받는 주님의 종’ 셋째 노래입니다. ‘하느님께서 도와주실 것을 알기에 얼굴을 차돌처럼 만들고’ 의연히 십자가의 길을 가신 예수님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입니다. 예수님은 최후의 만찬을 하신 뒤, 예루살렘 동쪽에 자리한 키드론 골짜기를 따라 겟세마니로 가셨다가 대사제의 무리에게 체포됩니다. 체포되신 뒤에는 다시 키드론 골짜기를 거쳐 대사제의 관저로 끌려가십니다. 그래서 키드론 골짜기는 예수님의 자취가 적어도 두 번은 남은 곳입니다. 당시 대사제의 관저로 추정되는 장소는 현재 ‘갈리칸투’라 칭해지는 성지인데요, 그 이름은 ‘닭이 울다.’라는 뜻입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불을 쬐며 사태를 지켜보던 베드로가 닭이 울기 전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 부인했던 장소임을 알려주는 지명입니다. 갈리칸투에는 당시 사람들이 사용했고 예수님도 밟으셨을 돌 계단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주님께서 걸으신 키드론 골짜기는 요엘 예언서에 나오는 “여호사팟 골짜기”과 같은 곳으로 추정됩니다. 여호사팟 골짜기는 요엘 4,2에서 주님 심판의 장소로 등장합니다. 유다 임금 여호사팟과 이름이 같은데, 그 뜻은 ‘주님께서 심판하시다.’입니다. 이곳이 심판의 장소라는 점은 요엘 4,14에 나오는 또 다른 명칭, “결판의 골짜기”에서도 암시됩니다. 여기서 ‘결판’으로 옮겨진 히브리어 [하루츠]는 ‘타작기’라는 뜻도 지닙니다. 그러므로 ‘결판의 골짜기’는 ‘타작마당’이라는 의미가 될 수 있습니다. 타작마당은 수확기에 바빠지는 곳으로 낟가리에서 알곡과 쭉정이를 분리하는 장소지요. 이런 점 때문에 타작마당은 성경에서 평생 쌓은 선과 악을 헤아려 의인과 악인을 구분하는 심판장의 표상으로 자주 쓰였습니다(마태 3,12; 루카 3,17 등).
여호사팟 골짜기가 키드론 골짜기와 같은 곳이라고 확실히 단정짓기 어려운 건 사실입니다. 어떤 학자들은 여호사팟 골짜기가 실재 지명이 아니라 미래의 심판장을 가리키는 상징이라고 봤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골짜기의 이름이 유다 임금 여호사팟과 같은 점에 착안하여 여호사팟이 이민족들을 상대로 승리한, 2역대 20,26에 나오는 “브라카 골짜기”라고도 풀이했습니다. 하지만 2역대 20,20에 따르면, 브라카 골짜기는 예루살렘이 아닌 트코아 가까이에 있는 곳이므로, 요엘서의 문맥과 어울리지 않습니다. 요엘 4,16에서는 하느님께서 호령하시는 곳이 예루살렘의 시온산으로 예고되기 때문입니다. 이를 종합하여 교부 에우세비우스는 즈카 14,2-5에 기초해 여호사팟 골짜기를 키드론 골짜기로 풀이하였습니다.
만약 여호사팟 골짜기가 키드론 골짜기라면, 유다인들이 예부터 키드론 골짜기에 무덤을 조성한 데는 이유가 있는 셈입니다. 바로 심판의 장소라는 상징성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심판의 장소로 예고된 이 골짜기에서 속죄 제물이 되는 걸 마다하지 않으심으로써 우리 인간이 심판을 피할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요엘서도 여호사팟 골짜기에서 ‘심판’을 받는 이들은 이민족, 곧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지 않는 이들이며, ‘구원’을 얻는 이들은 하느님의 백성이라고 밝힙니다
* 김명숙 소피아 -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박사, 광주가톨릭대학교 구약학 교수, 전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저서 「에제키엘서」 「예레미야서 1-25장」 「예레미야서 26-52장」 「구세사 산책: 에덴에서 약속의 땅까지」
[2024년 9월 15일(나해) 연중 제24주일 의정부주보 2면, 김명숙 소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