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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주 기행] 맑은 산성물로 빚은 남한산성 소주 | |
#독특한 향과 맛
‘누룩이 좋으면 맛있는 술은 저절로 따라붙게 된다.’
남한산성 소주는 누룩과 술을 빚을 때에 재래식 엿을 사용한다. 전통 술을 빚을 때 당화력(糖化力)을 강화하기 위해 엿기름을 넣는 경우는 있지만 누룩을 빚을 때부터 곧바로 엿을 넣는 경우는 드물다.
남한산성 소주의 맛과 향이 독특한 것도 이 누룩 때문이다. 한모금 마시면 엷은 전류가 흐르는 듯하고, 혀끝이 알싸해지면서 입안 가득히 환하게 퍼진다. 그러면서 여인의 향기와도 같은 알듯 모를 듯한 그윽한 향기가 배어나오는데 그 향과 맛을 음미할 만하다.
처음 거른 술은 알코올 도수가 85도 이상이다. 나중에 점차 주정도가 낮아지므로 이를 섞어 40도가 되도록 한다. 용기에 담은 후 밀봉만 잘해두면 오래 저장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술맛이 무르익어 소주의 맛은 더욱 좋아진다.
죽엽색의 아름다운 빛깔을 간직한 산성소주는 다른 약재가 들어가지 않는 ‘맑은 술’이다. 높은 알코올 함량에도 불구하고 맛은 아주 부드럽다. 특히 아무리 많이 마셔도 숙취가 없어 애주가로부터 사랑받고 있다. 여러가지 유기질과 각종 향미 성분이 다양하게 함유돼 있어 적당히 마시면 식욕 증진, 혈액순환 촉진, 피로회복에 효과가 있다.
#유래
흔히 산성에서 만든 술하면 성벽을 쌓던 노역자나 성벽을 지키던 무인들이 힘겨운 노동을 위로하기 위해 마시던 ‘막술’쯤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남한산성 소주는 이러한 산성 술과 차원이 다르다.
남한산성은 작은 서울이란 소리를 들을 정도로 숙종때 이미 1,000호가 모여 살던 번성했던 곳이다. 서울에 근접해 부자가 많았던 이곳은 수준높은 문화생활을 누렸다고 한다. 남한산성 소주의 족보는 희미하지만 그 안에서 배태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여유있는 생활을 하던 이들이 궁중식을 본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건강주로 산성소주를 만들어 마시면서 유래돼 조선말기까지 널리 애용됐다고 한다.
그러나 남한산성에 대대로 살면서 술을 빚었던 이종숙씨(1960년대 작고)가 서울 송파구로 이사를 해 양조장을 경영하면서 한때 술 이름도 ‘백제소주’로 바뀌기도 했다. 지금도 송파에 살고 있는 나이든 사람들은 이 백제소주를 기억한다. 이종숙씨가 술도가를 그만둔 뒤로 그 술도가에서 술을 빚었던 강신만씨(1971년 작고)가 둘째 아들인 강석필씨(70)에게 술 빚는 법을 전수했다. 강석필씨는 아버지에게 배운 술을 재현하여 1994년에 경기도 무형문화재 13호, 남한산성 소주 기능보유자가 되었다. 지금은 아들 용구씨가 그 뒤를 이어가고 있어 3대가 남한산성 소주 기능 보유자가 됐다.
#붕어찜과 생선회 등 안주가 별미
산성소주는 알코올 도수가 높은 만큼 안주로는 육류가 무난하다. 하지만 남한산성 소주의 진수를 맛보려면 쏘가리회 등 생선회가 좋다고 애주가들은 평한다. 입안을 개운하게 하면서 소주의 독특한 향취를 더 음미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여기에 물좋은 팔당호에서 갓 잡아올린 싱싱한 참붕어로 만든 매콤하고 담백한 ‘붕어찜’ 요리는 최고의 안주로 꼽히고 있다.
남한산성 소주는 200·400·700㎖ 짜리 세종류가 있는데 수작업으로 만드는 관계로 생산량이 그리 많지 않아 면세점 또는 우체국 쇼핑 등을 통하면 구입할 수 있다. |
[전통주 기행] 백제시대부터 내려온 충남 가야곡 왕주 | |
예부터 술맛은 ‘물맛’이고 ‘쌀맛’이라고 했다. 이는 물과 쌀에 따라 술의 맛이 정해진다는 뜻이다.
가야곡 왕주를 얘기할 때 물맛과 쌀맛을 얘기하는 사람이 많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충남 논산은 예나 지금이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곡창지대다. 가도 가도 논이다. 당연히 쌀이 많다. 그리고 물이 깨끗하다. 옆으로 금강이 지난다. 쌀이나 물을 오염시킬 만한 것도 없다. 청정하다. 여기서 나온 쌀과 물이 ‘왕주’가 되었다. 왕주는 백제시대부터 내려온 우리의 술로 거기에는 백제인의 얼과 한이 서려 있다.
#옛날엔 어주, 요즘은 왕주
쌀이 많이 나는 가야곡 등 충남 논산 일대에는 예나 지금이나 술이 많았다. 백제시대부터 이집 저집 곡주를 빚었다. 그러나 조선시대 중엽 금주령이 내려지면서 쌀로 술을 만드는 것이 어려워졌다. 사람들은 산과 들에서 채취한 약초를 넣어 술을 담그기 시작했다. 이른바 약주다. 조선시대 말 다시 곡주로 술을 만드는 것이 가능해지자 사람들은 곡주와 약주를 접목시키기 시작했다. 가야곡 사람들이 만들어낸 이 술은 그 맛과 약효 면에서 탁월했다. 한양까지 소문이 났다. 왕실에 진상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어주(御酒)’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것이 바로 후에 ‘왕주(王酒)’라는 이름으로 바뀐 바로 그 술이다.
‘궁중술’을 대표하는 왕주는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돼 있는 종묘대제(중요무형문화재 56호)에서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 왕주의 전통은 명인 남상란씨(59)에 의해 이어지고 있다. 남씨의 친정은 대대로 왕주를 빚어왔다.
#왕실에 진상하던 그 술 그대로
‘왕주는 향으로 마신다’는 얘기가 있다. 그 절묘한 향. 술잔을 입에 대는 순간 향은 코를 타고 온몸으로 퍼진다. 무슨 향일까. 누구도 딱 부러지게 얘기하지 못한다. 야생국화·구기자·솔잎·홍삼·매실 등 갖가지 재료가 은은한 향을 뿜어내기 때문이다.
술 얘기에 빠뜨릴 수 없는 게 또 하나 있다. 누룩이다. 누룩은 술의 원천이다. 왕주에 쓰이는 누룩은 특별하게 만들어 진다. 매실이 들어간다. 매실은 누룩 특유의 쾌쾌한 냄새를 제거하는 데 효과가 있다. 누룩을 누룩답게 하는 구수한 향기는 그대로 남는다. 이 누룩의 향기는 고향을 떠올리게 한다. 특별하게 만들어진 이 누룩은 술의 맛에, 그리고 술의 향기에 마지막 ‘점’을 찍는다.
야생국화는 두통을 낫게 하고 눈과 귀를 밝게 한다. 식욕증진·정장·원기회복 등에 좋고 고혈압에도 효험이 있다. 구기자는 어떤가. 뼈와 근육을 튼튼하게 하고 정력을 증진시킨다. 혈액순환을 촉진시켜 성인병 예방에 효능이 있다.
솔잎은 매일 먹으면 중풍을 예방할 수 있다고 한다. 홍삼이 몸에 좋은 것은 누구나 아는 일. 항당뇨 작용을 하고 알코올 해독을 촉진한다. 이런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왕주를 ‘보신(補身)하는 술’이라고 한다. 이런 약재를 넣어 만든 왕주는 늘 밝고 투명한 황금색을 띤다.
왕주는 아무리 마셔도 숙취가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요즘 출시되는 왕주는 영하 5도로 얼렸다가 48시간 뒤 여과하는 ‘냉동여과’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숙취의 원인물질(아세틴알데히드)을 제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명주보자기로 짜냈는데 이 방법으로는 숙취의 원인을 완전히 제거할 수 없었다. 그러나 냉동여과를 통해 이 문제가 해결됐다. 가야곡 청정지역의 150m 지하 암반에서 뽑아 올린 물만 쓰는 것도 왕주가 뒤끝 깨끗한 술로 자리를 잡게 한 또 하나의 이유다.
#안주로는 굴전·육전·붕어찜 등이 최고
왕주를 마실 때는 안주도 가릴 일이다. 왕이 마시던 술인 만큼 어울리는 안주가 따로 있다. 싱싱한 굴로 만든 굴전이 우선 좋은 안주로 꼽힌다. 신선한 고기로 지져낸 육전 역시 어울리는 안주다. 논산을 대표하는 탑정저수지의 민물고기 요리도 왕주와 함께 즐길 수 있는 안주로 꼽힌다. 그 중에서도 붕어찜을 권하는 사람이 많다. 논산지역에서는 최고의 술에는 최고의 안주가 있어야 한다는 판단에 따라 최근 궁중요리 전문가들과 함께 왕주에 어울리는 안주를 개발하고 있다. |
[전통주 기행] 황희정승 후손들이 500년 빚어온 문경 호산춘 | ||
솔향이 그윽하고 부드러워 입안에 머금고 천천히 음미하고 싶은 술. 약주치고는 센 편인 18도지만 달고 연한 향에 주량도 잊게 만드는 술. 이름에 품격 있는 고급 술에만 붙여졌다는 ‘춘(春)’자가 들어가는 조선 명주. 바로 문경 호산춘(湖山春)이다.
‘춘’자가 들어가는 술 가운데 유일하게 지금도 빚어지고 있는 전통주다. 산 깊고 물 맑은 경북 문경고을에서 황희 정승의 후손들이 500년을 빚어온 가양주(家釀酒)다. 다른 ‘춘’자 계보 술들의 맥이 거의 끊기다시피한 것과 비교하면 ‘황씨 고집’이 지켜온 술이라 이를 만하다.
예부터 신선이 좋아한다 하여 ‘호선주(好仙酒)’, 관리들이 이 술맛에 취해 임무도 잊고 돌아갔다 하여 ‘망주(忘酒)’ 등으로도 불렸다고 전한다.
#뼈대있는 가문의 기품있는 술
호산춘은 조선초 명재상 황희 정승의 증손인 황정이 경북 문경시 산북면 대하리에 집성촌을 이뤄 살면서부터 황정을 입향조로 하는 장수 황씨 사정공파 종택에서 전승돼온 가양주다.
이 문중은 가세가 넉넉하여 호산춘을 빚어서 제사나 손님맞이에 사용했다. 지금도 각종 제사 때는 물론 해마다 음력 2월 황희 정승의 생신일이면 전국 각지에서 자손들이 모여 이 술로 제사를 지낸다.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들다는 새재의 고장에서 오랜 세월 사대부들이 청풍명월을 벗삼아 이 술을 즐겨왔다. 그래서 호산춘에는 선조의 멋과 풍류, 세월의 깊이가 담겨 있다.
황씨 문중의 가양주가 오늘날 전통 민속 명주로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정부의 민속주 발굴정책에 따라 제조면허가 나면서부터다. 1987년 교통부장관의 추천으로 89년 시험 제조와 주질 검사를 거쳐 90년 제조면허가 나 전통주로 조명받게 됐다.
이듬해인 91년에는 경북도무형문화재 제18호로 지정됐으며 21대 종부 권숙자씨(74)가 기능보유자다.
#황씨 고집이 지켜온 술
권씨는 19세에 황씨 문중으로 시집와 50년 넘게 호산춘을 빚어왔다. 천석지기였던 집 안이 기울고 30세 때 남편과 사별,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삯바느질 등 안해 본 일 없이 고생하면서도 매년 10여차례나 되는 제사를 모시기 위해 호산춘만은 꼬박꼬박 빚으며 맥을 이어왔다.
옛 문헌에 ‘춘’자가 들어가는 이름의 술로는 ‘약산춘’ ‘한산춘’ ‘백화춘’ 등이 있으나 지금은 전하지 않고 있으며 ‘호산춘’도 기록에는 ‘호수 호(湖)’자가 아닌 ‘병 호(壺)’자로 되어 있다. 전북 여산 지방의 별칭이 ‘호산(壺山)’인 데서 유래했다고 전해지며 이같은 이름의 술이 여러 곳에서 있었을 것으로도 추정되지만 전승돼 지금도 빚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상 황씨 문중의 호산춘밖에 없다.
호산춘을 문중 가양주에서 전통주로 세상 밖으로 내놓은 22대 종손이자 권씨의 아들인 황규욱씨(55)는 “문화재로 등록할 때 여산의 호산춘과 구분하기 위해 물 맑고 산 좋은 문경에서 대대로 빚어온 술이란 뜻에서 ‘호수 호(湖)’자를 썼다”고 했다.
#솔잎, 전통 도자기 등이 빚어내는 풍류
호산춘은 제조 과정이 조금 복잡하고 까다롭다.
우선 멥쌀을 하룻밤 불려 갈아서 백설기를 만든다. 이를 누룩과 반죽해 독에 넣고 1주일에서 10일가량 서늘한 곳에서 발효시키면 밑술이 된다. 밑술이 잘 익을 즈음 찹쌀을 하룻밤 불려 보드라운 생솔잎을 깔아놓고 고두밥을 찐다. 고두밥에 끓인 물을 부어 고루 섞어 식힌 뒤 앞서 만든 밑술을 부어 혼합해 다시 단지에 넣고 20일가량 숙성시킨다.
잘 익으면 광목자루에 담고 돌을 올려 기름짜듯 서서히 눌러 짜낸다. 이를 받아서 두달정도의 후숙 기간을 거친 뒤 여과지로 걸러내면 황국을 우려놓은 듯 맑고 투명한 담황색의 호산춘이 된다. 수율이 1대 1로, 사용한 곡류의 양만큼 술이 나온다.
솔잎이 들어가기 때문에 솔잎 특유의 향과 오장을 편안하게 하는 ‘건강주’로 인기가 높다.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집에서만 팔고 있으며 유리 병으로 된 700㎖짜리(9,000원)와 민요(民窯)로 유명한 이 고장의 전통 도요지에서 만든 도자기에 담은 900㎖짜리(1만4천원)가 있다.
향이 그윽하고 맛이 부드러워 맵거나 짠 음식보다는 담백한 안주가 어울린다. 육포나 회, 쇠고기 산적 등이 좋다.
전통 ‘망댕이 가마’에서 구워낸 술잔으로 물 맑은 이 고장의 송어회를 안주삼아 호산춘을 한잔 하노라면 신선이 따로 없을 듯하다. |
[전통주 기행] 공주의 명주 ‘계룡백일주’ | |
명산 ‘계룡산’이 있는 공주에 명주 ‘계룡백일주’가 있다.
백일주는 ‘백일 동안 익힌 술’이다. 우리의 전통 민속주 중에는 해가 저물 녘에 빚기 시작해 새벽 닭이 울 때쯤 완성하는 술이 있는가 하면, 3년에 걸쳐 완성되는 술도 있다. 백일주는 술을 빚는데 석달 열흘 걸리는 술이다.
#400년을 이어온 궁중술의 전통
백일주의 원조는 ‘궁중술’이다. 1623년 반정에 성공한 인조는 일등공신 중 한 명인 이귀(李貴·연안 이씨)에게 선물을 하사했다. 그 선물은 왕실 대대로 전해온 궁중술의 양조비법이었다.
이귀는 이 술의 비법을 부인인 인동 장씨를 통해 이어가도록 했다. 이때부터 이 술은 연안 이씨 가문의 며느리를 통해 오늘까지 이어졌다. 때문에 술을 빚는 방법은 문헌 등에 나와있지 않다. 며느리에서 며느리를 통해 ‘가문의 술’로 전수됐기 때문이다. 지금 역시 연안 이씨 며느리인 지복남씨(80)에 의해 술의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이 술이 바로 ‘계룡백일주’다. 계룡백일주는 빚기가 워낙 까다롭다 보니 늘 귀했다. 연안 이씨 가문은 술을 대량 생산하지 않았다. 조금씩 만들어 제사상에나 올렸다. 연안 이씨 종가가 있는 공주에서도 이 술의 맛을 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만큼 귀했다.
그러나 그 맛은 오래전부터 정평이 나 있다. 몇 잔 마셔본 사람들의 입에서 늘 ‘최고의 술’이라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16도 약주는 ‘신선주’, 40도 소주는 ‘백일소주’
백일주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16도짜리 ‘약주’다. 찹쌀·누룩·재래종 국화꽃· 오미자·홍화·진달래·솔잎 등을 재료로 저온에서 장기간 발효숙성시켜 만든 것이 바로 약주로서의 계룡백일주다. 향긋한 향취와 마실 때 부드럽게 넘어가는 맛이 일품이다. 뒤끝이 깨끗한 것도 이 술의 자랑중 하나다. 냉장보관해서 차게 마시면 더욱 맛이 좋다. 이 약주에는 그래서 ‘신선이 마시는 술’ 또는 ‘마시면 신선 같은 기분이 드는 술’을 뜻하는 ‘신선주’라는 별명이 붙었다.
다른 하나는 40도짜리 소주다. 약주를 증류시킨 뒤 벌꿀을 넣어 만든다. 이 소주를 옛날에는 ‘백일소주’라고 불렀다. 독한 편이지만 솔잎과 국화꽃 등의 은은한 향이 있어 부드러운 것이 특징이다. 담백한 맛이 일품이고 많이 마셔도 숙취가 적은 것이 장점이다. 40도짜리 백일주는 오래 될수록 맛과 향이 더욱 좋아지는 매력이 있다. 요즘에는 도수를 조금 낮춘 30도짜리 소주도 나온다.
#공주의 자연, 계룡산의 자연을 그대로 담아
계룡백일주는 주변의 자연을 그대로 머금고 있다. 계룡산 주변 등 공주 일원의 솔잎·진달래꽃·국화꽃 등이 술에 녹아있다. 이 술을 빚기 위해서는 봄이 되면 진달래꽃을 따다 말리고, 가을이 되면 국화꽃을 따다 말려야 한다. 1년 내내 쓸 수 있는 분량을 미리미리 준비해 둬야 하는 것이다. 솔잎이나 국화꽃 등은 백일주의 맛을 결정짓는 아주 중요한 재료다. 은은하고 담백한 맛은 모두 이런 재료를 통해 나온다. 다른 술에 비해 숙취가 적은 것도 이런 자연재료의 작용이 있기 때문이다.
백일주에 쓰는 누룩은 찹쌀가루를 사용해 만든다. 통밀과 찹쌀을 똑같은 분량으로 섞어 거칠게 빻아낸 뒤 물과 섞어 반죽을 한다. 누룩 틀에 담아 띄우는 기간은 여름철 2개월, 겨울철 3개월. 2~3일에 한번씩 뒤집어 주어야 누룩이 제대로 뜬다.
계룡백일주는 밑술이 발효되는 데 30일, 본술을 빚은 날부터 술이 다 익을 때까지 또 70일 걸린다. 본술을 빚을 때 백일주의 맛과 향을 좌우하게 되는 국화꽃·진달래꽃·솔잎·오미자 등의 온갖 재료가 들어간다.
백일주의 최종 완성은 창호지를 이용한 걸러내기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100일 동안의 세월이 녹아 있는 술은 언뜻 보면 맑고 깨끗한 것 같지만 조금 놔두면 앙금이나 찌꺼기가 가라앉는 경우가 많다. 이를 막기 위해 창호지를 받쳐 걸러준다.
#백일주 마실땐 참죽나무 순과 곶감말이가 최고
연안 이씨 문중 사람은 물론 공주 사람이 백일주를 마실 때 먹는 특별한 안주가 몇가지 있다. 봄에 딴 참죽나무 순에 찹쌀 고추장과 참깨 양념을 버무려 말린 뒤 다시 찹쌀 풀을 입혀 말리면 최고의 백일주 안주가 된다. 매콤하면서도 바삭바삭한 맛이 백일주에 딱 맞는다는 것이 애주가들의 설명이다.
호두를 곶감에 싼 뒤 자른 ‘곶감말이’를 계룡백일주와 잘 어울리는 안주로 꼽는 사람도 많다. |
[전통주 기행] 여산 송씨 가양주…양주 송엽주 | |
예부터 솔잎은 장기간 생식하면 늙지 않고 몸이 가벼워지며 기가 통하고 흰머리가 검어진다고 해 신선식품으로 불렸다.
동의보감은 솔잎에 대해 고혈압, 말초혈액순환 장애로 인한 팔다리 저림, 불면증, 중풍, 신경쇠약 등에 효험이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의학계에서도 솔잎의 주요 성분인 엽록소와 비타민A, 비타민C가 혈액을 정화하고 괴혈병을 예방한다고 보고 있다.
경기 양주시 은현면에 400년 전부터 뿌리를 내리고 있는 ‘여산 송씨가’에서 전해져오는 양주 송엽주(松葉酒). 양주 송엽주는 바로 그같은 효능이 인정된 소나무의 새순을 이용해 술을 만든다.
시중에 판매되는 술이 아니라 명절이나 제사 때만 이 집안에서 소량으로 빚는 일종의 가양주(家釀酒)이지만 옛 문헌에는 자주 등장하는 민족 고유의 전통주다.
송엽주는 조선시대 ‘요록’ ‘양주방’ ‘역주방’ ‘오주연문장전산고’ ‘음식법’ ‘조선고유색 사전’ 등 여러 문헌에 술빚는 방법과 그 효능에 대해 자세히 소개되고 있다.
맑고 투명한 노란 빛깔의 송엽주는 음식처럼 적당량을 마시면 동맥경화와 고혈압, 뇌졸중 등 순환기계통의 질환 예방에 효과가 있다고 적고 있다. 입안에서 오랫동안 감도는 솔향과 새콤한 맛은 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부담없이 마실 수 있다.
송엽주의 맥은 여산 송씨 종가댁의 둘째며느리인 이영순씨(52)가 지켜오고 있다. 이씨는 1989년 작고한 시아버지 송수근씨로부터 제조법을 전수했다.
송엽주의 주요 재료는 멥쌀과 찹쌀, 솔잎, 누룩, 종국 등이다. 쌀을 하루 정도 물에 불린 뒤 시루에 불린 쌀과 씻은 솔잎을 켜켜로 깔고 찐다.
김이 한번 오르면 20~30분간 뜸을 들이고, 찐밥을 섭씨 25~30도로 식혀 종국을 잘 버무린 뒤 12시간 후에 다시 한번 뒤섞어준다. 이때쯤이면 고두밥에서 열이 나는데 섭씨 35도 이하가 되도록 뒤적여준 다음 2일 정도 띄운다.
이어 잘 띄워진 고두밥과 누룩, 솔잎을 잘게 썰어 망자루에 넣고 항아리에서 쌀과 동량의 물을 부어 발효시킨다.
항아리에 담요를 잘 싸고 두껑을 베보자기로 덮어 1주일 정도 발효시킨 뒤 자루망을 꼭 짜서 건져내고 항아리를 싼 담요를 풀어 실외 서늘한 곳에서 7~8일 정도 숙성시키면 투명한 송엽주가 가득 차게 된다. 송엽주의 알코올 도수는 막걸리보다는 약간 높은 12도 정도다.
송엽주의 제맛을 내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온도다. 온도가 잘못되면 맛과 향이 제대로 나지 않는 것은 물론 새콤달콤한 맛이 쉽게 변하기도 한다.
또 솔잎은 사시사철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이지만 새순이 돋아나는 4~5월쯤에 마련하는 것이 좋다. 송엽주는 입맛을 돋게 하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어 여산 송씨 집안에서는 반주로도 애용된다. |
[전통주 기행]해남 ‘녹향주’ | |
나락이 여물어 가는 푸른 들판과 그 가운데를 가르는 황톳길이 어울려 한폭의 그림같다. 녹향주가 탄생하는 전남 해남군 삼산면 녹산리.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저 곳이 술도가구나’하는 예감이 드는 집이 있었다. 코 끝을 스쳐가는 술 내음을 따라 자동차도 ‘술익는 그 집’ 마당으로 그대로 드라이브인.
한평생 녹향주를 빚어온 조현화씨(72)가 차문을 열어주면서 “저 들판 곡식들도 우리 집 술냄새를 맡고 크니까 훨씬 더 잘 자란다”고 술자랑부터 한다.
#남쪽에서 맛보는 ‘북한 전통주’
녹향주는 6·25때 북한에서 내려온 술이다. 함안조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살던 황해도 장연군 신한면 군산리가 원산지. 그런 녹향주가 한 피란민 일가 덕분에 해남에서 54년째 애주가들의 입맛을 돋우고 있다.
조씨 집안은 1·4후퇴 때 젖먹이를 포함, 모두 100여명이나 되는 대가족이 철수하는 미군 군함을 타고 목포로 내려왔다. 정부에서 진도 등에 난민촌을 만들어 집단수용하던 때였지만, ‘술 만들 수 있는 곳을 달라’고 하소연했고 이것이 받아들여졌다.
조씨의 할아버지·아버지·삼촌들이 수백리를 걸어다니면서 고른 터가 바로 이 마을. 재료인 쌀이 ‘황토 농사’로 실하게 지어지고, 물맛도 근방에서 가장 좋은 곳임을 그들은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녹향주라는 이름은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민속주가 양성화하면서 붙었다. 마을 이름에서 ‘녹(鹿)’을, 자나깨나 그리운 고향에서 ‘향(鄕)’을 땄다. 그동안엔 문중 대대로 내려온 가양주지만 어엿한 이름없이 그저 ‘집안술’로 불렸다. 하지만 밀주 단속이 살벌하게 이뤄지던 시절에 녹향주는 ‘바깥술’로 위세를 얻어갔다.
#탄압 속에 제맛 복원
남쪽에 내려와 3대째 술을 빚으면서 조씨는 예전의 술맛이 아니라는 게 늘 맘에 걸렸다. 혀끝을 휘감게 하는 알싸한 맛이 우러나긴 했지만 강도가 약했다. 물 다르고 볕 다른 곳이라 당연했다. 더군다나 하루가 멀다고 나오는 단속은 원래의 술맛을 찾아가는 장인의 사기를 꺾어놓기 일쑤였다. 술독을 들고 들로 달리고, 뒤란에 지하실을 파놓고 숨기기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만들어 놓은 술을 뺏기고 나면 하늘이 무너졌으니까.”
그래서 단속나온 세무서 직원·경찰과 맞짱뜨기로 마음먹었다. 조씨는 젊은 날 대부분을 그들과 드잡이하면서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했다. 경찰서 유치장을 제집 드나들 듯했다. 몰래 몰래 팔아 모아둔 돈은 세무서에 벌금으로 모두 내놔야 할 정도였다. ‘고향의 술맛’을 찾겠다는 조씨 가문의 집념에 슬쩍 눈을 감아주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조씨는 발효시간을 적절히 조절하는 것으로 해남 녹향주의 태생적 한계를 보완, 고향맛을 재현했다. 물론 ‘비방’이어서 털어놓을 수 없다고 했다.
#녹향주 ‘3년간 숙성’
녹향주는 45도의 독주다. 향을 얻기 위해 요즘은 당귀를 넣긴 하지만 그래도 옹달샘 물처럼 맑다. 우선 햅쌀로 지은 고두밥에 발효제로 누룩 대신 백곡을 넣어 섞은 뒤 오동나무 궤짝에 하룻밤을 재운다. 노랗게 변한 고두밥을 큰 술통에 넣고 3일간 발효시키면 밑술이 된다. 덧술은 고두밥을 한차례 더 쪄 당귀를 넣고 버무려 만든다. 밑술과 덧술을 섞어 3일간 더 발효시키면 곡주가 된다. 이것을 고리에 넣고 내리면 소주가 된다. 이때 도수는 80도. 그냥 마실 수 없어 숙성해야 하는데 무려 3년이란 긴 세월이 필요하다.
그래야 녹향주의 진짜 깊은 맛을 얻을 수 있다. 처음 입안에 털어넣을 때의 싸한 맛은 잠시, 목을 타고 넘어갈 때는 독주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부드럽다. 당귀의 달짝지근한 맛 이외에는 다른 잡스러운 맛이 끼지 않아 혀로 감지되는 맛은 그저 깨끗할 뿐이다. 숙취도 전혀 없다. 안주로는 돼지고기나 소고기로 만든 요리나 마른 안주도 좋다. 400㎖짜리 두병을 세트로 묶어 3만2천원에 판다. (061)532-9069 |
[전통주 기행]충북 보은 구병마을 송로주 | |
속리산 천황봉의 정남쪽에 위치한 구병리는 산세가 수려하고 물과 공기가 깨끗해 장수마을로도 유명하다. 송로주에 취해 한때 농사일도 접고 송로주 전수에 젊음을 다 바친 임경순씨(50). 그의 직책은 ‘보은 송로’ 사장에 ‘충청북도 무형문화재 3호 송로주 전수자’다.
#솔향 진하게 밴 전통주
송로주는 말 그대로 소나무를 원료로 만든 술이다. 소나무는 원래 불로장수를 상징하는 십장생(十長生)의 하나로 우리 생활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그렇다보니 양조에 있어서도 다른 식물보다 다양하게 이용되고 있다. 송로주는 알코올 도수 48%로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술 가운데 가장 독하다. 소나무 관솔의 특유의 향이 혀를 감싸는 맛이 알싸하다. 이런 알싸한 맛은 목구멍을 타고 가슴까지 전해진다.
예부터 송로주를 마시면 장수한다는 속설이 있고 음식법에 이르길 관절, 신경통에 좋고 허약한 다리가 낫는다는 기록이 있다. 독주라 금방 취하지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언제 깼는지 모를 정도로 뒤끝이 상쾌하다. 임씨는 1999년 연간 30㎘ 규모의 제조시설을 갖추고 본격 생산에 나섰지만 여느 전통주와 마찬가지로 대중 속으로 파고드는 데 한계를 절감한다. 하지만 임씨는 “우리의 전통주는 저급한 술이 아니다. 적게 팔더라도 제대로 된 맛과 향을 지켜나갈 것”이라며 자신감을 내보였다.
#뒤늦게 빛 발한 송로주
송로주는 충청북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신형철 할머니(98년 작고)에 의해 발굴된 민속주다. 신씨는 충남 서천군 출신이다. 송로주 빚는 방법은 신씨 외조모인 정금이씨가 지었다는 고조리서(古調理書)인 ‘음식법’에 기록되어 있다. 한글 필사본으로 제작연대는 1880년대라고 한다. 술 15가지, 병과 2가지, 음료 1가지, 반찬 15가지의 음식조리법이 소개돼 있다.
이 책은 “쌀 한말 하려면 솔옹이를 생률처럼 쳐 고이 다듬어 놓고 섬누룩 넉되 넣고 물 서말 부어 빚었다가 멀거커든 소주를 여러물 갈지말고 장작때어 고으면 맛이 좋고 백소주를 받아 먹어야지 절통도 즉시 낫느니라”고 송로주에 대해 적고 있다.
이처럼 묻혀 있던 송로주는 신씨가 1993년 송로주 빚을 곳으로 구병리를 찾으면서 맥을 잇게 된다. 임씨는 이때 신씨를 만나 제조법을 전수받는다. 그러나 신씨가 갑자기 타계하면서 하루아침에 스승도, 동업자도 잃어버린 그는 낙심에 빠진다. 하지만 임씨에겐 행운이 따랐다. 신씨가 타계하기 2개월전 기능전수자로 지정돼 전통을 이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송로주는 고서 속의 술이 아닌 실물로 존재하게 됐다.
#송로주 글자 하나에 2백만원?
송로주를 제조하려면 우선 누룩과 멥쌀가루를 1대1로 섞고 섭씨 30도에서 사흘동안 발효시켜 밑술을 만든다. 그런 다음 구병산에서 나오는 솔옹이를 얇게 썰고 소나무 뿌리에 기생하는 복령(茯令)을 알밤만하게 깎아 엿기름과 함께 섞는다. 쌀 한가마에 솔옹이는 2㎏ 정도 들어간다. 2주 정도 발효된 술을 송절주라 하며 이것을 배주머니에 넣고 짜서 은근한 장작불로 내리면 송로주가 된다.
송로주란 이름은 1994년 두산백화에서 이미 상표등록해 놓는 바람에 탄생 자체가 불투명했다. 그러나 보은군의 지원과 협조, 두산백화측의 양보로 생각보다 쉽게 전통술의 이름을 되찾았다. 하지만 소송제기에 6백여만원이 들어가 송로주 글자 하나가 2백만원짜리가 된 셈이다.
술 값은 다소 비싼 편. 400㎖짜리가 2만3천원, 700㎖ 3만5천원, 400㎖×400㎖는 4만5천원, 400㎖×700㎖는 5만6천원이다. (043)542-077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