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이 봉인 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러사스카야 가제타(RG.ru)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러시아의 특수 군사작전으로 지난 3월부터 공장 가동을 멈춘 현대차 러시아 공장은 최근 '보존'(консервация) 절차를 시작했다. 또 올해 폐쇄될 수도 있다고 전했다. 국내 한 매체는 이를 '모스볼링'(Mothballing) 전략이라고 밝혔다.
'모스볼링'의 사전적 의미는 ‘미래의 사용이나 판매를 위해 장비나 시설을 유지하고 보존한다’는 뜻이다. 생산 설비를 미래에 다시 사용하기 위해 시설을 비운 상태로 유지하는 경영 전략이다. 지난 2013년 4월 북한 개성공단에 진출한 기업들이 생산시설을 봉인한 채 귀환한 게 대표적이다.
현대차,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 '보존' 절차 시작/젠(dzen.ru) 노보스티 캡처
현대차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사진출처:홈페이지
현지 자동차 전문 텔레그램 채널 '러시안카'는 17일 현대차 러시아 생산법인(HMMR)이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을 '보존'하기 위해 자체 보관 중이던 완성차 1,500대 반출했다고 전했다. 완전히 조립되지 않은 일부 차량도 생산 컨베이어 시설에서 제거됐다. 공장내에는 생산 설비만 남긴 것이다.
문제는 현지 고용 직원들의 처리다. 현지 언론은 "현대차 측이 매월 27, 28일 익월(다음 달)의 경영 전략을 발표했다"며 "오는 27일 직원들의 고용 문제 등 후속 조치를 결정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내 언론은 현대차 측이 현지 생산 직원들을 정리해고할 것이라고 전했다.
현지 언론은 또 현대차가 2020년에 인수한 GM의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을 개보수 작업을 계속할 계획도 없다고 했다.
현대차의 이같은 방침은 우크라이나 사태의 장기화에 따른 '전략적 선택'으로 보인다. 러시아에 진출한 프랑스 르노와 일본의 도요타, 닛산 등 주요 서방 자동차 회사들과는 차별화한 선택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을 폐쇄한 상태로 끌고 가면서 여건이 되면 재가동하겠다는 뜻이다. 현대차는 지난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시, 서방 주요 자동차 브랜드들이 철수하는 와중에도 큰 손실을 감수하면서 끝까지 현지에 남는 전략을 선택해 현재의 러시아 시장 점유율을 확보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번에도 사실상 같은 선택(모스볼링)을 한 것으로 해석된다.
일본의 닛산 자동차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텔레그램 캡처
현대차의 '모스볼링' 전략은 일견 매력적으로 보이지만, 이 또한 유지 관리 비용이 만만치않게 든다. 또 공장을 재가동할 경우, 숙련된 노동력을 확보하기도 쉽지 않다. 또 지난 2014년과는 완전히 다른 경영 환경이라는 게 현대차의 고민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은 지난 3월 멈춰섰다. 현대 솔라리스, 크레타 SUV, 기아 리오 세단, 리오 X 해치백 등을 연간 최대 20만 대까지 생산할 수 있는 현대차의 주요 해외 생산 거점 중 하나였다.
상트페테부르크 공장의 봉인으로 러시아 시장에서 현대차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전망이다. 유럽자동차공업협회(ACEA)에 따르면 현대차는 지난 3분기 누적(1~9월) 러시아 시장에서 전년(13만2,183대) 대비 62% 감소한 4만9,951대를 판매하는 데 그쳤다. 8월, 9월에는 현대차 러시아 판매가 제로(0)로 떨어졌다는 게 현지 매체의 보도다. 또 러시아 역외영토인 칼리닌그라드의 아프토토르 공장의 현대차 조립도 중단됐다.
현대차 생산 모습. 위는 상트페테르부르크 현지공장, 아래는 칼리닌그라드의 아프토토르 공장/사진출처:홈페이지
현대 기아차는 지난해만해도 러시아에서 37만7,614대를 판매, 러시아 현지 브랜드 '라다'에 이어 점유율 2위를 차지한 바 있다. 현대차 러시아 판매 비중은 전체의 6% 수준이었다.
앞서 일본의 완성차 브랜드 닛산은 프랑스 르노와 마찬가지로 거의 공짜로 현지 국영연구소에 자산을 넘겼고, 도요타는 임의 청산하는 방법으로 러시아에서 완전히 철수한다고 발표했다. 미쓰비시 자동차는 현지 공장 가동을 중단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