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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음知音이 그리울 때
허 열 웅
친구란 가족과 마찬가지로 기쁨과 슬픔, 어려움을 함께할 수 있는 소중한 사람이다. 어릴 때나 청소년시기에는 친구들과 사이가 좋으면 행복하고 즐겁게 지낼 수 있었다. 나이가 들어 노년에 접어드니 진정한 친구가 그리울 때가 자주 있다. 소꿉친구, 동무라 부르며 어울리던 친구들도 하나 둘 세상을 떠나간다. 자녀들은 나름대로 바쁘게 사느라 명절 때나 빼끔 비치고 떠나면 마음이 허허로워 누군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진정한 친구가 그리워진다. 친구사이의 다양한 우정을 표현한 사자성어가 무려 100여개가 넘는다. 그 만큼 살아가는데 우정이 중요하다는 이유다.
지음(知音)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것은 노년의 쓸쓸함에 세상사를 마음 터놓고 이야기나누고 싶을 때 떠오르는 단어다. 사실 30대 이후엔 친구를 만들기가 쉽지 않다. 각자 바쁘게 살기도 하고, 우선순위도 과거와 다르며, 친구에 대한 기준도 어렸을 때에 비해 높아지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 새로운 친구를 만드는 것보다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과 더 친하게 지내려는 경향이 있다고 스탠포드 장수연구센터의 로라 카스텐슨 교수는 말했다. 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선 접근성, 지속적인 만남, 계획하지 않는 교류 등 조건들이 충족되어야 한다고 본다.
요즈음에 친구사이의 진정한 우정에 대해 감명 깊게 들은 이야기 몇 가지는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 최고의 여배우 김혜자와 김수미의 우정이다. 김수미는 남편의 사업부도로 어려운 환경에 처해 여러 친구들한테 돈을 조금씩 빌렸다고 한다. 이 소문을 들은 김혜자가 김수미를 불러 왜 나한테는 돈을 빌려달라고 하지 않느냐며 갖고 있는 거액이 들어있는 통장을 주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일이 잘 풀리면 돌려주던가 그렇지 않으면 안 갚아도 된다고 했다. 그 뒤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빚을 갚은 후 김혜자가 아프리카 험지로 봉사를 갔을 때 그에게 전화를 걸어 혹시 혼란스러운 나라에서 김혜자가 반군이나 폭력배한테 인질로 잡힐 경우가 생기면 자기가 그곳에 가서 대신 인질이 되어주겠다고 다짐을 했다고 한다. 지란지교(芝蘭之交)의 아름다운 우정이었다.
배우 이계상이 신촌에서 카페를 하고 있을 때 실직상태에 있던 우현우가 가끔 놀러와 왔다고 한다. 어느 날 우현우가 자기도 무엇인가 조그만 일을 하고 싶어 이계상한테 돈 천 만원만 빌려 달라고 했단다. 그러자 천만 원 갖고 무슨 사업을 하겠느냐고 자기가 갖고 있던 돈을 탈탈 털어 삼천만원을 빌려주어 사업을 시작할 수 있도록 했다는 이야기다. 사실 친구사이에 돈에 관한 문제는 조심스러울 때가 있다. 잘 못하면 틈이 생길 수도 있어 서로 경계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두 사람 모두 자기가 손해 볼지도 모르는 위험을 감수하고 친구를 위해 아낌없는 우정을 베풀었다. 이는 빈천지교(貧賤之交)의 한 장면이었다. 나도 이와 같은 친구가 있을 수 있을까 되돌아보며 친구가 저런 부탁을 했을 때 나라면 어떤 행동을 취했을까? 헤아려보았다.
인류 최고의 고전 중 하나인 사기(史記)의 저자인 사마천은 친구를 위해 변호하다가 사형 직전에 남자의 가장 치욕적인 궁형을 택했다. 친구 이릉(李陵)은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으나 식량과 무기의 부족으로 후퇴를 하다가 많은 부하를 살리기 위해 투항을 하였다. 이에 왕이 노발대발하여 이릉의 부모와 처자식을 죽이려하였다. 이에 부하를 살리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친구를 위해 왕에게 항변하며 죄를 벗기려하다가 참변을 당하였다. 죽음을 무릅쓴 문경지교(刎頸之交)를 실행한 경우다.
나는 대전에서 중학교 다일 때부터 방 한 칸에 형님내외분과 조카들 3~4명이 지내야하는 형편이었다. 그래서 친구들 집을 찾아다니며 동가숙서가식(東家宿西家食)하며 지냈다. 그 때 여러 명의 친구의 도움을 많이 받은 적이 있다. 그 뒤 몇 년은 잠자리와 밥만 해결해주는 가정교사를 택해 공부를 할 수 있었다. 학교 졸업 후에도 공무원 시험 준비 하면서 직장을 구하기 위해 대전의 친구 집에 6개월 정도 머문 적이 있다. 그때는 모두들 살림형편이 그리 좋지 않아 쌀과 보리를 섞어 밥을 먹을 때였다. 그런데 친구의 밥그릇보다 나에게 쌀이 더 많이 들어있고 어쩌다 고깃국을 먹을 때조차 내 국그릇에 고기가 더 많았다.
내 외출복도 정갈하게 다려놓고 약간의 용돈도 친구 몰래 주기도 했다. 부담스러운 나는 친구 어머니에게 아들이 오해를 살 수 있으니 평등하게 대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알고 보니 오히려 친구가 자기 어머니한테 내가 회사에 취업하거나 공무원이 되면 머지않아 떠날 것이니 자기보다 친구를 더 따뜻하게 배려해주라는 부탁을 했다고 한다. 백아절현(伯牙絶絃)의 우정을 나누며 지금도 그 친구와는 형제와 다름없이 소통하며 지내고 있다. 직장에 다닐 때 다정하게 어울리며 지내던 동료들도 퇴직하여 흩어지면 소식조차 듣기도 어려운 것이 오늘의 현상이다. 노년이 되어 시간이 여유롭고 마음이 울적할 때면 정담을 나누며 소주라도 몇 잔 나눌 진정한 친구(知音)가 몹시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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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존경하는 허열웅 선생님
봄날같은 따듯한 글에 제 마음도 따듯해져 오네요
허열웅 선생님 우리가 만난 지가 햇수로 20년이 넘었지요
어떡하다 보니 따듯한 식사를 나눈 제도 수년이 흘렀네요
모쪼록 건강하시고 좋은 날 뵙기를 소망합니다.
추신:카페지기 풍금입니다
닉네임이 바뀌고 혼동을 주어서 죄송합니다
제가 컴이 서툴러서 카카오톡 통합 관계등으로
복잡해서 바로잡지 못함을 죄송하게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