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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진도초등학교 총동문회 원문보기 글쓴이: 56이세진
만추소요 – 왕방산,국사봉,수위봉,소요산
1. 의상대에서 조망. 앞은 공주봉, 그 뒤는 마차산과 감악산
암벽을 오르고 끊어진 골짜기를 따라 바위에 올라 구봉(九峯)을 바라보니, 산의 돌이 모두 기이하게 생겼다.
중봉(中峯)의 바위구멍을 지나 현암(懸庵)의 동남쪽으로 나와서 의상대(義相臺)에 오르니, 여기가 최정상이고 그
북쪽은 사자암(獅子庵)이다. 골짜기 입구에서 폭포를 지나 벼랑을 따라 의상대에 오르기까지의 높이가 9000장(丈)
이다. 10월의 산은 깊고 골짜기는 음산한데, 아침에 비가 온 뒤라서 시냇가 돌에 낀 푸른 이끼는 봄과 같고, 단풍잎
은 마르지 않았다.
금상 4년 계묘년(1663, 현종4) 10월 기해일에 공암 미수는 기록한다.
ⓒ 한국고전번역원 | 조순희 (역) | 2008
―― 미수 허목(眉叟 許穆, 1595~1682), 「소요산기(逍遙山記)」 에서
▶ 산행일시 : 2024년 11월 2일(토), 맑음, 연무 심함
▶ 산행인원 : 3명
▶ 산행코스 : 왕산사,관모봉,왕방산,국사봉,새목(수위봉고개),수위봉,485m봉,칼바위,나한대,의상대,나한대,
자재암,원효대,일주문,소요산맛거리
▶ 산행거리 : 도상 17.0km
▶ 산행시간 : 9시간(02 : 37 ~ 13 : 54)
▶ 갈 때 : 동서울터미널에서 시외버스 타고 포천으로 가서, 택시 타고 왕산사로 감
▶ 올 때 : 소요산역에서 전철 타고 옴
▶ 구간별 시간
07 : 00 – 동서울터미널
07 : 45 – 포천
08 : 00 – 왕산사, 산행준비, 산행시작
08 : 38 – 관모봉(504.1m)
09 : 18 – 왕방산(王方山, △737.2m), 휴식( ~ 09 : 28)
10 : 09 - ╋자 갈림길 안부, 국사봉 1.2km, 왕방산 1.6km, 오른쪽은 깊이울
10 : 38 – 국사봉(國師峰, 754.9m), 휴식( ~ 10 : 48)
11 : 18 – 수위봉고개(새목고개)
11 : 39 – 수위봉(656m)
12 : 00 – 임도, 점심( ~ 12 : 42)
12 : 52 – 501.3m봉
13 : 22 – 456.7m봉(참나무봉)
14 : 10 – 485.5m봉
14 : 57 – 소요산 칼바위, 의상대 1.2km, 수위봉고개 6.3km, 국사봉 7.8km
15 : 23 – 나한대(571m)
15 : 34 – 의상대(587.5m)
15 : 44 – 나한대
16 : 17 – 자재암(自在庵)
16 : 30 – 자재암 일주문
17 : 00 – 소요산맛거리, 산행종료
2.1. 산행지도 왕방산(1/50,000)
2.2. 산행지도 소요산(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 포천 1/25,000)
▶ 관모봉(504.1m), 왕방산(王方山, △737.2m), 국사봉(國師峰, 754.9m)
포천이 세종포천고속도로가 일부 개통되어 동서울에서 무척 가깝다. 전에는 의정부를 지나 축석령을 넘고, 송우리
를 거쳐 오느라 1시간이 넘게 걸렸는데 지금은 40분쯤 걸린다. 이른 아침이라 포천터미널이 한산하다. 버스에 내려
그 옆 택시 승강장에서 바로 택시를 탄다. 택시기사님에게 괜히 말을 걸었다. 언변이 유창하다. 이한동 씨가 이곳
국회의원이었지요 하자, 이 지역에서 6선을 하고 국무총리까지 지낸 그분을 자랑하기는커녕 험담만 한다. 자기 고향
인 화현에만 신경을 썼지, 포천에는 전철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등 지역발전에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했다며,
중요한 행사에 포천에 오기라도 하면 왜 왔느냐며 야유 받기 일쑤였다나.
택시기사님 말씀을 듣다 보니 금세 왕방산 들머리인 왕산사(왕방사가 아니다)다. 왕산사는 877년(신라 헌강왕 3년)
에 도선국사(道詵國師, 827~898)가 창건하였다고 전하고 있으나 확실하지는 않다고 한다. 택시에 내리니 세찬바람
이 맞이한다. 아침식사를 거른(?) 메아리 님과 하운 님은 간단히 고구마로 요기한다. 그새 나는 절집 구경한다. 대웅
전의 배치와 현판과 주련에 눈길이 간다.
“주련은 사찰과 궁궐, 고택 등의 기둥에 걸어놓은 연구(聯句)를 말한다. 고전 문헌에서 따오거나 스승·지인의 가르
침을 받아 쓰기도 했고 자신이 직접 짓기도 했다. 널빤지에 새겨져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이어지며 이야기와 깨달음
이 펼쳐진다. 이광호 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는 ‘주련은 건물의 참된 의미를 알 수 있는 메시지’라며 ‘선인들이 일상
에서 수양에 힘쓰고 운치를 누렸다는 문화의 발자취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2020.2.1.자 “절 기둥에 구구절절 … 주련 안 봤다면 사찰 껍데기만 본 셈”이라는 제하의 기사 중 일부다.
그럴진대 이 왕산사 대웅전의 주련은 조금은 안이했다. 2구와 3구의 배열이 뒤바뀌었고, 5구의 ‘光相所照’라고 할
것을, ‘廣相所照’라고 하였다. 수정하여 올린다.
佛身普放大光明 부처님이 대광명을 두루 놓으니
色相無邊極淸淨 색과 모양이 가없어 지극히 청정하네
如雲充滿一切土 구름이 모든 땅에 충만하듯이
處處稱揚佛功德 곳곳에서 부처님 공덕 찬탄하네
光相所照咸歡喜 광명이 비치는 곳 넘치는 환희여
衆生有苦悉除滅 중생은 고통을 씻은 듯이 잊는구나
왕산사 절집을 나와 임도 따라 숲길을 오른다. 우수상을 받았다는 임도 갈림길을 지나 약간 오르면 임도 종점이다.
등산로는 ┫자 갈림길로 났다. 등산코스안내도에는 왕방산 정상을 왼쪽은 관모봉을 거쳐 오르는데 직등하는 길보다
0.1km가 더 짧은 2.3km이다. 관모봉을 아직껏 오르지 않았다. 왼쪽으로 간다. 데크계단으로 야트막한 계곡 건너고
사면 돈다. 산모퉁이 ┫자 갈림길에서 잠시 버벅대다 직등한다. 가파른 오르막이다.
숲속 벗어나 바위지대 나오고 포천 쪽으로 전망이 훤히 트이는 관모봉 정상이다. 왕수산악회에서 세운 정상 표지석
이 단정하다. 오늘 산행에 세 개의 미션을 품고 왔다. 첫째는 왕방망경(王方望景)이다. 3년 전 늦가을 날 왕방산을
올랐을 때의 그 조망을 잊지 못한다. 왕산사의 주련 중 “구름이 모든 땅에 충만하듯이(如雲充滿一切土)”를 목도하
였다. 둘째는 새목고개 가기 전 덕순이 안부다. 3년 전 그날 자연 님이 대물을 등로 주변에서 보았다. (더)덕불고필
유린(德不孤必有隣, (더)덕은 외롭지 않고 반드시 이웃이 있기 마련이다)이라고 했다. 오늘은 연장도 준비했다.
셋째는 소요단풍이다.
3. 멀리 가운데는 연인산. 그 앞 왼쪽은 천주산과 금주산(뒤)
4. 멀리 맨 왼쪽은 명지산, 그 오른쪽은 연인산, 그 앞 오른쪽은 운악산, 그 앞은 수원산, 그 앞은 청성산
5. 멀리 가운데는 불암산, 그 오른쪽은 수락산
6. 앞 오른쪽은 청성산, 멀리 가운데는 명지산과 연인산(오른쪽)
7. 멀리 가운데는 운악산, 그 뒤 왼쪽은 연인산
8. 수원산
9. 불암산과 수락산(오른쪽)
10. 멀리는 명지산과 연인산, 그 가운데 뒤는 백둔봉
11. 멀리 가운데는 죽엽산
13. 깊이울계곡 쪽 사면
그런데 첫째 미션부터 신통치 않다. 연무가 짙어 원경이 흐릿하다. 3년 전 그때는 운무 위로 국망봉과 화악산을 물론
운길산, 관악산을 분명하게 보았는데 오늘은 명지산, 연인산, 운악산, 불암산, 수락산이 고작이다. 이나마 실루엣이
라도 볼 수 있음을 감사히 여길 일이다. 등로는 관모봉을 넘으면 부드럽다. 다시 하늘 가린 숲속 길이다. 가파른 데
는 두 차례 긴 데크계단을 설치했다. 등로는 다른 등로와 만나고는 더욱 튼튼해진다.
이윽고 왕방산 정상 직전 팔각정이다. 배낭 벗어놓고 오른다. 왕방산 정상의 조망을 이 팔각정이 도맡는다. 흐린
원경이지만 왕방망경의 자존은 조금도 흐트러뜨리지 않는다. 팔각정 위는 널찍한 잔디광장이다. 3년 전 그때는 야영
객이 있었는데 오늘은 텅 비었다. 그때 이곳에서 황홀했던 조망에 취해 1시간 가까이 머물렀었다. 그 야영객에게
일출 사진을 빌리기도 했다. 잔디광장에서 조금 더 가면 왕방산 정상이다. 삼각점은 2등이다. 포천 23, 1982 재설.
인사성 밝은 한 젊은 등산객이 우리보다 먼저 올랐다. 어디로 가시려느냐고 묻자 왕산사로 원점회귀하겠다고 한다.
우리와 함께 소요산을 가지 않으시겠느냐는 의도였는데, 아직은 초보라고 사양한다. 산행차림은 에베레스트라도
오를 듯 한데 아깝다. 첫 휴식한다. 소나무 그늘 아래 자리 잡고 정상주 탁주 분음한다.
국사봉을 향한다. 가파른 내리막이다. 햇낙엽이 등로를 덮어버려 생사면을 누비기도 하지만 되게 미끄럽다. 미끄러
진 김에 미끄럼 타고도 내린다. 가파름은 620m봉에서 잠깐 주춤하고는 다시 깊이 내리쏟는다. 가을은 깊이울계곡
에 몰려 있다. 바닥 친 안부는 왕방이고개 ╋자 길림길이다. 이정표에 국사봉 1.2km, 왕방산 1.6km이다. 버섯을
따러왔다는 중년 여자를 만난다. 임도에 차를 대놓고 부부가 함께 왔다고 한다.
서리가 내릴 때쯤이면, 노루궁뎅이버섯, 느타리버섯, 서리버섯 등이 나온다고 한다. 올해는 무더위가 너무 오래
지속되어 버섯이 예년만 훨씬 못하다고 한다. 덕순이의 안부를 묻자, 자기들은 어린 것들은 내버려두는데 이제는
너도나도 온 산길이 반질반질하도록 싹쓸이하더라고 한다. 국사봉 가는 길이 곧추선 오르막이다. 네 피치로 오른다.
그중 마지막 피치는 핸드레일 밧줄 붙잡고도 기어오른다. 너른 헬기장이 국사봉 정상 역할을 한다. 조망 좋다. 차례
로 수위봉, 소요산, 마차산, 감악산이 보인다. 그러나 해마다 조망이 약간씩 가리는 것은 주변의 나무들이 점점 자라
서다.
헬기장에서 미군부대로 이어지는 능선 대로는 철문으로 막았고 등산객은 그 왼쪽 데크로드로 간다. 전에는 데크로
드 난간을 넘어 개척하듯이 능선을 타고 새목고개를 갔는데, 오늘은 데크로드 안내 따른다. 국사봉 정상에 가까운
왼쪽(서쪽) 사면을 길게 돈다. 군부대 정문에서 군사도로와 만나고 그 도로 따라 구불구불 내린다. 주릉과 멀어지면
새목고개 오를 일을 생각하여 확 생사면을 치고 능선에 올라버릴까 하는 마음이 없지 않았지만, 그럴 때쯤이면 도로
는 다시 주릉에 가까워진다.
14. 앞 가운데 안부는 오지재, 그 오른쪽은 해룡산, 멀리는 죽엽산, 불암산, 수락산
15. 앞에서부터 수위봉, 소요산, 마차산, 감악산
16. 소요산, 가운데가 주봉인 의상대이다
17. 앞에서부터 소요산, 마차산, 감악산
18. 멀리 가운데가 해룡산
20. 멀리 가운데는 수리봉, 그 앞 왼쪽은 불곡산
21. 앞은 수위봉, 그 뒤는 국사봉과 왕방산(오른쪽)
22. 미군부대 사격장 주변
23. 멀리 가운데 오른쪽은 국사봉과 왕방산, 그 앞은 수위봉
24. 가운데는 해룡산
▶ 수위봉(656m), 소요산 의상대(587.5m)
새목고개. 수위봉고개라고도 한다. 아스팔트 포장한 도로가 지난다. 이로써 둘째 미션도 수포로 돌아갔다. 덕순이
분내도 맡지 못했다. 우리는 고갯마루로 오르지 않고 도로 맞은편 묵은 임도를 올라 주릉에 붙는다. 등로는 방화선
처럼 잘 났다. 한 피치 길게 오르면 수위봉 정상이다. 국사봉에서 소요산 칼바위까지 능선길 7.8km나 된다. 삼각점
또는 표고점 봉우리가 10좌다. ‘아조타조아’라는 명의의 팻말이 봉봉 차례로 12간지로 있다. 수위봉은 ‘亥峰’이고
소요산 칼바위 직전의 473.3m봉은 ‘子峰’이다.
무척 따분하고 지루한 봉봉 오르내림이 시작된다. 산 첩첩 조망도 없고 짜릿한 스릴 느낄 바위도 없고 눈 맞춤할
풀꽃도 없고 눈을 배불릴 만산홍엽(滿山紅葉)도 없고 만리발청향(萬里發淸香) 덕순이도 없다. 수위봉 내리막이
험로로 변했다. 부드러울 산길을 산악오토바이가 온통 망가뜨려놓았다. 등로 한가운데가 깊게 파인데다가 낙엽이
그걸 가려 자칫하면 넘어지고 발목을 삐기 십상이다. 서너 차례 허방 디뎌 자빠지고 나서는 등로 옆 생사면을 잡목
헤치고 내린다.
수위봉을 진땀 빼며 길게 내린 안부는 임도가 잠깐 들른다. 임도 나무숲 그늘에 들어 점심밥 먹는다. 어느덧 산중에
서 라면이 맛 나는 계절이 돌아왔다. 밥을 곁들이니 만복이다. 커피 또한 향기 먼저 달콤하다. 시지푸스적 봉봉 오르
내림이 이어진다. 456.7m봉 정상은 평평한 초원이다. ‘참나무봉’이라는 표지가 보인다. 412.8m봉을 내리는 마루금
은 절벽이라 오른쪽 사면으로 비스듬히 내린다. 협곡이다. 이래서 산악오토바이는 미리 오른쪽 사면을 내려갔다.
협곡은 묵은 임도가 지난다. 이다음 485.5m봉은 오르기가 퍽 힘들다. 가파른 오르막이다. 땅에 코 박고 오르니
그 거친 숨에 낙엽이 들썩인다. 왼쪽 사면은 군부대 출입을 막는 철조망을 둘렀다. 이다음 473.3m봉은 드문 바윗길
오르막이다. 바위에는 발판과 고정밧줄이 마련되어 있다. 소요산 연봉이 금방 손에 잡힐 듯 가까워도 봉봉을 넘는
다. 473.3m봉을 밧줄 잡고 낙엽 지치며 내린다. 드디어 소요산 품에 든다. 스퍼트 낸다.
소요산 칼바위에 오르고 등산객들 무리에 섞인다. 칼바위는 들쭉날쭉한 바위보다는 그 틈 비집은 노송이 특히 아름
답다. 칼바위를 내린 안부는 ┣자 갈림길이다. 나한대 0.5km, 의상대 0.7km. 의상대가 소요산 연봉 중 주봉이고
조망 또한 으뜸이다. 간다. 우선 나한대 오르는 길은 잠시 부드럽다가 가파른 오르막 데크계단이다. 길다. 0.25km
남짓이다. 그리고 50m 돌길 오르면 나한대다. 나한대는 키 큰 나무숲이 가려 조망이 시원찮다.
곧바로 의상대를 향한다. 암릉 오른쪽 잔도를 지나고 돌길 한 피치 오르면 데크전망대인 의상대다. 연무가 여전하지
만 사방 거침없는 조망은 여태의 고단함을 잊기에 충분하다. 눈 비비고 또 본다. 의상대에서 공주봉까지 1.2km,
공주봉에서 원효굴 입구 등로까지 1.3km이다. 산 욕심을 버린다. 가장 빠른 길로 내리기로 한다. 나한대로 뒤돌아
가야 한다. 나한대에서 잘난 등로로 내리기보다는 3년 전의 기억을 되살려 북릉을 내린다. 낙엽은 인적을 덮어버렸다.
불과 몇 걸음 못가 바위 슬랩에 된통 미끄러지고 나서 이 길로 든 게 잘못이었음을 깨닫는다. 낙엽에 덮인 바위 슬랩
의 연속이다. 달달 기어 내린다. 땀난다. 어렵사리 바위틈 내려 넙데데한 사면이다. 비로소 허리 편다. 만추가 눈에
들어온다. 소요산의 가을 단풍은 예로부터 이름났다. 다음은 1925.11.5.자 조선일보의 “조고마하고고묘한 소요산의
절경”이라는 제하의 기사 일부다.
“실로소요산은 뎨이금강의 아름다운별명을듯는곳이니누구나한번그절승한 경개를찻고저 아니하는 사람이업슬즐압
니다소요사(逍遙寺)넓은뜰에 추초(秋草)가황량하고 원효폭포(元曉瀑布)세찬물에 락엽이 헛날리는이때에원효대사
(元曉大師)의녯자취를방문하는것도만흔취미와만흔김개를 북도다주겠지민 산과들십리길을 오월의백일홍 꼿보다도
오히려더붉고 더곱게단풍(丹楓)으로물드려노핫스니갖가지 붉은가지 입새입새붉은입새경치를찻는우리의 눈을 얼
마나반기게할는지오”
가을이 아직 머물러 있는 계곡이다. 자재암 가는 길이 여간 사납지 않다. 비탈길이거나 잔 너덜 돌길이다. 산그늘이
드리웠지만 단풍이 환히 길 밝힌다. 선녀탕 입구를 지난다. 선녀탕이 오르막 0.3km다. 내 게을러졌다. 선녀탕을
들르지 않고 그냥 간다. 곧 데크로드 나오고 많은 사람들이 서성이는 자재암이다. 독성암 원효정(元曉井) 앞에 여러
사람이 물병 들고 줄서 있다. 일찍이 백운거사 이규보(李奎報, 1168~1241)가 맛본 바 있는 명수다.
이규보는 “(원효대사가)차 끓이던 샘에 찬물이 고여/마셔보니 젖같이 맛있네(茶泉貯寒玉/酌飮味如乳)”라고 하였
다. 나도 어디 맛 좀 볼까 하였으나 물은 찔찔 나오고, 그 물 받으려고 여러 사람이 줄을 섰으니 그만 뒤돌아선다.
원효대 들러 원효대사가 좌정하고 바라보았음직한 전경을 나도 살핀다. 마차산 꾀꼬리봉이 산릉 너머로 보인다.
금강문 나서고 108계단 내리면 원효폭포와 원효굴이다. 원효폭포는 물줄기 가늘어 대폭 찾는 내 눈에는 차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대로다. 일주문을 지나 환속한다. 셋째 미션도 만족스럽지 않다. 근기(近畿) 대표라는 소요산
단풍이 올 가을에는 예전만 당최 못하다. 다음은 1938.11.10.자 조선일보에 실린 호암 문일평(湖岩 文一平,
1888~1939)의 “晩秋登陟 逍遙山(一)”의 일부다. 그때 소요산은 참으로 탐상(探賞)할만 했다.
“逍遙山의丹楓은 近畿秋色을代表 한名勝의하나이다.
懶散한 나는 여지까지 한번도 探賞하지 못햇더니 日前에 故鄕의 老先輩이신 未庭先生을 모시고 一日의 淸遊를 하
게됨은 참으로 快事이엿서다. 그날아침 일즉이 淸涼里驛에 이르니 아직도 時間이 만히남아잇다. 驛前에서차를 기
다리는 동안에 차침 모여드는 乘客이 無慮數百人에 달하엿다.
연거퍼잇는 며칠동안 休日은 勤勞人을 解放하는 一大福音인만큼 그네들은 이時期를 利用하야 飮食을 싸들고 敎外
行樂을求하려 온통 떠러낫다.
기차는 滿員이되어 안끼는커녕 서기도 困難하게쯤되엇다.(…)”
“이날天氣가 快晴하야 가을에도 드물게보는 明朗한날이다. 逍遙山一路에는 探勝客의 行列이 宛然히 長蛇陣을 일
우엇다. 洞口에 들어서니 溪谷이 幽遽하고峯巒이奇峭하야 近畿小金剛이라稱함이 반드시虛說이 아님을끄득이게한
다. 石逕의兩側에 엉크러진머루와 다래덩굴은 그속에혹은山짐생이나潛伏하지안헛는가하고 獨行가트면白晝라도
무시무시한 생각이나게쯤되엇다. 滿山 紅葉에 눈을 배불키며 시내소리에 귀를말키면서溪谷의구비를 돌고돌아기괴
드러가노라면 樹木이 鬱蒼하고 岩岸이險阻하야 이山中에서 最初로逢着하는 難關이엇다.(…) 그 他天人潭金宋窟
八仙瀑等名勝을 미처 구경하지 못하고돌아올새夕陽의丹楓은 일층더 사랑스러웟다.”
25. 중간 왼쪽이 불곡산
26. 백운대 연봉
28. 칼바위 남쪽 사면
29. 자재암 가는 골짜기
32. 청량폭포(옥류폭포)
34. 원효대 전망, 멀리는 마차산 북릉 꾀꼬리봉(437m)
35. 소요산 자재암 일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