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한라산과 인연을 맺게 된 때는 1970년대 중반. 제주 출신 재일교포 사업가 K씨가 고향땅(제주)에 개설한 은행(지방은행)이 외환과 수출입 업무를 시작하려 할 때였다. 준비 중인 그들에게는 BOK에서 분가하였으며 그 분야의 유일한 전업은행인
KEB의 도움이 필요했는데 KEB와 인연이 있는 내가 참여하게 되었다. 이로써 제주도 왕래가 시작됨은 물론 한라산 등반의 문도 열리게 된 것.
1974년(?) 5월 5일 휴일을 이용, 어리목에서 윗새오름을 거쳐 서북벽을 타고 오른 것을 시작으로 2019년 1월 29일에 38번째의 오르내림을 마쳤다. 40대에 들어 열린 이 인연이 45년을 한해 같이 꾸준할 줄이야.
70~80년대에는 기회 있을 때마다 무시로 오르내렸다. 서북벽 루트가 통제된 이후에는 성판악과 관음사 코스를 번갈아 가며 누볐고.
교통사고로 입원해 있는 동안에 육체는 물론 정신적으로도 좌절의 늪에 빠져 들어간 90년대 초. 3자리 수(100일)에 들지 않으려고 입원 99일째 날에 병실을 탈출하여 한라산
으로, 지리산으로, 사생결단으로 내달았다. 이 때부터 그들(한라산과 지리산)은 내 건강검진센터가 되었으며 상실한 자신 감을 되찾는데 그들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특히, 1997년 1월부터는 매년 1번 있는 정기검진일(등반일)을 1월 3째주말로 고정하게 되었다. 당시(1997년 1월 3째 주말)에 성판악이 기상악화를 이유로 입산을 통제한다 해서 어리목으로 갔는데, 가던 날이 장날?
그 날이 제주의 '한라산눈꽃축제'가 탄생한 날이다. 내 기억이 맞다면, 1, 2회는 무난했으나 3회 이후 강설량 부족과 난동(暖冬)
으로 낭패를 거듭하다가 5회(2001년)를 끝으로 영구 폐업했다.
그러나, 1월 3째 주말로 고정한 내 검진행사는 변함 없으며 해를 거듭해 산수 (傘壽/80세)를 넘김으로서 검진이 필요 없다고 판단된 2014년까지 이어졌다. 34번째인 2015년부터는 1월 제3주말의 족쇄를 풀었고 여러 사정으로 빠뜨린 2016년과 2018년의 등반은 2017년과 2019년에 각기 이틀씩 연일 했다. 이렇게 해서 2019년 1월 29일의 윗새오름이 한라산 오름 38번째가 되었다.
동일 시기(1월 3주말)에 같은 중량의 백팩을 메고 동일 코스의 오르내리기를 매년 반복하는 동안에 소위 표준 랩 타임(lap time)을 갖게 되었다. 해마다 새 해의 첫 관심사는 이 랩 타임의 유지 여부였다. 그래서 매년 연초(3째주말)에 한라산에 오르게 되었고 소기의 목적(랩 타임
유지) 달성이 확인되면 한해의 건강에 대한 자신감을 갖곤 했다. 늙어가는 것을 감안하면 해마다 전년 대비 조금씩 못해 가는 것이 정상인데 동일하거나 오히려 더 단축이 되면 환호할 경사라 할 수 있지 않은가. 설 전후의 지리산 등산도 같은 이유에서 지속했으며, 이런 까닭에 이 시기의
양 산을 정기검진기관으로 정의했다.
그러나 종심(從心)을 지나 10년. 80 넘어서도 건강검진 운운하는 것은 이미 10년 전(從心所欲不踰矩)에 타기 했어야 하는 과욕 아닌가.
그래서, 2014년을 끝으로 양 산의 검진기관 지정을 철회하였다.
이는, 건강 증진을 위한 등산 행위의 원천적 금지 또는 거부를 의미한다.
한라산과의 인연이 있게 한 사람들도 저승으로 돌아갔거나 대기중이다. 따라서, 그들이 있기에 정체성이 모호한 섬에서도 꾸준히 이어 온 한라산 뒤
풀이가 이미 끊겼다.
머리 둘 곳이란 오로지 한라산 뿐인 꼴이 되었는데도 지속이 가능하겠는가.
한라산 이틀을 마친 초저녁(2019.1.29), 가로등 건널목에서 길을 물은 것이 호형호제로 발전한 78세 영감이 있기는 하나 인연일지는 아무도 모를 일.
하루 걷기를 적게는 20.000보, 많을 때는 60.000보라 하나 편편한 길이다. 아직은 어렵사리나마 정상에 오르나, 척추로는 부족한지 다른 어디(눈과 귀
또)의 사보타주가 시작된 듯 한데 내일일지 모레가 될지 모를 피네(fine).
스핑크스(Sphinx)는 저리 가라.
"두 발로 당당하게 걸어서 이승을 떠나리라" 다짐둔 호언이 과연 지켜질까.
이변은 10년 넘게 이용해 온 선편이 아니고, 저가항공도 아닌 아시아나항공으로 왕복한 것.
등반기회를 4계절로 넓혔음에도 이전의 한겨울 시기를 택한 것도 그렇고.
소멸 예정인 딸의 항공마이리지를 이용했기 때문이다.
2009년 1월부터 시행하고 있는 10년 시한생명에 걸려 수명이 다해가는 저축마일리지라 자율성이
반도 되지 않았다.
내 몸에 맞는 옷을 고르는 것이 아니고 제한된 기성복에 내 몸을 맞추는 꼴이 될 수 밖에.
09시가 입산 마감시간인 성판악 들머리에 10시 반 넘어 당도하게 될 것을 알면서도 환승을 거듭해
그 쪽 버스에 오른 늙은이의 배짱은?
그러나, 준비한 사정(事情) 레퍼토리는 무용지물이 되었다.
내가 끈질기게 요망해온 입산 시간 제한의 탄력 적용이 시행되고 있으니까.
계절과 구간에 따라 제한(허용) 시간을 달리 하므로 내 목표 '사라오름'은 정오까지 허용된다.
성판악코스에서 진달래대피소 직전의 왼쪽에 비켜있는 분화구, 사라오름은 좀처럼 들러지지 않는 곳이다.
백록담에 당도 가능한 시간이면 정상을 향해 오르는 일이 우선이고 하산 때는 시간이 촉박하기 때문이다.
항공편 사정으로 정상(백록담)까지 불가능하기 때문에 정상을 포기하고 택한 사라오름 전망대.
서울을 떠나기 전에 비행 스케줄에 맞춰 세운 계획대로 올랐다.
미리 세운 일정이었다 해도 정상 오름이 가능했다면 이번에도 사라오름은 무자비하게 제외되었을 것이다.
전망대는 성판악~백록담 코스 기준, 383계단을 오른 분화구에서 109계단 높은 곳에 설치된 시설이다.
양호한 기상인데도 돌변하여 환히 올려다 보이던 백록담이 막연하다.
사라오름(沙羅岳, 紗羅岳, 舍羅岳, 斯羅岳 )은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신례리, 도내386개 오름 중
가장 높은 위치(해발1324.7m)에 있으며 정상부(둘레2481m)의 원형 분화구에 물이 고여 습원을 이루는 산정호수다.
면적이 440.686㎡로 2011년 10월 13일에 지정된 대한민국의 제83호명승이다.
그러나 긴 가뭄에 풍부했던 물(아래 전재한 그림들)은 증발해(?)버렸고 드러난 바닥은 보송보송하다.
지겹도록 쏟아붓던 눈마저도 귀하디 귀한 사라오름.
(위 5장의 사진들은 시각적 이해를 돕기 위해 轉載했다)
예년에는 쌓인 눈 때문에 굶을 수 밖에 없는 한라산 가족들(노루와 또...)을 위해 먹이를 주어야 했는데 올
겨울에는 이같은 수고가 필요 없겠다.
등산인들과 친숙해진 노루들이 눈 없는 저지대(해발1000m안팎)로 내려와서 식사하는 모습이 태평스럽고
평화롭다.(이상은 2019년 1월 28일 성판악 코스)
1월 29일(화), 어리목에서 윗새오름 길을 시작했다.
전일에 성판악 코스에서 확인한 것은 눈 없는 성판악(해발750m)이지만 해발1.000m지점 이후에는
쌓인 눈이 녹다가 얼기를 반복하여 미끄러움이 여간 아니라는 것이다.
아이젠이 빙판을 파고 들지 못하여 미끄러지기 일쑤라 하체가 약화 일로에 있는 늙은이는 긴장을
풀 수 없다는 것.
어리목 코스도 그랬다.
젊은이들과 달리 하체가 약해진 늙은이에게는 치명적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의 추월을 허용하며
조심스럽게 오르는 중이었다.
모든 사람을 추월하던 상황의 대 역전이 불가피한 것은 당연하며 지극히 자연스런 일인데도 왠지
소외감과 오한이 따르는 것 같다.
된비알이 계속되는 사제비동산 구간에서 맨손에 1.5L 물 1통만 들고 기운차게 오르던 한 젊은이.
내 500ml 물통의 잔량을 본 그는 내 물통을 가득 채워주고 함께 사진 1컷을 찍은 후 앞서 나갔다.
몇걸음 올라가던 그가 다시 내려와서 주고 간 것은 롯데의 막대초콜릿 가나(chana) 1개.
오름이 계속되는 구간에서 지칠 때 도움이 될 것이라며.
외지 청년이지만 제주도를 자주 찾는다는 고마운 그는 27세의 박성준.
즉석에서 사진과 인적사항을 내게 전송하고(아래) 떠났다.
드물게 맑고 따스한 날이 이틀간 이어졌다.
윗세오름 한하고 선명하고 포근한 날씨에 지척으로 다가오는 서북벽 백록담 정상.
카메라에는 잡히지 않았으나 육안에는 관음사 코스의 장구목이 어림되고 왕관릉 삼각봉까지 들어왔다.
돈네코로 하산하려면 13시(오후1시) 이전에 윗세오름 광장 끝의 통제선을 넘어야 한다.
(하절기에는 14시30분, 춘추기에는14시)
안내방송을 들으며 5분 전에 통제선을 넘어 마지막 저지선(백록담 최근거리)에 도달하였으나 8km가
넘는 길고 미끄러운 너덜길이 심란했다.
불(flash light)이 있다면 느긋한 마음으로 진행해도 되겠지만 오늘도 무비유환(無備有患)을 생각하지
첫댓글당대의 대단하신 분이심니다. 김선생님을 뵌 것이 15년전인 61세때인데, 저는 15년~16년을 척추관협착증 진단을 받고 2년 고생하다가 이제 평지를 걷는데는 장족의 발전을 해 동산 수준도 조심스레 다니는데도 매우 조심을 하여 김진규선생님의 글이 뜸해 건강을 걱정했는데 산으로 건강검진을 하신다니 무리하지 마시고 기해년에도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아! 그런 일들이 있으셨군요. 늙는 것이 익어간다지만 우리의 인생은 아무래도 퇴보의 길을 걷는 것, 조심스럽게 건강을 유지하며 남에게 폐가 되지 않으려는 삶을 위해서 다같이 노력해야 되지 않을까 합니다. 모쪼록 무리없는 관리를 하시어 우연치 않게 만나뵐 기회가 얻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김선생님께서는 워낙 많은 분들과 교우관계가 있어 기억을 못하실 지도 모르지만 저는 언제나 기억의 끈이 달려 있으니까요. 건강하시기를 기원하면서~~
수원과 그 일대를 지날 때마다 백두대간 지름티재에서 저의 귀로를 해결해 주신 박해병 고문님과 그 산악회를 생각하는데요. 木杖 든 봉암사 수도승들과의 一觸卽發의 위기(?)가 떠오를 때마다 고소짓곤 합니다. 이즈음은 서울의 외곽을 도는 '157km서울둘레길'을 걷고 있습니다. 5번을 돌았으며, 올해에는 매월 1번씩 마칠 계획인데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대부부이 100m~300m대의 야산이라 걷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반가운 邂逅를 기대하며....
첫댓글 당대의 대단하신 분이심니다. 김선생님을 뵌 것이 15년전인 61세때인데, 저는 15년~16년을 척추관협착증 진단을 받고 2년 고생하다가
이제 평지를 걷는데는 장족의 발전을 해 동산 수준도 조심스레 다니는데도 매우 조심을 하여 김진규선생님의 글이 뜸해 건강을 걱정했는데
산으로 건강검진을 하신다니 무리하지 마시고 기해년에도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잊지 않고 들르시네요.
그 사이에 배를 몇번 열었으며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더 심한 악화는 비켜가나 봅니다.
이같은 다행이 아름다운세상님의 기원 덕인 것을 미처 몰랐습니다.
감사하고 죄송합니다.
아! 그런 일들이 있으셨군요. 늙는 것이 익어간다지만 우리의 인생은 아무래도 퇴보의 길을 걷는 것, 조심스럽게 건강을 유지하며
남에게 폐가 되지 않으려는 삶을 위해서 다같이 노력해야 되지 않을까 합니다. 모쪼록 무리없는 관리를 하시어 우연치 않게
만나뵐 기회가 얻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김선생님께서는 워낙 많은 분들과 교우관계가 있어 기억을 못하실 지도 모르지만
저는 언제나 기억의 끈이 달려 있으니까요. 건강하시기를 기원하면서~~
수원과 그 일대를 지날 때마다 백두대간 지름티재에서 저의 귀로를 해결해 주신 박해병 고문님과 그 산악회를 생각하는데요.
木杖 든 봉암사 수도승들과의 一觸卽發의 위기(?)가 떠오를 때마다 고소짓곤 합니다.
이즈음은 서울의 외곽을 도는 '157km서울둘레길'을 걷고 있습니다.
5번을 돌았으며, 올해에는 매월 1번씩 마칠 계획인데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대부부이 100m~300m대의 야산이라 걷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반가운 邂逅를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