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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 말씀을 전파하라 말씀/ 디모데후서 4:1-22 요절/ 디모데후서 4:2 | 2023. 1. 14 | |
신년 말씀 3강 |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몇주전 JBF들과 영화 ‘노량’을 보았습니다. 노량해전에서 이순신장군의 마지막 명령인 “나의 죽음을 적들에게 알리지 말라”는 말은 지금도 후세들이 기억합니다. 디모데후서 4장은 바울의 마지막 서신의 마지막 장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바울은 로마감옥에서 순교를 앞두고 디모데에게 마지막 명령을 합니다. 디모데 뿐 아니라 우리도 기억해야 할 백전노장의 영적 장군 바울의 유언적 명령은 무엇입니까? 말씀을 통하여 2024년에도 우리가 힘써야 할 것이 무엇인가 배우고 말씀 전파자의 자세를 새롭게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2a절을 보십시오.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바울은 디모데에게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 Preach the word!”라고 엄히 명령합니다. 여기서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요 복음의 말씀입니다. 이는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이요 예수님을 통하여 임하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입니다. 또한 이는 다시 오셔서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말씀입니다. 이 복음의 말씀을 듣고 믿는 것은 구원이냐 심판이냐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1~3장에서 바울은 디모데가 이 말씀의 종으로 은사가 있음을 다시 생각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아름다운 복음을 지키고 배우고 확신한 말씀에 거하라고 하였습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그 말씀을 전파하라고 명합니다. 바울은 어떻게 명하고 있습니까?
1절을 다시 보십시오.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바울은 디모데에게 ‘너의 영적인 아비요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명하노니’라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의 권위로 명합니다. 이는 이 명령이 바울의 사적인 명령이 아니요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명하셨습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막16:15-16)
조선시대에 임금의 명령인 어명을 받을 때 4번 절을 하고 받았다고 합니다. 좌우에 있는 신하에게 절하고 왕을 향해 절하고 어명을 받고 다시 절을 했다고 합니다. 왕의 명령은 절대적인 권위가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처럼 명령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디모데는 들으시오! 만왕의 왕, 심판의 주 그리스도 예수님의 어명이요!”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말씀 전파의 사명을 감당해야 할까요? 첫째,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써야 합니다. 2b절을 보십시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이 말씀은 NIV 성경에 ‘Be prepared in season or out of season’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는 말씀을 전하기 위해 항상 준비되어 있으라는 뜻입니다. 디모데는 에베소교회의 책임목자로 할 일이 많았을 것입니다. 예배처를 관리해야 하고 병든자를 심방해야 하며 가정일도 처리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일들을 감당하면서도 마음이 말씀에 늘 집중되어 말씀을 가진자가 되어야 합니다. 때를 따라 리더들과 양들에게 영적 양식을 나누어 주기 위해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준비된 성경 선생은 성령께서 언제든지 자유롭게 쓰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의 7명의 집사 중에 하나인 빌립은 준비된 성경 선생이었습니다. 어느날 주의 사자는 빌립에게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광야 길로 가라고 하였습니다. 빌립이 순종하여 가보니 에디오피아 재무장관이 수레에 타고 있었습니다. 그는 고난의 메시야를 예언한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을 읽고 있었습니다. 빌립은 성령의 방향에 순종해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나가서 물었습니다. “읽는 것을 깨닫느냐”(행8:30) 이때 그는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냐” 대답했습니다. 이에 빌립은 이 이사야 말씀에서 시작하여 예수님을 가르쳐 주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에디오피아 내시는 즉시 복음을 영접하고 세례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준비된 성경 선생에게는 성령께서 양을 보내시고 말씀을 전하게 하십니다.
또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는 말씀은 복음 전파의 시즌이 아닌 것 같을 때도 여러 모양으로 말씀 전파를 위해 힘쓰라는 것입니다. 바울의 경우 감옥에 갇혀있는 시간은 시즌이 아닌 것 같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자유의 때든지 갇혀있을 때든지 말씀을 전파하기 위해 항상 힘썼습니다. 바울은 감옥에서도 자기를 파수하는 군인에게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빌1:13) 그를 찾아오는 사람들에게도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행28:30,31) 그는 옥 바깥에 있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다하며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어찌하든지 말씀을 전파하고자 편지를 써서 전파하였습니다. 그 편지들이 성경에 기록된 옥중서신이 되었습니다.
학생복음역사는 봄학기 개강, 부활절, 여름 수양회, 성탄절 등이 시즌입니다. 그런데 우리 중에는 시즌이 아닐 때 성경공부하러 나온 분들이 많습니다. 임엘리야목자님은 2001년 가을 친구가 소개 시켜준 다단계에 속아 마음이 가난해져 있을 때 일대일 성경공부에 초대 받게 되었습니다. 황사무엘목자님도 복학하여 공부만 하고자 도서관만 들락거리다가 마음이 곤비하여 성경공부를 진지하게 하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사마리아 땅은 ‘out of season’이라는 선입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를 하시고 여인이 물동이를 버려두고 수가 성으로 달려가는 것을 보고도 궁금해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밥 먹을 생각만 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넉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였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요4:35)
둘째,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해야 합니다. 2c절을 보십시오.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말씀을 전파하는 것은 회중에게 말씀을 선포하는 것 뿐 아니라 몇 사람에게 또는 일대일로 가르치는 것을 포함합니다. 사람마다 상황이 다르고 또 같은 사람이라도 상태가 때에 따라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말씀 전파자는 그 사람의 형편에 맞게 섬세하게 도와야 합니다. 경책한다는 것은 바로잡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가치관을 영적인 가치관으로 잘못된 신념이나 생각을 성경에 기초한 생각으로 바로잡는 것입니다. 경계한다는 것은 책망한다는 것으로 죄를 깨닫고 죄에서 떠나도록 꾸짖어 돕는 것을 말합니다. 권한다는 것은 상하고 위축되어있는 마음을 격려하고 위로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것은 인간적인 권위를 앞세워 할 수 없고 말씀을 인격적으로 잘 가르쳐 줌으로 가능합니다. 말씀을 통하여 성령님께서 역사하사 스스로 깨닫고 돌이킬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래 참는 것이 필요합니다. 말씀앞에 빨리 순종하고 변화되었으면 하는 내 생각을 내려놓고 성령께서 양의 마음에 역사하시도록 기도하며 인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인터넷과 스마프폰 시대에 사람들의 몰입시간은 12초에서 8초 이하로 매우 짧아졌다고 합니다. 이런 시대에 사람들은 말씀을 진중히 배우는 것을 어려워합니다. 요즘은 아무리 내용이 좋아도 길면 좋아하지 않습니다. 80년대 이전에 성경공부 문제지를 보면 3파트, 3~5문제씩 총 12-13 문제가 기본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즘 새내기 말씀공부는 3문제를 넘어가면 부담스러워 하는 것 같습니다. 작년 저는 23학번 새내기 양을 얻어 설레는 마음으로 깊이 있는 일대일을 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조금만 말씀 풀이가 길어지고 생각하는 질문을 하면 표정이 굳고 힘들어 하였습니다. 저는 깊이 있는 일대일을 고집하지 않고 한 가지 배우고 은혜 받을 수 있도록 그 양의 눈높이에서 섬기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새로운 세대들을 이해하고 범사에 오래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셋째,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디모데가 준비된 성경선생으로 말씀을 깨어 잘 전파하면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할까요? “와~ 목자님, 이런 생명의 말씀을 전해주시다니 감동이에요. 제가 이 진리의 말씀을 잘 듣고 순종하여 구원을 얻고 복 있는 자가 되겠습니다”할까요? 3,4절을 보십시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말세가 가까울수록 사람들은 바른 교훈을 받지 않고 자신의 욕망을 따라 듣기 원하는 이야기를 해주는 스승을 많이 둡니다. 당시 사람들은 복음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 곧 인간의 욕망을 신들에게 투영한 ‘신화들’을 따랐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유투브, 인스타, 블로그등을 팔로우하며 각자의 스승을 많이 둡니다. 성경선생도 내 가려운 귀를 긁어 줄 하나의 선생으로 여깁니다.
이런 시대에 바울은 디모데는 어떻게 하라고 합니까? 5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모든 일에 신중하라’는 것은 모든 일에 분별력을 가지고 깨어 있으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비록 사람들이 진리을 외면하고 멀어져도 너는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요 목자로 사명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반복해서 고난을 받으라고 말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1:8),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2:3) 이는 말씀 전파자에게는 고난이 필수적으로 따르기 때문입니다. 바쁜 삶 속에서 언제든지 준비된 성경선생이 되기 위해서는 고난이 따릅니다.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은 고난이 따릅니다. 인간적으로 친한 사람에게 말씀을 전하고자 할 때 ‘갑분싸’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져 관계성이 멀어지는 것을 각오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본성은 안일하고 쉽고 편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고난이 있지만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주님의 명령에 순종할 때 내가 말씀을 가진 자가 되어 복 있는 자가 됩니다. 말씀 앞에 내가 먼저 경계와 견책과 권함을 받음으로 성장하고 온전하게 됩니다. 말씀이 주시는 지혜와 은혜로 충만한 삶을 살게 됩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담대하게 권면합니다.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넷째, 주님이 주실 의의 면류관이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6절을 보십시오.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전제는 제사의식으로 제물에 마지막으로 포도주를 부어 드리는 제사 행위입니다. 전제는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을 상징합니다. 더 이상 드릴 것이 없을 것 같은데 바울은 순교를 통해 자신의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하나님께 드리고자 하였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죽음이 다가왔음을 인식할 때 슬픔에 압도되고 죽음이 주는 두려움에 무기력하게 됩니다. 그러나 바울은 죽음을 이 땅의 삶을 끝내고 하늘의 삶으로 출발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바울은 로마 감옥 대합실에서 그의 마음에 들려오는 안내방송을 듣고 있었습니다. “이제 천상으로 가는 1인 열차의 출발이 가까웠습니다. 바울 사도께서는 승차 준비를 마쳐 주시길 바랍니다.”
바울은 자신이 어떻게 사명을 감당했는가 증거합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바울의 일생은 그리스도의 이름과 영광을 위하여 선한 싸움을 싸우는 삶이었습니다. 그는 육체의 소욕을 거스르는 성령을 따라 행하는 내적 싸움을 싸웠습니다. 양들을 붙들고 있는 우상과 악한 영의 세력과 싸웠습니다. 이 싸움은 대차게 한판 붙고 끝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마라토너가 골인 지점까지 달리듯 끝까지 말씀 전파의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무엇보다 바울은 믿음을 지켰습니다. 율법주의 영지주의 이단 사상의 위협 속에서 타협하지 않고 십자가와 부활의 아름다운 복음을 지켰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버리고 세상으로 갔지만 그는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주님이 주실 의의 면류관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8절을 보십시오.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그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의의 면류관은 ‘너의 믿음이 옳다, 너의 삶이 옳다’ 인정 받는 면류관입니다. 바울은 만왕의 왕, 심판의 주 예수님을 다시 만날 때 주님이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칭찬과 인정을 받을 것을 확신했습니다. 그리고 월계관은 마라톤 우승자에게만 주어지지만 이 의의 면류관은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고 믿음의 경주를 끝까지 달려간 자들에게 모두 주어질 것을 확신했습니다.
지난해 저는 은혜로 한 명의 리더와 한 명의 양을 얻어 일대일로 말씀을 전파할 수 있었습니다. 피곤한 저녁 시간과 쉬고 싶은 주말에 말씀을 가르치는 일은 고난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은 매우 성실해서 약속을 잘 지켜 저도 계속해서 말씀전파자의 삶을 살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주님은 저를 단련해 주셔서 직장일을 감당하며 일대일 말씀 전파에도 쓰임 받는 그릇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저는 본성적으로 고난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입버릇처럼 막내아들 하준이가 대학에 가면 자유의 몸이 되어 선교지를 다니며 새처럼 살 것이다 하였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볼수록 주님이 맡기신 사명에 끝까지 충성하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요 참 자유인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주님께 드리고자 하고 믿음의 경주를 완주한 바울과 같은 삶이 의의 면류관을 받는 삶임을 배우게 됩니다. 저의 소망이 세상적 자유가 아니요 마지막날에 예수님의 주시는 의의 면류관이 되어야 겠습니다. 이 소망으로 말씀 전파자의 삶을 끝까지 달려가길 기도합니다. 2024년 “하나님을 믿으라”,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말씀을 붙들고 말씀 묵상과 연구에 더욱 힘쓰고 3명 이상의 양들을 꾸준히 말씀으로 먹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마지막으로 말씀 전파자는 동역자들과의 교제와 물질적, 정신적 지원도 받아야 합니다. 9~18절은 바울의 개인적 부탁입니다. 여기에는 바울의 인간적인 면모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당시 바울은 춥고 외로웠습니다. 9절을 보십시오.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바울은 디모데에게 오라고 합니다. 11절에 마가도 데리고 오라고 합니다. 당시 제자 데마는 세상을 사랑하여 바울을 버렸고 다른 동역자들도 각자의 사역지로 갔습니다. 바울은 외로웠습니다. 이를 볼때 말씀 전파자도 동역자와의 교제가 필요함을 가르쳐 줍니다. 또 바울은 디모데가 올 때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라고 하였습니다. 때는 겨울이 다가오는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바울은 추위를 막아줄 겉옷이 필요했습니다.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이는 구약성경을 말합니다. 바울도 영적 정신적인 양식이 필요했습니다.
말씀의 전파자는 하늘의 상만 바라보고 수고와 헌신만 요구되는 게 아닙니다. 동역자들과 교제도 필요하고 물질적 정신적 지원도 필요합니다. 이런 지원을 잘 받을 때 더욱 강건해져서 복음 전파의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습니다. 올 한해 우리가 동역자들과 사랑의 교제를 잘 나누고 성경과 좋은 책을 통해 영육간에 풍성해 져서 말씀 전파자의 삶을 힘있게 감당하길 기도합니다.
우리가 2024년 준비된 성경선생이 되어 말씀을 전파하고 믿음의 경주를 계속 달려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잘하였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주님의 칭찬을 받고 의의 면류관을 받는 자들이 되길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