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金洙暎, 1921년 ~ 1968년)
김수영 시인을 평가하기를 모더니트이다. 참여파 시인이다. 자유를 노래한 시인이다. 등등이다.
1921년 11월 27일, 서울 태생. 선린고등상업학교에서 수학했다.
일본으로 가서 도쿄 상과대학교에 입학하였다. 일제강점기 말에 학병 징집을 피해 대학교를 중퇴하고 길림성으로 이주했다가 광복과 함께 귀국하여 시 창작을 시작하였다. 또 연희전문학교에서 잠시 수학했으나, 졸업하지 못한 채 중퇴했다. 김경린, 박인환과 함께 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발표하여 주목을 끌었다.
인민군에 강제로 징집되었다가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석방되었다.(반공포로라고 함)
김수영 시인은 일본어와 영어에 능통하였기 때문에, 통역 일과 잡지사, 신문사를 전전하며 시작과 번역에 전념하였다.
이후 번역과 작품 활동을 계속하다가 1968년 6월 15일 밤 술자리가 끝나고 귀가하던 길에 서울 마포구 구수동에서 인도로 뛰어든 좌석버스에 치여 병원으로 옮겨진 뒤 다음날 새벽에 48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했다.
한국의 대표적 참여 시인으로 평가받는 김수영은 초기에는 현대문명과 도시생활을 비판하는 시를 주로 쓰다가 4.19 혁명을 기점으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의 탄압과 압제에 맞서 적극적으로 부정과 타협하지 않는 정신을 강조하는 시를 썼다. 그는 이렇게 썼다. "4.19 때 나는 하늘과 땅 사이에서 통일을 느꼈소....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이 그처럼 아름다워 보일 수가 있습니까!“
김수영 시인은 이어령과 순수-참여 논쟁을 했는데, 나치독일이 뭉크의 그림을 음란하다면서 탄압한 문화사를 예로 들어, "불온한 문학을 발표할 수 있는 사회가 정상사회"라고 비판했다.(1968년 조선일보에서의 불온문학 논쟁) 이러한 비판정신은 《김일성 만세》에서 김일성 만세를 외칠 수 있는 즉 표현의 자유가 있는 민주주의 사회를 상상하는 데에 이를 정도로 김수영은 자유를 향한 길을 걷고자 하였다.
김수영은 시의 현실 참여 문제를 시와 행동을 통해서 실천적으로 보여 주었다. 1960대 중반부터 시의 현실 참여의 논의를 주도했다. ‘시에 춤을 뱉어라(1968)’라는 산문을 통해서 자신의 시적 입장을 나타냈다. 그는 자신의 시적 지향애 전환을 시도하였다. 그는 후기 모더니즘에 빠져서 시작에 빠져든 것을 반성하면서 시작에서 추상적인 표현은 벗어버리고 현실 문제를 서정적인 언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 현실에 비판의식을 드러내겠다고 하였다.
4.19를 겪고 난 직후에 발표한 시 ‘푸른 하늘’을 보자.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웠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란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왜 고독해야 하는가를.
-푸른 하늘을 -
푸른 하늘’은 4. 19 이후에 발표한 시이다. 격렬하게 감정이 표출되는 대신에 오히려 담담하게 느껴지는 것이 김수영 시에서 하나의 경지를 이루었다고 말한다.
<풀>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돌아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돌아눕는다.
-풀-
이 시는 다양한 상징적 의미로 읽을 수 있다. 풀의 의미를 저항하는 민중의 의미로 읽을 수도 있고, 풀의 본질적인 운동성을 말하는 것이라고 읽을 수도 있다. 어떻게 읽던 공통적으로 읽을 수 있는 것은 풀의 강인한 생명력이다.
김수영은 많은 작품에서 일상에서 시적 대당을 찾고, 현실에서 살고 있는 주체의 존재를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