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여주시 흥천면에 사는 임정현씨(80·여)는 마을 사람들로부터 부러움을 사고 있다. 아들 내외, 손자들과 함께 다복하게 살고 있어서다. 하지만 임씨에게도 남모르는 걱정거리가 있다. 젊은 시절부터 양봉으로 혹사시킨 자신의 무릎이다.
40여년 전 임씨는 간질환을 앓는 남편이 우연히 꿀을 먹고 증세가 호전되자 양봉에 뛰어들었다. 소소하게 시작했던 양봉장의 규모를 넓혀가던 어느 날, 남편은 돌연 시의원 출마 선언을 하고 양봉을 뒷전으로 미뤘다. 하지만 출마는 실패로 돌아갔고, 모아뒀던 재산도 대부분 사라졌다.
임씨는 더 바지런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들이 아버지의 꿈을 이루겠다며 출마를 선언했다. 10여년 전 아들은 두번의 낙선 끝에 시의원에 당선됐다. 그러나 이미 가세는 기울대로 기울었고, 임씨의 무릎에서는 이상신호가 느껴졌다. 그의 양쪽 무릎은 부기가 오르고 빠지기를 반복했다. 통증도 점점 심해졌다. 한걸음 한걸음 내딛기가 힘겨웠다. 특히 왼쪽 무릎엔 힘이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 뼈를 지지하는 근육량이 너무 적어 인공관절로 바꾼다고 해도 회복이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됐다.
급히 서울의 병원으로 임씨를 모셨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 각종 정밀검사를 진행했다. 결과는 최악에 가까웠다. 무릎관절이 벌어져 있었는데, 이는 최근 본 관절염 중 가장 심각한 수준이었다. 최선의 치료방법을 찾으려고 의료진들이 심도 있게 논의했다.
‘인공관절치환술’이 불가피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 수술은 손상된 관절을 금속 재질의 인공관절로 바꿔 운동기능을 회복시키고 통증을 없애는 것이다. 하지만 수술로 무릎관절 균형을 맞춰도 이를 지탱할 근육이 없으면 관절이 흔들릴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럴 경우 기대만큼 경과가 좋지 않을 수도 있다. 임씨의 휜 다리가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오지 않을 가능성이 있었지만 의료진은 고심 끝에 인공관절치환술을 진행하기로 했다.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보통 양쪽 무릎을 수술할 땐 15일 정도의 시간차를 두고 한쪽씩 수술한다. 그러나 임씨는 이보다 더 긴 시간을 갖기로 했다. 왼쪽 무릎근육이 충분히 강화되고 나서 오른쪽의 수술을 진행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에서다.
긍정적인 그의 성격 덕일까.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재활치료에 매진한 임씨의 상태는 빠르게 호전됐다. 예상치 못한 회복속도였다. 입원치료 기간에 그의 무릎에 서서히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휠체어 신세를 졌던 그는 마침내 스스로 걸을 수 있게 됐다.
임씨처럼 기대 이상으로 호전되는 환자를 볼 땐 의사로서 큰 보람을 느낀다. 제아무리 어려운 수술과 치료과정이 예상된다고 하더라도 환자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 지금 이 순간에도 가족에게 짐이 될까 봐 극심한 통증을 버티며 병을 키우는 어르신들이 계실 거란 생각에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이런 분들이 더 늦기 전에 적절한 치료를 받아 행복한 노년을 보내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