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의 회합을 즐긴 장년의 나들이 길
<2021년 9월 30일 영종도 백운산 산행>
▶ 코로나19 가 암울하게 세월을 좀 먹는 답답한 9월의 마지막 아직도 더위와 비가 잦은 가을날 하림 산우의 제의로 영종도로 산행을 가기로 하면서 매천이 합류하여 야생화 친구, 사랑이, 등 산행으로 맺어진 노년의 여유를 지닌 5명의 지인이 하림의 반자동 신형 산타페를 타고 21세기 한국 건축의 웅장함을 표현하며 가슴 흐뭇한 자부심을 불러오는 거대하고 긴 인천대교를 지나 영종도에 닿는다.
■ 영종도(永宗島)
인천 월미도에서 서북쪽으로 2.5㎞정도 떨어져 있는 면적 125.7㎢에 74,448명(2019년 3월 현재)이 살고 있는 섬이다. 백제에서 조선 중기까지 자연도로 불리던 이 섬에 영종이란 이름이 붙은 것은 숙종 때로 주변에 북도와 용유도(龍遊島)를 거느리고 있다고 하여 영(領) 자로 하였다. 동쪽에 인천을 머리에 이고 서쪽에 신불도(薪佛島)가 양 옆을 받치고 있다(示)하여 ‘ 宗 ’ 자를 사용해서 긴 마루의 뜻을 가진 영종이라 부르게 되었다. 1973년 부천군의 폐지에 따라 옹진군에 편입되었다가 1989년 인천시에 편입되었다. 섬 전체가 삼각형이며, 중앙의 백운산(白雲山,256m)이 최고봉이나 북쪽에 금산(167m)·석화산(147m) 등이 있을 뿐 대체로 저평하여 농경지와 취락이 분포한다.
국제공항의 건설로 인하여 서울과 김포를 지나 직접 영종도로 들어갈 수 있도록 고속도로로 연결되어 있다. 인천국제공항은 영종도의 남서부에서 삼목도와 신불도를 지나 용유도까지 간척지를 매립하여 2001년에 완공되었다. 유적으로 운남동에 고인돌이 있으며, 고려시대에는 예성강 포구에서부터 고군산군도·흑산도 등을 경유해 중국의 명주까지 연결되는 항로의 거점으로 객관이 세워지기도 했다. 조선 숙종 때는 교동 수영에 속했고, 영조 때는 새로 진을 설치하는 등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시되었다. 또한 병인양요 때 프랑스 함대가 이 섬을 지나 강화도까지 가기도 했다.
영종도 백운산 동북쪽에 위치한 천 년 고찰 용궁사로 가는 길은 사색과 신비의 숲으로 1984년 학생 해양탐구학습장으로 조성됐으며, 수천 년, 수만 년간 파도에 의해 형성된 해안 절벽과 해식동굴의 절경을 품고 있다. 백운산 끝자락에 드리운 용궁사 소원바위는 시험을 앞둔 이들이 찾는 기도 명당이며, 사찰에는 인천시 기념물 제9호로 지정된 1000년 수령의 느티나무가 있다. 백운산 정상에선 인천 국제공항의 늠름한 자태를 한눈에 담을 수 있다.
▶ 대웅전을 신축 중건하고 있는 용궁사를 지나 편편하고 완만한 산길을 따라 해발 256m의 정상에 오르니 사방으로 넓게 펼쳐진 드넓은 섬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봉화대를 뒤로하고 서둘러 하산하는데 길을 잘못 들어 한참을 우회하다 다시 돌아와 대웅전을 신축 중인 용궁사에 들러 1000년 노령의 느티나무에 기대어 서 본다.
■ 용궁사(龍宮寺)
용궁사(龍宮寺)는 인천광역시 중구 영종도 백운산 동북쪽에 소재한 사찰로 신라 문무왕 10년(670)에 원효대사가 세웠다고 전한다. 1990년 11월 9일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15호로 지정되었다.
조선 철종 5년(1854) 흥선대원군에 의해 다시 세워지며 지금의 명칭인 용궁사로 바뀌게 되었다. 용궁사에는 관음전·용황각·칠성각·요사채 등의 건물과 최근에 만든 높이 11m에 달하는 미륵불이 있다. 관음전은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 자 모양인 맞배지붕 집이다. 기둥에는 해강 김규진이 쓴 글씨(주련)가 4개 남아있다. 내부에는 본래 옥으로 조각한 관음상이 있었다고 하는데, 일제강점기에 도난당하고 현재는 청동 관음상을 모시고 있다. 또한 입구에 위치하고 있는 요사채는 맞배지붕 집이며, 건물 앞면에는 흥선대원군이 직접 쓴 ‘용궁사’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조선 말기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이 이 절에 머물면서 10년 동안 기도하였으며, 또한 절 뒷산에 아버지 남연군 이구(李球)의 묘를 쓰려다 아들의 등극을 위해 기도하던 곳에 시신이 들어와서는 안 된다고 하여 옮기지 못했다. 1860년 무렵 여단포에 사는 어부 윤(尹)씨가 작약도 근해에서 옥으로 조성된 불상을 건져 올려 이 절에 봉안했다고 한다. 이에 따라 1864년(고종 1) 흥선대원군이 옛터에 옮겨 짓고, 이름을 구담사(瞿曇寺)에서 용궁사로 고쳤다. 1884년(고종 21) 관음전을 세웠으며, 1916년 주지 김대원(金大圓)이 이응선(李應善)의 시주로 법당의 감실(龕室)을 만들었다. 1936년 주지 김흥근(金興根)이 중수했으며, 1966년 용황각을 세웠다.
▶ 용궁사를 뒤로하고 모처럼 바닷가로 온 후렴으로 생선회를 시식하기 위하여 바다건너 무의도까지 갔다가 여의치 않아 손님이 한 사람도 없는 영종도 회 센터에서 노년의 건강과 마음 편한 세월을 맞을 것을 기원하면서 우의를 나누고 저문 시간에 귀가를 하였다.
■ 산행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