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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생각보다 멋지다 (제1부)
저자: 황은우
프롤로그: 세상은 생각보다 어렵다. 하지만 그대는 생각보다 멋지다.
세상은 생각보다 어렵다. 청년의 때는 ‘될 수 있다, 할 수 있다, 기도하면 된다 …’ 라고 익히 외쳐온 수많은 아포리즘들을 재차 분류해 내고 검증해내는 시기다. 정말 가능한지, 정말 되는지, 정말 믿음 하나만으로 내 영혼이 평안을 지킬 수 있는지… 자신이 없다. 하지만 말이다. 그대는 생각보다 멋지다. 이런 고민들을 통해 어엿한 어른이 되어가는 거다. 당신이 배운 멋진 진리들이 삶 속에 알알이 녹아 들어가길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이 흔들리며 피고 있는 어여쁘고 향기로운 대한민국 청년들, 특히 기독 청년들에게 하나의 음성이 되기 바란다. 지난 20년간 만 명이 넘는 기독 청년들과 만나면서 꼭 해주고 싶은 이야기들을 모았다. 가슴 아픈 청년들의 멘토로, 아니 형과 오빠, 삼촌으로 그들의 고민과 함께 울고 웃으면서 마음 한 쪽에 새겨두었던 진실들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이 글을 읽고 나서 어떤 상황에서도 힘을 내어 하나님의 사람으로 우뚝 서기 바라는 마음으로 썼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영적 거인들도 모두 당신이 걸어간 길을 걸었다. 청춘의 때는 모드 힘겹고 막막하며 원통한 일뿐이다. 청년들아 기죽지 마라. 그분이 네 주님이시다! 바라기는 이 책을 통해 그대는 면도날 같은 현실 인식과 반석 같은 믿음을 실생활에서 완벽히 조화시켜라. 그것만이 앞으로 이 땅을 살아갈 기독 청년인 그대에게 남겨진 거대한 소명이다. 꿈꾸는 권리마저 박탈당한 이 시대에 당신이 스스로 희망의 본보기가 되라.
면도날 같이 현실을 인식하라
1. 바닥을 통과하면 진짜 용기가 생긴다
‘바닥’은 강도 맞은 상태다. 내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 같은 상태다. 용기도, 돈도, 체력도 다 털려 이제는 주저앉아 버린 상태. 더는 낮아질 수도, 나빠질 수도 없는… 그러나 ‘바닥’임을 깨닫는 순간 당신은 일어설 일만 남았다. 잘 될 일만 남았다. 내 힘으로 안 되는 것을 철저히 확인했기 때문에 진짜 용기란 것을 내 볼 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 책임지세요. 저는 주님만 믿습니다’. 잃을게 더 없다. 물이 100도가 되어야 비로소 끓듯이, 사람도 바닥을 지나야 진짜 믿음이 나온다.
__인간은 출발점을 들고 다니는 동물
고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 나에게 있는 고민들을 잘 해결하지 못하고 눌려 살면 고민은 다른 고민을 낳는다. 번식 속도가 빠르다. 시간이 해결할 수 없는 고민도 있다. 그리고 고민을 엉뚱한 방법으로 해결하면 인생은 완전히 망가진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고민을 통해 성장할 수 있겠는가?
첫째, 고민을 자신의 발전을 위한 출발점으로 삼으라.
서울 대학교의 최재천 교수는 ‘인간은 출발점을 들고 다니는 동물’이라고 했다. 모든 동물들은 태어남과 동시에 원점부터 시작해야 하지만 인간은 전 세대에 습득한 지식을 출발점으로 두고 시작한다. 인류는 이러한 지식 축적을 통해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혜가 없는 사람은 고민도 동물처럼 한다. 과거에 했던 고민을 넘어서지 못하고 모든 고민을 원점부터 시작한다. 이미 해답은 주어져 있는데 엉뚱한 것부터 다시 시작한다. 마6:33절을 확인하기 위해 창세기부터 시작하는 격이다. 그러나 신앙은 우리에게 있는 부족함을 자기 발전을 위한 출발점이 되게 한다. 믿음 있는 사람은 과거에 고민했던 것에 대한 결말을 알기에 쓸데없는 고민은 하지 않는다.
둘째, 고민을 내 안에 머물게 하지 말라
일본 사람들이 즐겨 기르는 ‘코이’라는 잉어는 어항에 있으면 10센티미터, 연못에서는 30센티미터, 강물에서는 1미터까지 자라는데, 그 환경에 따라 성장하는 크기가 달라지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뭔가에 사로잡혀 고민할 때에는 그것이 마치 전부인 것처럼 느껴지며 생각도 급해진다. 이 때문에 인생도 불행하다고 느껴지며 자기가 생각하는 시간에 해결되지 않으면 더욱 답답해진다. 하지만 이런 고민을 어디에 풀어 놓느냐에 따라 얻어지는 결과가 달라진다. 자기 안에서만 맴돌다가 끝나면 자기만의 자원으로만 해결해 나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가 온전히 하나님 안에 거할 때 그에게는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각종 기회들과 도움의 손길을 보는 눈이 생긴다. 그러므로 자신의 고민을 자기 안에서만 맴돌게 하지 말고, 친구, 선배, 교수, 부모님…동원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활용하라. 보다 앞서서 고민하고 그것을 이미 해결한 분과 만나면 자기 고민의 무게가 훨씬 줄어든다.
자신의 멘토를 위해 기도하라. 내가 10년 후, 20-30년 후 되고 싶은 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분을 보게 해 달라고 기도하라. 그리고 그런 분들을 만났다면 꼭 붙들어라.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면 우리 인생의 때마다 그런 사람들을 꼭 보내 주실 것이다. 우리는 목적지를 코앞에 두고도 40년간 방황했던 이스라엘 백성처럼 하지 않아도 될 고민과 방황을 하지 않았던가! 하루면, 반나절이면 해결될 문제인데, 혼자서 고민하다가 10년간 방황하고 후회하지 말라는 소리다.
셋째, 일단 고민이 찾아오면 그것을 행동으로 부딪히며 해결하라.
믿음은 마음에 평화만 주는 것이 아니라, 실지로 일을 이루어내는 힘이다. 우리에게 문제가 생기면 고민하면서 기도하지 않는가? 기도하면 평안함이 생긴다. 그런데 여기서 멈추는 사람이 많다. 이래서는 진정으로 고민이 해결되지 않는다. 사람들의 가장 큰 비극은 늘 결심만 하다 끝난다는 것이다. 문제가 생기고 해결해야 할 일들이 생기면 미루지 말고 일단 부딪혀 보아야 한다. 일을 미루다 보면 오히려 기회가 사라지고 나중에 처리하려고 해도 몇 배 힘든 법이다.
진정한 용기는 나에 대하여, 상대에 대하여 확신이 있을 때 가능하다. 사람이 문제를 자기가 해결하고자 마음먹는 순간, 거기서 달아났을 때 느끼는 두려움보다 훨씬 큰 용기와 지혜가 생긴다. 엄연한 현실을 맞설 수 있는 힘은 ‘도망가지 않고 문제에 직면하겠다’는 마음에서 출발한다. 나는 이 시대의 청년들이 겪고 있는 시대적 아픔에 대해 마음으로 공감한다. 청춘을 흔들리게 하는 것 중 하나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다.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두려움,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지에 대한 막연함, 자신의 열등감으로 인한 패배감 등…. 청춘은 소망을 먹고 살아가는 때인데 그것이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 자포자기하는 순간 어떤 시도도 할 의욕이 사라지고, 사지 멀쩡한데도 우울증이 오고 죽음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고난을 만나면 자기 삶을 전반적으로 점검할 수 있는 기회로 맞은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시간이 점점 길어진다는 것은 우리가 이를 통해 배워야 할 것들을 충분히 배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낙망만 하고 자신을 돌아보지 않으며, 하나님의 일하심에 눈을 뜨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나님과의 관계, 자신의 가치관 등을 통째로 새롭게 볼 수 있는 눈이 비로소 열렸는데 이것에 눈을 감아 버린 것은 아닐까?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그런 기회를 허락하신다. 인생의 본질을 만나게 하셔서 이 문을 통과해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길 원하신다. 이것을 단지 어려움으로 봐서는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 하나님이 주신 기회다. 내 삶을 흔들어 깨워 제대로 살게 하려고 던져 주시는 황금 열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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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혼자 잘 나갈 때는 인생에 대해 진지해지기 어렵다. 어려움을 만나야 비로소 인생을 돌아보고 하나님을 찾기 시작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된다. 인생은 내 힘으로 사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는 것을 고백하게 된다. 그러므로 때론 완전한 절망이 적당한 희망보다 낫다. 완전한 절망 속에서는 모든 것을 새롭게 보고 시작할 수 있지만 적당히 망하면, 어기적거리면서 과거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당신이 완전히 포기했기 때문에 다시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인가?
__하나님은 마이너리그 인생을 쓰신다.
사람들은 메이저리그에서 뛰기를 원하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이너리그에서 인생을 보낸다. 잘 나간다는 사람은 긴 인생에서 볼 때 잠시 동안만 메이저리그에서 뛸 뿐이다. 인생에 높은 곳에 오르는 순간은 잠깐이요, 나머지 시간은 어려움 속에서 보내야 할지도 모른다. 노아가 누가 인정해주지 않는 상황에서 오랫동안 방주를 만든 것처럼, 나도 마이너리그에서 오랜 시간을 보낼지 모른다. 다윗처럼 하루아침에 메이저리그에서 마이너리그로 강등될 수도 있다. 하지만 노아가 120년간 세상의 비웃음 속에서 만들었던 방주는 세상을 구원하는 도구로 사용되었고, 다윗의 마이너리그 시절은 왕의 귀환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다윗이 인생을 다 살고 뒤를 돌아 봤을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들은 이런 절박한 가운데 은혜로 하나님과 동행한 시간들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실수를 하고, 내 자신이 무능하게 느껴질수록 오히려 더욱 기뻐해야 한다. 사도 바울이 감옥에서 꼼짝 못하는 상황에서도 기도하며 더욱 기뻐했던 것처럼 말이다. 이제부터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 안에서 일하시기 시작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 시간이야말로 진정한 메이저리그 인생일 것이다.
2. 회복은 고통을 통해 온다
__고통은 내 것으로 받아 들였을 때 의미가 있다.
고통의 문제는 그것을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데서부터 놀라운 치유가 시작된다. 도저히 빠져 나올 수 없을 것 같은 지옥 같은 상황들에 처해 있다면, 이러한 상황이 100퍼센트 내 것이고, 내가 해결해야만 풀리는 문제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은 자신이 만들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자기가 바라는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다. 그럴 때 비로소 고통은 의미를 지닌다.
위대한 정치가, 과학자, 사상가인 벤자민 프랭클린은 1706년 극빈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믿음으로 모든 환경을 극복하고, 그의 인생의 후반은 사람들로부터 더욱 더 인정과 존경을 받는 삶을 살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그가 겸손과 맨 몸으로 부딪쳐 극복하는 의지, 이 두 가지가 그의 삶을 성공으로 이끈 열쇠였다고 사람들은 입을 모아 이야기한다. 체계적인 공부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반대파들
이 그의 학문과 사상에 대해 깊이가 없다는 비난을 쏟아낼 때, 그는 그 지적을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그것을 발판 삼아 기성 학문의 틀에서 벗어나 다양한 분야에서 놀라운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이다.
__고통 너머의 새로운 세계를 보라
9.11 테러로 미국의 심장부가 공격을 당했을 때 미국 사람들은 자신들이 가장 안전한 나라에 살고 있다고 믿었지만, 그 믿음이 무너졌을 때와 마찬가지 느낌으로, 사람들은 자기가 믿고 의지했던 것이 실상은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누구든 고난에 빠지면 정신적인 공황에 빠질 수 있다. 이런 상태가 되면, 첫째로 세상에 소망이 없어 보이며, 부정적이 되어 세상사는 것이 무의미해 보인다. 둘째는 도덕적 기준이 낮아지며, 견딜 수 없는 압박이 다가오면 세상과 타협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한 길을 가기도 한다. 경건해 보이던 사람이 겉잡을 수 없이 무너지는 경우다. 셋째로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사라지며 부정적인 자아상이 생긴다.
사람이 고통 가운데 있으면 오직 고통에만 자기 눈을 고정시킨다. 그러나 우리가 고통너머의 새로운 세계를 볼 수만 있다면 정신적인 공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 기도할 때에도 이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기도보다는 이 고통너머의 새로운 세계를 보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편한 사람들은 주님을 찾지 않는다. 자기 혼자 살아갈 만하다고 느끼면 자족하며 지낸다. 문제가 풀리지 않아 고통스럽고, 내 힘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을 때에야 인간은 비로소 주님께 엎드린다. 그게 우리의 본성이다. 그러나 우리가 받는 시련과 어려움은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것에 비해 크지 않다. 우리가 잃어 버렸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하나님이 주신 것에 비하면 지극히 작은 것이다. 진정한 감사는 이런 생각의 전환을 통해 이루어진다.
__회복은 고통을 거치며 온다.
나는 이 세상에서 경험하는 회복에는 고통이 동반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수술한 뒤에는 상처의 회복에 따르는 고통이 있고, 신용 회복 뒤에는 근검절약에 따르는 고통이 있다. 방법이나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러한 회복의 고통은 앞으로 있게 될 더 큰 고통을 막아준다. 실수하고 넘어졌을 때 하나님께 나아오면 다 치료받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 하나님께 돌아오려면 자존심과 자괴감을 극복하고 사람들에게 용서를 구해야 하는 고통이 따른다. 고통을 피해버리지 말고 감내해야 문제의 실타래가 풀리기 시작하며, 고통 역시 우리 인생에 있어 피할 수 없는 과정 중 하나임을 알 때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__하나님의 선 순환으로 들어가라
인생에는 선 순환과 악순환이 있다. 우리도 갑자기 닥친 환난으로 인해 선 순환의 고리가 끊어지고 악순환이 계속되고 재기할 힘마저 사라질 때가 있다. 욥의 경우가 그러했다. 우리가 너무 큰 환난을 당하면 그 악 순환의 고리에서 스스로 빠져 나올 수가 없다. 여기서 핵심은 누구든 선 순환의 고리에 들어가야 앞길이 밝아지고 쉽게 간다는 것이다. 이때는 이 순환고리를 끊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욥은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했고, 다윗도 피난 갈 때 눈물로 호소했다. 그러자 하나님은 기도를 통해 악순환을 끊어주시고 선 순환으로 돌려 주셨다.
우리의 마음은 육체의 건강과 같아서, 건강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 세상을 살아가는 자세가 확연히 다르다. 마음이 건강할 때는 아무리 고난이 닥쳐와도 이겨나갈 희망을 가지고 대처하지만, 마음이 우울하고 닫혀 있을 때에는 세상을 비관적으로 보며, 조그만 말 한마디, 어려운 상황 하나에 상처입고 절망해 버린다. 인생을 살 때에 우리는 선택을 잘못 하거나 실수할 때가 꼭 있을 것이다. 늘 축복만 받고 늘 행복할 수만은 없는 것이다. 우리가 열심히 일하고 돌아가 쉴 집이 있고, 받아줄 가족이 기다리며, 원기를 회복시킬 휴식이 기다리고 있다면 아무리 힘들게 일했더라도 우리 마음은 여유를 갖게 된다. 그것이 ‘완충지대’가 되어 웬만한 충격과 힘든 현실도 흡수해 버린다. 독서를 하거나 친구들의 충고를 들을 때 흘려버리거나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는 말라. 그것을 마치 스펀지처럼 흡수해 자신의 미약한 부분을 보충하면 된다. 그러면 정말 멋진 사람이 되지 않겠는가?
3. 광야 수업의 가치
하나님은 광야라는 경험을 통해 80대의 노인에게서도 그 안에 잠재되어 있던 가능성을 이끌어내신다. 그에게 있던 인생 경험과 체험, 많은 길거리 지혜들을 모아 그분의 뜻을 이루는데 사용하신다. 그대가 인생의 어떤 특정한 시절에 어떤 이름표를 붙이고, 어떻게 바라보며,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가에 따라 하나님은 그것에 걸맞게 깨닫게 해주신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우선순위를 알게 하신다. 참된 우선순위는 영안이 열려야 알 수 있다. 신앙생활 중 상당부분은 깨달음의 문제이다. 깨달으면 내 고통은 고통이 아니라는 것이며, 내 열등감도 열등감이 아니라는 것이다. 문제를 바라보는 눈이 바뀌는 것이다. 이런 깨달음을 통해서 우선순위를 알게 되고 해결책을 찾게 된다. 예수께서 광야의 길을 걷고 있는 우리를 눈여겨보시는 것을 확실히 깨닫는가? 그분의 그윽한 눈에서 은혜를 발견했는가? 그런 주님이 우리를 광야에서 건져주실 계획도 갖고 있음을 믿으라.
__광야를 거쳐야 쓰임을 받는다
하나님이 어떤 인물을 쓰실 때 꼭 거치는 작업이 있다. 주가 쓰시기에 충분히 겸손해질 때까지 그의 자아를 산산이 부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광야로 내모는 것이다. 광야는 우리에게 가장 귀한 겸손의 자질을 가르쳐준다. 광야에서 많은 것을 배우며 진정한 인생 수업이 이루어진다. 마음을 열면 반드시 그 안에서 우리가 깨닫고 지나가야 하는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지금 광야 가운데 걷고 있는가?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이 이 광야에서 무엇을 얻기 원하는지를 깨닫는 사람이다. 그 사람은 광야를 통해 정말 인생을 살아가는데 귀중한 재산을 얻은 사람이다.
모든 사람에게는 그 자신들만의 고통의 분량이 있다. 이 분량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가 그의 내적 성숙을 결정짓는다. 고통을 통하여 나를 돌아보고 지렛대로 삼을 때, 고통은 나의 가치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기회가 된다. 마치 지진이 한 순간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그렇게 보여도), 지각에 축적된 지진 에너지가 때가 되면 균형을 잡아가는 현상인 것처럼, 나의 일그러진 삶의 질서를 회복하고 더 큰 일에 준비되게 하는 일이 곧 고통이다. 고난은 겉보기에는 힘들고 불필요해 보인다. 하지만 이 고난은 우리가 세상에서 흘러드는 유해 바이러스에 전염되는 것을 막고, 여기서 살아날 면역력을 길러준다. 고난이 나에게 어떻게 작용할 것인지, 무엇을 할지 발버둥쳐라.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내적으로 훨씬 성숙한 사람으로 변해갈 것이다. 고난의 태풍이 내 인생 가운데 한 번 휩쓸고 지나가면 삶은 단순해진다. 내적 자아는 훨씬 성숙해지고 하나님 앞에서는 빛나는 보석이 된다. 보석의 왕이라는 다이아몬드가 비싼 이유는, 단지 탄소로 구성되었을 뿐이지만, 수억 년 동안 엄청난 열과 압력 아래에서 많은 인고의 시간을 거쳤기 때문이 아닌가? 자신의 삶에 닥치는 어려움이 보석을 다듬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재수 없어서’그런 꼴을 당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차이는 갈수록 뚜렷해진다. 결국은 그 생각대로 된다.
__부족함이 채워지는 것 자체보다 그것을 채우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
성경을 보면 나보다 더 큰 문제, 더 큰 고난을 당한 사람들로 가득하다. 100세까지 자식이 없었던 아브라함, 들릴라에게 속아 눈이 뽑힌 삼손, 원래 타고난 소경이었던 바디매오, 우리의 문제가 아무리 커도 사실 이 정도는 아니지 않는가? 하나님이 이 세상에 많은 고난을 남겨 두신 이유는 성령께서 우리를 시기하기까지 사랑하시기 때문이다(약4:5). 우리가 마음대로 시간을 주관하고 세상적인 복을 다 누린다면 하나님을 생각하겠는가? 이웃을 생각하겠는가? 자기 마음대로 살 것이 아닌가? 성령은 항상 우리의 최선을 생각하신다.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것 너머의 세계를 보시고, 순례 길을 걷는 우리에게 가장 선한 것을 주신다. 부족함을 한 번 채우는 것보다 영원토록 부족함 없는 샘물이 되어 주신다. 그리고 그 과정에 우리 인생과 언제나 함께 하신다.
시대를 통찰하라
1. 길어야 10년 밖에 안 남았다
__이 시대의 화두는 변화
지금의 시대를 한 마디로 정의하라고 한다면 ‘변화’라고 말하겠다. 요즘 학자들이 이야기하기를 최근 100년의 변화가 과거 1만년, 즉 인류 전체의 역사에 걸쳐 일어난 변화와 맞먹는다고 얘기한다. 더 놀라운 사실은 앞으로 20년간의 변화가 지금까지의 100년의 변화보다 더 크다고 한다. 그리고 그 속도에는 점점 가속도가 붙을 것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사회에서 가장 많이 바뀐 요소를 꼽으라면 인터넷을 통한 전자 상거래 분야를 들 수 있다. 또한 모든 거이 대형화되고 기계화되었다.
우리는 시간을 생각할 때 과거는 뒤에, 미래는 앞에 놓여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들 중에 미래를 전혀 생각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 많다. 사실은 걱정하고 두려워할 뿐인데 자신은 미래를 생각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조금만 생각해도 내가 어떻게 인생을 사는 것이 진정 지혜로운 일인가 알 수 있는데 그것을 생각하지 않는다. 설사 생각하더라도 실행하지 않는다. 아직 시간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요셉이 총리까지 올라가고 모든 신하에게 인정받았던 근본적인 이유는, 그는 애굽의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고 그에 따라 분명한 계획을 세워놓았다. 그리고 그것을 실행하고 평가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서 그대로 시행했다. 요셉은 애굽의 문제 해결사였다. 요셉이 어렸을 때는 꿈으로 자신의 인생을 예측했다. 이후에는 지혜를 통해 자신의 일생뿐 아니라 애굽의 미래도 예측했다. 바로 왕도 요셉보다 자기가 높은 것은 왕이라는 지위뿐 이라고 할 정도였다. 리더는 자기 할 일만 잘 하는 사람이 아니라,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고 비전을 제시하며 비전에 따라 살아갈 수 있도록 모델이 되는 사람이다. 이런 차원에서 본다면 요셉은 애굽에서 진정한 리더였다.
__”변화를 강요받기 전에 먼저 변화하라”
(Change before you have to) –잭 웰치(GE의 전설적인 경영자)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미래를 정확히 내다볼 수도, 단 몇 초라도 뒤로 갈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10분 앞은 알 수 없지만, 10년 앞은 알 수 있다. 이 말은 지금 당장의 앞길보다 오히려 몇 년 앞선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더 현명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지혜로운 사람은 정확한 미래를 내다보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흐름과 패턴의 주기, 그리고 신호들을 감지하면서 미래를 예측하여 거기에 대비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다가올 변화를 꿰뚫어보고 그것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적용하려면, 먼저는 변화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을 확실히 구분해야 한다. 즉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계속 그러할 것을 더 견고하고 확실하게 지켜나가고, 계속 변화하면서 그 가치가 변동되리라 생각되는 것은 한발 앞서 그것을 예측하고 거기에 맞춰 여유를 갖고 먼저 변화하는 것이다. 중고등학교 시절의 공부 습관으로 대학교에서 적응할 수 없고, 10억 매출을 올릴 때의 회사 시스템으로 100억 규모의 회사를 효과적으로 이끌 수 없다. 그릇의 크기는 1리터 밖에 안 되는데 10리터의 물을 담을 수는 없다. 먼저는 그릇을 키워야 하고 바꿔야 한다. 우리가 정체 상태에 있으면 그냥 현상 유지만 되는 수준이 아니라 퇴보하게 된다. 나는 10년 후에도 동일한 경쟁력을 갖고 꿈을 펼쳐 나갈 수 있을까? 일하는 방식과 삶의 태도와 의식 수준에 있어 작년과 달라진 것은 무엇인가? A4 1장을 꺼내 10년 안에 내가 밟고 나갈 로드맵을 그려보고, 어떤 도약과 발전이 필요한지 점검해보라. 만일 그런 모습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면, 10년 후에는 지금과 동일한 대법조차 받을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지금은 변화의 시대다. 사회의 변화와 개인의 변화에 민감해져야 한다. 사회가 너무 빨리 변화된다고 스트레스를 받고 침울하게 지내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이 변화에 동참해서 평생 학습과 평생 노력으로 변화의 물줄기에 자신의 몸을 맡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변화의 파도는 분명히 오고 있다. 아니 이미 왔으며, 우리도 경험으로 알고 있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보이지 않는 미래를 예측하고 결정해야 할 때가 있다. 어떤 결정을 내리거나 추진할 때는 나의 미래를 구체적으로 그려보라. 내가 이런 결정을 내리면 어떤 결과가 일어날지 천천히 생각해 보면 미래가 보일 것이다. 지금 당장 기분이 나쁘다고 일을 그만두려 하지 말고 마음에 맞지 않는다고 상사에게 대들지 말라. 평생 후회할 일이 생긴다. 어떤 솔깃한 제안에 인생의 신념까지 부인해 버리는 기회주의자처럼 살지 말라. 그러다가 더 큰 기회를 빼앗길 수 있다.
__그분의 은혜로 복리 인생을 살아가라
세계화 시대에 기업체와 모든 국가 분야에서 한번 벌어진 격차는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다. 그러나 신앙인들에게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있다.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용사들의 특징이 무엇인가? 그들은 전부 ‘역전’의 용사이다. 십 년이나 아이가 없었지만 끈질긴 기도로 사무엘을 낳고 믿음의 계보에 들어간 한나, 들릴라에게 힘의 원천인 머리를 잘리고 블레셋 사람들에게 눈을 뽑혔지만 회개와 인내로 블레셋 사람들을 멸망시킨 삼손, 하나님을 떠나고 싶어 도망갔지만 결국 회개하고 다시 선지자의 사명을 감당하는 요나, 이들은 다 역전의 신앙 덕에 성경에 기록되는 믿음의 용사들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인생 역전과 변화는 우리의 삶, 모든 부분에서 벌어지고 있고, 벌어질 수 있다.
죠지 뮬러는 기도로 참 많은 것을 받았고, 그의 인생에 임한 은혜는 마치 복리 이자처럼 불어나 놀라운 은혜의 삶을 완성시켰다. 그는 원래 10세 이전부터 아버지 주머니를 상습적으로 뒤져 돈을 훔쳐내고, 돈을 허비하며 형무소에 갇히기도 하며 19세까지 탕자의 삶을 살았다. 그런 그가 20세가 되던 해에 우연히 참석한 토요 저녁 기도모임에서 성령에 의해 완전히 변하게 된다. 기도에 눈뜨게 되고, 성경을 읽으며 하나님을 만나게 된 것이다. 그는 영국에 선교사로 가서 2천명이 넘는 고아를 기도로 양육하고, 성경보급과 복음책자를 통해 선교활동에 집중했다. 과거의 그는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인생 가운데 절제가 없이 살았다. 그러나 성령을 통해 변화를 받고 기도를 하다 보니 은혜의 복리 인생을 살게 되었던 것이다.
낙망하고 좌절하지 말라. 새로운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내 인생에 복리의 은혜를 달라는 마음으로 살아라. 하나님의 은혜는 복리로 늘어난다. 이것이 ‘은혜 위에 은혜가 더하는 삶’이다. 초창기 요셉처럼 처음에는 아무것도 풀리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몇 가지 신앙의 원칙만 지키고 있으면 하나님의 은혜가 보잘것없는 우리 인생을 크게 키우실 것이다.
2.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기간을 만들라
(“어느 분야의 전문 지식에 정통하려면 최소한 10년 정도는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창조적인 도약을 이루려면 자기 분야에서 통용되는 지식에 통달하여야 한다. 바로 이런 연유에서 10년 정도의 꾸준한 노력이 선행되지 않으면 의미 있는 도약을 이룰 수 없다”) -하워드 가드너
한 여론조사를 보니 우리나라 국민의 69퍼센트가 희망 없이 산다고 답했다고 했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 무기력증이 퍼져있다. 아무리 젊어도 희망이 없으면 사는 것이 재미없고 삶의 의욕도 없다. 희망을 잃어버리는 것처럼 어려운 것이 없다. 돈을 잃으면 다시 이를 악물고 노력해서 어느 정도 회복할 수 있고 인간관계가 깨어져도 기도하면서 노력하면 다시 좋아질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자포자기하면 어떤 시도조차 할 의욕이 사라지는 것이다.
__변화의 필요를 몸으로 느껴라
변화된 마음은 언제 생기는가? 항상 시발점이 중요하다. 그 계기 또한 중요하다.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껴야 변한다. 이것이 우리를 변화시킨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내 상황을 좋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는 자극을 많이 만드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러한 자극은 고난을 통해서, 즉 우리 각 사람의 어려운 환경과 상황에서 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변화의 시점은 언제인가? 바로 지금이다. 아무리 많은 증거들을 들이대고 변화의 필요성을 외치더라도 스스로 변화의 필요성을 절감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리고 변화의 필요성을 절감한다면 당신은 지금 인생의 전환기에 선 것이다.
미국의 듀퐁 회사는 100년 넘게 화학 섬유로 이름을 떨친 곳이지만, 미래를 바라보고 전환해서 강력히 살아남았다. 화학섬유 분야가 아니라 첨단 농업기업으로 변화해 친환경,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에 주력해서 안정적인 성장을 이루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늘 기회가 주어지고 늘 인생의 전환점이 오는 것은 아니다. 기회가 오면 그 기회를 잡아야 한다. 우리 중에는 인생의 많은 고난 가운데 전환기를 맞는 사람들이 있다. 그 전환기에 나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__인생의 전환기에 해야 할 일
1) 마음의 회복
요즈음 상당수의 젊은이들이 누에고치처럼 자기만의 공간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외부와 연결을 끊고 살아간다. 공부도 안 되고, 취업도 안 되고, 돈도 없고, 되는 것이 없으니 세상이 싫어진다. 그래서 인터넷을 통해서만 세상과 연결되고 밖으로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들을 ‘코쿤족’(cocoon, 누에고치)이라 부르며 ‘나 홀로 족’이라고도 한다. 이렇게 오랫동안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지내면 공동체 성이 사라진다. 마음에 병이 들어도 치료받을 수 없다. 사실 문제는 감춘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드러내놓고 치료해야 해결된다. 자신이 인생의 전환기에 있다고 생각된다면 우리는 먼저 마음의 상처를 드러내 놓고 치료받아야 한다. 세상과 소통하며 새로운 인생의 파도에 올라서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입은 상처를 해결해야 한다. 눅눅한 습지를 그대로 놔둔 채 눈에 보이는 모기만 잡으면 얼마 안 있어 모기는 다시 나타난다. 이 습지를 흙으로 덮어 버리든지 해서 모기가 나타나는 근본 원인을 해결해야 한다. 이것은 다음으로 말할 나쁜 습관과 연결된다.
2) 나쁜 습관 버리기
사람마다 고질적으로 자기 인생의 발목을 잡는 나쁜 습관이나 사고방식이 있다. 이런 것은 주기적으로, 또 문제가 생길 때마다 반복적으로 작용하여 내 인생에 마이너스가 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을 주시는 이유는 우리의 발목을 잡는 것을 벗어버리고 자유롭게 살라는 것이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2). 우리는 정해진 인생 가운데 제한된 시간을 가지고 산다. 우리가 더욱 활기차게 전진하려면 불필요한 것은 빨리 제거하고 끊어 버려야 한다. 버릴 것 있으면 지금 다 버려라. 그 동안 벗지 못했다고 그것을 습관처럼 그냥 입고 가지 말라. 지금이라도 과감히 벗어버리면 완수할 수 있다. 승리할 수 있다. 마음의 짐이 사라질 수 있다.
3) 결정하고 떠나기
요즈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용기 없이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조금만 자기에게 해가 된다면 벌벌 떤다. 하지만 우리 하나님 앞에서, 인생의 전환기에는 용기를 내야 한다. 용기를 내면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우리는 돈이 많거나 능력이 있으면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용기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고 진정한 용기를 낸 사람이다(눅19:8). 지금 인생의 전환기를 맞고 있는가? 그 시기를 무심코 지나가지 말라. 치료할 것은 치료하고 버릴 것은 버리고, 행동할 것은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4) 시간을 압축하라
시간을 압축한다는 의미는 소중한 것을 먼저 하고 전략적으로 살아가라는 의미다. 즉 1년을 3년처럼 사용하는 경우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지식을 얻거나 상담을 받은 후 그에 따른 대가를 지불하는 것에 아까운 마음을 많이 갖는 것 같다. 제공하는 입장에서도 자신의 지식을 돈 주고 알려주는 것이 인간미 없게 보인다. 하지만 인생에서 중요한 지식이나 조언을 구할 때는 전문기관이나 전문가에게 지불하는 액수를 너무 아깝게 생각하지 말고 적극 사용하라. 분명 그 조언은 우리가 인생에서 지불한 돈의 몇 배의 가치를 발휘할 것이다. 몇 년 간의 쓸데없는 방황을 막아줄 수도 있다.
물론 청년의 때에 치열하게 혼자 고민하는 것도 의미가 있고 도움이 된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내가 치열하게 고민했던 것들을 먼저 고민하고 이미 해답을 찾아 놓은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며, 이런 일에 대해서는 외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어떤 지식은 정말 우리의 10년간의 방황을 미리 막아 줄 만큼 놀라운 것들이 있다. 우리 주변에는 훌륭한 신앙인들이 있다. 그들은 목회자일 수도 있고, 교사 혹은 친구가 될 수도 있다. 그들이 때때로 우리를 위해 조언을 할 때 신중히 듣고 적용할 수 있다면, 우리 인생은 더욱 귀중하게 빛날 것이다. 책을 읽거나 강의를 들을 때에도 소중한 시간을 압축한다는 마음으로 귀 기울여 보라. 때로는 내가 보지 못하는 부분을 그들은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이 있다.
__당신에게 남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들은 내가 가진 것 중 한 가지만 잃어버리면 모든 것을 잃어 버렸다고 생각한다. 당시에는 그것이 가장 커 보이고 자기 인생을 좌지우지할 것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당신이 잃은 것보다 자신에게 남은 것, 자기가 갖고 있는 것에 더욱 주목해야 한다. 이런 사람들은 이 사건과 시절을 지렛대 삼아 인생의 전환기를 맞이할 수 있다. 예수님은 병들고 상처 입은 사람들만 만난 것이 아니라, 더 이상 필요한 것이 없어 보이는 니고데모 같은 사람도 만났다. 그리고 진지하게 그분을 만난 사람들은 모두 인생에서 극적인 전환점을 맞았다. 내가 잃어버린 것만 보면 공허해진다. 나에게 남은 것, 나에게 더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발견하고 그것을 지렛대로 삼아 인생을 들어 올려라.
3. 염려를 한 방에 날리는 깨달음
__고난이 너무 커 보일 때
우리 삶 가운데 마음 속 깊이 감사가 나오지 않고 고통스럽다고 느끼는 이유는 내가 겪는 고난이 다른 것에 비해 너무 크게 보이기 때문이다. 과거에 봤던 책 중 《블라인드 스팟》이란 책이 기억난다. ‘블라인드 스팟’이란 자동차 사이드 미러에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를 말한다. 한마디로 ‘맹점’이다. 분명하게 물체가 있는데도 볼 수 없는 좁은 영역을 뜻한다. 이 책에서는 인간 심리의 사각지대를 의미하는 말로 사용됐다. 사람들에게는, 심지어 자기 자신에 대하여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있다. 남들은 다 보는데 나만 못 보는 사각지대… 자신의 성격을 점검하고 개인적인 단점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적 있는가? 남들은 다 내 단점을 지적하는데도 정작 자신은 그 단점이 있는지도 모르고 있다. 의외로 그런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것을 다른 식으로 생각할 수 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커서 세상의 어떤 문제들도 그 앞에서는 무기력하게 무너짐을 본적이 있는가? 우리 일상 구석구석에 ‘숨어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한 적이 있는가? 고난을 능가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도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당신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생각하자. 나에게 어려움이 닥쳤을 때, 이것을 능가할 만한 더 큰 은혜를 경험할 기회로 삼자고… 고난은 하나님의 은혜로 들어가는 통로다. 크리스천에게 있어 시대적인 아픔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과의 부르심과도 직간접적으로 연관된다. 개인적인 고난뿐 아니라 사회적인 고난과 아픔은 우리에게 주어진 소명이다. 이런 시대에 하나님의 사람인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아는 것은 중요하다.
요즘 당신과, 당신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무엇에 관심을 갖고 있는가? 신앙생활을 한다지만, 우리가 하는 고민은 대부분 세상적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은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살아가는 삶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다. 하나님께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을 향한 영성이 그의 영혼을 사로잡은 경우다. 그리스도인의 공통되는 소명은 자기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다. 아무리 신앙이 좋아도 염려거리는 나오게 된다. 다만 그가 무엇을 염려하는가를 보아야 한다. 염려가 없는 사람이 믿음직한 사람이 아니라 그 염려를 어떤 식으로 처리하고, 궁극적으로 무엇을 위해 염려하는지를 보아야 한다. 예수를 믿는 사람으로서 다른 영혼을 위한 염려와 아픔 없이 자기만 걱정 없이 사는 것은 진실한 크리스천의 자세가 아닐 것이다.
__영적인 힘은 하나님을 위해 살 때 유지된다.
우리는 대부분 육신의 생명이 끝나면 그 때부터 영생이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영생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지금부터 시작이다. 우리의 공허한 마음과 세상적인 고통은 예수를 영접한 후로 극복할 힘을 얻는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부활을 꿈꾸며, 부활을 생각해야 한다. 부활의 날에 남는 것은 의로움 외에는 없기 때문에 부활을 염두에 둔 사람은 의를 행하기 위하여 찾아 다닌다. 의(히브리어:’체테크’,헬라어:’디카이오쉬네’ 세상에서 윤리에 국한된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표준에서 조금도 모자람이 없는 완전한 의를 뜻함)를 추구하는 것은 재미없고 고통스러운 것만이 아니다. 그 안에는 신비한 기쁨이 있다. 그래서 예수님은 좁은 길이라 표현하셨는지 모른다. 의를 찾아가야 한다. 의된 행동에 내 삶을 집어 넣어야 한다. 돈이나 명예나 위치는 하루 아침에도 사라질 수 있다. 그래서 지혜 있는 사람은 세상이 빼앗아 갈 수 없는 것에 시간 투자하며 산다. 기도로 쌓은 시간을 누가 뺏어갈 수 있을까? 평소에 꾸준히 관리한 건강은 나이가 들어서도 우리를 배신하지 않는다.
__그래, 우리에겐 소망이 있다.
진정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희망을 보는 사람은 살아갈 수가 있다. 마음에 소망이 있는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훌훌 털고 일어난다. 심지어 해결하는데 10분도 안 거리는 경우가 있다. 금방 다른 길을 찾는다. 그리고 마음에 소망이 있으면 너그러워진다. 타인과 자신의 실수에 관대해지고, ‘뭐, 그럴 수도 있지’ 하고 웃어 넘긴다. 그런데 늘 현실의 문제에만 골몰하고 있으면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다른 사람의 말 한 마디, 태도 하나가 마음에 비수가 되어 꽂힌다. 우리의 어려움들을 그보다 큰 소망으로 이겨낼 수 있다. 우리가 진정 어려워하는 이유는 문제 자체에 있기보다는 우리에게 소망이 없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소망을 찾아라. 그러면 삶이 쉬워진다.
자신을 속속들이 파악하라
1. 꿈꾸는 만큼만 볼 수 있다.
나라마다 수치스럽게 여기는 것이 다르다. 프랑스인은 더럽다는 말을, 독일인은 게으르다는 말을, 영국은 신사숙녀답지 못하다는 말을, 미국인은 비겁한 놈이라는 말을 수치로 여긴다. 그렇다면 크리스천은 어떤가? 아마도 “저 사람에게는 기대할 게 없어”, 또는 “쟤는 우리와 다를 바 없어”, 라는 말일 것이다. 반면 “저 사람의 꿈은 뭔가 특별해”, “모르긴 몰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 같아” 라는 말을 들으면 어깨가 으쓱하지 않은가? 《정상에서 만납시다》라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인 지그지글러는 “오늘 우리가 어디서 무엇을 하느냐, 어떤 위치에 있느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실패해도 다시 꿈을 꿀 수 있고, 나이가 들었어도 꿈을 꿀 수 있는 자가 정상에 오른다” 라고 했다.
__당신은 무엇을 품고 있는가?
달걀은 유정란과 무정란이 있다. 유정란은 21일 동안 어미 닭이 품으면 병아리가 되어 나온다. 그러나 무정란은 21일이 지나면 썩는다. 우리에게 꿈이 사라지면 나이가 들수록 소망도 사라지고, 기쁨도 없어진다. 하지만 꿈이 생기면 비록 나이를 먹더라도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다.
당신이 품고 있는 꿈은 무엇인가? 그 꿈은 하나님의 허락을 받은 꿈인가? 이 시대의 아픔을 끌어안기에 충분한가? 사람들의 영혼을 어루만지고 그들 안에 있는 생명을 더 풍성하게 하는 주님의 꿈과 나란히 가는 것인가? 기도하면 하나님이 그 꿈을 더욱 격려하면서 도우시는 손길을 느끼는가? 자신의 인생을 돌아볼 때 하나님이 이것을 위해 나를 이끌어 오신 흔적을 볼 수 있는가? 만일 당신이 품은 꿈에 하나님의 생명력이 없다면 그 꿈은 얼마 안 있어 자취를 감출 것이다. 자기 한 사람도 감동시킬 수 없는 꿈이라면 도대체 누구에게 도움이 되겠는가?
__꿈의 기반 : 당신의 가치를 인정하라
꿈의 실현은 당신이 가진 고유의 가치를 마음으로부터 깊이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80세에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은 모세에게는 이스라엘 백성의 해방이라는 가슴 뛰는 꿈이 있었다. 그가 품었던 꿈은 40년간 광야 생활을 이끌 수 있는 힘이 되었고, 그의 꿈은 자신의 약점도 극복할 수 있는 길이 보였던 것이다. 성경에 보면 모세는 120세가 되도록 눈이 흐리지 않고 기력이 쇠하지 않았다고 한다.
나 자신이 하나님께 어떤 존재이고 어떤 능력을 받았는지 깨닫게 되면 절대로 대충 살 수 없다. 사람의 크기는 곧 꿈의 크기다. 한 사람이 남기는 영향력은 그가 어떤 꿈을 꾸며 그것을 이루기 위해 어떤 일을 했는가에 대한 궤적이다. 이렇게 꿈꾸는 사람이 되려면 자신 안에 얼마나 큰 가능성이 있는지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하나님은 당신을 지명하여 부르셨다.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가 우리 인생을 멋지게 들어 쓰시려 하신다. 그러므로 힘을 내라. 하나님의 꿈을 품으라. 세상에 전해 줄 하나님의 보물이 당신 안에 있다.
__꿈의 지속 : 두려움을 이길 때까지 즐겁게 상상하라
우리는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 반드시 두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 두려움은 우리의 형편과 재능과 자신의 자원을 보면서 우리를 비웃는다. 도전하고 변화하려고 할 때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스멀스멀 기어 올라와 우리가 얼마나 평범한지, 얼마나 많이 실패했고, 또 얼마나 가진 것이 없는지 지적해댄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그 두려움을 완전히 압도할 만큼 즐거운 상상을 하면 된다. 그 꿈이 이루어진 뒤에 어떤 보상과 기쁨이 기다리고 있는지 상상하는 것이다.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란 책에서는 성공의 요인을 ‘성격’이라고 말한다. 성격이 능력보다 더 큰 요인이며, 그 사람의 대인관계와 미래를 결정짓는다고 한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적용된다. 누가 지혜로운 사람인가? 자신의 성격을 계속 갈고 닦는 사람이다. 마음 문을 걸어 잠그고 매사를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 주변에는 누구도 가까이 가려고 하지 않으며, 인간관계는 자꾸만 꼬인다. 만약 자신이 여기에 해당된다면 빨리 고쳐야 한다. 그래야 내 인생이 평탄해지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 그러기 의해서 우리는 먼저 하나님 사랑을 느껴야 한다. 그분의 사랑을 느껴야 내가 사랑의 사람이 될 수 있다. 내가 사랑 받지 못하면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없다. 사랑하는 법도 배워야 한다. 그렇게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면 남의 허물도 용서하게 되고 마음이 넓어지는 것을 경험한다. 기존의 생각의 방식에도 변화가 온다. 좀 더 넓은 마음으로 바라보게 되고, 기존의 나의 모든 방식이 바뀌고 이것이 바탕이 되어야만 비로소 건강한 꿈을 꿀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덧입으면 매사에 긍정적인 사람이 된다. 늘 안 된다는 사람, 늘 어렵다는 사람치고 잘 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어떻게든 해보려는 긍정적인 사람이 결국에는 뭔가를 이룬다.
__꿈의 확장 : 행동으로 옮겨라
우리의 꿈이 현실로 이루어지려면 하나님의 허락이 필요하다. 비록 과정에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이 꿈은 종국에는 승리하게 된다. 하나님이 주신 꿈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구체적으로 변한다. 나 자신이 꿈을 이루기 위해 인내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내가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길을 열어 주시기 때문이다. 한 분야에서 빛을 발하면 모든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 우리가 예수의 꿈을 품고, 이것을 추진할 열정만 있다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꿈이 진짜면 열정도 생긴다. 아브라함을 보라. 하나님이 당신의 꿈을 그에게 주셨고, 축복을 부어 주셨기에 어려움 가운데서도 끝내 승리했다. 그는 자신의 꿈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가운데서도 그것을 이룰 수 있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으로부터 꿈을 받게 되어 있다.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욜2:28). 하나님은 만민에게 당신의 영을 부어준다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많은 크리스천이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삶을 마감한다. 그 이유는 바로 소원은 하지만 정작 행동으로 옮기지 않기 때문이다. 완벽주의적 성격의 사람들은 “완벽히 준비된 후에 쓰임 받겠다. 그 때 행동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조금 부족해도 현재 쓰임 받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를 충실히 살고, 지금 쓰임 받으며 열심히 준비하는 것이 완벽으로 나아가는 지름길이다. 실행이 답이다. 매일 쓰임 받기를 갈망하며 살아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꿈도 없고, 하루하루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산다. 막연한 소원을 꿈으로 착각하며 살기도 한다. 그러나 진짜 꿈은 이루어질 때까지 포기할 수 없는 추진력을 준다.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계획을 세우게 되고 구체적인 행동으로 이어진다.
2. 인생 시스템을 완전히 바꿔라
변화와 헌신은 대충하면 피곤하다. 하지만 완전히 몰입해서 거기에 자신을 던지면 오히려 더 쉬워진다. 살다가 억울한 일을 당하고, 돈이 없어 설움을 당할 때도 있다. 그럴 때에는 세상은 역시 약육강식의 세계이며, 돈의 힘, 권력의 힘 등 여러 가지 힘의 원리가 작용하는 것을 깨닫는다. 하지만 내가 힘도 없고 돈도 없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내 힘으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그 해결책이 말씀 안에 있다.
__먼저 하나님과 주파수를 맞추라
사도바울은 누구보다도 열렬히 복음을 증거했고 교회를 세웠다. 그러면서 사람들과도 자주 부딪히고 매맞고 쫒겨 나기도 하고, 위협을 당하기도 했지만, 이러한 수많은 갈등과 어려움을 모두 이겨낼 수 있었다. 그 힘은 바로 하나님이 매 순간 사도 바울의 손을 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바울의 삶과 생각은 하나님의 주파수와 맞았고, 그는 하나님의 마음을 발견했으며,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 언제 주님의 도움을 가장 크게 경험하게 되는지 잘 알았다. 그는 하나님의 능력을 빌려 쓸 줄 아는 사람이었다.
마더 테레사의 선한 일의 동기를 의심하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었을 때마다, 그녀는 ‘하나님의 작은 몽당 연필’이라며 스스로를 낮추고 하나님 편에 섰다. 우리가 볼 때 비록 세상적으로 가진 게 없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우리의 편이 되시고 날마다 도움을 주신다면 능력 있는 삶을 살 수 있지 않겠는가? 기도하려고 엎드리면 그분의 음성을 들을 수 있고 날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기쁨이 식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없어도 천하를 얻은 것과 같지 않겠는가?
__가치관이 변하면 모든 것이 새롭게 보인다
사람의 마음을 꿰뚫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눈길’이다. 흔히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한다. 그의 눈길이 향하는 곳에 그의 생각이 닿기 마련이다. 또한 그가 집착하는 단어나 주제를 통해서도 그 사람을 파악할 수 있다. 그렇듯이 어떤 것에 집중한다는 것은 자신이 그것에 가치를 부여했다는 말과 같다. 가치관이 변화된다는 것은 결국 자기가 바라보는 것, 관심을 가지는 것,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바뀐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나의 가치관을 분석하고 변화시키는 것은 신앙 생활의 중요한 요소이다.
예수님을 만나고 가치관이 바뀐 예수님의 제자들은 고통과 고난을 기뻐하기 시작했다. 오히려 고난 가운데 자신을 던지기도 했다. 전승에 의하면 베드로는 십자가에 못 박힐 때 ‘나 같은 존재가 예수님처럼 똑같이 십자가에 못 박힐 수 없다. 날 거꾸로 매달아 달라’ 라고 이야기 했다고 한다. 돌에 맞아 순교했다고 알려지는 야고보가 죽은 후에 가보니 기도를 얼마나 열심히 했던지 그의 무릎이 낙타 무릎을 닮아 있었다고 한다. 예수 안에서 변화되면 고난도 기쁨이 된다. 가치관이 바뀌는 것이다.
__당신의 꿈을 이루어줄 한가지 지렛대를 찾아라.
당신에게 주어진 꿈을 이루기 위해 본질적으로 변화되어야 하는 한가지는 무엇인가? 그것을 개선했을 때 그에 따라 줄줄이 따라오게 되는 핵심가치는 무엇인가? 1만 시간의 법칙을 통해 10년 후에는 미래학 분야에 있어 전문가가 되고 싶다는 꿈이 있다고 하자. 10년 안에 만 시간을 채우려면 하루에 3시간을 그 분야의 전반적인 지식을 습득하면서 체계를 세워가야 한다. 어느 곳에서든, 무슨 일을 하더라도 일주일에 20시간 정도의 시간을 확보해서 그 분야를 공부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하루에 3시간을 확보하는 것이며, 그것을 위한 계획은 마치 지렛대와 같다. 당신의 그 다짐과 결심을 쉬 잊지 않기 위해서는 계획한 날로부터 3일 안에 실천을 시작해야 하고, 그것을 최소한 21일 동안 지속하여 머리속에 습관의 회로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3년 동안 지속할 때에 가시적인 열매가 보이기 시작한다. 3년 동안 하루 3시간을 꾸준히 투자한다면 약 3,300 시간이 되는데, 이렇게 하면 한 분야에 대한 당신만의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식견을 갖추게 되는 수준이 된다. 그 3년 동안 같은 방향으로 3번 정도의 방향 수정을 거치면 10년 안에 1만 시간을 달성하면서 당신의 지식수준과 깊이가 폭발적으로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시스템을 바꾸는 일은 작아 보이지만, 본질적이고 구체적인 한 가지 행동을 꾸준히 실천함으로써 시작된다. 이제 문제는 그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이 한가지를 찾고 그것을 몸에 밸 때까지 실천하는 일은 쉽지 않지만 당신에게 주어진 비전은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하나님이 주신 꿈이 당신에게 가시적인 성과를 이루기 위한 지렛대를 찾아보라.
3. 비교하는 순간 불행해진다
“자네도 알다시피 인간이란 인생의 90퍼센트는 과거에, 7퍼센트는 현재에 두고 살지. 그러니까 인간이 미래를 위하여 생활하는 것은 겨우 3퍼센트만 남게 되는 거야” –존 스타인 벡의《불만의 겨울》중에서.
즉 사람은 지금 행복해도 거기에 감사하기보다는 지나간 불행을 묵상한다는 것이다. 아홉을 가지고 있음에도 하나를 잃으면, 그 잃어버린 하나 때문에 연민하는 것이 인간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것을 넘치도록 많이 주셨는데, 정작 우리는 누리지 못하는 것이 너무도 많다. 건강한 몸으로 살아가게 해주신 하나님께, 가족을 주셔서 가정 속에서 이루신 일들을 감사 드리라. 이미 있는 것 중 그 어떤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말라.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다.
윌리엄 문은 명석한 두뇌를 가졌지만 항상 크리스천을 공격하며 분노에 찬 삶을 살면서 도저히 삶에 대한 만족이 없었다. 그런데 그만 사고로 시력을 잃었다. 그러나 다행히 그리스도를 영접했고, 그때부터 최선을 다해 점자를 연구해서 시각 장애인을 위한 ‘점자 성경’을 만들었다. 비록 상황은 이전보다 훨씬 열악했지만 지금 그는 과거보다 훨씬 행복한 사람으로 변화된 것이다.
__핸디캡 있는 사람들의 강점
성격의 결함, 가정의 문제점, 육체의 불편함, 과거에 범한 죄 … 등, 이 세상에 핸디캡 없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이런 점들 때문에 위축이 되고 남들 앞에서 당당하지 못할 수도 있다. 자신감도 사라져서 어떤 일을 앞두고 자포자기할지도 모른다. 핸디캡 때문에 마음이 늘 불편하다거나, 자신감이 사라진다거나, 주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낙망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러나 주님은 내가 가진 핸디캡 때문에 나를 더욱 사랑하시며 나를 더욱 가까이 하신다. 그 특별한 사랑 하나로 만족하라.
핸디캡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불리하게 작용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나의 핸디캡이 무익한 것이라 할 수 없다. 때때로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을 사용해 그만의 강점을 드러내시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자신의 핸디캡에 위축되어 뜻 한번 펴보지 못하고 사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것을 통해 보통 사람은 절대 경험하지 못할 그런 영적인 유익을 얻는 사람도 있다. 핸디캡은 분명 핸디캡이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이 그것을 통해 나에게 주신 뜻과 섭리가 무엇인지 찾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이런 핸디캡을 우리에게 허락하신 이유는 우리 인생의 궤도를 수정하시기 위함이기도 하다. 자신의 핸디캡 때문에 사람이 아무도 없던 한 낮에 우물가로 나가서 예수님을 만났던 사마리아 여인은 그 순간 자신의 인생의 궤도를 수정할 수 있었다. 모세, 아브라함, 다윗 등 모든 믿음의 조상들도 핸디캡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모세는 자신의 살인죄 때문에 인생의 궤도가 바뀌었고, 아브라함의 믿음 없음은 오히려 그를 믿음의 조상이 되게 했다.
인생에서 경험하는 무수한 어려움들이 어떻게 설명될까? 우리는 그런 어려움과 고난의 시절을 거치며 자신의 인생과 사상이 많이 변화되는 것을 본다. 고통 속에 들어가면 드디어 인생의 궤도를 수정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지금보다 더 아름답고 멋진 존재로 변화되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핸디캡 없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어쩌면 우리는 이것 때문에 평생 아파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아픔의 바닥에서도 우리는 주님 덕분에 희망과 소망을 본다. 나에게 핸디캡이 주어진 것은 내 잘못 때문도, 운이 나빠서도 아니다. 바로 주님께서 내게 다른 무엇인가를 보여주시기 위함이다.
__상처를 십자가 복음으로 해결하라
청년의 때는 가능성과 능력과 건강이 적절히 조화되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는, 인생에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황금기이다. 그러나 상담을 해보면 기쁨보다 슬픔으로 가득하고, 무엇을 하든지 마음이 공허하다는 청년이 많다. 왜 이렇게 느끼는 걸까? 바로 ‘상한 마음’ 때문이다. 돈이 많고 적고, 학벌이 좋고 나쁘고에 상관없이 누구나 마음의 상처로 인해 고통을 당한다. 하나님이 우리들의 마음에 고통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그것을 통해 내 인생의 가시를 뽑아내기 위함이다. 다윗은 왕이 되어 승승장구하지만, 밧세바와 간음하여 낳은 아들이 죽고 마음이 무너진 후에야 하나님을 돌아본다. 또한 자식의 반역을 통해 이리저리 쫓겨 다니면서 자신의 부족함을 자각하고 눈물로 시편을 쓴다. 다윗은 자신의 상처들을 통해 점점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었기 때문에 성군이 되었다.
하나님은 마음속의 상처를 통해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을 보여주신다. 나의 부족한 부분들이 상처를 통하여 드러날 때 사람은 자신의 부족함을 인식한다. 만약 마음속에 상처 하나 없다면 하나님을 찾지도, 또 복음을 감격스럽게 받아들이기도 어려울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상처를 주시는 이유는 더 큰 함정에서 우리를 건지시기 위함이다. 더 나은 ‘나’를 만들어 주시기 위해 하나님이 끊임없이 일하신다. 그것이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이다. 고통만 묵상하기에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이 참으로 많다. 나는 우리가 세상이 주는 만족감보다 하나님이 주시는 만족감을 갖고 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런 만족이 사람들과의 갈등을 없앤다. 그래서 대인관계가 좋고 사랑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행복한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지 않으면 세상의 모든 부요함도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없다. 내 인생을 내가 지키려 하니까 인생이 부담스럽고 미래가 불행해 보인다. 우리는 하나님이 지켜주신다는 것을 믿어야만 안심하고 살 수 있다. 우리에게 고통 한가지 떠오를 때마다 행복한 사실 3가지를 떠올려라. 주님을 3번 생각하라. 우리의 아픔과 고통이 놀랍게도 줄어드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__비교하는 순간 불행해진다.
우리가 마음의 평안을 얻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남과 비교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절대적인 만족보다 상대적인 만족에 더 신경을 쓰기 때문에, 남보다 더 가질 때, 혹은 남과 경쟁해서 이겼을 때 비로소 행복을 느낀다. 남들에 비해 내가 뒤처지는 것 같아 신경 쓰이는가? 주어진 것에 만족하라. 그래야 하나님이 내게 더 좋은 기회를 주신다. 게다가 하나님이 주시는 기회를 분별하는 능력도 생긴다. 주어진 것에 묵묵히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이 바로 삶의 지혜이자 화평을 주는 지름길이다.
사람은 비교하는 순간 불행해진다.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고유한 재능과 아름다움에 감사하는 게 아니라 남과의 비교에서 오는 상대적인 즐거움만 얻기 때문이다. 이 상대적인 즐거움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블록처럼 아슬아슬하고 위태롭다. 조금만 실수해도, 조금만 긴장을 풀어도 실망하고 뒤처지게 마련이다. 내 힘으로 다 잘하려면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가! 내 능력 밖의 일이나 아무리 노력해도 잘 되지 않는 것에 연연하는 것은 지혜가 아니다. 오직 절대자인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날 때 판단 기준 자체가 바뀐다. 그래서 단 한가지, 하나님이 계획하신 본래의 나답게 사는 길이 진정한 행복임을 느끼게 된다.
__자기만 제대로 알아도 인생의 승자가 된다
우리는 세계적으로 유래 없이 빠른 경제 성장을 이룬 만큼 지적인 능력도 빠르게 향상되고 있다. 문맹률도 거의 없고 인터넷에는 각종 지식이 넘쳐난다. 그러나 사람들이 똑똑해진 만큼 우리의 삶과 신앙은 더 나아졌을까? 그렇게 똑똑해지고 지식도 많아졌는데 사람들은 더 방황하며, 정작 조그만 시험 앞에서도 심하게 흔들린다. 욥기에 보면 탁월한 지혜로움으로 모든 것을 이해하는 듯한 욥에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네가 과연 무엇을 아는가? 과연 네가 지혜로운 존재인가? 과연 하나님은 제대로 아는가?
우리는 자신만 제대로 알아도 인생을 잘 살 수 있다. 성경은 우리를 거룩한 존재라고 말한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3:16). 구약 때에는 성전이 하나님의 상징적인 처소였는데, 신약에 와서는 성도 각자에게 성령께서 임재하고 내주하신다. 즉 우리 자신이 거룩한 존재라는 것이다. 내가 진정 회복해야 할 문제는 무엇이고, 그 문제에서 빨리 회복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자신의 문제를 정확히 알고 거기에 맞는 생각과 행동을 해야 한다. 진정한 문제 파악을 하기 위하여 그저 하나님 앞에 그대로 보여 드리라. 그러면 주께서 반드시 응답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내 문제를 알려주실 뿐만 아니라, 그것들을 멋지게 해결해 주실 것이다.
믿음의 근육 단련하기
1. 기도의 분량이 차야 한다.
__기도는 기다림이다 / 기도는 믿음의 일이다.
나는 믿음을 ‘기도와 기다림’으로 표현한다. 기도하고 기다리는 것이며, 그 기다리는 시간이 바로 인생이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역사하신다. 주님은 우리 마음을 위로할 뿐 아니라, 모든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해 주시는 분이다. 그러나 우리의 문제는 기도한 후에 기다리는 과정이 너무 고통스럽다 보니 오래 버티지를 못하고 무너져 내린다. ‘믿음의 기도’는 기다리는 시간, 인내의 시간을 포함한 것이다. 오 할레비스는 기도 응답의 요구 조건을 2가지로 든다. 하나는 적극적으로 기도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인내다. 고통스럽더라도 인내하고, 고통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과정이 내게 유익했다”고 고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기도로 많은 일을 하고 싶고,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사로잡혀 쓰임 받고 싶다. 왜냐하면 기도는 다른 모든 것을 일으키는 근원이기 때문이다. 기도해야겠다고 결심한 후 행동으로 옮겨야 기도가 점점 깊어진다. 하나님은 꼭 우리가 구한 만큼 일하신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통해 일하시기 때문이다. 인간의 한계는 구하는 것의 한계와 같다. 우리는 하나님을 제한 할 필요가 전혀 없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의 생각과 능력보다 훨씬 크신 분이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하나님께 아뢰라”(빌4:6)
__기도는 평안이며, 내면의 변화이며, 하나님의 사랑이다
이 세상에 두려움이 없는 인간은 아무도 없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라고 말한 데오스테네스에게는 계단 공포증이 있었고,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숫자를 두려워했다. 시저는 어둠을 두려워했고, 히틀러는 암살 때문에 여자를 두려워하여 미혼으로 지내다가 전쟁에 패하고 죽기 15분 전에 한 여지와 결혼식을 올린 뒤 그녀와 같이 자살했다. 히스기야는 이사야를 통해 ‘더 이상 살 수 없을 것’이라는 엄청난 소식을 듣고 두려워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 앞에 통곡하면서 기도한 후 15년 수명 연장의 기적을 이루었다. 이렇듯 우리 자신에게도 감당하기 힘든 일을 듣거나 경험하게 되면 힘이 빠지면서 세상에 소망이 사라진다. 근심에 싸여 아무것도 못할 정도로 무기력해진다. 이럴 때에 우리는 주저앉는 것이 아니라 두 손 모아 무릎 꿇고 기도해야 한다. 기도의 응답이 즉각 올 때도 있지만, 일정한 시간이 요구될 때도 있다. 하나님은 응답에 앞서 먼저 우리의 마음을 평안케 하신다. 이 평안을 얻기까지 인내하며 기도해야 한다.
진정으로 강한 자는 내면세계에 흔들림이 없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세상이 두렵지 않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얻었기 때문이다. 조지 뮬러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그는 내면세계의 깊은 변화를 경험했고 날마다 하나님과 교제했다. 5만 번이나 구체적인 기도 응답을 받았던 그는 고아원을 시작하기 직전에 자신의 내면을 위해 철저한 기도를 드렸다. 훗날 그는 그날을 회고하며 자신의 고집과 욕심이 하나님 앞에서 완전히 죽는 날이었다고 고백했다. 자신의 욕심을 버리고 내면을 철저히 내려놓게 되니 기도만 하면 응답되는 역사가 일어난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내면을 통해 일하셨다.
기도할 때 나타나는 유익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면 신앙의 성숙이 있다. 또 다른 유익함은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지혜를 얻게 된다. 즉 하나님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하나님의 능력이 임한다. 성경의 인물들이 모두 기도 중에 하나님의 능력을 받았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는 기도의 깊은 은혜를 지속적으로 체험해야 한다.
__기도를 멈추는 것에 두려움을 가지라 / 바닥까지 내려가 기도하라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기 위해서는 ‘기도의 충전’이 필요하다. 우리가 살아있는 기도를 하려면 기도생활을 멈추는 것에 대하여 두려움을 갖고 있어야 한다. 기도가 멈추면 문제해결이 안 되고, 능력 있고 행복한 삶을 살 수가 없다. 하나님의 능력도 멈추기 때문이다. 사무엘은 그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기에 기도를 멈추는 죄악을 범하지 않도록 기도했다. 기도를 하는데 기도응답이 지연되고 일이 꼬일 때, 우리는 견디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하기도 한다. 이때 필요한 가장 큰 지혜는 믿음으로 간절히 기도한 후에 잊어버리는 것이다. 그 의미는 내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합당한 그 때에 주시겠지”하는 믿음이 신앙의 발로다.
기도응답을 120년간 기다렸던 노아는 믿음으로 기도한 후에 응답을 잊고 방주를 만들었다. 그리고 하나님은 결국 노아의 방주를 통해 구원을 이루셨다. 기도는 우리가 쓰러져 죽을 것 같아도 다시 일으켜주는 힘이 있다. 비록 지금은 기도해도 별로 진척이 되지 않는 것 같아 보여도 하나님은 당신에게 희망과 소망을 주시기 위해 지금도 움직이고 계신다.
2.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방식
__먼저는 회복이다.
운동 선수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부상’이다. 아무리 뛰어난 선수도 부상을 당하면 제 기량을 발휘할 수 없을뿐더러 발전할 수도 없다. 회복해야만 예전처럼 활동할 수 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이다. 내 신앙과 삶이 무너져 있으면 사역도, 봉사도 안 되고, 마음에 즐거움도 없고, 도대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주변에 고난 때문에 하나님을 멀리하는 지체들이 있다면 그들을 위해 같이 기도하고 아파해야 한다. 그들의 무너진 신앙과 삶을 회복하는 것이 우선순위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자신의 상처가 빨리 회복되기를 바라지만 생각처럼 잘 안되니까 낙망한다. 너무 힘들어지면 분노가 일어나고, 그것이 상처가 되고 고통이 된다. 그 정도가 되면 “하나님이 날 버리셨다”고까지 말한다. 몸에 부상을 입으면 병원에서 잘 치료받으면 되지만, 우리의 상황이나 영적인 문제들은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으로만 회복될 수 있다.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은 우리를 온전히 치료한다. 그 능력은 우리 안의 죄를 사하고 성령 안에서 다시 서게 만든다. 뿐만 아니라 보혈의 능력은 우리의 모든 상처를 싸매주신다. 우리가 주님의 품에 안기기 전에 먼저 보혈을 지나야 하는 이유는 영적인 상처가 회복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어떤 영적인 힘도 쓸 수가 없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오해와 의심도 해결되어야 한다. 마음의 상처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우리 곁에 오셔서 도우셔도 주님의 임재를 알아차릴 수가 없다. 즉 주님이 일하시는 방식에 대한 우리의 시각도 회복되어야 하는 것이다.
__회복에도 순서가 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10:13) 혹시 지금 너무나 고통스럽고 힘든 시험 가운데 있는가? 하나님께서 욥처럼 시험을 극복하고 회복시켜 주실 것이다. 비록 당장은 힘들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면 웃을 수 있다. 하나님은 이런 힘든 시간을 통해 우리에게 평생을 함께 걸을 수 있는 넉넉한 힘과 지혜를 주시기 때문이다. 욥의 경우를 통해 하나님은 어떤 순서로 우리를 회복시켜 주시는지 살펴보자
1) 심령을 회복시켜 주신다(욥42:10)
우리가 시험을 당할 때 마음이 가장 많이 무너진다. 분노와 증오, 미움, 낙심 등 온갖 시험이 찾아오며, 특히 주변 사람들에게 적개심이 생긴다. 하나님은 욥에게 다시 물질적인 축복을 주시기 전에 욥의 곤경을 돌이키신 것처럼, 희망을 주시고 주변 사람들을 이해하게 만든다. 이러한 심령의 회복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첫 번째 회복이다.
2) 인간관계를 회복시켜 주신다(욥42:11)
3) 물질관계가 갑절로 회복된다
__동행의 방식
1) 권세를 주심으로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라”(요14:12) 하나님은 우리에게 권세를 주셨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큰 권세를 주시고 승천하셨다. 성령을 통해서 권세를 주시고, 나에게 세상을 정복하라고 명령하셨다. 예수님은 당신의 성도들에게 권세를 위임하심으로 그 뜻을 이루어 가신다.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을 통해 그 일을 ‘함께’ 이루어가신다. 주님이 주신 권세를 받아서 사용하기 바란다. 하나님은 모든 순간을 섭리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순전한 믿음만 가지고 서있으면 된다. 모든 일을 선악간에 판단하시는 하나님께 맡기고, 그 권세를 의지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면 된다.
2) 명령을 통해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 이것은 지극히 크고 중대한 명령이다. 주님은 이처럼 명령을 통해 나와 함께 하신다. 이것이 간섭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사실은 나를 위한 축복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앞뒤를 살피시며 안전하게 갈 수 있도록 때마다 명령을 내리신다. 우리는 그 명령에 따르면 된다.
3) 약속을 통해서
고린도전서 13장은 ‘믿음, 소망, 사랑’을 이야기 한다. 이 중에서 ‘소망’이 바로 약속에 해당된다. 주님은 우리에게 천국을 주신다고 약속하셨고, 우리와 영원토록 함께 해주신다고 하셨다. 하나님의 약속은 곧 그분의 맹세와 같다. 주님도 우리에게 많은 약속을 허락해 주셨다. 상급도 예비해 두셨다. 그래서 약속들만 생각하면 마음이 벅차오른다. 우리는 이런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
4)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철저한 믿음을 주신 뒤에 답을 주신다. 진정한 믿음이란 머리로 생각하는 것을 몸으로 직접 느끼는 것이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1차적인 믿음의 씨앗을 얻는다. 그러나 그 정확한 믿음의 지식이 내 안에 들어와 체화되면 엄청난 일들이 벌어진다. 다윗같이 골리앗을 물리치고, 베드로처럼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는 역사가 나타난다. 그들이 당당하고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믿음이 그들에게 ‘이후의 새로운 세계’를 보게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상 즐거움과는 다른 기쁨을 맛보게 해줬기 때문이다.
우리는 평소에 많은 고민을 하면서 살아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학업과 결혼, 혹은 사업 문제를 놓고 늘 고민에 사로잡혀 있다. 그것이 해결 되어야만 다음 단계로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의 고민을 넘어 새로운 세계, 새로운 가치관을 보기 원하신다. 그것이 비전이고 이러한 비전을 완성하는 것이 믿음이다. 이 가치관을 가지는 순간부터 우리의 영혼은 자유로워질 것이다. 내 안에 기쁨이 넘치고, 비록 가진 것이 부족해도 내 마음은 사랑으로 가득 찰 것이다. 믿음은 우리의 일상을 잇는 가장 견고한 끈이다. 믿음을 통하지 않고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일은 없다. 주님도 우리와 믿음으로 동행하신다. 우리 생각에는 예수님이 내 눈에 분명히 보이고 만질 수 있게 오시면 더 잘 믿을 것 같은데 주님 생각은 다르다. 실제로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세계는(가시광선 영역)전체의 5퍼센트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나머지 95퍼센트도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실재한다. 믿음은 그 95퍼센트를 보게 하고, 주님의 움직이심을 볼 수 있게 하는 통로다. 우리는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한다. 주님은 당신을 믿는 자들을 통해 당신이 원하시는 일을 하신다. 여러분은 그 통로가 되어 쓰임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5) 단순한 삶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다스리라는 명령과 권세를 주셨다. 그런데 우리는 다스리기는커녕 그것에 사로잡혀 살 때가 더 많다. 주변의 바쁜 생활에 정복당하고, 시간에 끌려 다니며 살고 있다. 이 때 우리는 모든 것을 단순화 시켜야 한다. 하나님이 주신 권세로 이 모든 것에 질서를 회복해야 한다. 365세를 살고 하늘로 들려 올라간 에녹의 신앙생활의 비결은 ‘동행’이었다.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서는 생활이 전반적으로 단순해져야 한다. 물질생활, 시간생활, 신앙생활이 모두 너무 복잡하고 이것저것 걸려 있는 것들이 많다. 실속 없이 분주하기보다, 하나님과 깊이 있게 나누는 교제가 필요하다. 포기할 것들은 포기하고 버릴 것들은 버려야 한다. 삶을 단순하게 정리하고 쓸모없는 것을 버리는 것만 잘해도 훨씬 효율적인 인생을 살 수 있다.
3.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면 스스로 만들라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의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애를 쓰면서도 자기 자신을 개선하는 데에는 별 관심이 없다. 그래서 그들은 환경에 종속되어 있다” _제임스 앨런
__기회는 만드는 사람의 것이다. / 받은 은사대로 살기
우리 인생에는 전환점이 되는 결정적인 기회들이 몇 번 찾아오게 되어있다. 하지만 이런 굵직한 기회들만 잡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주님께서 아침마다 우리를 깨워주시고 새날을 주시는 매일매일이 바로 새로운 도전이요 기회다. 성공은 어떻게 오는가? 매일 내가 스치는 기회들을 놓치지 않고 붙잡을 때 가능한 것이다. 기회가 없다고 불평하지 말라. 기회는 우리의 노력이 만들어 내는 것이고 지금도 우리 옆에 있다.
“그렇게 하여 앞날을 위하여 든든한 기초를 쌓아서 참된 생명을 얻으라고 하십시오”(딤전6:19, 새번역)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달란트를 붙잡고 나가면 누구든지 성공할 수 있다. “든든한 기초를 쌓는 것이 무엇인지” 각자가 깊이 생각해 보는 것이다.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께 내가 해야 된 일을 정해 달라고 기도하고, 응답 받으면 그 일에 매진하라. 주님께서 주신 은사대로 살아갈 때 행복할 수 있고 성공할 수 있다.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모두가 유익을 얻는다.
__한 곳에 오래 붙어 있는 것도 능력이다.
요즘 시대의 특징 중 하나가 매우 가볍다는 것이다. 인터넷이 조금만 늦게 연결되어도 답답해한다. 진지한 이야기를 듣기엔 인내심이 부족하다. 그런 성향이다 보니 어려운 환경이 다가오면 견뎌내지 못한다. 그런데 사회에서는 그 자리를 오래 지키는 사람에게 기회가 주어진다. 회사에서도 자신이 맡은 일에 묵묵히 충성하고 꾸준히 노력하는 사람에게 길을 열어주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이걸 모르는 사람들은 일이 힘들거나, 자기에게 조금이라도 유리한 것이 보이면 앞뒤 따지지 않고 움직인다. 그러다 보니 소탐대실하는 것이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인가 주실 때에는 언제나 무르익은 다음에 주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조금만 순종하는 자세를 보여도 많은 것을 주시려고 준비하고 계신다. 하지만 우리가 불순종하고 자꾸 방황하면 좋은 것을 주실 수 없다.
__몰입과 절제가 기회를 만든다.
전 세계의 칩을 다 장악하다시피 했던 인텔의 앤드류 그로브 사장은 “21세기에는 오직 편집광만이 살아남는다”고 말했다. 즉 자기 분야에 미치지 않은 사람은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몰입할 대상을 잘 알아서 거기에 올인 하면 인생에서 도약을 경험할 것이다. 우리가 무엇에 몰입하느냐에 따라 인생도 달라지고 주변 환경도 달라질 수 있다. 위대한 신앙인들을 잘 살펴보면 그들은 신앙적으로 유익한 것에 몰입하는 습성이 있었다. 성경 읽기 표로 잘 알려져 있는 로버트 맥체인은 아침 6-8시 까지 늘 기도에 힘썼으며, 밀림 속의 십자가로 유명한 브레이너드도 매일 몇 시간씩 기도에 힘썼다. 스코틀랜드의 설교가 존 웰치 같은 경우는 하루에 8-10시간씩 기도에 매달렸다.
몰입은 우리의 인생에 새로운 기회를 열어주는 얼마 남지 않은 금광이다. 몰입은 깊은 통찰력과 즐거움, 자신이 환경을 제대로 통제하고 있다는 만족감 등으로 이루어지는데 그것이 모여서 여태껏 풀리지 않던 문제를 푸는 돌파구가 된다. 몰입하면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 몰입을 통해 기회를 만들라.
__정말 가치 있는 것에 인생을 던져보라
많은 청년들이 젊었을 때에 자신의 비전과 사명을 발견하려고 애쓴다. 하지만 비전을 발견하기 전에 선행되어야 할 일은, 바로 ‘내가 가치를 두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이다. 비전이 인생의 캐치프레이즈라면, 가치라는 것은 비전의 방향키 역할을 한다. 즉 내가 어떤 것을 추구하며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인도하는 것이다. 자신의 가치를 따라 사는 사람의 얼굴에서는 빛이 난다. 무엇을 해도 즐겁고 행복하다. 왜냐하면 자신이 지금 올바른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마음이 좋은 것이다. 영원한 가치에 당신의 인생을 던져라. 그것은 무모한 도박이 아니라, 영원히 현명한 투자가 되어 반드시 만족할 만한 결과를 가져다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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