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최고의 행복-용서와 화해(창45:1-15)
1. 한 신대원 학생의 재밌는 글이 눈에 띈 적이 있습니다. 제목이,“할머니 하나님.”이었어요.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하나님을 부를 때 무심결에 할머니라고 부른다고 해요. 어려서 부모가 아닌 할머니가 키워주셔서 그런 것 같다고 합니다. 또 청년 때, 어느 자매가 뜨겁게 대표 기도를 하다가‘하나님’이라고 하지 않고‘고객님’하는 바람에 기도회가 더욱 뜨거워졌다는 일화를 소개했어요. 그 자매의 직업이 무엇인지 짐작이 가죠. 오늘도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예배를 드림에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다른 것 감사할 것 없어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아무 때나 부를 수 있다면 우리가 행복하고 감사드릴 수 있습니다.
인류사 가운데 최고의 기적은 용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용서는 아무나 할 수 없어요.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이 대인이에요. 위대한 인격-성숙한 인격의 소유자만 용서할 수 있어요. 중국 삼국시대 초나라 장왕 이야기, 전쟁에서 승리 후 밤에 연회를 궁궐에서 여는 중에 한 장수가 바람에 촛불이 꺼진 틈에 애첩 허희의 입술을 희롱, 허희가 그 장수의 갓끈을 잡아 뜯어서 증거로 제시, 왕이 불을 켜지 말고 장수들은 모두 갓끈을 다 끊으라고, 후에 이 장수가 위기 때마다 왕을 구함, 왜 내게 이렇게 하나? 절영지회의 은덕을 입은 몸이라고. 성경에도 용서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가장 큰 용서를 보여주신 분은 예수님입니다. 주님은 자기를 대적하던 사람들을 용서하셨어요.
2.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에도,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고 기도하셨습니다. 죄 없으신 주님이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시면서 끝까지 용서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 죄를 대신 담당하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받을 수 있도록 희생하기를 자원하셨어요. 스데반도 돌에 맞아 순교하는 가운데, 자기에게 돌을 던지는 자들을 향하여 주님과 똑같이 기도하였어요. 스데반은 이 기도를 하기 전 하늘 문이 열리는 경험을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의 요셉도 자기를 노예로 팔았던 형들을 용서했습니다. 용서를 할 줄 알았던 세 사람의 모습을 보면 공통적인 면이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셨고요.
스데반과 요셉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한 자들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한 자들이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 용서의 근원이 이 땅이나 자기 자신에게 있지 않았어요.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을 하늘로부터 받았어요. 우리 주님이 참 본을 보이셨고, 이후 하나님과 그의 나라를 경험한 자들이 용서하며 살아갑니다. 『용서의 미학』을 쓴 루이스 스미디스는 용서의 3단계를 말했습니다. 첫 단계는 자기에게 상처를 준 사람의 인간다움을 재발견한다. 그도 역시 나와 같이 실수하고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는 사실을 발견한다. 두 번째는 보복할 권리를 포기한다. 복수는 하나님께 맡기라는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시94:1, 삼하22:48) 세 번째는 용서할 사람에 대한 감정을 바꾼다.
3. 우리 신앙인들이 용서할 수 있는 큰 그릇-대인들이 되어야 합니다. 용서할 줄 모르면 대인이 아니고 소인-작은 그릇입니다. 신앙인의 용서는 철저히 위로부터 공급하시는 능력으로 감당할 수 있어요. 이때 조건 없이 용서할 수 있어요. 우리 주님이 하신 것처럼 말입니다.(예수님의 비유 가운데, 만 달란트 빚진 자와 백 데나리온 빚진 자) 용서의 근원은 하나님의 사랑이고, 진정한 용서는 내가 먼저 합니다. 상대가 내게 빌기를 바라지 않고요. 용서에는 제한이 없습니다. 절대 용서할 수 없는 것이란 없어요. 요셉이 보고 싶었던 동생 베냐민을 포함하여 열두 형제들이 20여 년 만에 만났습니다. 아직 형제들이 요셉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노예로 팔았던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었으리라고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베냐민을 빼놓고는 형들과 두 번째 만남이었는데도 그들은 요셉을 몰라봤어요. 요셉은 왜 처음부터 자기 정체를 형들에게 얘기하지 않았을까요? 요셉은 자기 정체를 드러내기 전에 왜 형들을 시험하였습니까? 베냐민 없이 10명의 형들만 왔을 때 자기 정체를 드러내고 베냐민과 아버지를 초청해도 되었는데요. 용서의 가치를 형들이 알게 한 후, 참 화해를 이루기 위해서였습니다. 무척 중요한 이야기에요. 요셉은 형들이 처음 애굽에 양식을 사러 왔을 때, 그들을 향하여 애굽을 정탐하러 온 자들이라고 몰아붙였습니다. 형들이 아니라고 하며, 자기들은 열두 형제가 있었는데 하나는 없어졌고, 아버지가 막내와 함께 있다고 했어요.
4. 요셉은 10명의 형들 가운데 시므온을 볼모로 잡고 그들이 정탐이 아니라면 막내 동생을 데려오라고 말했어요. 요셉이 시므온을 볼모로 잡은 것은 아마도 그가 자신을 가장 힘들게 했기 때문입니다. 시므온은 레위와 더불어 형들 가운데 가장 잔인하였어요. 세겜 사람들에게 행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야곱은 10아들들이 애굽에서 양식을 사옴으로 안심했습니다. 그런데 시므온이 애굽에 볼모로 잡혔고, 베냐민까지 데려가야 한다는 소식에 난감했어요. 시간이 지나서 다시 애굽으로 양식을 사러가야지만, 야곱은 아들들을 애굽에 보내 수가 없었습니다.
요셉에 이어, 시므온, 이제 베냐민까지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야곱에게 엄습했어요. 누구나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기근 중에 양식이 다시 떨어져 가고 더 지체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 유다가 아버지 야곱을 설득했습니다. 베냐민을 자기 목숨으로 대신하겠다고요. 야곱이 어쩔 수 없이 베냐민을 보내고, 요셉에게 양식을 사러 애굽으로 11아들들을 보냈어요. 이렇게 해서 열두 형제가 함께 만났습니다. 요셉은 아직도 자신의 정체를 형제들 앞에 드러내기를 미뤘어요. 형제들을 한 번 더 시험하기 위해 베냐민의 자루에 자기의 은잔을 몰래 넣게 했어요. 형제들을 보내고 잠시 후 청지기가 따라가 형제들을 붙잡았습니다.
5. 요셉의 은잔을 가져간 일로 그의 형제들이 다시 자기에게 돌아오게 했습니다. 요셉은 은잔이 발견된 베냐민만 자기 종이 되고, 나머지 형제들은 평안히 아버지께 돌아가라고 했어요. 이때 아버지를 설득하여 베냐민을 데려온 유다가 명연설을 했어요. 유다의 연설은 요셉만이 아니라 창세기를 읽는 사람들을 울립니다. 유다의 말은 모든 사람의 감정을 자극하는 명연설입니다.(44:18-34, 지난 시간 우리가 나누었어요) 유다는 요셉을 잃은 아버지의 마음을 전했어요. 아버지가 막내인 베냐민까지 잃게 되면 아버지가 흰 머리로 슬퍼하며 스올-음부로 갈 것라고.(죽음)
내가 아버지에게 이 아이-베냐민-를 데려가지 못하면, 내가 영원히 아버지께 죄를 짓는 것이라고 호소했어요. 내가 베냐민을 대신하여 요셉, 당신의 종이 되게 하시고
아이는 형제들과 함께 보내달라고 했어요. 내가 아이와 함께 가지 않으면 내가 어찌 아버지께 갈 수 있겠습니까? 이 일로 아버지가 상심하셔서 목숨을 잃을까 두렵다고 솔직하게 사정을 했습니다. 유다의 연설에 우리도 눈물이 나고 감동이 되는데,
당사자인 요셉이 진정성 있는 유다의 명연설을 들으며 어찌 감정을 억제할 수 있었겠어요? 오늘 본문 1절, 요셉이 시종하는 모든 애굽인들을 내보냈습니다.
6. 요셉이 형제들 앞에서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 소리가 얼마나 컸든지 애굽 사람들이 듣고 왕궁에까지 들렸어요. 요셉이 울면서 유다만큼이나 아니 더 뛰어난 연설을 했습니다.(45:3-13) 나는 요셉이라. 드디어 요셉이 자기 정체를 밝혔어요. 내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계십니까? 전에는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했잖아요. 너희 아버지, 그 노인이 안녕하시냐? 아직도 생존해 계시느냐?(43:27)고 물었을 뿐입니다. 내가 요셉이라고 말하며 아버지의 안부를 물을 때, 형들이 놀라며 아무 대답도 못했습니다. 요즘 말로 맨붕에 빠졌어요.
4절, 요셉이 형들을 가까이 오라고 합니다. 내가 당신들이 애굽에 판 아우 요셉이라고 말했습니다. 요셉은 놀라 정신이 없는 형들을 안심시켰어요.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근심하지 마시오. 하나님이 사람들의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애굽에 보내신 것이오. 이제 2년 동안 흉년이 지났지만, 앞으로 5년 동안 흉년이 이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이 당신들과 당신들의 후손들을 구원하려고 나를 먼저 당신들보다 먼저 이곳에 보내셨습니다. 돌이켜보니 나를 이곳으로 보낸 것은 당신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7. 8절, 기가 막힌 연설이 이어집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바로 왕에게 아버지-상담자, 고문-로 삼으셨어요. 애굽의 통치자-전국 총리로 삼으셨습니다. 당신들은 아버지에게 가서 여기서 본, 내가 누리는 모든 영화를 전해주세요. 아버지와 모든 소유를 정리하여 이곳으로 속히 오시오! 아직 흉년이 5년이나 남았으니, 내가 우리 가족 모두를 돌볼 것입니다. 요셉은 당황해하는 형제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베냐민의 목을 안고 울었어요. 또 형들과 일일이 입 맞추고 안고 울었습니다. 그때 비로소 형들이 요셉과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요셉의 연설은 자신과 형제들 모두를 울게 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눈물을 흘리게 합니다. 영국 왕세자비였던 다이애나의 장례식 때 영국은 눈물바다를 이뤘어요. 이후 한 달 동안 정신과 의사를 찾는 우울증 환자가 절반으로 줄었답니다. 전문가들은 이것을 다이애나 효과라고 불렀어요. 의학 전문가들은 눈물이 하나님이 주신 치유의 물이라고 말합니다. 슬플 때 울지 않으면 우리 몸의 다른 신체가 대신 울게 된다고 해요. 신체에 안 좋은 질환이 생긴다는 뜻이에요. 빌 프레이 박사는, 남자가 여자보다 평균수명이 짧은 이유의 하나는 남자가 덜 울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때로 하나님 앞에서 가슴을 치며 애통하는 울음이 필요합니다.
8. 요셉은 울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울 줄 아는 사람이라야 하나님이 쓰십니다. 부산 수영로교회 정필도 목사님이 소천하시고 장례식을 마쳤습니다. 목사님의 장례식 영상 가운데, 교회를 개척하고 부흥해야 하는데 어떻게 부흥할 수 있느냐고 하나님께 물었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성전에 네가 눈물을 흘리는 만큼 교회가 자랄 것이라고 했답니다. 성전 크기 만큼 눈물을 채워야 한다고. 수영로교회는 서울밖에서 가장 큰 대형교회로 자랐어요.(수영로교회는 장례식 때-무릎으로 세운 교회, 목사님의 뜻을 이루겠습니다고 화답) 목사님이 울며 무릎으로 기도를 쉬지 않으셨기에 이뤄진 기적입니다. 서울 외의 지역에서도 교회가 이렇게 자랄 수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 유일한 목사님이셨어요.
우리도 이제부터 하나님 앞에 울읍시다! 이 성전을 채울만큼 눈물로 기도합시다. 포항시에 죽어가는 영혼들을 구원해달라고요. 요셉은 애굽에 노예로 팔려 온 이후 애굽 사람들 앞에서 울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꿈-비전이 이뤄지는 날을 기다리며 눈물을 참았습니다. 그런데 그의 꿈이 이뤄지고, 형들을 만나고 울었어요. 형들이 과거와 달리 많이 유순해지고 변화된 것을 보고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어요. 베냐민과 아버지를 위한 유다의 명연설을 듣고, 보면서는 눈물을 감추지 않고 엉엉 울었습니다. 이 눈물은 꿈이 이뤄지기 전에 서럽고 아파서 흘리는 눈물이 아닙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구속사관-섭리사관을 가지고 형제들에게 연설했습니다.
9. 이렇게 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라고 말했어요. 그 섭리는 자신과 가족 모두, 나아가 세계-아프리카 북부와 팔레스타인-를 구원하기 위해서 자신을 사용하신 것이었다고요. 실제는 형들이 자기를 애굽에 팔았지만, 요셉은 하나님께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애굽에 파송하신 것이라고 해석했어요. 참 기가 막힌 신앙고백입니다. 이것은 요셉만의 이야기로 머물면 안 됩니다. 우리가 세상에 파송 받은 하나님의 대사들입니다. 요셉의 이러한 신앙고백은 단숨에 형들을 용서하게 했습니다. 형들은 이처럼 복된 소식을 듣고도 믿지 못해 당황했어요. 결국 요셉이 형들과 화해를 했어요. 요셉이 용서한다는데, 화해가 이뤄지지 못할 것이 없었습니다.
용서는 힘이 있는 자 또는 피해자가 하는 것입니다. 힘이 없는 자, 가해자-빚진 자가 어찌 용서할 수 있습니까? 4월 10일은 종려주일입니다. 이날 세례와 성찬식을 거행합니다. 성찬은 주님의 고난-희생을 기념하는 것이에요. 주님의 값진 희생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과 화해-화목하게 되었어요. 요셉이 형들을 용서함으로 형제 화해가 있었듯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용서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화해-화목하게 되었습니다. 요셉이 여러 점에서 그리스도의 모형-실체가 아닌 그림자-이 되었습니다.
10. 이 땅에 최고의 기적은 용서를 통한 화해-화목입니다. 우리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입니다. 우리 인생 가운데 임한 최고의 기적은 나 같은 죄인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 용서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죄 용서를 받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어요. 우리도 형제-세상 사람들-를 용서하고 그들과 화목해야 해요. 주님은 자신이 하신 일을 그의 제자들인 우리도 행하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은 친히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다.(고후5:18) 이처럼 아름다운 직분을 요셉처럼 잘 감당하며 사는 우리가 될 수 있도록 이 시간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