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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8장 2-4절. 성령님 인도로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드리는 삶. 요약설교
1. 지난 시간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왜, 예수님 안에는 정죄가 없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2절입니다.
그리고, 3절에서는, 율법은 사람을 의롭게 하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하신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로, 4절은, 육신의 욕구를 좇지 않고, 성령님을 좇아 살아갈 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진다는 내용입니다.
2. 이처럼, 오늘 내용은 세 가지입니다.
2절. 예수님 안에 정죄가 없는 이유
3절. 율법은 사람을 의롭게 못하나, 하나님은 사람을 의롭게 하신다.
4절. 육신의 욕구를 따라 살지 않고, 성령님을 따라 살아갈 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진다.
3. 오늘 설교의 제목은 <정죄 없는 이유와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 드리는 삶>입니다.
2절. 예수님 안에 정죄가 없는 이유
2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1.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과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앞에서 율법은 정죄하고 사망에 이르게 했지만, 성령님은 생명을 가져다 줍니다.
즉 성령님을 마음에 모시면, 마귀 사탄이 물러가고, 성령님을 모시고 살면 생명 현상이 나와 주변에 나타나지만, 사탄이 역사하면 모두 싸우고 죽이고 원수되는 관계가 이루어집니다.
얼마나 많은 가정이 마귀로 인해서 불화하고, 싸우고, 때리고 이혼하고, 그 자녀들이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으며 자랍니까?
그러나 성령님을 모시고 살면, 배우자나 자녀나 이웃에게 선을 행하고, 동정하고, 도와주고, 화목하면서 살아갑니꺄?
이처럼 성령님 모시고 살아가면, 가정에 사철에 봄바람이 불어옵니다.
<찬송가 559장> 사철에 봄바람 불어 잇고 하나님 아버지 모셨으니 믿음의 반석도 든든하다 우리집 즐거운 동산이라. 고마워라 임마누엘 예수만 섬기는 우리집 고마워라 임마누엘 복되고 즐거운 하루하루 .
2. 2절은 <이는 ...>으로 시작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왜 정죄함이 없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6장 14절-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라>는 말씀과 같은 내용입니다.
“생명의 성령의 법”은 <은혜와 사랑과 축복>이고, “죄와 사망의 법”은 <율법과 정죄와 저주>입니다.
원래 <율법> 자체는 선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탄이 <율법>을 이용하여, 인간을 정죄하고, 죽게 만들었기 때문에, <죄와 사망의 법>이라고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3:6.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라.
2.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율법>이 인간을 정죄하고, <사망> 아래로 인간을 사로잡아 갔습니다.
그런데, 인간을 정죄하고, 사망 아래로 끌고 가는 율법 즉 <죄와 사망의 법>에서 <성도들은> 해방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성도들은 죄와 사망의 <율법>에서 해방되고, 생명을 주는 <성령님>의 은혜 안에서 살아가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7장 14-21절의 사람은 죄와 사망의 율법 아래서 비참한 탄식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로마서 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그러면, 어떻게 죄와 사망의 율법에서 해방되었을까요?
3절이 그 답을 말씀합니다.
3. 3절.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1) 율법이 할 수 없는 것 -
<율법>은 정죄하는 것을 잘합니다.
그러나, <율법>이 할 수 없는 것은 의롭게 해주는 것을 못 한다는 뜻입니다.
<율법>은 죄인을 의롭게도 못하고, 하나님의 영광(천국 구원)에 이르게도 못합니다.
왜, 율법이 의롭게도 못하고,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게도 못합니까?
율법이 나쁘거나, 흠이 있어서 그럴까요?
아닙니다!
율법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완전하고, 거룩하고, 의롭고, 선한 것입니다.
그러면, 왜 율법이 죄인을 의롭게도 못하고,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게도 못합니까?
(2)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율법>이 죄인을 의롭게 못하고,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게도 못한 이유는, <율법> 자체에 흠이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 인간의 <육신>이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은 <육신>이 연약하고, 죄로 물들어 있기 때문에, 거룩한 율법의 요구를 실천해드릴 능력이 없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전적 무능, 전적 부패>라고 말합니다. (total inability/ total depravity)
(3)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하나님은 우리 죄인을 어떻게 의롭게 하시고,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게 하십니까?
우리 인간은 전적으로 무능력하고, 전적으로 부패했는데요...
예.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연약한 육신을 통해서 구원을 이루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는 방법은, 무능하고 부패한 <인간을 통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과 성령님을 통해서>, 이 구원을 이룩하십니다.
4.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1)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사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우리 죄인의 모습-인간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히브리서 2:14.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속하심은...
<예수님>이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오셨다는 것은, <예수님>이 인간(죄인)의 모습으로 성육신 하신 것을 가리키고, <예수님>께 죄가 있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예수님>이 영으로 오시지 않고, 왜 <육신>의 몸으로 오셔야 했을까요?
예수님은 원래 영이신 하나님이신데, 육신을 입고 사람으로 오신 것은, 우리 죄인의 <영혼과 육체>도 모두 구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영>은 우리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서 피를 흘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 하나님! 하나님은 누구시며, 나는 누구관대, 하나님께서 이렇게까지 해주셨나이까!>
연약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이 되셔서, 우리 대신 정죄를 당했습니다! 할렐루야!
<찬송가 141장> 원말인가 날 위하여 주 돌아가셨나 이 벌레 같은 날 위해 큰 해 받으셨나. 내 지은 죄 다 지시고 못 박히셨으니 웬 일인가 웬 은혠가 그 사랑 크셔라. 주 십자가 못 박힐 때 그 해도 빛 잃고 그 밝은 빛 가리워서 캄캄케 되었네. 나 십자가 대할 때에 그 일이 고마워 내 얼굴 감히 못 들고 눈물 흘리도다. 늘 울어도 눈물로써 못 갚을 줄 알아 몸 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 아-멘
(2) 육신에 죄를 정하사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율법의 정죄를 당하사, 모든 형벌(고난, 죽음, 지옥)을 다 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예수님은 성령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와 계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것은 성령님을 마음 속에 모셔들이는 것입니다.
날마다 예수님(성령님) 모시고, 예수님(성령님) 안에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모든 정죄감에서 해방된 행복한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3절. 율법은 사람을 의롭게 못하나, 하나님은 사람을 의롭게 하신다.
3절.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1. ‘죄를 인하여 하나님의 아들을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셨다’는 것은 우리 인간들의 죄를 속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성육신하셨다는 뜻입니다.
즉 ‘죄를 인하여’(περὶ ἁμαρτίας: for sin)란 표현은 성전에서 속죄제를 드리는 것을 가리킵니다. (레위기 속죄 제사에서 주로 사용됨)
그러므로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속죄 제물이 되기 위해서 오셨다는 것입니다.
이 속죄의 대상은 바로 우리 인간들의 죄 때문입니다.
2. ‘육신에 죄를 정하사’란 말씀은 우리 인간들의 죄를 속죄양 되시는 예수님에게 모두 뒤집이 씌우셨다는 말씀입니다.
죄 없는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는 것은 얼마나 억울한 일입니까?
그런데, 우리 예수님은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사, 이 억울함을 참으시고, 대항하지 않으시고, 분노하지 않으시고, 무서운 형벌과 진노를 다 담당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찬송가 614장. 얼마나 아프셨나 못박힌 그 손과 발 죄없이 십자가에 달리신 주 예수님 하늘도 산과들도 초목들도 다 울고 해조차 빛을 잃고 캄캄하게 되었네. 오 놀라운 사랑 크시고 끝없도다. 오 주님 사랑에 구원의 강물 넘치네.
3. 율법은 죄인을 정죄할 뿐, 의롭게 해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들을 세상에 보내사,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모든 형벌을 다 담당케 하심으로써, 인간을 의롭게 하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을 주님으로 마음속에 모셔 들이는 사람은 율법의 정죄로부터 해방을 받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오늘도 예수님은 성령으로 성도들에게 임재 하셔서, 주님으로 좌정하시고, 성도들을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사는 성도들은 율법의 요구사항들을 충족시켜 드립니다.
<율법의 요구들>은 첫째 모든 율법 규정들을 지키라는 것이고, 둘째 요구는 율법 하나라도 어기는 자를 지옥 형벌에 처하라는 것입니다.
4. 율법의 첫 번째 요구는, 인간들에게 율법의 모든 요구사항들을 철저히 지키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본래 자체에 죄성을 지닌 연약하고, 무능하고, 부패한 존재라서,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 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7장 24절에,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탄식했습니다.
율법의 두 번째 요구는, 율법을 어긴 인간을 심판하고, 영원한 사망의 형벌을 주라는 것입니다.
로마서 7장 24절 말씀처럼, 율법의 정죄를 받은 사람은 사망으로 끌려갑니다.
로마서 6장 23절에,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5. 그런데, 이러한 율법의 요구대로, 하나님은 죄인인 <인간들을> 지옥 형벌에 처하지 않으시고,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 예수님께> 무서운 진노의 형벌을 쏟아부으셨습니다.
요한복음 1:29.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온 인류의 죄를 예수님께 담당시키셔서, 율법의 요구대로 죽게 하셨습니다.
율법이 요구한 것은 단순히 죄인인 인간의 처벌을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이상으로 당신의 아들이 형벌을 받게 하셨습니다.
마귀조차도 깜짝 놀라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에 놀라서, 뒤로 자빠졌을 것입니다!
천사들도 하나님 속에 감추인 이 비밀의 경륜을 보고, 고개를 숙였을 것입니다.
에베소서 3:9.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베드로전서 1:12.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고한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께서 <범죄 한 천사들>을 위해서는 아들을 희생시키지 않으셨고, 베드로후서 2장 4절대로, <범죄 한 천사들>은 용서치 아니 하셨습니다.
베드로후서 2:4.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
6. 그런데, 하나님께서 범죄 한 인간들을 위해서는, 고귀하신 당신의 아들을 대속 제물로 희생시켰던 것입니다!
천사들도 마귀들도 깜짝 놀랄 우리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망극하신 사랑의 놀라움을 3절에서는, <하나님은 하시니라>고 표현했습니다.
7.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주신 칭의(稱義)는 율법의 요구를 무시하고서 주신 것이 아니고, <율법의 요구>를 들어주신 후에 이루어주신 <합법적인 칭의>입니다.
로마서 3:24. 곧 이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심이니라.
로마서 3: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하나님은 율법의 체면을 최고로 세워주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율법을 제정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신 말씀 속에는, <율법의 요구와 부채를 다 지불했다>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율법으로써는 의롭게 되지 못하는 것을 하나님은 예수님을 희생시켜서 우리를 의롭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서, 당신의 아들을 희생시키신 것은 천사도 놀라고 마귀도 놀라 자빠지는 놀라운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이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받은 성도님들은 우리가 받은 구원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를 깊이 깨닫고, 감사 감격하여, 언제나 충성하시기를 축원합니다!
4절- 육신의 욕구를 따라 살지 않고, 성령님을 따라 살아갈 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집니다.
4절.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1. ‘율법의 요구’란 성결 생활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이 자신의 능력만으로는 이 성결 생활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율법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정죄와 저주를 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령님을 모시고, 성령님의 감동과 인도를 따라 살아가면, 우리의 마음과 말과 행동이 아름답고 거룩한 성령의 열매를 맺어서, 율법이 요구하는 성결생활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우리들은 날마다 성령 충만한 생활을 위해서 날마다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성령 충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기도할 때 성령을 주시겠다는 것은 우리 예수님의 약속입니다.
누가복음 11: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2. 성령님을 따라 살면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진다는 본절 말씀은 너무도 소중한 말씀입니다.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심은 성도의 성화(sanctification)와 관계가 있습니다.
성령님을 좇아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드리는 삶은 7장 4절의 <하나님을 위해 열매 맺는 삶> 거룩한 삶, 성화(聖化)를 의미합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율법의 요구를 채워주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계속 <율법의 요구>(빚 독촉)를 따라 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율법의 요구(빚)를 다 채워주셨기 때문에, 이제 우리는 <율법의 요구>(빚 독촉)에서 벗어나, <성령님>을 따라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칭의> 뒤에는 항상 <성화>가 뒤따릅니다.
예수님 믿고, 의롭다 함을 받은 성도는, 이제 성령님 모시고, 하나님의 말씀 따라 살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30. 예수님은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즉, 예수님은 의로움을 주실 뿐만 아니라, 거룩함도 이루어주십니다.
<율법>은 우리에게 칭의도 못 주고, 성화도 못 주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칭의와 성화를 이루어주십니다.
그의 성령과 말씀으로...
이처럼 성령을 따라 살아가면,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를 맺혀서,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는 삶을 살게 됩니다. 할렐루야!
갈라디아서 5: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갈라디아서 5:22-23.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2. 로마서 7장 1-6절에, 율법 남편 밑에서 살 때, 정죄와 사망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남편>을 모시고 살 때는, 의롭다 하심과 영생 천국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얼른 생각할 때는, <엄한 율법 남편> 밑에서 살 때, 성화가 이루어질 것 같습니다.
그러나, <율법 남편> 밑에서는, 공포와 정죄감과 형벌로 지옥 같은 생활을 할 뿐입니다.
남편이 돌아오는 대문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안색이 하얗게 질리는, 공포 생활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나, 죄인인 나를 위해서 죽기까지 나를 사랑해주신 <예수님 신랑>을 모시고 살면, 그 은혜와 사랑에 감사 감격하여, 자원하고 기쁜 맘으로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 충성하는 것입니다.
3. 고흥 나로도 출신의 여자분이 있었습니다.
예쁘고 영리한 분이었습니다.
(1) 총각 선생님이 나로도로 부임해 와서, 이 처녀에게 반해서 결혼을 했습니다.
그리고, 광주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얼마나 까다로운지 도무지 살 수가 없었습니다.
부인을 집에 가두어 놓고, 시장도 못 보게 하고, 세금도 못 내러 가게 했습니다.
아무도 만나지 못 하게 하고, 오직 자기만을 철저하게 섬기라고 합니다.
학교에서만 선생님을 했으면 좋겠는데, 집에 와서도, 부인이 살림하는 것 하나하나를 간섭하면서, 잘못을 지적했습니다.
찬장 위에 먼지 하나까지도 조사했습니다.
모든 것이 가지런하고, 아내의 모습도 자기 맘에 꼭 맞아야 했습니다.
말도 선생님이 원하는 대로 해야 합니다.
친척들에 대한 것도 모두 남편의 원하는 대로 꼭 해야 합니다.
아이를 기르는 데도 꼭 선생님의 원하는 대로 해야 합니다.
그래서 도무지 살 수가 없습니다.
숨이 막혀서...
남편이 들어오는 발자국 소리만 들려도 가슴이 뛰고, 남편이 대문에서 부르는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습니다.
남편이 잘하라는 소리를 들으면, 잘하려는 마음보다는 반발심이 생깁니다.
옳은 말일지라도 무시하는 마음이 들립니다.
(2) 그런데 남편이 광주에서 해남까지 출퇴근하다가 밤에 교통사고로 죽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휴대전화 사업자하고 재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휴대전화 사업자 남편은 예수 믿는 분이었는데, 얼마나 모든 것을 용납하고, 배려를 잘해주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봉급도 통째로 가져다주고, 부인의 말을 잘 들어주고, 항상 칭찬을 아끼지 않습니다.
이 부인은 새로운 세계에서 사는 것 같았습니다.
언제나 웃음이 가정에 떠나지 않습니다.
남편이 아무것도 통제하지 않았으나, 부인은 남편이 돌아오는 것을 온 마음을 다해서 기다리고 준비합니다.
남편의 발자국 소리가 기쁨을 주고, 반가운 마음에 가슴을 설레게 합니다.
남편의 목소리가 그렇게 부드럽고 사랑스러울 수가 없습니다.
이 여자분은 남편 따라서 교회도 나가게 되었습니다.
집사 직분도 맡았습니다.
구역장으로 열심히 봉사합니다.
아이들도 낳고 잘 삽니다.
가정이 행복하니까, 아이들도 밝게 잘 커줍니다.
지금은 버스 정류장 앞에 분식점을 차렸는데, 어찌나 잘 되던지, 성도들 대접도 잘합니다.
(3) 이처럼, 율법 같은 남편을 만나면, 반발심이 생겨서 더욱 죄를 짓게 되고, 예수님 같은 남편 만나면, 감사 감격하여 자발적으로 헌신 충성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율법 남편을 섬기며 살 때는 얼마나 힘들고 괴로웠습니까?
이제 용서와 사랑과 은혜가 풍성한 예수님 남편을 모시고 사시니, 얼마나 행복하십니까?
언제나, 율법 남편의 유혹에 다시 넘어가지 마시고, 날마다 예수님 모시고 행복하게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4. 나의 연약함을 성령님이 아시고, 도와주십니다.
혹, 실수하고 자주 넘어져도, 성령님이 용서하시고, 치유하시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주십니다.
전에는 잘하려면 할수록, 손이 떨리고, 손발이 굳어서, 더욱 실수를 연발하였으나, 이제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참된 자유와 평안과 행복감이 있습니다.
전에는 의무감에서, 형벌이 두려워 살았으나, 이제는 주님을 사랑하고, 좋으신 주님을 모시고, 은혜에 감사하여 사랑과 헌신을 드립니다!
로마서 7:4.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함이니라.
이것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 때 맺혀지는, 성령의 열매요, 성화의 열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육신의 소욕 따라 살지 마시고, 기도하여 성령님의 인도 따라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하나님의 백성들을 사랑하며, 행복한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