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초
손 원
오늘 벌초를 하고 왔다.
밤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향긋한 풀 내음이 나는 듯 하다. 땀을 많이 흘렸기에 집에 돌아와서 샤워를 했는데도 풀 내음이 나는 것이 이상하다. 아직도 풀 밭의 여운이 남아 뇌를 자극하는 상상의 내음 인 듯하다.
향긋한 풀 내음이 코끝에 와 닿는 듯하니 기분이 좋다. 어떠한 향수 보다도 좋은 향취인 것 같다. 속설에 벌초를 하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 지고 기분도 좋아진다고 했다. 향긋한 풀 내음과 더불아 그런 기분을 만끽하고 있다.
우리 내외는 해마다 아버님과 같이 어머니 산소 벌초를 해 오고 있다. 추석을 앞둔 시기여서 무척덥다. 오늘은 일기 예보상으로는 흐리다고 했는데 오후 내내 뙈약볕 아래서 작업을 해야 했다. 어머니 산소는 외할머니 산소와 같이 있다. 그래서 산소 두 곳을 하자면 꽤 힘이 든다. 나는 예초기로 아버님과 아내는 구석진 곳을 낫으로 마무리 했다.
나는 예초기를 3년째 사용하고 있으나 서투르다. 때로는 실수로 날이 지면을 찍거나 돌맹이를 건드려 연결봉이 툭튀기도 하여 위험하다.
서투른 솜씨다 보니 팔에 힘이들어 쉽게 지치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하지만 어머니와 외할머니를 그리며 힘든줄도 모르고 분투하다 보면 온 몸이 땀으로 흠뻑젖는다.
잔디를 균일하게 곱게 깎으려고 욕심을 낸다.
잔디가 뜸한 곳은 잡풀로 덮혀 한여름을 지나고 나니 가장자리는 어른 키 만큼이나 자랐다. 아카시아를 비롯한 키 큰 잡풀 제거는 난이도가 있는 작업이지만 강한 의욕으로 해냈다.
말끔히 잡풀정리를 하고 술 한 잔을 올렸다. 승용차를 타기 전에 나무그늘 아래서 땀을 식히면서 아버님은 전에 하신 말씀을 오늘도 하셨다. "앞이 탁트여 멀리까지 보이는 곳이다. 가막산 까지는 백리는 될 걸..." "모녀 산소가 앞뒤로 있어 어머니가 딸을 업고 있는 형상이다." 라며 만족해 하신다.
나는 아버님을 보살피고 있지만 늘 부족한 것만 같아 아쉽다. 살아 계실 때 잘 해야만 돌아 가신 후에도 후회가 없다고 했는데 그럴 것 같지가 않다. 돌아가신 어머니 살아 생전에는 마음 뿐이었기에 후회스럽다. 돌아가신 어머니께 무엇을 해 드릴 수 있을까? 살아 계실때 못해드려 후회가 된다. 지금이라도 무언가 해 드릴 수 있다면 좋으련만.
돌아가신분께 해 드릴 수 있는 일이 조금은 있어 위안을 삼고있다.
먼저 영면하고 계시는 산소를 잘 돌보는 것이다. 홍수를 대비하여 산소 옆 구거를 정비하였고, 잔디 조성도 웬만큼은 했다.
다음은 제사를 성심 껏 모시고자 한다.
산소를 돌보고 제사를 모시는 것은 기성세대의 생각이고 앞으로 이러한 전통이 점차 희석되어 사라질 지도 모른다.
조상을 납골당에 모신다면 산소를 돌 볼일은 없다. 납골당이 시대 상황에 맞다는게 일반적이다. 화장이 매장을 능가하고 있어 납골당 문화를 견인하고 있다. 어떤 것이 바람직 하다고 할 수는 없다. 집안의 사정에 따라 적절한 방법이 있을 것이다.
한정된 국토와 환경문제를 고려할 시 매장보다 납골당이 바람직하다며 권장하기도 한다.
제사 문화도 간소화 되었고, 여러 제사를 한꺼번에 지내기도 하고, 아예 지내지 않는 가정도 있다고 한다.
다소 혼란의 시대임은 분명하다.
전통적인 방식이든 현대적인 방식이든 나름대로 장단점이 있다. 그것은 방식의 차이일 뿐이다. 조상의 위업을 기리고 나의 뿌리를 소중히 간직하는 것만은 시대를 초월한 미풍양속이다. 현실에 맞게 가풍을 존중한 미풍양속으로 발전하기를 기대 해 본다.
추석을 앞둔 주말이면 벌초에 나서는 차량들로 도로는 복잡해 진다. 선산 벌초때면 곳곳에서 예초기 소리가 요란하다. 벌초는 조상께 해 드릴 수 있는 조그마한 성의기에 존중 되어야 한다. 벌초가 아닌 납골당을 찾아 경배하는 것도 이에 못지 않다.
벌초가 끝난 산자락을 바라보면 아름답지가 않다. 짙은 수목속에 희뿌연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산소는 흉물스럽기까지 하다.
자연과 조화된 벌초를 하면 어떨까?
추석이 다가오고 있다. 말끔히 단장한 어머니 산소에서 형제들이 모여 성묘하며 어머니께 안기고 싶다.(2021. 8. 21.)
첫댓글 벌써 벌초를 하고 오셨군요. 저는 아직 생각조차 하지않고 있는데 잘 하셨습니다. 글을 통해 선생님의 효심을 읽을수 있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무더위 피해 시원한 날 다녀 오시기 바랍니다.
벌초하며 효를 생각하는 정경이 그려집니다. 갸륵한 마음이 묻어있는 글 잘 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