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룡사(興龍寺)는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도평리에 있 는 백운산. 대한 불교 조계종 제25 교구 본사 봉선사의 말사.
신라 말엽에 도선국사가 창건. 절터를 정할 때 나무로 만든 세 마리의 새를 공중에 날려 보냈는데 그 중 한 마리가 백운산에 앉아 그 자리에 절을 세웠다고 한다. 1922년에 중수하면서 흑룡사로 이름을 바꾸었으나, 후에 흥룡사로 환원되었다.
포천 '흥룡사' 근처 밭에서 출토된 두손 잘린 철조여래 좌상은 약사불이다..신라 말 혼란했던 세상을 바로잡고 국토를 보전하기 위해 '철조약사여래좌상’을 모신 백운 산 흥룡사
포천지역의 불교 전파를 주도하며 700여 칸의 옛 위용 부활 기대해 본다. 포천지역은 전형적인 분지지역으로 불교문화가 성행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현재까지 전해 내려오는 전통사찰은 2개소에 불과 하지만 2010년대 초반까지 포천시 일동면에 원통 사가 있었지만, 골프장 개발 등 주변의 개발압력에 교세(敎勢)를 유지하지 못 하고 폐사(廢寺)되었다.
조선시대까지 기록에 등장하는 포천지역 사찰은 조선 중기인 16세기에 편찬된 ‘증동국여지승람’에 수원산 원사(水源寺), 향적산 안양사(安養寺), 향적사 (香 積寺), 해룡산 해룡사(海龍寺), 주엽산 성불사(成佛寺), 백운산 백운사(白雲寺 지금의 흥룡사), 청계산 원통사 (圓通寺), 보장산 보장사(寶藏寺) 등이 기록되어 있다.
18세기 중반에 편찬된 포천지역의 사찬 읍지인 ‘견성 지’에는 천주산 신륵사 및 두문사 등이 추가 기록되어 있으나, 모두 폐사(廢寺)로 기록되어 있으며, 현재 포천의 전통사찰은 흥룡사(興龍寺)와 왕산사(王山寺) 뿐이다.
더욱이 조선 초기까지 사찰의 부속시설로서 포천 지역 을 순례하는 수도승이나 행려들에게 이동의 편의를 제 공하던 벽탄석원(碧呑石院), 공덕원(功德院)이 교통의 발달에 따라 이동경로가 변경되는 등 사회경제적인 요 인으로 폐쇄됨에 따라 조선시대에 들어 포천지역 불교 문화는 쇠락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포천지역 불교문화 전파 주도한 흥룡사=창건부터 현재까지 포천지역 불교문화의 전파를 주도하는 사찰 은 백운산의 흥룡사가 유일하다.
흥룡사와 관련된 문헌기록을 통해 창건연대와 변화상 을 살펴보면, 1706년(숙종 32)에 지어진 ‘백운산 내원 사 사적(白雲山內院寺事蹟)’과 1786년(정조 10)의 ‘백운사중수기(白雲寺重修記)’, 1927년에 간행된 ‘봉 선본말사지(奉先本末寺誌)’ 흥룡사의 부사명연혁(附寺名沿革) 등이 전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도선 국사가 창건하여 백운산 내원사(內院寺)라 칭하던 것을 조선 초 자초(自超)가 중창하고, 1638년(인조 16) 무영(無影)이 중건하였으며, 1639년(인조 19) 무영의 제자 지혜(智惠)가 100여 칸 규모의 선원인 상선암(上禪庵)을 지었으며, 1648년(인조 26)에는 청암(淸巖)이 50여 칸 규모의 보문암(普門庵)을 지었다. 1786년(정조 10) 태천(泰天)이 중건한 뒤 이름을 백운사(白雲寺)라고 고쳤으며, 1922년 설하(渫河)가 대웅전을 중수하고 흑룡사(黑龍寺)라고 고쳤다가 사법 승인(寺法承認)에 따라 백운산 흥룡사라고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6.25 전쟁 때 불에 탄 것을 1957년 관음전, 1982년 백 운당, 1987년 대웅전 순으로 중건하였다. 창건 초기 대웅전 등 법당이 4동에 이르고 여러 채의 요사채를 거느린 대규모 사찰이었다 고 한다.
◇도선국사 창건 사찰과 철조여래좌상 2기=도선이 창건했다고 전하는 흥룡사의 건립 배경과 성격에 대해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있는 2기의 철조여래좌상이 주목된다. 관련 유물의 입수 경위는 관리카드와 조선총독부 문건을 통해 알 수 있는데, 유물 관리카드에는 ‘경기도 포천군 이동면 백운리, 1925년 12월 17일 발견품, 100엔’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조선총독부 공문서-발견-대정 13년(1924)’에는 조금 더 자세한 상황을 기록하고 있다.
‘경기도 포천군 흥룡사에서 보관 중인 매장물 철제 좌불 2체(1개는 높이 4척 5촌, 또 하나는 3척 5촌)가 있으며, 철불의 존명은 석가모니불(4척 5촌), 지장보살(3척 5촌) 대한 결재(이설)를 바란다’라는 내용이 적혀있으며, 당시 ‘동아일보’는 ‘포천에서 지장보살, 석가모니가 나왔다’라고 보도하면서 ‘포천군 이동면 도평리 백운동에 사는 윤만명씨가 지난 8월 30일에 밭에서 철로 만든 불상을 발견했다’라고 당시의 상황을 전하고 있다. 이를 통해 포천시 이동면의 흥룡사에서 두 구의 철로 만들어진 불상이 발견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약사계곡·약사 등 철조여래약사 신빙성 더해= 조선 총독부 문건에 기록된 지장보살불상에 대해 최근의 연구1)를 통해 그 성격이 규명되었다. 철조여래좌상의 오른 손바닥은 위를 향하고, 왼쪽 손바닥으로 약기(藥器)를 받치고 있는 것을 증명하였고, 철불좌상을 약기 를 든 철조약사여래좌상으로 확인한 것이다.
더욱이 흥룡사가 소재한 포천시 이동면 일대는 약사 계곡 등 ‘약사’라는 지명이 많이 쓰이고 있으며, 예전 ‘약사(藥寺)’라는 사찰이 있었다는 구전이 전해지고 있어 이에 대한 신빙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흥룡사의 철조여래좌상은 금박으로 도금 되었던 사실도 확인 했는데, 이는 당시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대업이라 경 제적 후원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흥룡사 철조여래좌상의 발원자와 조성 배경을 밝히는 데 창건자인 도선 국사와 ‘내원사’의 사명(寺名)이 주 목된다. 조선총독부 내무부지방국이 펴낸 ‘백운산 내원 사사적(白雲山內院寺事跡)’에는 ‘도선이 백운산 등 중요한 세 곳을 택하여 비보사원을 세우고 다시 약사 여래삼존상을 조성하여 사원에 봉안했다’는 기록이 남 아 있다. 즉 도선은 흥룡사의 전신인 내원사에 약사 여 래 삼존상을
◇700여 칸 위용 자랑했던 천년고찰=도선이 철불을 조성한 배경에 대해선 ‘선암사중수비’에 ‘도선이 비보를 위해 도량을 세우고 철불 등을 조성했다’라는 기록2)을 볼 때, 도선은 사찰을 보호하고 나아가 국토를 비보하기 위해 9세기 후반경 철조여래좌상을 조성했던 것으로 보이며 이 시기 흥룡사를 창건하며 철조 약사 여래 좌상 을 모신 것으로 파악된다.
흥룡사의 창건과 철불 조성을 지원한 배후에 대해서는 ‘왕건이 백운산을 둘러보고 도선으로 하여금 범궁(梵宮) 700여 칸을 세우게 하고 또 산 주위의 논밭 수백 결을 주었다’라고 전하고 있어 흥룡사는 고려가 건국 되던 시기 불교를 진흥시키고 국토를 보호하기 위해 사찰을 창건하고 금으로 도금한 철조약사여래 좌상을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1932년 12월 8일자 조선총독부 관보 제1776호’에는 흥룡사의 귀중품으로 아미타불, 16나한, 후불탱 등 68 점의 성보문화재가 있었다고 했으나 현재는 관련 유물 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으며, 흥룡사 경내에는 향토 유 적 제35호로 지정된 청암(淸巖) 대사의 부도와 16 81 년(숙종 1)에 세워진 묘화당(妙化堂) 부도만이 남아 있다.
1)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포천 출토 철조여래좌상에 대한 소고, 미술자료 96(국립중앙박물관), 2019.
2)도선국사는 비보사찰로 순천 선암사, 광양 운암사, 영암 용암사 등을 창건했고, 그 중 순천 선암사의 철불은 지세를 누르기 위한 비보물로 조성되어 현재 선암사 각황전에 전한다.(김진숙, 고려시대의 비보사탑과 불상 조성, 불교연구, 42, 2015, p.265)
흥룡사(興龍寺)의 연혁이 나온 이들 자료에 따르면 신라 시대 도선 국사가 창건, 내원사(內院寺)였고, 고려 태조(太祖) 왕건(王建)이 비보사찰(裨補寺刹)로 지정 하였다. 그 후 조선 태조 때 무학(無學)이 중창, 태종 때 에 왕실의 복을 비는 88개 자복사(資福寺) 중 하나로 천태종에 속하 였다. 1638년(인조 16) 무영(無影)이 제자 시십(時什)·인해(印海) 등에게 14채의 사찰 건물 을 중건하게 하였고, 불상을 개금하고 종을 제작하는 등 절의 규모를 키웠다.
1786년(정조 10) 승려 태천(泰天)이 사찰을 중건 하면 서 절 이름을 백운사(白雲寺)로 고쳤다가 다시 흥룡사 로 하였다.
또 1922년 승려 설하(渫河)가 대웅전을 중수하면서 절 이름을 흑룡사(黑龍寺)로 고쳤다가 곧이어 다시 흥룡 사로 바꾸었다.
그 뒤 6·25 전쟁 때 폐사된 것을 이후에 재창건 하였 으며 대웅전, 삼성각을 중건하였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좌측에 석조 지장보살 입상과 도명존자(道明尊者), 무독귀왕 입상(無毒鬼王立像)이 있다. 아랫단에는 원통당과 오층 석탑, 요사채와 청산 다원이 있다.
입구에는 포천시 향토 유적 제35호로 지정된 흥룡사 청암당 부도(興龍寺淸巖堂浮屠)와 흥룡사 묘화당 부도(興龍寺妙化堂浮屠)[1681년 건립]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