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30일 밤, 지인이 문자를 보내줬다. 지금 ‘일베에서 난리가 났다’는 내용이었다. 좋은 소리보다 나쁜 소리 듣는 게 기자인지라 그런가보다 했다. 그런데 그 다음 문자가 재미있었다. ‘까보전 박은주’라는 대목이었다.
까보전? 처음 듣는 말이었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까고 보니 전라도’라는 뜻이라 한다. ‘알보칠’ ‘당보칠’이란 말도 연관 검색어로 나왔다. ‘알보칠’은 ‘알고보니 7시방향 출신’, ‘당보칠’은 ‘당하고 보니 7시 방향 출신’. 7시 방향이란 역시 전라도 지역을 의미한다.
사실 지난 30일 TV조선 시사토크 판에 출연한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와 설전이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 시대와 유신에 대한 평가 대목에서였다. 조대표와의 대화에서 앵커 박은주는 진행자로서 예의를 잃었다. 이를테면 출연자의 말을 끊는 것이 그런 예다. 의견이 다르다면 출연자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려 반론을 펴는 게 정석이다. 기본 예의가 부족했던 점은 출연자는 물론 시청자에게도 죄송한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자아 반성’에 돌입했으면 그만일 일이었다. 그런데 그만 호기심에 포박당하고 말았다. 궁금함은 ‘클릭’을 유발하는 법. 알려준 사이트에 들어가 올린 글 제목만 훑어봐도 참으로 ‘장관’, 혹은 ‘가관’이었다. ‘자아반성’이 충분한 태도의 문제를 지적하는 글은 적었고, 대신 훑어본 몇몇 글의 요지는 이런 것이었다. ‘박은주란 ㄴ이 7시 방향 출신’이고, ‘유신이나 박정희 대통령을 평가하는 태도를 보면 이건 완전히 홍어ㄴ’이라는 내용이 대다수였다. 과연 악명높은 사이트다운 화법이었다.
그들에게 전라도는 그 어떤 강렬한 단어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존재였다. 전라도 출신이라는 것을 들키는 순간, 한마디로 너덜거릴 정도로 당한다. 전라도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친 선배는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기사에서 혹 새누리당을 비난하면 ‘역시 전라도 것’이라는 악평이 달린다. 민주당을 조지면 이번에는 ‘전라도 출신인 것을 숨기려고 애쓴다’는 반응이 나온다.” 그 얘기를 하는 선배의 얼굴 표정이 좀 씁쓸해 보였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네티즌 중 “당신 전라도 출신이라며?” 하고 직접 얼굴을 보고, 혹은 전화로 물어온 적이 있었던가? 이를테면 적어도 회사나 학교, 동사무소나 가까운 파출소 등지에서 “저 자식은 전라도 출신이라서 안돼” 하는 말을 공개적으로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우리는 상식으로 안다. 그런 조야한 말을 입밖에 내선 안된다는 것을. 그래서 사람들은 ‘믿을만한’ 사람끼리 수군거린다. 그 수군거림을 떼로 모여서 얼굴 가리고 하는 곳이 바로 인터넷이다. 그런데 그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알보칠’ ‘까보전’을 매일 밤마다 인터넷에 쳐넣는 사람들 말이다. 그들은 설렁탕에 고기 두어점 더 얹어주는 인심 넉넉한 식당 주인일 수도, 소풍 가방을 메고 경괘한 걸음을 걷는 여중생일 수도, 저쪽에서 묵묵히 일하고 있는 아끼는 후배일 수도 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다. “일베는 어디에도 없고, 어디에나 있다.” 즉, 극우사이트 일베의 회원이라 공개적으로 말하는 사람은 없지만, 일베는 여전히 우리 주위에 있다는 얘기다. 그 사이트 회원이라고 커밍 아웃하지 않는 건, “그 사람 일베래!” 하는 소문이 퍼지는 순간, 엄청난 ‘낙인’이 되기 때문이다.
참으로 재밌는 세상이다. 일베세상에서는 전라도를 낙인찍고, 실제생활에서는 일베를 낙인찍는다. 물론 이 두 집단이 무슨 공통점이 있다는 얘기는 아니다. 최근 공공기관이나 사정기관에 부산 출신이 대거 포진하면서 ‘PK 독식이냐’는 말이 나왔다. 그러자 일부는 ‘PK 역차별’이란 말로 응수한다. 그럴수도 있다. 일생을 건 자신의 노력과는 상관없이 ‘지역 프리미엄’이라는 비난을 듣는 개인으로서는 응당 그렇게 생각할 만하다. 그러나 PK출신 사인의 노력과는 별개로, 집단적 ‘PK의 약진’은 충분히 사회적으로 논란이 될만하다.
더욱이 ‘PK 독식이냐’는 말이 공공연히 언론에 나올 정도라면, ‘PK 출신’이란 말은 ‘일베 회원’, 혹은 ‘전라도 출신’이라는 말이 내포하는 ‘비하’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평가가 개입된 말이다. “김대중이나 노무현 때 경상도 차별이 없었는 줄 아느냐”고 화를 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조직적으로 경상도를 비하하거나 괴롭히는 세력은 없다. 경상도 출신이 경상도 출신임을 들켜 거덜난 적이 있던가? 그래서 ‘경상도 역차별’이란 말은 아직은 너무 이르다는 판단이다. 그건 차라리 메이저가 부담해야 할 일종의 사회적 세금같은 것은 아닐까. 아직은 그렇게 판단해야 수준이 있는 사회가 아닐까.
P.S. 누가 이런 글을 보내줬다. <1.박은주는 홍어냐 아니냐? 2.조선일보 출신이냐 아니냐? 한국일보에서 넘어왔다는 설도 있고, 찌라시 출신이라는 설도 있다. 3.좌좀이냐 아니냐? 본인이 직접 밝혀라.> 하는 내용이라는 것이다. ‘까보전 박은주’ 그런데 어쩐다? 그분들이 까보든가, 말든가. 그런 건 어째 상관할 바는 아닌 것 같다. 전라도라 하면 ‘봐라 틀림없다’ 할 것이고, 아니라고 하면 ‘본적을 속이고 있는 게 틀림없다’고 할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