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20 주일
임 은미 (유니스) 목사
묵상
새벽 3시가 좀 못 되어서 일어났다.
보통 4시간을 자는지라...
어제 밤 11시 조금 넘게 잠을 잤으니
당연(?) 일어날 시간은 3시가 되는데..
그러니.. 평소보다 일찍(?)일어났다는 것이다.
한국이 케냐보다
6시간이 더 빠르니 요즘은 일어나면
카톡을 먼저 보게 된다.
오늘 카톡에 참 반가운(?) 글이 있었다.
나를 기쁘게
하는 문자들. .바로 이런 문자들이다.
내가 지난 학기 한세대학원에서 상담학을 가르쳤다.
학기말 고사를 보는 날
나는 좀 특이(?)한 방법으로 채점을 했다.
한 학기 읽어야 하는 교과서의 분량이 있었다.
그 읽기를 100%
다 하면 20프로에 20점이 그대로 반영된다.
학기말 고사 보는 날 나는 학생들 한명 한명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나에게 정직하게
읽으라는 분량을 100% 다 읽었으면 스스로 자기 점수를 말하라고했다. "20점!" 이렇게 말하면 되고
50%
읽었으면 "10"점 이렇게 말해야 하고...
학생들이 스스로 정직하게 자기 점수를 나에게 말하라고 했다.
모든 학생들은
스스로 자기 점수를 말했다.
그 중 0점도 있었다.
읽으라는 분량을 하나도 읽지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20점도 수두룩
했지만
그 중에는 5점 3점도 나왔던 것이다.
각자 자기 점수를 자기가 다 말하고 난 다음에는
솔직하게 0점을
0점이라고 말한 학생들..
10점 아래인데 다 정직하게 자기 점수를 말한 학생들에게는
정직을시험기준으로 한 채점이라고 말하고
다들 보너스 10점씩을 주었다.
그러니 0점 받은 학생은 10점을 받은 것이었다.
3점은 13점
이렇게..
그런데 오늘 아침 온 문자?
다 옮기지는 않고 부분적으로올려 본다.
****
사랑하고 존경하는
교수님!
케냐에서의 생활은 잘 적응하고 계시는지요?
교수님의 수업을 한 학기간 들은 ( )전도사라고
합니다. 지금까지 신대원에 들어와서 배운 것 중에 가장 많이 삶으로 도전받고 배운 것은 교수님의 수업입니다.
그래서 너무나도
감사하고 도전이 됩니다.
교수님 다름이 아니라, 제가 설교자로서 회개한 일이 있습니다.
오늘 새벽 즉 1시간 전에
말씀 묵상 중에 잘못된 것을 깨달았습니다.
교수님께서 내 주신 과제 20점 만점에 몇 점으로 책을 읽었냐고 물으셨을 때,
저는 18점이라고 했는데,
사실 18점이 아니라 14점입니다.
죄송합니다.
지금이라도 성적을
14점으로 반영할 수 있다면 반영해주세요. 그보다 더 낮은 점수도 괜찮습니다.
일주일간 왜 이렇게 기도가 되지 않는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오늘 새벽에서야 성령님이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정직하지 못한 제 자신을 회개합니다.
하나님께도 회개하였고,
교수님께도 회개합니다.
야고보서 1장 26절 묵상중에 저의 잘못된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저는 제 마음을 속인 거짓된 경건의 삶을 살았음을 고백합니다. 교수님 저의 실수를 용서해 주시고,
저도
교수님의 말씀처럼 늘 정직한 사역자 되겠습니다.
다음 학기 수업때 또 뵙겠습니다^^
*******
이 문자를
읽고 다음과 같이 답을 보내 주었다.
***
와우 그대 글 대박!
내가 이럴 때 바로 가르치는 보람을 느낀다니까요
ㅋㅋ
감사 감사 왕 감사!
정직은 저의 점수 기준에 아주 중요합니다.
벌이 아니라 점수를 더 주고 싶은
마음
아마 우리가 죄를 고백할 때 바로 주님의 마음이 이런 마음? ㅋㅋ
네!
점수는 그대로 이고
깎이는 것은 없습니다.
일부러 알려 주셔서 감사해요 ^^
******
아침에 받은 위와 같은 고백에 이전에
내가 대학교 1학년때 수양회 가서 은혜 받고 돌아와서 했던 일 중 하나가 저절로 떠오른다.
나는 고등학교 3학년데 미국으로 이민
갔는데 미국에서 젤 힘든 과목이 영어였다. (당연한 일? ^^)
그래서 영어시간마다 컨닝을 했다.
수양회 가서 은혜 받고
돌아오니 그 일이 참 마음에 걸려서리..
고등학교 영어 선생님를 찾아 갔다.
그리고 고등학교 다닐때 컨닝했던 죄를 자백하고
그리고 용서를 빌었다.
그 때 영어선생님이 해 주셨던 말을 지금도 기억한다.
"내가 지금까지 학생들을 한 두명
가르쳤겠니?
그 중에 컨닝한 녀석들이 한 두명이었겠니?
그러나 그 중 돌아와서 잘 못했다고 하는 학생은 너
하나이구나!"
그 선생님은 그 날 내 죄를 용서 해 주셨었다.
내가 한세대학원에서 강의 해 달라는 초청을
받았을때
앞으로 순복음교단에서 목회자들이 될 후보생들인 것을 알고 있었기에
내가 가르쳐야 하는 과목은
상담학이었으나
그들에게 건강한 영성을 가르치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다.
정직과 거룩을 추구할 수 있도록
참으로
올바른 목회자들이 배양 될 수 있도록
내가 교수로서 올바른 본보기의 삶을 보여 줌으로써
이들에게 도전과 격려와 힘이 될 수
있는 자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그 강의 자리를 기쁜 마음으로 받아 들였던 것이다.
한 학기를 가르치고 단
한명이라도
앞으로의 목회에
거룩과 정직을 최선 다하여 지켜 가기를 힘써 간다면
난 한 학기 이 학교에서 강의 한 것에
대한 보람과 감사를
100% 갖게 되리라고 생각한다.
에 스 겔 22 장
30 -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 서서 나로 하여금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에서 찾다가 찾지 못하였으므로
"I looked for a
man among them who would build up the wall and stand before me in the gap on
behalf of the land7 so I would not have to destroy it, but I found
none.
하나님이 찾으시는 그 한사람!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 서서
하나님으로
하여금 그 성을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하나님이 찾지 못하였다고 하시니!!
아! 이 한사람 정말 아무도 이 자리에
없단말인가?
하나님의 진노를 기도로 막아 줄 자가 진정 한사람도 없단 말인가?
하나님은 두 사람을 찾는것도 아니고
바로 "딱 한사람"을 찾으신다고 말씀 하시는 것이 아닌가!
벌써 세월이 흘러서 6개월 전인가?
내 인생에 아마 가장
어려운 일을 겪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때 "아 사람들이 정신병에 이래서 걸리는거구나!"
그런 생각도 가졌던 것
같다.
마음의 고통이 너무 커서 그것을 말씀으로 누르고(?) 달래고 스스로 위로하고 등 등 등..
너무 힘을
썼던지...
결국은 육체가 못 따라 주어서리..
면역시스템은 바닥을 쳤고 그래서리...
KTX 기차안에서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던 거 같다
그러나.. 이제는(?)
다 정상이 되었다고 생각을 한다.
그런데?
요즘 또 한번의 사방이
우겨쌈을 당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가슴이 먹먹하니...
사방이 우겨쌈을 당하면 하늘 문이 열리게
되어있다.
이러할 때
왜 나는 선하게 잘 살았는데 나에게 이런 일이?
이런 생각은 들지
않는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힘들어 보이는 상황들이
나의 범죄함의 결과가 아니라고 생각되어진다면
더 더욱 주님을
향하여
원망(?)의 고백은 나오지 않는 것 같다.
딱히 다른 사람들 보다 더 선하게 살았다.. 하는 그런 생각이
없기때문인 거 같기도 하다.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을 향한 원망하는 말은
내 평생에 죽는 순간까지
단 한마디로
입 밖에 내지 않았으면 한다.
다들 왜 하나님을 그렇게 못살게 구는지 모르겠다.
하나님이 무슨 죄를
지었다고!
하나님이 해 준 것이 그렇게 많다고 감사하고 고맙다고 말했으면
좀 억울 한 것 같애도
왜 하필이면 나이며
왜 하필이면 내 가족이냐고 말하지 말고
좀 참고 살지..
참고 살다 살다 그래도 주님이 내가 기도한 것 처럼 안 들어
주면..
그냥.. 죽지..
죽고 난 다음 천당가서 물어 보도록 하지..
주님의 가장 온전하신 뜻이
무엇이었기에 그 때 내 기도를 안 들어주셨는지...
나는 하나님 향해
"주님 도데체 왜 나에게 이러시는거예요!"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의 말을 듣는 것을 참 거북해 한다.
내 멘티들 중에 그렇게 말하면
(한 두번이 아니고 계속해서 말하면
말이다)
나는 그 묵상 읽다가 안 읽는다.
그리고 삭제 키를 눌러 버린다.
(내 멘티들은 내가 이러는 줄 모른다
^^)
듣기 싫다 나는 그런 소리!
내 멘티들이 이런 나를 안다면 묵상을 정직(?)하게 안 쓸 수 있다는 생각도
있지만..
사실 내 영성(?) 길을 돌아 보건데..
그런 것은 솔직해 봤자이다!
주님의 더 큰 뜻
헤아리고 나면
그런 말 하면서 보낸 시간 조차 아까와 진다.
평생 살면서 주님 사랑한다는 고백만 해도
이 세월은
아깝기만 할터인디...
언제.. 주님 원망하고.. 섭섭하고.. 억울하고..
주님 왜 그러셨어요?
왜 그래요?
왜
나예요 ??
등 등 이런 말들이 필요 한가?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함이니라!"
이 땅에 마지막이 오지
않겠는가!
이 땅 살기 싫다고.. 주님 빨리 오세요! 이런 것도 좋은 태도가 아니다.
내 자식이 매일 아침 나를 보면서
"엄마! 하루가 시작 되어서 좋고 감사하긴 한데요
정말 지겨운 세상이예요!
나 빨리 죽었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말하면
엄마인 내 기분이 좋겠는가?"
살아 있는 동안은 열심히 살아야 하지않는가?
새 날이 선물이라면서
선물 열어 보고
인상 찌푸리면 선물 준 사람앞에서
"예의"가 아니지 않는가?
받은 새날의 선물 감사하여
기쁘고 감사하게 살려고
기도하고 말씀 읽고
아자 아자 아자
해야 할 대적기도 하고
그러면서 하루를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오늘
주님은 "한사람"을 찾는다고 말씀하신다.
이 땅에는 불평하는 사람 너무 많다!
그 많은 사람 중에 나도 속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한사람!
그 누가 불평없이 원망없이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 서서
기도를 해 줄 그 한사람으로 자원할 것인가!!
주님 오늘도 최고의
날입니다!
제가 기도해야 하는거죠!
나라를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가족을 위하여!
친구들을
위하여!
이웃을 위하여!
내가 그 기도하는 "한사람"이 되어야 하는거죠!
오늘도 주님 말씀 앞에 내 자신의
초라함과 연약함과
형편없음을 고백합니다.
주님 찾으시는 그 "한사람"의 삶을 내가 못 살아 드리는 것을 가슴아파 하기를
원합니다.
내가 불이익 당하고
내가 당한 일들이 불공평해서
가슴이 아프고 답답하고 억울 한 것이
아니라
이 인류를 지켜 내는 그 "한사람"이 내가 되지 못하는구나..
하는 그 마음으로
통곡을 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언제나 나는 하나님이 찾으시는 그 "한사람"이 되어
하나님 마음에 안도감을 줄 수 있을까?
"그래 한
녀석을 찾았으니 됐다 됐어!"
이런 마음을 주님께 드릴 수 있는 날이
제 생에 찾아 올 수 있을른지요!!
참으로
죄송하고 죄송하고 또 죄송한 마음입니다!
내가 기도로 지켜 줄 수 있었을 상황들이
내 기도가 없어서
지켜지지 못하고
무너져 버린 그런 시간들..
진심으로 회개하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요..
저로 진정으로 "회개하는 마음"을 가지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여주옵소서!
오늘은 오랜만에 현지인 교회 주일 설교입니다.
올바른 말씀을 잘 증거하도록 도와 주옵시고
오늘도 우리 주님 저를 보시면서 하루종일 기뻐하시면
참 좋겠습니다.
주님 사랑해요
주님 감사해요
외울 말씀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 서서 나로 하여금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에서 찾다가 찾지 못하였으므로
"I looked for a man among them who would build up the
wall and stand before me in the gap on behalf of the land so I would not have to
destroy it, but I found none.
에스겔 22장 3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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